돌담장엔사립문이제격이다.그런데어느날,돌담장이헐린자리에시멘트블록담장이들어섰다.
투박한돌담장위이엉으로기어오른박넝쿨도사라졌다.
시멘트블록담장위엔이엉대신살벌하게도깨진농약병파편을꽂아마감했다.
이렇게하는것이당시로선최고의집단장이었다.
시멘트블록담장엔역시철대문이어울린다고생각하셨던것같다.
철대문을매달기위해콘크리트문설주가세워졌다.
양생이되자,곧읍내철공소에서철문짝이실려왔고기술자는시꺼먼보안경을끼고선새파란불꽃을튕겨댔다.
사립문은이내둔탁한철대문에게자리를내주고만것이다.
그렇게들어선철대문은늘쇠막대빗장으로굳게잠궈져있었을뿐대문으로서의역할은별로였다.
다만대문한쪽에쪽문을매달아사람은쉽게드나들수있도록했다.
철문의상단부분장식은철공소기술자가나름대로손재주를부려아기자기하게한껏모양도냈다.
결코외부와의단절혹은방범용담장이나철문은아니었다고본다.
일꾼을두어새경을줄정도로농사가조금되다보니어느정도과시(?)용이아니었나싶기도하다.
처마밑탈곡기와풍구를보니벼를훑고쭉정이를날리던그시절풍경이그립게다가온다.
탈곡기는나무원통에강한철사를빗살처럼박아세워만든나락훑는농기구다.
풍구는바람을일으켜곡물에섞인쭉정이나먼지등을날려보내는농기구로큰북처럼생긴통속에
날개차를달아놓고,기어가물린손잡이를돌리면서이곳에곡식을부으면겉껍질이나
검부러기들은바람에날려배풍구로빠져나가고낟알만아래로떨어진다.
눈을지그시감으니타임머신을타고그때그시절어느가을날로돌아와있다.
탈곡기돌아가는소리와함께풍구바람에옷속으로날아든검부러기로온몸이깔끄러운느낌도맛보았다.
곡간문은양팔벌린길이에한뼘정도폭의송판열개로이루어져있다.
문설주에홈을만들어맨위에서한판씩끼워아래로내리도록되어있다.
곡간에쌓인나락높이만큼문짝송판을끼운다.
맨아래판에서부터위로순서대로붓으로큼지막하게써놓은壹貳參四五六七八九十字가퇴색되어희미하다.
나락을넣어두는곡간은맨바닥이다.그해벼농사가풍년이면十자가적힌맨위송판까지채워진다.
그렇지않고흉년이들어수확이신통치않을때는六번판까지만끼워지기도했다.
시골집은집주인의온기가사라지면거짓말처럼무너져내린다.
바깥채처마에공들여만들어붙인툇마루는동네아주머니들의쉼터이자입방아공장이기도했다.
툇마루옆에들마루도놓여있어열댓명이모여앉아도비좁지않았다.
뉘집아들은서울서크게성공했다더라,윗마을사는김씨는대처에나가공장일하는딸이보내온돈으로
논두마지기를더샀다더라등등…
이처럼마루는동네通文장소이기도했다.
불과몇년전까지만해도들마루를지키시던어머니가계셔따뜻했는데…
어머니가하시던대로손바닥으로마루바닥을쓸어보았다.몹시도그립다.
당뇨로실명하여십수년을힘겹게보내시다영면하신어머니는생전에들마루에앉아계시다가
조그만인기척에도금새자식임을눈치채고선마루바닥을손으로쓰윽문지른뒤허리춤을잡아끌어앉히곤하셨다.
여느시골집들과는달리지하에사과저장창고가있다.
당시사과품종인국광은가을에수확해이듬해초봄까지지하창고에보관했다가내놓아도말짱할정도로
저장력이뛰어났다.그러다보니저장고에보관했다가설대목에내놓으면사과값을두배로도받을수있었으니
지하저장창고가필수였던것이다.
지금처럼포크레인이나덤프트럭이동원된다면이정도쯤만들기는식은죽먹기였겠으나당시사정은그렇질못했다.
여러날동안인부들을동원해삽질로땅을파내려갔다.
한명은삽자루를잡고두명은삽날양쪽에매단줄을구령에맞춰당기는,이른바3인1조의특수삽질이다.
