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벽소령산장은더위에지쳐있다.
사람도초목도축축늘어지는시간대다.
밤하늘을총총하게수놓은별빛에빨려들거나푸른달빛에노출되면누구라도시인이된다.
몇해전이곳서1박하며만월에취하고별빛에홀려잠못이룬적있었다.
천지에부스러지는찬란한고요는벽소령아니면볼수가없다"
산장을막벗어나덕평봉쪽으로접어들면
산허리를까고축대를쌓아만든길이1km남짓이어진다.
빨치산토벌을위해만들어졌던작전도로일부구간이다.
이젠토벌군대신산꾼들이점령했다.
어깻죽지도쑤시고목젖도타들어간다.
쉬었다가라는신호다.
세석대피소까지4.6km를가리키는지점이다.
온길을손셈해봤더니이곳까지20.4km를걸었다.(반야봉포함)
연하천산장에서보충한물통이그새손가락두마디도채안남았다.
지도를보니덕평봉너머’선비샘’이표시되어있다.
힘들어하는모습이역력했다.
한모금남겨두었던물통을꺼내건넸다.
스스로를돌아보기위해지리종주에나섰다는이청년과
짧게나눈몇마디에서반듯함이느껴졌다.
곧샘터에닿게될거란사실도덤으로일러줬다.
샘물은석축틈바구니에박힌竹筒을통해콸콸쏟아진다.
물이새어나오는죽통은바닥에서한뼘높이다.
샘물을받기위해선누구든허리를구부려야한다.
이승에서의천대를저승으로가져가기싫었던이노인은자식에게유언했다.
"죽어서라도남들에게존경받고싶으니샘터위에묻어달라"고했던것.
의중을간파한효심지극한아들은아버지를이곳샘터위에모셨다.
이곳을지나는산꾼들은물을얻기위해예외없이허리를구부리게되는데
노인은이런방법으로라도원없이존경?받고싶었던것이다.
그런슬픈사연이있어’선비샘’이라불려지고있다는데…
그나저나물줄기가무덤에서흘러나오는모양새라서여엉~.
칠선봉뒤로선명하게다가선천왕봉을눈에담기위해서다.
가시거리가좋아서일까,산꾼들은봉우리찾기에열중이다.
천왕봉은여전히아득하다.
일곱선녀가노니는모습을닮은일곱암봉,七仙峰을지나
오늘의마지막고비인영신봉을오른다.
벽소령에서덕평봉,칠선봉,영신봉을넘어세석대피소에
이르는이구간이지리종주중가장지리하고힘든구간이라고들한다.
이봉만넘어서면세석대피소에서쉴수있다는생각에
태엽이풀어져더욱힘들게느껴질지도모르겠다.
밥심도떨어졌다.한계단한계단을오로지’깡’으로딛고오른다.
진을깡그리뺀후에야영신봉팻말이눈에들어왔다.
온몸은파김치가되었으나기분은달콤했다.
‘고진감래’가퍼뜩뇌를노크한다.
건너촛대봉과그아래너른산등성이에세석대피소가보이자,
거짓말처럼피곤이싹가시는느낌이다.
숫제장터라함이옳다.
비박을위해공간을확보하느라,끼니를준비하느라,
사방팔방에서모여든산꾼들로북새통이다.
틈바구니를겨우비집고들어앉을공간을확보하고서,
한잔술로지친삭신을어루만지는사이밤안개가자욱하게밀려든다.
밤안개는일순별빛을가둬버렸다.
지리산을관장하는산신은시시때때로심술을부린다.
세석산장의밤은그렇게밤안개속으로침잠했다.
난민처럼바닥에구겨졌다가일어났는데도몸상태는좋다.
폐부깊숙히싱그러운산공기를호흡한탓일게다.
길나서는시간들이제각각이라대피소는이른새벽부터부산스럽다.
헤드랜턴을켜주섬주섬배낭을챙겨곤한잠에빠진사람들
행여깰세라조심조심발뒷꿈치들고바깥으로나왔다.
비박용비닐은이리저리나뒹굴고음식물쓰레기또한아무렇게나버려져있다.
등산화를잃어버려난감해하는산꾼들도하나둘이아니다.
신발을바꿔신고가는게아니다.
아예작정하고서배낭속에넣고사라진다.
신발잃어버린산꾼들은이만저만난감한게아니다.
뒷설거지는그대로놔둔채제몸뚱어리만빠져나간족속들이나,
산에와서남의신발이나훔쳐가는인간말종들,
일출보겠다고서둘러길을나선모양인데
솟아오르는태양을보며과연무슨생각을할까,에이%&#~
‘세석자연관찰로’를따라촛대봉으로오른다.
촛대봉에조망되는지리산은어머니품처럼넉넉하고부드럽다.
가야할삼신봉,연하봉,그리고천왕봉이어서오라손짓하고
지나온산봉들은손흔들어배웅한다.
촛대봉봉우리는군데군데생채기가나있다.
풀숲은산꾼들의발길에패여벌거숭이가되어버렸다.
