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紅島’가 기가 막혀

홍도실루엣?

"여러분이승선하신뉴남해퀸號는현재霧中항해중입니다!"

船室스피커에서새어나오는항해사의멘트가사뭇비장하다.

뚫어져라,船窓밖을응시했다.
보이는것이라곤장판처럼잔잔한해수면과사위를삼켜버린濃霧뿐.

또다시안내방송이흘러나온다.
"잠시후연육교밑을지나게되어저속운항하겠습니다"

짙은안개는시속6~70km의쾌속선을꼼짝없이저속선으로주저앉혔고
천하절경이라는홍도마저흔적도없이삼켜버렸다.
秘境은없고悲境뿐이었으니,오호통재라…
.
.
.
금요일(11/05)이른아침,KTX에올라탈서울을감행했다.
아껴두고싶은계절,가을을보듬고싶어서다.

[퍼온사진인데?뭐라하면얼른내리겠음]

도심을벗어난열차는미끄러지듯남으로내달린다.
산과들이쏜살같이차창을스친다.
가을걷이를끝낸들녘엔비닐로싼볏짚(곤포사일리지)들이덩그렇게나뒹굴고
아침햇살은산아래납작엎드린고즈넉한마을을깨운뒤
이내너른들녘으로가득번져나간다.
차창틀에턱을괸채가을을탐닉하는이여유로움,
가끔의일탈은삶에있어비타민과도같다고나할까.

용산역을벗어나늦가을의정취가물씬한산야를가로질러
3시간10분을달린열차는호남선종착역인목포역에멈춰섰다.

열차에서쏟아져나온승객들을괴력의에스컬레이터가연신실어올린다.
거대하게건축된초현대식驛舍는웬지목포?스럽지않다.왜일까?
내기억속의목포는언제나1978년에머물러있었기때문이다.

잠시플랫홈에서서실눈을뜨고서사방을둘러본다.
33년전광경이간유리처럼흐릿하게오버랩된다.

당시이곳어디쯤에서나는입대하는친구朴을배웅하고있었다.
군용열차에오르는朴의손을부여잡고서빛바랜멜로영화의한장면처럼
눈물콧물찍어내던朴의여친,尹…
그둘의지고지순한러브스토리는이후더나아가지못하고
이곳이종착역이되고말았다.
첫휴가도오기전,尹은고무신을돌려신었고
朴은첫휴가때도,제대후에도이따금씩목포를찾아
尹의흔적을더듬으며그리움을삭여내곤했었다.

"자아자!흑산도,홍도여행예약하신분들은이리로쪼까모여보씨오이.
아따,서울서여까지내리오시느라허벌나게고생했찌라.
지금부터여객선터미날로이동해서뭐시다냐~배표를나눠드릴텐께
한분도옆길로새지마씨고싸게싸게따라붙으시오이~"

곰삭은목포사투리에물씬한바다내음,
비로소’목포는항구다’가실감난다.

목포역에서버스로5분거리,목포항연안여객선터미널.
신안과진도,영광등의크고작은섬으로여객선이쉴새없이들고난다.
배표를받아들고대기하고있는’뉴골드스타’호에올랐다.

흑산도가는길목,비금도에몇몇을승하선시킨배는
다시선수를돌려흑산도로향한다.

쾌속선으로2시간10분,목포에서약93km를달려닿은흑산도.
선착장에내려서자,콤콤한냄새가코끝을톡쏜다.
‘흑산도하면홍어,홍어하면흑산도’라더니,빈말아니다.
팍삭힌홍어한점에소주한잔생각이간절하나,
대기하고있는버스에얼른올라타란다.

인근흑산비치호텔에들러방배정받고곧장육로관광에나섰다.
육로관광은두당15,000원,유람선은19,000원을받는다.
아쉽게도관광에나선인원은열대여섯명밖에안되어
유람선을띄울수있는30명에턱없이부족해선택의여지없이
육로관광을하게됐다.

열두굽이용고개를굽이굽이돌아오르면상라봉전망대다.
저건너장도는박무로인해흐릿하다.
바닷바람에몸이으슬으슬하다.
버스에서잠시내려따뜻한커피를뽑아몸을데운다.
이곳고갯마루엔흑산도아가씨노래비가예리항을등지고우뚝서있다.

~못견디게그리운아득한저육지를바라보다
검게타버린검게타버린흑산도아가씨~

스피커에선’흑산도아가씨’가반복적으로흘러나오고있다.

흑산도일주도로는독특한지형을따라건설되어
도로자체가곧관광상품이다.

진리에서예리까지25.4km를27년만에완공했다.
얼추1년에1km씩이어간셈인데어지간히도난공사였던모양이다.

"왼쪽편의자에앉으신분들,아따!참말로깝깝하요이~
오른쪽에앉아야흑산도비경을제대로보는데
왼쪽으론매양산비탈만보이는데이를우쨔쓰까이~

버스운전기사는농섞인사투리로나들이객을쥐락펴락해가며
운전하랴,관광지해설하랴그야말로’바쁘다바뻐’다.

버스는줄곧가파른산허리를끼고돈다.
창밖으로내려다보이는천길벼랑이아찔하다.

바위틈에한반도가…

한반도모양의지도바위,칠형제섬,정약전선생이유배와서
후학을가르쳤다는사촌서당등명소를지날때면잠깐씩차를세워설명을
곁들였으나워낙이주마간산격이라제대로살펴볼겨를없어못내아쉽다.
마음같으면이토록아름다운길을두발로걸으며
빼어난풍광을온몸으로느껴보고싶었는데…

사방이어둑해질무렵,숙소로돌아왔다.
준비된저녁식은우럭찜이었으나여기가어딘가?흑산도다!
이곳홍어를맛보지않고서어찌흑산도를이야기할수있겠나?
홍어회한접시를따로주문했는데영맛이깊지않다.
누구나맛볼수있도록덜삭힌홍어를내놓은것이라했다.
홍어는푹삭혀콤콤해야제맛인데…

이틑날,어제보다안개가더욱짙다.
09시50분흑산도발,홍도행여객선에오르기위해호텔을나섰다.
그런데어인일인지선착장에배는보이지않고
삼삼오오무리지은사람들의표정이심상찮다.

