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기운 머금은 지리산에 서다 (下)

18:00
등어리땀을서늘하게식혀주던벽소령골바람은금새차디차다.
어둠이서서히내려앉는다.
허기를채우려는산객들의손놀림도분주하다.

이곳저곳서버너불이피어오른다.라면에누룽지에커피까지…
그리고오가피술한컵부어원샷하고나니별빛더욱또렷하다.

실제로는차갑도록푸른달빛이나사진이서툴러서…

산등성이위로휘영청떠오른둥근달은차갑도록푸르러가슴시리다.
가을밤의교교한달빛은지리산등줄기에그렇게천지기운을지피고있었다.

대피소마루바닥에담요한장깔고곤한몸을뉜다.
저마다들고나는시간대가제각각이라자다깨다를거듭할수밖에.

05:20
칼잠탓에삭신은쑤시나머리는맑다.
서두른다.형제봉에서의지리산일출을놓칠수는없다.
어둑한산장을뒤로하고헤드랜턴불빛에의지하여형제봉으로향한다.

06:00
형제봉바위난간엔이미여럿일출을기다리고있다.
저멀리하늘과맞닿은천왕봉과중봉능선위로붉은기운이드리워진다.
위험스러우리만치바위벽에삼각대를고정시킨사진작가도,디카를꺼내들고찰나를잡으려는아마추어들도,
하나같이장엄한일출이빚어내는특별한감동을맛보려재킷속으로스며드는새벽한기를감내하고있다.

태고의빛이…
엷게드리운구름층사이로태고의빛이장엄하게뻗치더니
일순천왕봉을차고오른불덩이는천지사방으로빛을발한다.
몽환적일출광경에취해아득한세계로빠져든다.
겹겹이둘러싼봉우리를딛고올라구름바다를주유하는꿈을꾼다.
1시간가까이홀린듯헤매이다공복을알리는신호에몸을일으킨다.

07:40
조식을위해초미니산장,연하천대피소에서배낭을내린다.
장터목,세석,벽소령산장에비하면규모는초라하나쉼터로서운치는한결깊다.
버너를꺼내고코펠에물을길러누룽지부터끓여낸다.
누룽지건져먹고숭늉들이킨뒤라면까지끓여먹으니든든하다.

염치도없이…
산길에서만난S씨는먹거리를세심하게도준비했다.
밥을주먹크기로뭉쳐비닐로밀봉하고,말린누룽지도,장조림도
호두에,삶은계란에…이거영염치없게돼버렸다.
내배낭속엔햇반2개와참치캔하나가고작이었으니…

08:30
연하천산장을나서토끼봉(1,533m)으로향한다.
토끼봉으로오르는계단은잘정비되어있으나계단길은역시지리하다.
토끼가있어토끼봉이아니다.그렇다고봉우리가토끼를닮은것도아니다.
반야봉을기점으로동쪽,즉24방위의정동에해당되는묘방(卯方)이어서토끼봉으로불릴뿐이다.

겹겹이너울거리는…

09:53
토끼봉에서보는노고단은여전히아득하다.
그러나도저히다가설것같지않던반야봉은어느새손에잡힐듯하다.
지체한시간이많아화개재를향해곧장하산한다.

10:00
화개재(1,360m).
동쪽으로는1,533m의토끼봉이,서쪽으로는1,550m의삼도봉이솟아있다.
화개재는해안지방의소금이나수산물과내륙지방의삼베를비롯한농산물을교환하던
고갯마루였으며지리산에는이와비슷한역할을한고갯마루가많다.

화개재에내려서서…

어울림터,화개장터

-장영희-

하동길,구롓길영남과호남이만나
허물없이어울리는곳
언제나꽃이핀다.

화개골고사리대자리위에서말라가고
옥화네주막은찾을수없고
육자배기가락은들리지않고
이박사경망스런노랫소리장터에가득하고.

장터어디쯤엔,서러운계연이
이루지못한사랑타버린가슴부여안고
훌쩍이고있을것같은데
그고운모습찾으려달려가고싶은데
가위눌린꿈속처럼오금이펴지지않는다.

역마살낀나그네들방황하다길떠나는곳
황아장수해물장수엿장수
만났다가헤어지고다시만난다.

흰옷입은사람들의가슴에는
언제나꽃이핀다.

