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련다.전원이황폐해지려하는데어찌돌아가지않겠는가"
(歸去來兮田園將蕪胡不歸)
도연명이41세에관직을던지고향리로내려와은자의생활로들어갔다.
‘귀거래사(歸去來辭)’에그의미를담았다.
마음이形(육체)의役(노예)으로있었던관리생활을반성하고,
마음을전원에두어자연과일체되는생활에서진정한인생의기쁨을찾고자했다.
길재는38세에귀거래를결심하고그의스승이색에게답을구했다.
이색은시한수로애제자인길재의쓸쓸한결심을위로했다.
내말을듣자고거듭다지네.
벼슬은뜬것이니서두르지말게.
저기저날아가는기러기를보게나"
그길로길재는고향인금오산자락으로내려와
자연의이치를공부하며성리학에열중했다.
길재는도연명을벤치마킹한것일까?
시공을떠나둘의낙향과은거는닮은꼴이다.
길재,그는누구인가?
구미産으로고려말조선초의성리학자,호는야은(冶隱)이다.
목은이색,포은정몽주와함께고려삼은(三隱)으로불린다.
건조한날씨가이어지더니또산불소식이다.
삼척일대산능선이타들어갔다.
산불은한순간,복구는한평생이다.
이쯤되면산꾼들의애간장도타들어간다.
겨울철엔산불예방차원에서많은등로가폐쇄된다.
산나서기전등로개방여부확인은필수다.
야은길재의숨결을간직한구미금오산,이곳역시주등로외에
다수구간이산불예방차원에서5월중순까지폐쇄되어있었다.
주차장→대혜문→대혜폭포→할딱고개→갈림길→정상→약사암→해운사→
대혜문→주차장으로내려서는원점회귀산행로만열려있다.
금오산은전국어디서나당일산행이가능하리만치접근성이
좋은편이라주말이면산꾼들로차고넘친다.
‘금오산’의유래는이러하다.
고구려의승려아도화상이어느날이곳을지나던중저녁노을속으로
날아오르는황금빛까마귀를보고서金烏山이라이름지었다.
황금까마귀는예로부터태양속에사는세발달린상상의새,
바로三足烏를뜻한다.그래서지금도이지역사람들은
금오산을태양의정기를품은명산으로알고귀히여긴다.
잎진잔가지들사이로드러난산세가그래서더욱예사롭지않아보인다.
주차장을출발해호젓한메타세콰이어가로수길을따라걷다보면
이내’금오산케이블카타는곳’에이르게된다.
이쯤에서걸음을멈추고재킷을벗었다.
너나없이한꺼풀씩벗어젖힌다.
고기능성재킷이부담스러울정도로날씨가푹하다.
널찍하게설치된목계단을따라오를즈음,
머리위로케이블카가스르르지난다.
전국명산에케이블카설치를두고환경단체와지자체간
날선공방이이어지고있어서일까,
이해득실을떠나기계덩어리가오르내리는명산은,글쎄다.
케이블카타는곳에서5분정도등로를따라오르면
오른편낮은암벽에음각된’금오동학(金烏洞壑)’이눈에든다.
풀이하면"금오산의깊고그윽한절경"이란다.
목계단이끝나자돌계단저위로대혜문이우뚝막아선다.
대혜문은근래복원한금오산성의일부로외성의북문이다.
대혜문을통과해해운사돌담길을지나면28m높이의대혜폭포와맞닥뜨린다.
입구관리사무소에서약2km걸어오른지점이다.
바위산인지라우기철잠깐빼고는수량이적어’비와야폭포’로도불린다.
여기서숨고른다음,오른쪽암벽을기어올라도선굴을
찍고오는게정석인데,일행들은곧장왼쪽산허리로돌아오른다.
대오를이탈해혼자튈수는없는노릇,
도선국사가수도하여득도했다는도선굴은다음으로기약하고
서둘러마의’할딱고개’로접어든다.
여러산을오르내리며별별깔딱고개를다만났는데이번엔’할딱고개’다.
할딱고개와깔딱고개중어느고개가더빡셀까?
이산저산의깔딱고개를되새김하며할딱고개를오르는데
일행들의숨소리가제법거칠다.
