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하고어스름창밖을살폈더니’역시나’다.
가로등불빛을쓸어내리는빗발은지친기색없이줄기차다.
주말산행=우중산행,이등식에이젠익숙하다.
비(雨)야말로올여름나의최고산행도반이다.
세찬빗소리는여름끝,가을시작을알리고있다.
‘백로에비가오면十里千石을늘인다’고해서풍년의징조라하나
이번여름만큼은예외일듯싶다.
태양은먹구름에가려여름내내제본분을다하지못했다.
곡식이여물시기에햇볕쨍쨍했던게과연몇날이었던가,
탐스럽게익어가던과일은태풍곤파스에맥없이떨어져뒹굴고…
이래저래농부들의애간장은숯검정이되어버렸다.
차창밖먹구름은아마겟돈이연상될만큼음울하다.
스마트폰을열어기상정보를체킹했다.
중부지방에걸쳐있는비구름띠가조금씩남하중이란다.
오늘도빗속산행은떼어놓은당상인가보다.
조령천과연풍천계곡에배꽃이많이피어,온산자락이
하얗다하여배나무梨,꽃花를써서90여년동안일본식이름,
梨花嶺으로불린이고개는최근문경市가지명위원회를열어
원래우리의고운이름,이우릿재로돌려놓았다.
고갯마루에세워진돌비석엔여전히’이화령’이다.
돌비석뒷면,1대간13정맥이표시된산경표를올려다본다.
가야할산은하고많은데삶은유한하니…
조령산(1017m)과갈미봉(783m)사이에있는이우릿재에
궂은날씨인데도산꾼들이꾸역꾸역모여들었다.
이우릿재는예로부터중부지방과영남지방을잇는주요교통로였다.
산우들과무리지어숲길로든다.
빗발은많이약해졌으나운무로시야는온통희뿌옇다.
물은만물을잉태하는생명의근원으로대지를적신다.
울울창창한숲은그래서더욱생동감을발한다.
대개산들은들머리서부터진을쏙빼놓기일쑤인데이곳은예외다.
완만한등로는조령샘을지나조령산정상까지이어진다.
착한산길,숲을사유하기에더없다.
잎사귀를훑는후두둑빗소리,
이따금숲을스치는골바람,
흙내음섞인진한숲향등등…
도심에서느끼지못했던감성이꿈틀댄다.
이편안한숲길은곧닥쳐올험로를아는지모르는지…
산행리본을믿고따르는편이다.
그러나산길이희미할때애타게두리번거려도리본이보이질않아
난감했던경우를여러번경험했었다.
이산행리본을두고의견이분분한것또한사실이다.
혹자는’성황당을연상케해자연경관을훼손한다’고도하고
‘순수목적이라기보다산악회를선전키위함이다’라며불쾌해하기도한다.
산을즐겨찾는입장에서리본은길잡이역할을톡톡히해주는
중요한시그널임엔누구도부인못한다.
그러니무분별한광고성리본은자제하고극히제한적으로꼭필요한길목에
이정표역할을해주는정도로유지됐으면하는데…글쎄다.
조령샘에이르러잠시숨고르며목을축인다.물맛이달달하다.
조령샘은길손에게다음과같은화두를던졌다.
바람으로일렁이는그대넋두리가
한가닥그리움으로솟아나고…
조령샘을지나목계단을딛고올라서면전나무숲이다.
전나무숲을벗어나면이내조령산정상(1026m)이다.
무릎높이자연석에’白頭大幹鳥嶺山’이음각되어있다.
키를낮춘정상석이왠지끌린다.
덩치큰가공석보다는아담한사이즈의자연석이
한결주변경관과조화롭다는생각이들어서다.
산정에서의조망은허허롭기그지없다.
지도상으로볼때진행방향쪽으로신선암봉과
동쪽으로주흘산이눈에들어와야하고
산아래로조령천계곡이한눈에펼쳐져야하거늘
사방은비안개로희뿌얘적요만이깊을뿐이다.
정상한켠에는산악인을추모하는비목이외롭게서있다.
1999년안나푸르나1봉등반후하산길에실종된여성산악인,
고지현옥(1959~1999)을추모하는비목이다.
사전에코스를훑어본바,지금까지는워밍업수준이다.
이제부터조령산의백미인험준한암릉구간이이어진다.
일행들과함께정상석을가운데두고인증샷을날린뒤
빗발날리는정상한켠에자리를폈다.
임금님12첩반상이부럽지않다.
조망의아쉬움은조령산산봉에내려놓고발길을옮긴다.
20분정도나뭇가지를부여잡으며숲길을내려서니
바위벽에늘어뜨려진로프가보이기시작했다.