산오르길즐기는한사람으로서참으로민망스럽다.
치유후보존이절대적으로필요하다.
하늘에뭉게구름이빠르게번진다.
낌새로보아천왕봉에서의지리조망은허락치않을모양이다.
삼신봉을지나며아쉬워뒤돌아본산자락엔운무가용솟음치며
반야봉을휘감는다.
촛대봉에서부터삼신봉,연하봉,제석봉,천왕봉으로이어지는구간은
지리능선중에서도아름답기가으뜸이라고들하던데,빈말이아니다.
안주하지않는다.끊임없이새로운옷으로갈아입으며변신한다.
보는각도에따라,보는높이에따라,보는사람의감성에따라변화무쌍하다.
연하봉으로가는길목,산등성이풀숲에는들꽃이지천이다.
들꽃들은골바람을타고수줍게살랑인다.
안개비를내린다.안개비로촉촉해진숲길이운치를더한다.
숲길을벗어나자웅성거림이들린다.장터목대피소가지척인게다.
대피소에들러영역표시?만한다음,서둘러걸음을옮긴다.
장터목대피소에서제석봉까지길은줄곧가파르다.
제석봉산비탈에안개비를맞고서있는고사목이처연하다.
제석봉일대고사목은自然死가아니라非命橫死의사연을안고있어더욱그러하다.
제석봉을지나천왕봉을500m남겨둔길목에통천문이있다.
通天門,즉하늘로통하는문이다.
문을열고들어서니하늘과맞닿은천왕봉이드디어모습을드러낸다.
지리의주봉이자곧하늘인天王峰.
거칠것없이장쾌한정상에서의조망은안개비뒤에숨었다.
"좀더덕을쌓아다시금통천문을노크하라"고.
산꾼들의영원한로망,지리종주의정점인천왕봉에섰다.
억겁을지나오며만고풍상을견뎌낸지리산,
삼라만상을다품을만큼부드럽고넉넉한지리산,
많은산꾼들이지리산을열망하는까닭이다.<終>
이구간,雜說은접고허접한기록을급마무리한다.
(첫째날04:00~18:00,둘째날06:30~13:30)
연장거리:35.9km
(성삼재-반야봉-천왕봉-중산리)
데레사
2009년 9월 7일 at 9:45 오전
세석대피소는대목장날을방불케하네요.
무덤위의물도목마를때는뭐달기만할걸요.한여름지리산의
너른품에안기었으니얼마나행복했을까하고그냥부러워만
합니다.
9월도행복한산행이어지길바랍니다.
풀잎피리
2009년 9월 7일 at 1:19 오후
등산화를훔쳐배낭속에?아~어찌산꾼이라할수있으리요ㅠㅠㅠ
서로가진것을나누어주어도시원치않을산속에서….
시장바닥이되어버린대피소,이젠대피소의풍경이되었습니다.
1박2일의족적이힘찬님이느껴집니다.
늘안산과건강을빕니다.
와암(臥岩)
2009년 9월 9일 at 8:52 오후
"제석봉산비탈에안개비를맞고서있는고사목이처연하다./
제석봉일대고사목은自然死가아니라非命橫死의사연을안고있어더욱그러하다.//",
‘自然死’,
‘非命橫死’,
고사목도한생명체니깐요.
인간의잔혹성,
그끝이보이질않으니……
산천누비는군상들이너무많군요.
마치6.25전쟁때엄청난피난민들이시골한농가에몰려들어법석을떨던것과흡사하고,
인도의철도역에아귀다툼을벌이는사람들과도같이느껴지는군요.
산행하다가등산화를잃어버린다니,
정말어처구니가없는세상이되어버렸군요.
3회에걸친너무도깔끔한산행기,
멋쟁이산꾼님께당연추천올립니다.
海雲
2009년 9월 15일 at 4:30 오전
수고하셨습니다
그나저나참별난인간들이군요
남의등산화를가져가다니
그이는맨발로가던말던,이런심사를갖고있는인간도품어주는
지리산이참넓은산이긴한가봅니다
박산
2009년 9월 19일 at 4:19 오전
‘등산화도난사건’
기가막혀말이안나옵니다
잃어버린양반들은
남은산행어찌오르고내려갔을까
산행시등산화가조금만겉돌아도
걸음이얼마나힘든데
정말걱정됩니다
아마도악독한범죄저지르고
이산저산도피중인범인들일당이아닐까
아마도그등산화신고가다
다리똑부러졌을거라는
생각이듭니다
박원
2009년 9월 23일 at 8:46 오전
아쉽습니다.
길을서두르다보니못본것이많습니다.
특히저세석산장에는도착시간이비슷했습니다.
눈여겨봤더라면알아볼수도있었을것같습니다.
menciuus
2011년 12월 29일 at 10:38 오후
정령치화엄사쪽에는찻길이있다.벽소령도찻길이있다.어린이노약자몸이불편한사람들을위해서중산리쪽에케이블카하나설치하는것이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