여기저기서목난간을부여잡은채축축늘어지고
몸은천근만근인데목계단의끝은보이질않는다.
아마도숨이턱끝까지차올라할딱거림이절정에이를때
비로소고갯마루가손내밀것이다,늘그랬듯이.
모자챙을타고흐르는땀방울이신발코를적신다.
알콜에절어있던사바의몸뚱어리인지라영판고생이많다.
서늘한골바람이볼짝을스친다.고갤들었다.
할딱고개제1구간쉼터인전망바위다.
이럴때를두고’고진감래’라고하던가.
빡세게발품판덕에탁트인산야를발아래두고서
가슴가득호연지기를품을수있으니…
할딱고개전망바위에걸터앉아야은길재를떠올린다.
조선조정의거듭된러브콜을고사해가며금오산자락을유유자적한길재,
그가남긴산가서(山家序)내용중일부를들여다보면,
밝은달이뜰에차면홀로느리게거닌다.
비가주룩주룩내리면이따금목침을높여꿈을꾸고
산눈이펄펄흩날릴땐차끓여혼자마신다.
일상의여유로움과함께무욕의의미를생각케한다.
할딱고개1구간까지는요소요소에목계단이놓여있었으나
2구간부터는너덜길과오솔길이반복된다.
급오름길은팍팍하나산아래그림은상쾌하다.
금오산저수지와구미시가지가한눈에든다.
저수지둘레길이름은’금오산올레길’이다.
‘올레길’로표현한건옥의티다.지형특성상맞지않는표현이다.
아무튼올레길,둘레길,옛길,거님길등
지자체들마다걷기코스개발붐이뜨거운것도사실이다.
갈림길팻말은왼쪽으로마애석불0.6km,오른쪽으로정상0.9km를가리킨다.
그러나왼쪽마애석불방향은’등산로폐쇄’현수막이내걸렸다.
바싹마른낙엽이발밑에서바스라진다.
발목까지푹푹빠질만큼수북히쌓인낙엽은
그자체가강력한인화물질이다.
온산이눈으로뒤덮히기전까지겨울산은화약고나다름없다.
금오산엔유난히돌탑이많다.
산아래서부터크고작은돌탑들이시선을잡아끌더니
산정수리에도아슬아슬하게돌탑이올라앉았다.
그모양도다양해금오산의또다른볼거리로자릴굳혔다.
건너편암봉에올라앉은돌탑은구미시를굽어보고있지만어쩌면
‘길재’를흠모하며멀리고려의도읍,개성을향하고있는지도모르겠다.
산천은의구하되인걸은간데없네
어즈버태평연월이꿈이런가하노라.
길재의숨결이서리서리맺힌금오산이아니던가.
사방이탁트인산등성이너른쉼터에이르자삭풍이잔가지를후린다.
배낭을내려숨을고르고수통을꺼내목젖을적신다.
땀에젖어축축해진등골이이내서늘해온다.
건너편칼다봉능선을넘어온송전선이머리위로지난다.
산중에송전철탑을세우기위해선임도를내게되는데
이때많은나무가베어지고산허리가파헤쳐진다.
무선송전시대가도래한다면…
금오산성의흔적인돌무더기를지나산비탈을10여분돌아오르면
정상바로아래헬리포트에닿는다.
햇살따스한헬리포트는거대한산중오찬장으로변해있었다.
삼삼오오둘러앉아먹을거리를펼친다.
절대휴대해선안될물건을버젓이사용한다.버너다.
절대해서는안될짓거리(?)도눈에띤다.흡연이다.
헬리포트에서올려다보이는정상현월봉은어수선하다.
내년상반기까지미군통신기지를철거해산봉우리를자연친화적으로단장한뒤
탐방객에게완전개방한다는구미시의계획은무슨이유인지제자리걸음이다.
게다가방송사,이동통신사시설물까지고지를점령해경관을해치고있다.
금오산정상현월봉(976m),
산봉에걸린달이아름답다는懸月峯에통신용철탑들만걸려있다.
이때문에정상표시석마저정상에서비껴난곳에세워져있다.
정상석이하루빨리제자리를찾길소망한다.
정상을내려서면오른쪽거대암벽사이로’동국제일문’이손짓한다.