화개재에서삼도봉오르는길에공포의목계단이기다린다.
숨은턱끝까지차오르고입에선단내가날즈음마지막591계단에올라선다.
화개재에서2km를걸어삼도봉에올라선다.

으~지리한목계단이…

11:24
삼도봉(1,550m)의산세는섬진강으로뻗어내리는불무장등능선의시발점이며
경남과전남·북을구분짓는봉우리이다.
삼도봉에서면눈앞을가로막는반야봉이지척이다.

또한지나온천왕봉,연하봉이저멀리가물거리며비로소노고단도만만하리만치눈에들어온다.
반야봉을건너다보며고민에빠진다.
삼도봉에서곧장노루목으로향하면반야봉오르는3.5km가줄어든다.
문제는사진찍느라메모하느라지체한시간이너무많았다.
여차하면약속시간내성삼재에닿기어렵다.
일행에민폐를끼쳐서는아니될일이다.
아쉬우나반야봉을비껴노루목으로곧장가기로했다.

산길에서만난…

12:03
노루목에도착하니바위위에주인없는배낭이여러개얹혀있다.
이곳에배낭을벗어두고빈몸으로반야봉에올랐다가내려와
다시둘러메고길을가는산꾼들이대부분이다.
반야봉의산세가피아골로흘러내리다가이곳에서잠시멈춰
그모양이마치노루가머리를치켜든모습과비슷해’노루목’이라불린다한다.

임걸령샘터에…

12:30
임걸령(1,320m)에내려서물보충을한다.
종주길에만난여러샘터중콸콸넘치는샘물은처음이다.
수통에가득담고단숨에한바가지를벌컥들이킨다.
임걸령을뒤로하고피아골삼거리지나노고단으로향한다.

13:50
노고단을넘어,

저멀리노고단이…

14:30
드디어최종점성삼재에닿다.

가까이에노고단이…

백두산에서기운차게흘러내린(頭流),백두대간의시작점이기도끝점이기도한지리산.
회색빛뿌연옹색한도시공간을벗어나지리산의너른품에,
이제다시일상으로돌아가며또다른산을가슴속에품는다.

4백여년전이색(李穡)의가슴시린山高歌로첫지리산종주를갈무리한다.

조선에돌아오니지리산있어

봉우리여름에도춥고골짝물얼었는데

내려보니큰파도산아래두르고

북쪽보니만리멀리구름봉우리희미하네.

산속구불구불수백리나되는데

큰고을산기슭깊은숲에숨어있고

전설처럼난리피해온마을있어

복사꽃흐르는물에산새지저귄다.

14 Comments

  1. 박원

    2006년 10월 16일 at 11:11 오후

    아,가보고싶습니다.지리산
    오를때면지겨워지리지리하지만내려오면또가고싶어가슴지릿해지는지리산..
       

  2. 山 처럼.도연

    2006년 10월 17일 at 3:25 오전

    끝없이펼쳐진지리주능선을바라보니

    당장달려가고픈마음뿐입니다.

    연하천산장의땀에젖은등산조끼가산행길의고단함을말해주는듯합니다.

    하지만,꿀맛같은신라면국물들이키면다시금없던힘이용쏫음치겠지요.

    뱀사골산장에서삼도봉오르는공포(?)의수백계단길이기다리고있으니…

    삼도봉만지나면아늑한오솔길같은평탄한길이이어져성삼재넓은주차장까지

    편한마음으로당도했으리라봅니다.

    한가위지난이틀뒤의지리산의둥근달빛…이보다아름다움이또있을까요.

    언제나풍부한샘물이콸콸쏫는임걸령샘터에서샘물한바가지마시며

    지리산의아름다움과함께하겠습니다.

    이색의山高歌도함께…

    수고많았습니다.
    내년에도종주길은열려있습니다.^^*   

  3. 양송이

    2006년 10월 17일 at 1:45 오후

    제후배중에지리산에서산장지기를하다하산한친구가있지요,

    지리산을하도좋아해서딸내미이름도지리라지었는데

    이사람한테지리산이야기를시작하면날밤샐각오를해야한답니다.

    그와함게지리산에가면지리산구석구석골짜기골짜기손바닥처럼펼쳐보이며

    지금앉아서대화를하고있는것인지아니면걸어서산을오르고있는것인지
    분간하기어려울정도가되어버리는데…그친구말에의할것같으면

    지리산은아주순하게생겼지만가장힘이있는산이라합니다.

