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영남알프스를 걷다.(下)

간월산을건너다보며

신불산을뒤로하고간월산으로향한다.
10분걸었을까암릉에올라서자저만치간월산전체가한눈에들어온다.
양지바른산자락은어머니품처럼드넓고따사롭다.
그런데산허리를가로질러허옇게드러난임도는눈엣가시같다.
북쪽저멀리가지산은하늘과맞닿아있고
가야할서쪽의천황산사자봉은아득하게멀기만하다.

너덜길과나무계단을번갈아내려닿은곳간월재(肝月峙)엔
즐문토기를엎어놓은모양의돌탑이거머멀쑥하다.
이재는간월산(1,069m)과신불산(1,209m)을유순하게잇고
울산상북면등억리와이천리를연결한다.

간월재를지나웅숭깊은산자락에올라붙어또다시거친숨을토한다.
얼굴은온통땀으로범벅,눈으로흘러든땀이시야를가린다.
정상조금못미친곳목재데크에서걸음멈춰숨도고르고땀도훔친다.
걸어온길뒤돌아보니억새밭을가로지른목책은신불산허리로꼬릴감춘다.


산지도를펴들고가야할산길을다시한번훑는다.
그러나지도를건성으로들여다봤다는사실,곧드러난다.
조금뒤길잘못들어댓가를톡톡히치르게되는데…

시야가탁트인간월산정상에서사위를둘러길게호흡한다.

모난바위들이박혀있는산정은여럿서있기에협소한데
정상표지석은한걸음간격을두고두개나박아놓았다.
표지석을가운데두고한무리일행들이비켜날줄모른다.
이러니표지석아래깔아뒀다는행선표시를놓칠수밖에..

나중에사진에서보니표지석사이바닥에선두가진행하며깔아둔
노란종이행선표시가있었다.

여러명이밟고서있어보질못하고엉뚱한길로들어서게된것이다.

서둘러암봉에서내려서산길로접어드는데지금까지걷던길과는사뭇딴판이다.
잡목을헤치며,낙엽수북한산비탈을걷는데발길흔적이없다.
뒤따르던두어명도어느새시야에서사라졌다.
엔진음이귓가에들리는가싶더니임도가가로막는다.
임도를건너저만치우뚝솟은봉우리를올려다보며또다시지도를펴든다.

지도상배내봉으로착각하고서산비탈로기어오른다.
여태도길잘못들었다는사실을인지하지못하고서
나뭇가지에매달린빛바랜리본을따라손등을긁혀가며산봉에올라
고도를보니958m다.
지도에표시된배내봉이966m인지라의심없이배내봉으로믿을수밖에.
산아래를내려다보니몇몇이임도에서서오르길망설이는듯하다.

나중에안사실이지만간월봉에서서쪽방향에솟아있는이봉은서봉이고
서봉아래임도는간월재에서배내재로연결되는길이었다.

서봉에서부터는길이더욱고약스럽다.
두리번두리번,등로표시리본을찾아가며내려선다.
배내고개를향하고있다는생각으로하염없이덤불을헤쳐가며
걷고또걷는다.진행한흔적이이리없진않을텐데…

한참을헤맨끝에또한번임도와맞닥뜨렸다.
임도를따라한구비만돌아내려가면죽림굴이다.


지도를펼쳐죽림굴위치을확인하고서야아뿔싸!
간월산에서1시방향으로진행했어야하는데어처구니없게도
9시방향으로틀었으니이를어쩌나?
임도를지나던차량을세워아스팔트도로까지,
다시다른차를손들어세워배내고개까지신세를졌으니.

엉뚱한길로빠진일행이있다는무전을접수한
등반대장이능동산들머리인배내고개에서기다렸던모양이다.
걱정했다며반가이맞는다.
배내고개에서어묵으로간단히요기한후능동산을오른다.

능동산(983m)은해발1천미터를넘는주변유명산봉에가려’따’당해오다가

언양에서얼음골로넘는도로가뚫리고서야
어엿한영남알프스산군중하나로제자릴찾은산이다.
특히나이산에서부터천황산과간월산으로능선이갈라져
영남알프스종주시필히발자욱을찍게되는길목산이기도하다.

배내고개에서능동산오르는등로엔이지역산객들이많은듯
시끌시끌스치는사투리에정감이묻어난다.
마른흙먼지가폴폴이는만만치않은오름길을쉼없이30분넘게걸었을까,사방이탁트인다.
초라한돌무더기와삐쩍마른정상표시석이지나온산봉의그것들과대비된다.

허리춤에넣어둔휴대전화가덜덜떤다.