상황을파악한여행사가이드가안내멘트를날린다.

"서해안의짙은안개로인해여객선운항이전면중단되고있습니다.
여러분이승선할배는현재까지도목포항에출항대기중이라합니다.
선착장인근을둘러보시면서상황변화에주목해주시기바랍니다"

때마침스마트폰에도문자속보가떴다.
"서해안곳곳,농무로여객선운항차질,목포가가시거리30m로가장심해"

졸지에섬에갇혀버린것이다.
흑산도에서홍도로이동,유람선관광후목포로나와예약해놓은KTX타고
귀경하는,다소빡빡한일정인데흑산도에서발이묶였으니이를어쩐다?

사람들의푸념이다.
"설사배가들어와홍도에들어간들뭐하겠는가,
한치앞이보이지않는데유람선관광은가당치도않고…
‘홍도’는차치하고오늘내로’목포’로나갈수나있을런지원…"

징징댄다고뾰족한수가있을리없다.
엎어진김에쉬어간다고했겠다.

노상에펼쳐놓은전복과소라에시선이꽂혔다.
아침나절이긴하나도리없다.
소주를따고전복을썰었다.

여행이란,가끔은돌발변수가있어야오래도록기억된다.
부둣가에서의한잔은예정에없던보너스인셈이다.

다행히도출항금지가해제되었다는소식이들려왔다.
기다리던배는두시간반늦은12시20분에야예리항에닿았고
서둘러승객들을싣고서홍도로향했다.
그렇다고안개가걷힌건아니다.
항해사는무중항해중이라고안내방송을했다.

사정이이러하다보니스캐줄대로움직이긴이미물건너갔다.
다만짙은안개속에서안전운항만바랄뿐이다.
모든스캐줄은안개에맡기기로했다.

몽돌해수욕장

우여곡절끝에사진으로만보았던홍도에도착했으나
예상한대로홍도는없었다.
불원천리찾은홍도는야속하리만치농무뒤로꼭꼭숨어버렸다.

둥둥떠다니는…

태풍에망가진…가드레일(배를묶어놓아서)

본것이라곤지난태풍에망가진채방치된부두시설물,
그리고부두에떠다니는지저분한부유물들,
산비탈에꼬깃꼬깃쑤셔박힌온갖쓰레기들…
과연이곳이말로만듣던그’홍도’가맞긴한가?

‘태고의신비를가진섬’이라고도한다.
‘천혜의자연그대로보존된섬’이라고도하고…

홍도는섬전체가천연기념물170호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지정되어있다.
관리목적으로입장료도1천원씩받는다.
혹입장료수입이적어쓰레기를못치우는걸까?

한치앞밖에보이지않아심사가뒤틀렸나보다.
홍도에와서쓰레기타령이나하고앉았으니..이거야,원!

마라톤에서반환점돌듯,황급히발도장만찍고
홍도발(15:40분)목포행여객선에올랐다.
선실벽에걸린사진속홍도풍광을물끄러미바라다본다.
굴러떨어질듯위태하게올라앉은기암괴석과
검푸른바다,하얗게부서지는파도…

하지만창밖은여전히짙은안개속이다.

홍도를못본표정들…압권이다.

중간기착지,흑산도예리항에정박했다.
그런데이건또무슨시추에이션인가?
하선만하게하고승선을금지시킨다.
이어흘러나오는안내멘트~

"이배는기관고장으로더이상운항할수없습니다.
목포에긴급히연락을취해다른배가이곳으로오고있으니
안전한선실내에서대기하여주시기바랍니다"

‘엎친데덮친격’이라더니참으로갈수록태산이다.
또’기다림모드’로들어갔다.

시계를들여다보며몇번이고손가락을곱아보았지만
제시간내(목포발서울행KTX예약시간)도착은물건너갔다.

우여곡절끝에목포여객터미널에도착은했으나
예약해뒀던목포발용산행고속철은떠난지이미오래다.

예정에없던목포에서의1박은그렇게이어졌고
다음날,덤으로유달산에올랐으나역시나자욱한안개만이…

유달산에서내려다본목포역시,연무가…

3 Comments

  1. 데레사

    2010년 11월 18일 at 5:30 오후

    홍도를못본표정들이정말압권입니다.불만에가득찬표정들이네요.
    저도12,4에청산도를갈려고하는데그때도안개가끼면어쩌나
    하는걱정입니다.

    흑산도에서저는찌프를빌려서한바퀴돈적이있거든요.아,한바퀴가
    아니고길뚫린데까지갔었구나.ㅋㅋ

    유달산에서본목포시가지가안개에젖어있는모습의맨밑의
    사진,아주좋은데요.
    늘건강하세요.   

  2. 박산

    2010년 12월 6일 at 6:25 오전

    징징댄다고뾰족한수가있을리없다.
    엎어진김에쉬어간다고했겠다.-

    이런게여행의참맛아닐런지요

    유달산안개도좋습니다!
       

  3. 와암(臥岩)

    2010년 12월 7일 at 10:41 오전

    ‘홍도를못본표정들…’,

    이한장의사진으로모든게설명되었군요.^^*^**

    모처럼의섬나들이,
    아쉬움이컸었게습니다.

    오랫만에구수한남도사투리로허뭇했습니다.
    추천올립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