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가로수나뭇가지사이로비친파란하늘이차갑다.
겨울이가을에게말했다.
‘때가되었으니자릴비워달라’고.
가을은미련을털어내고남하를서둘렀다.
외투깃을세운男,머플러를동여맨女들이
낙엽흩날리는보도를따라어디론가로향한다.
멍때리며한참을바라보다결심했다.
가을은하루에25km씩남하한다고했겠다.
그렇다면가을의꽁무니를멍하니바라만볼게아니다.
남쪽바다에접한가을명산으로달려가가을을마중키로했다.
가을은아기손단풍이매력적인장성백암산을넘어
광주무등산을물들인후이내뭍을내려설것이다.
조바심이일었다.서둘러남쪽산군을검색했다.
은빛억새와기암괴석이압권인장흥천관산에시선이꽂혔다.
그런데당일로천관산을찾는다는건사실상무리다.
산행은4시간정도이나서울에서이동거리가만만치않기때문이다.
차가막히지않는다손치더라도왕복에약11시간가량소요된다.
까짓거!멍때리다놓친가을을잠시라도막아설수만있다면시간이대수인가.
산악회사이트를서핑하는데마침당일치기천관산이올라있었다.
재고의여지없이무조건고고씽!
원행을위해일찌감치집을나섰다.
새벽공기가목덜미를핥는다.제법차다.
신호등을무시한채질주하는차량들이어둑한차로가장자리에서
낙엽을쓸어담는미화원을위협하고있다.아찔한새벽풍경이다.
이따금새벽배달원들만오갈뿐,인적드문도심은소슬하기만하다.
안내산악회버스에올랐다.
어김없이만석이다.
새벽잠설쳐가며불원천리마다않고길을나선사람들,
저들도나처럼꽁무니빠지라남하하는가을을낚으러나선걸까?
주말정체가장난아니나작정하고길을나선터라
애써담담한척했지만45인승버스에장시간구겨져있으려니
오금이저리고온삭신이뒤틀려왔다.
게다가탁한차내공기로인해골머리가지근거리고…
인내가한계치에이를즈음,무려6시간반만에버스에서해방됐다.
다들꾹꾹참아왔던모양이다.
차문이열리기가무섭게화장실을향해튄다.
막간을이용해신발끈을조여매고배낭끈을졸라맸다.
오늘등산코스는주차장-장안사길-양근암-연대봉(천관산정상)-환희대-
구룡봉-환희대-금강굴-장천제-주차장으로돌아내려오는원점회귀산행이다.
천관산장안사가는길로접어드는데어째초가을분위기다.
길옆단풍나무들이이제막물들기시작한걸로보아
꽁지빠지게달아나던가을을앞질러온게분명하다.
천관산(723m)은호남의5대명산이자,한국100대명산에든다.
온갖기암괴석과은빛억새가조화를이룬천관산은
호남정맥의끝자락에벌러덩드러누운모습이다.
왼쪽은장안사,오른쪽으로금강굴,금수굴,양근암을가리키는
팻말을보면서장안사방면으로조금더진행하다보면
오른쪽에개울로내려서는사잇길이나타난다.
멀쩡한소나무몸통에’등산로’라적은팻말을박아놓았다.
여기서부터20분만올라서면소잔등처럼생긴천관산의주능선이
예고편처럼살짝모습을드러낸다.
‘ㅅ’자모양의일명문바위에이르자,
천관산의기암들이하나둘씩얼굴을내밀기시작했다.
길옆너른바위에걸터앉아다도해를굽어보며잠시숨을고른다.
어디까지가바다이고어디서부터가하늘인지…온통잿빛이다.
시리도록파란하늘에새하얀뭉게구름,검푸른바다를기대했건만
오늘도역시’부덕의소치’라여기고욕심을접는다.
기암괴석과억새의춤사위에서위안을찾아야겠다.
문바위를지나암릉구간을오르다보면튼실한바위기둥이
길을막아선다.기가펄펄한陽根岩이다.
건너편능선에있는금수굴(女宮石)과맞보고있다.
陽根과女宮은억겁의세월동안애달픈거리를유지한채
오매불망그리움만삭이고있는건아닌지,
음양의조화를저버린산신의심술이여엉~고약스럽다.
삐뚤빼뚤쌓아놓은책더미를닮은돌기둥(정원석)을지나자,
억새능선이시야가득펼쳐지고완만한주능선을따라들쑥날쑥솟구친
기암괴석들은저마다의자태를뽐내고있다.
연대봉100여미터전,억새의홀씨들이바람에실려
이리저리흩날리는호젓한억새숲에숨어들어자리를폈다.
오후3시가다되도록허기진줄도몰랐으니…
아마도황홀한비경에넋이나갔던모양이다.
주먹밥한알을게눈감추듯해치우고서발길을재촉했다.
