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주 적상산 小景

만산홍엽산행을잔뜩벼르고별렀는데…
세상만사맘먹은대로되는법은없다.
10월은이런저런혼사에면치레하느라알토란같은주말을고스란히반납했었다.
그렇게훌쩍날아가버린가을날을보상받아볼요량으로…

11월초,바삐남하중인단풍의끄트머리를잡으러길을나섰다.

몇주전만해도산허리에서멈칫거리던단풍은반짝한파에지레주눅들어,
성급히마른잎을털어낸채산아래서바스락거린다.
차창저너머산색은그래서이미스산하게만느껴진다.

좀더머물면좋으련만단풍은쫓기듯남하를재촉한다.
하루20km속도로남하한다는단풍을따라잡기위해남쪽으로향했다.

전북무주적상산(赤裳山,1,034m).
산이름에서단박에단풍명산의氣가느껴진다.
향로봉아래아찔한단애와어우러진붉은단풍은마치붉은치마를펼쳐놓은것과
같다하여산이름마저도붉을赤,치마裳을써서적상산이다.

과연단풍은적상산에서기다려줄까?
어쩌면무심하게도이미내장산넘어백암산으로줄달음쳤을지도모른다.

문득지인이생각나휴대전화를들었다.
"그곳가을색이어떤가요?"
오랜서울생활을접고적상산기슭으로거처를옮긴분이다.
"지난주가절정이었지.한발늦었어…"

섭섭하긴하나낙심할일은아니다.
짙붉은단풍의화려함보다황갈색낙엽이주는포근함에서
오히려가을의정취가더욱깊게배어날것이기에.

적상산산행은서창통제소를들머리로하여장도바위와적상산성서문을거쳐
주능선에올라향로봉을찍고적상산(기봉),안렴대,안국사그리고
아스팔트길을따라적상호수길을걷다가다시숲길로들어
송대계곡을거쳐치목마을로하산하는게일반적인코스다.
들고나는데4시간이면너끈하다.

서창마을위로잿빛구름이빠르게번진다.
소슬바람에포도위낙엽은이리저리뒹굴고…
아마도가을비의전조(前兆)일게다.

앙상한가지에대롱대롱매달린홍시는
가을을놓치지않으려용쓰는듯보인다.
서창마을의늦가을小景에가슴한켠이아리다.

안국사(3.2km)방향을가리키는팻말앞에서오른쪽으로틀어숲길로들어선다.
비로소산길이다.낙엽수북한돌계단을타박타박오른다.
산비탈이가파르나길은’之’字모양으로나있어그리팍팍하진않다.
족히예닐곱구비는돌아올랐을까,

잎새를떨궈낸나뭇가지사이로잿빛하늘이빠끔히드러난다.
얼추8부능선쯤올라선모양이다.
바람이차다.잠시바위에걸터앉아숨고르는사이,
찬기운이척척한셔츠속으로스민다.

발목까지잠기는수북한낙엽덕에발목이호강이다.
그러나방심은금물,낙엽아래지형지물에긴장해야한다.

낙엽쌓인숲길은거대암벽에이르러꼬리를감췄다.
더이상길이있을것같지않다.
가까이다가서니거대바위는두부모를갈라놓은듯두동강나있다.
이름하여長刀바위다.

고려말명장최영장군이탐라에거주하던반란족을토벌한후
귀경길에이곳적상산을지나던참이었다.
한껏득의양양하여거칠것없는그에게감히(?)암벽이막아선것이다.
최영장군은거침없이장도를빼어들어암벽을향해힘껏내리쳤다.
거대한바위는두동강으로갈라졌고그사이로길이났다.

‘유리겔라’도흉내못낼초능력이다.
하지만’자연환경훼손’사전이있다면그의이름을올려야할지도…

장도바위옆철난간을잡고좀더올라서면적상산성서문터가나온다.
이산의형세가쳔혜의요새로손색없어최영장군이
왕에게축성을건의하여공민왕23년(1374)에쌓게되었고
이후조선인조6년(1628년)에다시쌓아둘레가8,143m에이른다.

서문으로들어’적산산성서문지’안내판앞에섰다.
2층3간의문루가이곳에있었다고전하나
지금은돌성곽일부만근근이남아있어세월의무상함만묻어난다.

일찌감치가을을털어내고서겨울나기채비를마친숲은
여유롭게광합성이왕성했던지난여름을추억하고있다.

서문터를지나완만한낙엽길을지나면갈림길능선에닿는다.
왼쪽은향로봉,오른쪽은안렴대방향이다.
먼저향로봉으로향한다.

우리나라산봉중흔한이름,이곳에도있다.
높고험준한산봉에는늘구름이걸쳐져있는데그모습이
향로에서피어오르는연기와같다하여붙여진이름이다.
‘향로봉’앞에山名이나지역名이붙지않으면많이헷갈린다.
치악산,내연산,북한산,월출산에도…향로봉은있다.

오똑한콧날같기도,뭉툭한콧등같기도한주변산군이
향로봉의위세에한껏고도를낮춰조아리고
산기슭사이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가실뱀처럼꼬리를감춘다.
그새구름층은더욱두터워졌다.늦은밤가을비예보에힘이실린다.