20평정도를3미터이상파내려간뒤큰돌을쌓아올려사방벽과환기구를만들고
그위는편평하게철근을넣어콘크리트지붕을덮었다.도면없는주먹구구식지하창고는이렇게탄생한것이다.
동네에사과농사를짓는집이몇집더되었으나번듯한지하저장고를둔집은없었다.
수확한사과를나무상자에담아창고로옮겨차곡차곡쌓아올릴때가계절상이맘때쯤이다.
공간이남아이웃집들의사과도함께보관해주는배려도잊지않으셨다.
한겨울밤지하창고문을열고들어가사과몇알을꺼내온가족이아랫목에모여앉아나눠먹곤했었는데…
명치끝이아려온다.
庫房문옆흰회벽면에별난방문기록이남아있다.
딸아이가96년,97년경시골할머니댁에들릴때마다할머니가앉아계시던들마루옆벽에붙어서서
연필로깨알처럼써놓은시골방문기록이다.
특종1,2,3이라제목을붙여다녀간날짜까지꼼꼼하게기록해놓았다.
안마당의하늘을다가려버릴정도로훤칠하게자란목련나무사이로어머니의환청이또렷하게들려온다.
"인혜애미야,오늘은또갸가뭐라꼬써놨는지쪼매읽어다고~"
양송이
2005년 11월 7일 at 3:47 오후
제가카스톱님블로그에맨처음왔을때에도
님의이고향집을소재로된글을읽었습니다.
그글을읽던순간의진한감동이또다시고스란히재생되어살아나는듯합니다.
옛물건들이아직도잘보관되어있는것을보니
더욱소중하다는생각이듭니다.그러나시골집을빈집으로너무오래방치하시면
안됩니다.속히사람이들어가살아야된답니다.잘보존이되었으면좋겠다는생각을간절하게해봅니다.
느티나무
2005년 11월 7일 at 3:59 오후
당뇨병으로실명하신어머니께서조그만인기척에도금새자식임을눈치채고선
마루바닥을손으로쓰윽문지른뒤허리춤을잡아끌어앉히곤하셨다는모습이…
떠오릅니다.
시골집…지금은아무도살고있지않는빈집…
오랫만에찾아가신님의마음이무척싸~아하셧겠군요.
갈수없는고향을다시한번기억의창고속에서끄집어내어봅니다^^
와암(臥岩)
2005년 11월 7일 at 9:08 오후
‘시골집,그가슴아린흔적들’,읽으내려가면서흐르는눈물주체할수가없습니다.
왜이리눈물이많아졌을까요?
돋보기들어올리곤얼굴닦고다시또읽었습니다.
"~~~~~~~~~~~/수십년물걸레질로먹자두빛처럼까무잡잡하게윤기나던마루바닥은까실까실거칠어진데다가/군데군데빗물이먹어내려앉아흉물스럽게변해있다./~~~~~~~~~.",이대목에선울컥신음이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아!!!!!엄마~~~’,잊어버렸던엄마의그손길이다시살아되돌아왔습니다.
그래도님께선행복하십니다.
집과빈흔적이라도느낄수있으니말예요.
저의고향집은허물어없어진지오래고,한아름축,홍옥,국광나무도모두베어지고,그자리엔아파트가들어선지오래랍니다.
그많던농기구를넣어뒀던창고의물건들은어디로사라졌는지?흔적도없음은물론입니다.
이렇게눈물이많아지는걸보면’시골집,그가슴아린흔적들~~~’과함께다른곳으로갈날이멀지않다는게아닐까요?
立冬에서大雪,이시기가가장넘기기어렵더군요.
나목이떨군잎들이하늘로날아오르고마구이리저리뒹구니깐요.
너무서글퍼서요.
立冬지난첫아침,이렇게넋두리가길어졌습니다.
이게다망령이란걸까요?
본효
2005년 11월 8일 at 4:05 오전
딸아이가96년,97년경시골할머니댁에들릴때마다할머니가앉아계시던들마루옆벽에붙어서서
연필로깨알처럼써놓은시골방문기록이다…
이부분에나도모르게숨한번몰아쉽니다
그리고한박자느리게다시글을읽어봅니다..
기록이주는새로움,그리움,외로움…애뜻함…
시골집
외할머니혼자사셨던시골집
우물가옆에핀맨드라미,너른마당에심겨진봉숭아
그리고감나무…집앞에흐르는작은개천물
이리아름다운외할머니댁에엄마가심부름을시키는날은
저는정말가기싫어이리빼고저리빼고그랫던기억이남습니다..