늦어도17시에는버스가출발해야한다.
그래야만서울에도착해겨우대중교통을이용할수있다.
그것도돌발변수가없다는가정하에서다.
소잔등을닮은완만한억새능선을걸어연대봉(723m)에올랐다.
연대봉안내팻말에따르면고려의종때이곳에봉화대를설치하여
통신수단으로이용한바烟臺峯혹은烽燧峯으로불려졌고
동쪽은고흥팔영산,남쪽으로는완도가그림처럼펼쳐져있으며
맑은날엔남서쪽중천에한라산이보이고해남대흥산,
영암월출산,담양추월산까지조망된다고적혀있으나
박무가드리운오늘같은날엔약오를내용일뿐이다.
드넓은억새평원은은빛찬란했던절정을잠재우고
이제가을을갈무리중인지허허롭다.
연대봉에서부터부드러운능선길은환희대까지쭈욱이어진다.
억새와기암괴석이절묘하게어우러졌다.
그형상이’天子의면류관’같다하여天冠山(천관산)이다.
드디어억새와기암이즐비한천관산의주능선길에접어들었다.
가을은남하를잠시멈추고천관산에드러누운채로
지나는산객들의감성을펌프질하고있다.
갈라진논바닥처럼감성이메마른사람일지라도
이길에들어서면촉촉함을느끼게될것같다.
보이는그대로가그림이고詩이기때문이다.
벅찬환희를느끼며닿은곳,’환희대’다.
사방이툭터져끝간데없이조망할수있어환희대라명했을까?
환희대이정표는행선지를주렁주렁매달고서있다.
구룡봉,장천제,연대봉으로갈라지는삼거리다.
시간이빡빡해장천제방향으로곧장내려서려는데
지나던산객이질박한사투리로훈수를든다.
"기왕여까지왔으면구룡봉까지싸게댕기오씨요이~
지금까지본것은예고편이고본편은시방부터랑께.
구룡봉을놓치면천관산을꺼죽만본거나다름없당께"
과객의구룡봉예찬에어찌그냥돌아설수가있겠는가?
환희대에서구룡봉까지는왕복1.2.km로짧은거리긴하나
되돌아나와환희대에서주차장까지하산거리를손곱아보니빠듯하다.
재게걸었다.버스출발을지연시키는민폐는끼치지말아야기때문이다.
구룡봉가는길에서본진죽봉의기암은배의돛대를닮았다.
불설에의하면관음보살이돌배에불경을싣고가다가
이곳에서쉬면서돛대를여기에놓아둔것이라는데…
아홉마리용의놀이터였다는구룡봉에올라둘러본풍광은
오지않았더라면바위를치며후회할뻔했다.
북서쪽으로는나지막한산능선이겹겹이너울대고
남동쪽으로는득량만바다가한폭의그림이었으니…
산과바다,억새와기암…가히명품가을산으로낙점한다.
바위에기대어느긋하게천관산을탐닉하고싶으나여유부릴계제가아니다.
서둘러환희대삼거리로리턴해장천제방면으로내려섰다.
간간이가파른암릉구간이나타났지만위험구간마다
로프가설치되어있어대체로등로는편안했다.
금강굴을지나장천제에닿은시간은17:02분.
17시가넘긴했으나아직후미에일행이여럿있다.
그렇다면소슬한가을바람에손흔드는단풍잎을외면해가며
허겁지겁주차장으로내달릴이유가없다.
그리하여유유자적,핏빛단풍에눈맞춰가며,
발아래서서걱이는낙엽소리를음미해가며,
기암과억새가일품인천관산을되새김했다.
다도해조망은천관산행의또다른매력인데…
흐릿한날씨로인해못내아쉽다.
데레사
2010년 11월 24일 at 5:22 오후
ㅎㅎ맨오른쪽인간이누구신줄알아채립니다.
아직그곳은단풍이곱네요.지난주말에다녀오셨나봅니다.
이렇게먼곳은보통무박으로밤중에떠나는데그래도새벽에떠나서
다행이네요.
차안에서자는잠은잠도아니거든요.
잘다녀오셨습니다.
박산
2010년 12월 6일 at 6:21 오전
여전히하시는산행부럽습니다
장흥까지당일치기로
어차피탈택시그냥장흥한우고기라고드시고느긋하게오실걸
거기까지가셔서주먹밥씹고오시니
산악인아닌사람눈으로여간안쓰러운게아닙니다
저는내년봄차가지고
장흥거쳐제주도가는걸계획하고있습니다
와암(臥岩)
2010년 12월 7일 at 10:54 오전
"음양의조화를저버린산신의심술이여엉~고약스럽다.",
웃음절로일어났습니다.
언제나멋진산행기,
오늘도시간가는줄모르고읽었습니다.
마중나갈시간이늦었꾼요.
추천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