향로봉에서한발짝내려선곳,낙엽방석을깔고앉아
각자준비해온먹을거리를꺼낸다.
과일,양갱,떡,김밥이나오고…캔막걸리까지.
단연캔막걸리에온통시선이꽂혔으나이를어쩌나?
꽁꽁얼려온탓에녹질앉아그림속떡이되어버렸으니.

조금전지나쳤던갈림길로되돌아나와낙엽수북한등로를따라
기봉에올라저만치로물러난향로봉을바라본다.
기봉은적상산의사실상주봉이다.
산불감시용카메라와통신용장비가탑재된철탑이서있어접근을금한다.
정상표시석없는이곳이이산의정상이란사실은나중에야알았다.

밧줄로연결된목책을지나,철계단을내려서면
사방이천길낭떠러지인안렴대(按廉臺)다.
고려때거란이침입해와안렴使가군사를이끌고들어와진을친곳이며
병자호란때는적상산사고실록을이바위밑석실에숨겨두기도했다.

깎아지른암벽모서리를따라철난간이깊게박혀있어
나름안전해보이나갈라진바위틈으로실족도염려된다.
잠시철난간에기대어일망무제의山景에빠져든다.
좌우로여러산봉을거느린채하늘과맞닿아있는덕유산향적봉이유혹한다.
여태오르지않은,아니아껴둔봉우리다.

"오매불망기다리는데언제걸음할거냐"묻는다.
"조만간눈꽃만발하면반드시걸음하겠다"답했다.

안렴대를뒤로하고철탑아래로난숲길을따라걷다보면
이내안국사(安國寺)에닿는다.
고즈넉한산사를떠올렸으나賞秋客들로붐빈다.
차로예까지올라올수있어서다.
경내둘러보길포기하고서둘러일주문을벗어난다.

일주문에서부터날머리치목마을까지는3.7km.
산정호수인적상호를내려다보며아스팔트길을걷는다.
적상호는양수발전에필요한물을담아두기위해적상산분지(해발800m)에
조성한인공호수다.
환경운동가들이우매함의극치라며혀를차는곳이기도하다.

치목마을(2.7km)방향을가리키는팻말이나온다.
일주문에서부터아스팔트길을1km나걸었다.
이제부터다시호젓한숲길이시작된다.

숲길로들어서기가무섭게배낭을끌렀다.
녹지않아마시지못했던캔막걸리가생각난때문이다.

살얼음이서걱대는막걸리를막들이키려는데
뒤따라오던어떤여인왈,"맛이좋은가요?"한다.
한컵달란소리보다무섭다.
한컵가득건넸더니"기왕이면,안주도좀~"
산행중절대로굶어죽진(?)않겠다싶었다.

늦가을정취가흠뻑묻어나는낙엽길을휘적휘적걷는다.
물소리가들린다.층층바위사이암반위로물줄기가흐른다.
송대계곡의백미,송대폭포다.
수량이부족한탓에폭포라하기엔민망하다.

팻말은날머리인치목마을이1.6km남았음을가리킨다.
만산홍엽은놓쳤을지몰라도늦가을정취만큼은흠씬느낄수있었으니.
붉은치마폭을벗어나삼베짜는마을,치목에닿았다.

한적한마을,담벼락아래널려있는바싹마른콩대를
힘겹게도리깨질하는촌로의모습에서진한향수(鄕愁)가묻어난다.
자꾸만소백산아래,유년시절이오버랩된다.
쉬시선을거둘수없어한참동안을그렇게멍하니바라보았다.

4 Comments

  1. Hi_story

    2009년 11월 13일 at 3:37 오후

    분위기가
    스산한게어째,
    눈발이라도흩날릴것같은하늘입니다.

    산행,함께
    데려가줘서감사합니다.

    저도막걸리생각이나네요.
    건강하십시요.   

  2. 데레사

    2009년 11월 13일 at 7:41 오후

    적상산에도이제는단풍이안보이네요.한발늦었다고했으니….
    환경운동가들이뭐라고해도그곳양수발전소는정말크고
    웅장하던데요.지하로내려가서구경한적이있습니다.

    콩털고있는담벼락에그림이곱습니다.저그림쳐다보면서
    일하면조금은피로가덜어질려는지요?

    막걸리가캔으로도나오나봐요.   

  3. 박산

    2009년 11월 23일 at 2:23 오전

    새삼산타시는분들

    모두시인이란생각입니다   

  4. 와암(臥岩)

    2009년 12월 1일 at 12:20 오전

    만추의적상산,

    운치가더넘치는군요.

    만산홍엽이휘두른절정의가을도,
    황갈색낙엽이조금은을씨년스런늦가을도,
    ‘카스톱’님께서훑어내리시면읽는이를한층몰입시고말지요.

    "세상사맘먹은대로되는법없다.",
    그렇더군요.
    어디한번이라도그렇게된일은없었으니깐요.^^*

    멋진산행기,
    푹취하고가면서추천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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