할머니돌아가시고그집은헐리고말았습니다
본효
2005년 11월 8일 at 4:06 오전
그림이잔잔합니다^^*
박원님도그림을그리시는데^^*
山 처럼.到衍
2005년 11월 8일 at 4:27 오전
시골집을공개하셨군요^^
몇개월전시골집에관한글을올린적있는듯합니다.
덕분에옛추억으로달려가봅니다.
부엌의가마솥…탈곡기…
왔다감이란따님의흔적도참아름답습니다.
좋은시간되셨겠습니다.
東西南北
2005년 11월 8일 at 4:54 오전
우리모두정신차리지않으면다시이시골집에서힘들게살아야할지도모르겠습니다.
아파트에서살면서이집을방문하면아련한향수지만,막상여기서산다면고통이지요.
최용복
2005년 11월 8일 at 6:20 오전
제가게을러서인사가늦었습니다.건강하시죠?카스톱님!
가슴아린흔적이지만소중히지녀야하는그무엇아닐까요?
정감어린상도사투리오랫만에듣습니다.
박원
2005년 11월 8일 at 9:59 오전
카스톱님
고향다녀오셨군요.
정겨운고향의모습입니다.
시골집은사람이살지않으면얼마가지않아무너지지요.
집도사람과같이사나봅니다.
그림참좋습니다.
저랑같이그림그리러같이다니시지요..
은하수
2005년 11월 8일 at 10:28 오전
어머니의숨결같은고향집을방문하신글을잘읽었습니다.
어디를보나어머니의손때가묻은곳이라더어머니가보고
싶으시겠지요?
이집을잘관리보수하시어
피곤하고지칠때찾을수있는좋은장소가되기를
바랍니다.
Bohyunsan
2005년 11월 8일 at 1:02 오후
門迎春夏秋冬福..
오랜예전의제집을떠올리게하는글귀입니다
그림이아주소박하군요
종이등불
2005년 11월 8일 at 6:00 오후
참아련한흔적들입니다.
고향.
저에게는추억속에만남아있는……
그런곳입니다.
혜풍화창惠風和暢
2005년 11월 8일 at 11:10 오후
시골집에주인이살지않으면집이망가지는것뿐아니라주변의과일나무도열매를잘맺지않는다더군요!
하지만속절없이사라지는것이어디이것뿐이겠습니까?
사라지는것이있으면얻는것도있지요!
옛날에대한그리움,이제까지몰랐던일상에대한고마움,인생의무게…..
채은
2005년 11월 9일 at 6:00 오전
추억의시골집을다녀오셨군요~
기억속의정다운시골집~~
어릴적고향의집.할머니가지키시던집이
저도생각해보고갑니다.
수홍박찬석
2005년 11월 9일 at 9:12 오전
기억속에어슴프레한고향의모습을잘그려주셨습니다.
옛생각에잠시젖어봅니다.
카스톱
2005년 11월 9일 at 1:42 오후
양송이님,
느티나무님,
와암님,
본효님,
산처럼.도연님,
동서남북님,
최용복님,
박원님,
은하수님,
Bohyunsan님,
종이등불님,
혜풍화창님,
채은님,
수홍박찬석님
많은이웃님들께서제시골집이야기에
따뜻한말씀들을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휘
2005년 11월 9일 at 2:25 오후
처마끝에달려있을감홍시가보이는듯합니다.
아니,모과나무인듯하네요.
또,탈곡기를밟으며타작을하던때가기억납니다.
오랜만에옛기억들을봅니다.감사합니다.
와암(臥岩)
2005년 11월 9일 at 7:44 오후
조선닷컴블록그인기글에선정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매번님의글,인기글에오르지만말예요.
다시한번읽고갑니다.
sni629
2005년 11월 10일 at 2:11 오전
추억속으로…
한번쯤..어릴적놀던동네를가보고싶었던마음이있었습니다..
어렸을때보았던학교운동장이커서가보니까,,너무작아서이상했던기억이
있지요..카스톱님의기억을잘보고갑니다…^^
parkynim
2005년 11월 10일 at 6:31 오전
저기맨위의그림,
그거님이그린시골집부억….
너무나도정겨운우리의전통부억,
님은그림도참잘그리시는군요.
전시골태생은아니어서농사에관한것자세히는모르지만…
듣고아는바대로님의아련한기억속으로같이동참하며
면면히가슴뭉클함을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