    한반도의백두대간에서어머니의역할을자임하고있는산이니까
    아버지역할의설악산에비해서힘이더세다는것이그의지론이었지요.ㅎㅎ…   

  4. 청풍명월

    2006년 10월 18일 at 8:10 오전

    좋은여행이셨기를바랍니다.   

  5. 수홍 박찬석

    2006년 10월 18일 at 8:27 오전

    덕분에제가지리산산행더잘한것같습니다.
    백두대간의끝점…   

  6. 박원

    2006년 10월 18일 at 8:47 오전

    왼쪽이산오이풀꽃이고,옆이참빗살나무혹은회나무종류로보입니다.회나무도10여종이나되고회화나무와혼돈을많이일으키더군요.   

  7. 아바단

    2006년 10월 18일 at 2:38 오후

    지리산산행기잘읽고갑니다.

    다음엔저도다녀오지요.   

  8. 종이등불

    2006년 10월 18일 at 9:13 오후

    지리산에다녀오셨군요.
    지리산의가을을질리도록만나고갑니다.
    지리산.
    그립습니다.   

  9. 토담

    2006년 10월 19일 at 4:04 오전

    천지기운을흠뻑들이키며
    벽소령가을밤의교교한달빛에취하고
    천왕봉을차오르는장엄한일출에꿈꾸듯헤메다가..

    ..이미도인이되셨을…

    "차라리내려오지마세요"할번했네요..ㅎ

    반야봉의일몰이장관이라들엇습니다
    지리종주산행때마다그곳을거쳐가지만산장과의거리가어중간한위치여서
    반야의일몰은늘아쉬움으로남아있습니다

    그렇지요..사시사철솟아나는
    임걸령의샘터는산객들을붙들기에딱좋은장소지요
    사르르녹아내리는그물맛을어찌잊을수있겠습니가..^^

    지리의너른품에서한점티끌이되고
    티끌속에펼쳐진우주안에서또다른나를찾아
    떠나고만나는그산…
    산따라살고산처럼사는인생은
    늘아름다울수밖에없겠지요..^^

    함께다라걷던지리종주기..감명깊엇습니다

    늘건강하시길요..^^*

       

  10. 밤과꿈

    2006년 10월 19일 at 1:29 오후

    기회가있어도여러번이었는데
    아직도종주를못했었는데
    오늘에야비로소님의블로그에서종주를했습니다^^

    훗날기회를만들어서라도시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 曉靜

    2006년 10월 20일 at 12:59 오전

    헉헉~~
    에고,숨차라…함께따라다니느라힘들었습니다^^*
    멋지요~진짜로….
    내는언제한번해보나?
    감히엄두를내보아야할낀데^^*

    벽소령의차디찬달빛부터성삼재까지….
    저는평지겉는걸좋아해서ㅎㅎㅎ
    하긴성삼재는아마도차로여러번다녀왔는거같은데^^*
    하여간억시기부러버요~~
    저같은아마는끼워주지않겠지요?
    참좋은글잘보았습니다!

    이번주말엔어디로???
    가을이멋진데만끽하시고돌아오서서~~
    저는시월말까지운신을하지못한답니다!
       

  12. 와암(臥岩)

    2006년 10월 20일 at 10:21 오전

    "산등성이위로휘영청떠오른둥근달은차갑도록푸르러가슴시리다./
    가을밤의교교한달빛은지리산등줄기에그렇게천지기운을지피고있었다./",

    ‘벽소명월’,
    ‘가을밤교교한달빛,
    지리산등줄기에천지기운지피우고있다’고하셨군요.

    종주산행하시면서사진작품만들고,
    메모하시면서무척고생하셨습니다.

    ‘벽소명월’의사진,
    참좋습니다.

    추천올립니다.
       

  13. 본효

    2006년 10월 20일 at 11:23 오전

    중간쯤지점에이르러…
    마냥쉬어갈렵니다..
    다오르지않아도
    지금이자리가마냥좋아…
    가슴에풍경을다넣기도모자라…

    정상은다음에…   

  14. 東西南北

    2006년 10월 23일 at 2:35 오전

    가도가도싫증나지않는산지리산…
    한국에있을때는시간날때마다달려갔었습니다.

    지금다시지리산생각이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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