"어데고임마,여샘물산장이다.빨리좀걸으라카이.
그래설설걸어우얘재약산까지갈라카노"

그랬다.어제서울을출발하면서부산친구녀석에게전화했었다.

"너네구역인영남알프스로행차한다"
"날머리를어데로잡았노"
"표충사다"
"내그라믄거꾸로표충사로오를끼다.천황산에서보자"

이친구,부산에서밀양표충사까지운전해와천황산을올라
샘물산장까지와서기다린지한시간은족히되었다며투덜댄다.
원체산타길좋아하는녀석인지라단숨에달려온것이다.

걸음을서둘러보지만체력이바닥이다.

팔십넘은노스님이1959년,중국침략을피해
티베트에서히말라야를넘어인도에왔었다.
놀란기자가노스님에게물었다.
"어떻게그토록험준한히말라야를맨몸으로넘어오실수가…"
노스님이답했다.
"한걸음한걸음걸어서왔지요"

그래까짓거,노스님처럼비우고걷자.

오버하지않고한걸음씩걸어도목표한곳에반드시이른다.
목표한곳이뒷걸음쳐물러나앉는법은절대없다.
바쁠것없다.세상만사느긋하게周遊하며살자.

체력핑계삼아’자기합리화’해가며꾀를부려본다.

저멀리가지산이,히끗한바위산은백운산.

능동산에서천황산으로가는길,얼마간은임도를따라걷는다.
왼쪽전방에끝없이펼쳐진사자평위로가을이지나간다.
이정표는오른쪽깎아지른벼랑아래가밀양얼음골이라가리킨다.
얼음골건너하얀이빨을드러낸바위산백운대,
그뒤로영남알프스최고봉가지산이가물거린다.
사자평저너머로지나온산봉들이아스라이물러나있고
천황산,재약산으로이어지는능선길은눈앞으로바짝다가선다.

샘물산장에이르자기다리던친구녀석,손흔들어반긴다.
주변은부숴진건물잔해로어수선하다.
아마도무허가쉼터단속이있었던모양이다.
조우도했겠다,내친김에쉬어가자하여
과일꺼내깎고한잔술로목젖도적신다.

마냥푹퍼져노닥거리기엔아직도갈길이멀다.
자릴털고일어나천황산으로걸음을옮긴다.

갈바람에흔들리는억새들의몸짓에사자평전체가일렁인다.
드넓은평원에일렁이는가을물결을두고광평추파(廣平秋波)라하던가.
가슴시린이가을,서럽도록아름다운사자평을옆에두고사자봉을오른다.

천황산사자봉(1,189m).다좋은데산이름이마음에안든다.
일제하에바꿔져불렸다는산이름,여태왜본래이름을못찾아붙일까?
전국산이름중이처럼일제하에서오만방자하게붙여져
지금껏무심하게쓰여지는경우가부지기수인데
우리산이름찾기운동은왜이리도지지부진한가.

너무휘적휘적걸었나?

천황재에서우측으로틀어표충사방면으로내려선다.

재약산까지올랐다가하산할경우시간을오버해
어쩌면일행들에게민폐를끼치게될지도몰라서다.
아쉽지만재약산과는재약속했다.기회보아다시찾기로.


고찰표충사까지3.4km.길고지리한내리막길이다.
낙엽에미끄러져가며흙먼지날리며걸음을재촉한다.

05:30분부터16:30분까지11시간동안
가을의끝자락에찾은영남알프스의가을山群에묻혀
바스락낙엽밟는소리를들으며,
서걱대는억새들의애달픈울음소리를들으며
그리고드넓은평원위를스치는소슬바람소리를들으며
스쳐지나는가을속으로침잠했다.

………….終

6 Comments

  1. 아바단

    2007년 11월 16일 at 11:26 오후

    산행기잘읽었지요.
    제가간월산-천황산이어표충사까지산행한듯하지요.
    어느해표충사에서박정희대통령내외분사진을본듯하지요.
    그해엔가뭄이몹시들었던것으로기억합니다만….   

  2. 만농

    2007년 11월 17일 at 2:53 오전

    갈매빛깔우렁차던산들이어느새철학의색으로변했다.
    지혜를얻지못한나로서는,
    가을이소리치면서가지않고그냥조용히떠나는것이참이상하다.
    내마음은온통번뇌로들끓는데자연은의연하기그지없구나.

    잘가서좋은글엮어서또올렸구나.
    몸과얼이다함께졸아드는어머니일로정신없어서
    너올라간뒤안부인사도못했는데
    이렇게좋은글과그림보여주니
    미안하기도하고고맙구나.