바위들이빗물에젖어진행속도는더디고긴장감은더했다.
신선암봉으로이어지는마의구간이드디어시작된것이다.
바닥에떨어진이정표는누군가가방향을맞춰놓았다.
절골로내려가는데50분,신선암봉까지는40분이소요됨을알린다.
그러나바위면이미끄러운데다단체산객들이줄지어이동하다보니
평균이동속도는이보다더소요되고있다.
안부갈림길을지나자,암벽오름은한층강도를높힌다.
내심걱정이앞선다.
왼팔을다친이후,왼손악력이거의제로상태라
암벽로프구간은쥐약?이나다름없기때문이다.
신선암봉으로가는험준한암릉구간은
어쩌면신선께서설정해놓은통과의례는아닐런지.
그렇다면욕심버리고자만하지않는다면
필시이미물을끌어안아줄것이라믿었다.
곤두박질치듯운무속으로흘러내리는단애는치맛자락을닮았다.
외줄을타듯칼바위등을타고걷는데오금이저려왔다.
직벽로프에매달려발디딜곳을찾느라식은땀도흘렸다.
등뒤로천길낭떠러지를두고바위를껴안은채한뼘씩나아갔다.
슬랩을오르고바위밑을통과하고…유격훈련을방불케한다.
그렇게천신만고끝에신선암봉(937m)에올라섰다.
신선암봉은조령산과923봉사이에우뚝솟아백두대간조령능선중에서도
조망이극치를이룬다고하나여전히사방은간유리처럼희뿌옇기만하다.
이정표가서있다.안부가’V’자를닮았다.
그만큼암릉구간이가파르다.
신선암봉만벗어나면한숨돌리겠지했는데,아니다.
한순간의방심도허락하질않는다.
젖먹던힘까지다해직벽을오르면또바위가기다리고…
그야말로바위와의처절한사투였다.
온삭신이녹아내릴즈음,깃대봉갈림길에닿았다.
곧장직진하면깃대봉,오른쪽으로1km만내려서면조령제3관문이다.
‘깃대봉을거쳐도제3관문까지걸리는시간은비슷하다’는
어설픈(?)정보를얻어듣고서깃대봉(835m)으로올라섰다.
깃대봉은이화령에서조령쪽으로종주를하다보면마지막에오르는봉우리다.
조령관(제3관문)에서오르면30분정도가소요된다.
나중에야안사실이지만깃대봉에올랐다가다시
깃대봉삼거리로되돌아나와북동방향으로내려섰어야했다.
일행중선두열댓명이깃대봉을거쳐내려갔다기에
깃대봉에서북서쪽으로난등로를따라내려섰다.
결국날머리로정했던제3관문이아닌,엉뚱하게도새터마을로내려서게된것이다.
즉깃대봉삼거리에서3~40분이면날머리에닿을것을
1시간반을돌고돌아새터마을앞도로에닿은것이다.
보너스하나,계류에드러누워여름의끝을만끽했고,
보너스둘,말용초폭포의아름다움에눈이호사했고,
보너스셋,반석을타고흐르는물소리에세상시름을잊을수있었다.
폭우로불어난계류는이미돌다리마저집어삼킨터라
하산을위해대여섯번정도계곡을가로질러건너야했는데
거친물살은연신다리를휘감아몸뚱어리를잡아챌기세로덤벼들어
계곡을벗어날때까지줄곧긴장감을늦출수없었다.
빗길암릉구간만나쩔쩔매고,
어리버리하다가등로이탈굴욕에,
엎친데덮친격으로성난계류까지만나버벅대야했다.
아무튼무탈하게산을내려온것에감사할따름이다.
데레사
2010년 9월 23일 at 10:47 오후
비가내려서계곡이폭포처럼변했네요.
그런데갑자기글씨가왜이렇게적어졌어요?읽기가많이힘이듭니다.
추석잘지내셨지요?
와암(臥岩)
2010년 9월 24일 at 12:07 오후
"비(雨)야말로올여름나의최고산행도반이다."/
진정멋진표현입니다.
"신선암봉으로가는험준한암릉구간은/
어쩌면신선께서설정해놓은통과의례는아닐런지./
그렇다면욕심버리고자만하지않는다면/
필시이미물을끌어안아줄것이라믿었다.//",
‘미물’이라고하셨군요.^^*^^*
‘카스톱’님께서어찌’미물’이될수있나요?^^*
성치않는몸으로힘부친우중산행,
정말의지가대단하십니다.
너무아름다운글,
그리고현장감넘치는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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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올립니다.
이광재
2010년 9월 24일 at 9:43 오후
좋은글과그림에감사합니다.직접가보지못했어도산행의힘들면서도멋진모습이생생하게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