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회귀산행코스인동두천소요산의말발굽형산줄기를따라오르며
요석공주와원효대사를생각합니다.
원효가요석공주와의파격적스캔들?로파계한것은그의나이40세무렵이었다고삼국유사는전합니다.
즉태종무열왕재위시기인654년부터660년사이의일입니다.
원효는길거리로나와노래했습니다.
"누가자루없는도끼를내게빌려주면하늘을떠받칠기둥으로재목을낳을것이니"
누구도이노래에담긴뜻을알지못했으나태종은눈치를챘다합니다.
"저스님은부인을얻어아들을낳아큰재목을만들고자하는구나"라고생각한태종은
宮吏를시켜원효를찾아요석궁으로들게했습니다.
결국홀연히속세를등지고수행의길을찾아나섰습니다.
심산유곡을돌고돌아둥지를튼곳이바로소요산이었습니다.
일주문을지납니다.
곧억겁을두고눈·비·바람에깎인커다란바위벽이길을막아섭니다.
직벽을타고쏟아지는폭포수는커다란소로곤두박질치며포말을일으킵니다.
하얗게부서지는포말을보며또다시원효와요석공주를떠올립니다.
다시못볼지도모르는원효를떠나보낸요석공주,그애틋함이바위벽에촉촉히녹아내립니다.
원효가떠난빈자리는너무나컷겠지요.
바위벽이내려다보이는건너편산중턱에별궁을지어원효가수행하고있는
바위벽쪽을향해조석으로절을올립니다.
요석공주가머물던산의봉우리가바로공주봉(526m)입니다.
일주문을지나속리교를건너왼쪽으로들면자재암,오른쪽으로들면공주봉입니다.
역순인공주봉을향해계곡을거슬러오릅니다.
계곡엔행락객들로넘쳐납니다.
계류를건너풀숲무성한너른터,옛절터를지나자
이내빡센오름길이이어집니다.
골바람도휴가를간모양입니다.후텁지근합니다.
그래도산새들은제자릴지키며나그네를반가이맞이합니다.
저산새들은혹요석공주의化身은아닐까생각해봅니다.
오만가지잡생각을떠올리며걷다보니어느새숲이열리면서
둔덕위조그만돌탑이눈에들어옵니다.
깎아지른벼랑아래로동두천시내가한눈에들어옵니다.
산정데크에기대어숨을고른다음,다시걸음을서두릅니다.
먹구름의움직임이심상치않아서이지요.
젖은옷속에드러난뽀얀살결,그리고해맑은미소에원효의가슴은방망이질합니다.
옷이젖어서말려야겠다며아예저고리를벗고있었습니다.
눈을감습니다.날은이미저물어어둑해져오는데난감한일이아닐수없습니다.
"수도자를앞에두고그무슨행동이오?"
"수도자의눈으로여자를보면여자가아닌수도자로보인다하옵니다"
그리고선긴침묵이흐릅니다.
원효로서는가장긴밤이었습니다.
여인도폭포수로뛰어듭니다.
원효는무심하게폭포수를맞으며말했습니다.
마음이사라지면온갖법또한사라지는것이요.
나에게는자재무애의참된수행의힘이있소이다.
방금전까지만해도실오라기하나걸치지않은맨몸으로살포시미소짓던여인이보이지않았습니다.
그제서야원효는무릎을탁쳤습니다.
그여인은원효의수행을시험해보기위해나타난관음보살이었던것입니다.
이후더욱정진하여"모든일은마음이만들고마음에따라생긴다"는일성을남기기도하였습니다.
‘一切唯心造’는원효대사의깨달음의결정체라할수있습니다.
가야할산봉들을눈에담고카메라에도담습니다.
원효와요석공주의애틋한사연이소요산6봉골골마다녹아있어서일까,
여느산들과또다른느낌이가슴팍에팍팍와닿습니다.
혼쭐난적이있었는데지금도여전히암봉에서
부스러진돌덩이가여기저기어지러이굴러다닙니다.
산비탈에걸쳐놓은철제계단을딛고올라나한대(571m)에닿았습니다.
워낙땀을많이흘린탓일까,다리가푹푹접히고어질어질합니다.
도시락을꺼내허기를채우고나니거짓말처럼금새뱃심이생깁니다.
칼바위능선길을맞닥뜨리게됩니다.
칼바위틈을비집고뿌리를내린노송들의강인한생명력에
절로고개가숙여집니다.
오밀조밀솟구친칼바위능선을장애물코스통과하듯조심조심타고넘습니다.
하백운대(440m)에이르게되는데여기가막다른능선길이지요.
자재암을가리키는푯말을따라내려서면
그야말로난코스인까칠한직벽을만나게됩니다.
물론로프나난간이설치되어있어비교적안전한편이나
자재암을들머리로소요산을오를경우숨이턱끝까지차오르는
마의구간이기도하지요.
원효의음성에귀기울여봅니다.
4시간전건넜던속리교를다시건넙니다.
속세를떠나피안의세계로접어든다는속리교이지요.
피안의세계에서유유자적노닐다가다시속세로되돌아나옵니다.
상백운대-중백운대-하백운대-자재암-일주문까지,,,
3년만에다시만난원효와요석공주가말발굽형소요산을돌아내려오는내내
동행해주었으니…된더위도잊은꿈길산행이었습니다.
데레사
2009년 8월 14일 at 12:20 오후
원효와요석공주의사연을생각하면서소요산등산을하시는
감각을누가따를수가있겠습니까?
아주재미있게읽었어요.
소요산도이제는쳐다보는것으로만족해야만겠어요.
좀아쉽지만세월을이기는장사는없다고했으니….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