    사자봉을지나재약산으로가는길에서
    연무가득한천성재를바라보는내모습도
    사알-짝넣어주는센스!도부렸구나.
    좋은자연그림망치지않을지모르겠네.

    영남알프스종주-
    비록전구간을다둘러보지는못했지만애많이썼다.
    남은재약산과사자평고사리분교는
    다음기회에나랑함께오르기로하자.
    때야기다리면언젠가는오지않겠니?

    그날너만나고돌아와서
    시한편건질려고애를쓰는데
    마음에들지않아서구기고구기다가
    던져두었다.
    그래도곧마음다잡아서한편엮어봐야겠다는생각은
    마음속깊은곳에똬리를틀고있다.

    늘떠날준비가되어있는네가부럽구나.
    늘튼튼하게잘지내고좋은산행글올려다오.

    이번주말도힘내서배낭을챙겨야겠지.
    얼~~~~~쑤!

    조형에게도안부전해주면고맙지.

    *가만생각해보니올해로너만난세월이30년이구나.   

  3. 박원

    2007년 11월 17일 at 2:43 오후

    저고원의평지가사람을부르는듯합니다.
    곡가보고싶군요.
    천황봉에는언제한번캠프를한적이있지요.
    밤에폭우가내려주위의민가에서가까스로밤을세운적인있답니다.
    지금도화전민이살던민가가남아있을지모르겠습니다.
    억세는가는계절떨어지는나뭇닢에인사를하는가요.
    허허롭습니다.   

  4. 양송이

    2007년 11월 24일 at 2:37 오전

    산에서길을잃었으면
    산에서길읽은만큼또길을연것이됩니다.

    무슨말씀이시냐면
    옛날옛적에가지산을올랐지요.석남사부근에서길머리를잘못들었어요.
    때는11월스무일곱날이었습니다.낙엽이허리를묻는낙엽의웅덩이에빠지기도하면서길을찾았겠지요.그러나길은나오지않고시야는숲속에묻혀있었지요.계곡이깊은어느곳에서한스님을만났는데길을물으니빙그레웃으시면서걷고있는그길이길이라네요.낙엽이덮혀있어서못알아보고있답니다.스님떠나시고…아무래도속은것같아서낙엽을쓸어내보았으나역시짐작대로길이아니었어요.벌써사십여년이흘러갔네요.

    산에서는길을묻지마라.
    걷고있는그곳이바로길이니라.

    요즈음은산에가면신작로처럼등로가다나있고
    안내표지판에다형형색색무당들치성드리는댕기처럼때묻히고돌아다니는무슨무슨산악회…그래서저는실은이름난산은더이상가고싶지가않답니다.ㅎㅎ..

    그해제가가지산내려온지사흘후가지산에서조난사고가나서남녀두학생이눈에갇혀얼어죽었지요.그이듬해에둘은바위틈아래에서꼭부둥켜안은채발견되었답니다.

    사자평고사리학교는지금사라졌지요?
    표충사입구의아름드리상수리나무도많이줄었지요.
    예전에는표충사를가려면그넓은내를건너가는것이가장큰모헙이었답니다.
    다리가없었고길은자갈길이었지요.그러나건너가기만하면얼마던지도토리묵을얻어먹고막걸리로목을추길수가있었지요.단장면내려오시면대추가유명한데맛은보셨는지…이번겨울에라도한번찾아가보고싶단생각이꿈틀거립니다.

    가지산에는참으로오랜추억이서려있기도하고…   

  5. 와암(臥岩)

    2007년 11월 30일 at 2:10 오후

    남이올린댓글잘보지않는데,
    오늘이상하게훔쳐보았지뭡니까?^^*

    ‘만농’,
    ‘박원’님,
    ‘양송이’님,
    정말조블명사님이다모여셨군요.

    ‘만농’님,
    이분께는죄송합니다.
    처음필명들은데다아직한번도찾아보지않은방이라서이랍니다.
    시인시군요.
    정말멋진친우들을두셨다고생각듭니다.
    댓글들또한명문들이라감히저는댓글쓸수가없다고생각합니다.

    저도발길남긴곳들이라새삼추억을되새겼습니다.
    이젠모두다지난일에불과하지만요.

    고생하신보람이더욱컸었다는생각도해봤습니다.^^*

    사자평억새밭이눈에선하답니다.

    영남알프스종주산행마무리,
    다시축하드리면서추천올립니다.   

  6. 박산

    2007년 12월 3일 at 5:46 오전

    참카스톱님대단하십니다
    영남알프스어디인가했는데
    여기군요

    구경잘했습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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