약사암으로통하는일주문이다.
이문을통과해계단을내려서면약사암이다.
천길바위벼랑에올라앉은약사암난간에서면선계가여긴가싶다.
천길벼랑에불사를이루는것도수행의한과정일까?
건너편암봉에서보면제비둥지처럼암벽에달라붙은약사암과구름다리로연결된
암봉위종루는산중턱도선굴과함께금오산의핵심비경이다.
TV방송의始終을알리는애국가배경영상에등장할만큼한폭의그림이다.
비경에도취된산꾼들은약사전앞마당을벗어날줄모른다.
눈에넣고가슴에새기고디카에담느라분주한모습들이다.
약사암을빠져나와10분정도산허리를끼고돌면갈림길,
팻말은마애보살입상0.7km,법성사2.4km를가리킨다.
시간도널널한편이라곧장법성사로내려서질않고
마애석불방향으로발걸음을돌렸다.
갈림길에서다시10분진행하면마애보살입상이모습을드러낸다.
5.5m의이석불입상은특이하게도암벽모서리를이용해조각되었다.
석불입상을올려다보며예의속물적궁금증이꿈틀댄다.
‘어떤석공이누구에게서얼마에발주받아얼마동안바위에매달려쪼았을까’
보물490호를앞에두고떠오른다는생각이겨우요모양이다.
석불입상을뒤로한채좀더진행하니오름길에만났던
‘등산로폐쇄’현수막이내걸린갈림길이다.
정상을가운데두고시계역방향으로돌아나온셈이다.
여기서부터’비와야?폭포’까지는할딱고개구간으로급내림길의연속이다.
내려선다고할딱고개가할랑할것이란기대는금물.
너덜길은너덜길대로발목삠에주의해야하고
목계단길역시관절에무리가갈까봐신경이곤두선다.
그러다보면오를때못지않게몸뚱어리는땀범벅이되고만다.
들고나는데4시간반,널널하게산길을걸어원점회귀했다.
길재의얼이살아있는’채미정’이저만치눈에들어온다.
채미정을지나면서또한번속물적궁금증이발동했다.
"선생께선조정의간곡한부름도고사하면서까지이곳에…
혹금오산자락에숨겨둔금송아지라도있사옵니까?"
"금송아지라!달아래관벗어걸고바람앞에시를읊는즐거움이있는데
천필의말과만석의쌀을지닌부귀인들부러울리있겠는가.
속객은오지아니하고세상의소식도들리지않는이곳에
나와벗하는이는산승이요,나를알아주는것은물새뿐인데
금송아지인들내게무슨의미가있겠는가.허허…"
무욕의의미를다시한번곱씹으며,金烏山人길재와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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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
2010년 12월 21일 at 12:29 오전
대학에마지막해우리는송년모임으로금오산을갔었지요.
그때만해도정상부근에군부대가있어서우리는정상까지는못가고
정상주변에텐트를치고1박을하면서
박대통령이이금오산의정기를받아서태어나섰고
길재선생도….
그러다가그무렵유명했던대구의미친여자금달네도이산의정기를
받고태어난게아닌가하면서농지꺼리를했던것이기억납니다.
그후로금오산을한번도못올라가봤거든요.
그시절의내친구들도전부할머니할아버지가되었을거고….ㅎㅎㅎ
건강하십시요.
박산
2010년 12월 23일 at 6:23 오전
길재와대화한금오산산행
오백년도읍지를필마로돌아드니
산천은의구하되인걸은간데없네
어즈버태평연월이꿈이런가하노라
좋네요마치카스톱님이다시오백년의세월을노래하는것같은
할딱고개이름참정겹습니다
와암(臥岩)
2011년 1월 27일 at 8:35 오전
10여년전만해도자주올랐던산金烏山,
이산이이렇게변해버렸군요.^^*^^*
"산천은의구하되",
이싯구가헛말이되고말았습니다.
하긴10년이면산천이변한다고했었지요?^^*
그사이지방자치단체가돈을마구쏟아부었군요.
대구사람이면이산에얽힌에피소드한두가지씩은다가지고있을겁니다.
위의’데레사’님처럼요.^^*
다음엔영남학파의조종점필재김종직선생얘길함께하시길빌며,
추천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