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않나요?"
"그럼"
"산길이험하진않나요?"
"그럼"
"무지춥다던데…"
"별로"
"아빠,우리솔직하자.다믿어도돼"
"그럼"
뭔가미심쩍어하는눈치였으나애써모른척했다.
"당연히힘들지,눈길을걸어칼바람지독한해발1,439m의비로봉을오르는데…
또눈길이라자칫미끄러질수도있는위험구간도있겠지.
그리고한겨울산속인데당연히춥지.소백산칼바람은상상그이상일거야.
산정체감온도는아마도영하40도는훌쩍넘을걸"
이런사실이입안에맴돌았지만꾹삼켰다.
그리하여딸아이는그무시무시한겨울소백의칼바람산행에
제대로낚여들고말았다.
버스가이번산행들머리로택한충북단양어의곡리주차장에닿았다.
스르르차문이열리자,매서운한기가차내로급습한다.
빵빵한차내스팀으로노곤해져있던몸뚱어리가반사적으로오그라든다.
방한을위해복장을꼼꼼하게여몄다.
아이젠과스패츠를착용하고스틱길이도체형에맞게조절했다.
머리에서발끝까지완전무장을한딸아이를앞세우고산으로든다.
전장으로향하는여전사처럼걸음걸이가비장하다.
성큼성큼보폭을늘리길래한마디훈수를뒀다.
"초입에서부터오버페이스하지마라.나중에지친다"
"네,그럴게요"
잠깐걸음을늦추는가싶더니이내잰걸음이다.
상체를꼿꼿이세운채걷는딸아이의뒤태만큼은전문산꾼못지않다.
가만히보아하니절대오버하는게아니라제페이스대로걷고있다.
보폭을늘려아이걸음을따라잡을까도싶었지만
그건내가오버페이스하는게된다.
맨날산다닌다고호들갑떨던내게제대로한방먹일속셈인가,
선두그룹에묻어걷더니어느샌가시야에서사라졌다.
눈밭에드러누운잔가지그림자는미동이없다.사위는정지된듯고요하다.
이쯤에서거친숨소리로으르렁거려야하거늘
소백의칼바람은동면에들었나,기척이없다.
아마도숲속어디선가파워를키우느라용을쓰고있을것이다.
국망봉능선이조망되는지점에이르자,골바람이나뭇가지를훑으며
곧펼쳐질칼바람의향연을예고한다.
칼바람과의맞짱,생각만해도짜릿한전율이느껴진다.
딸아이를포함한선두그룹대여섯명이등로를조금비껴나
저만치양지바른눈밭에자리를잡고있었다.
지나쳐갈것을염려했던지딸아이가길목에나와
배시시웃으며안내한다.
저웃음뒤에숨은뜻을나는안다.
‘맨날산다니시는울아빠,체력이별로인데..’
무언으로화답했다.
‘넌임마20대이지만아빤50대란걸감안해야지~’
누룽지컵에뜨거운물을부었다.
누룽지가불려지길기다리는데일각이여삼추다.
볼살은얼얼하고손발끝감각은시리다못해무뎌온다.
예비재킷을꺼내딸아이에게입혔다.
접이식간이의자를펴고싶었으나손가락조차까딱하기싫다.
움직임이둔해입으로,코로들어가는지모르겠다.
주위도의식하지않고오로지입에넣겠다는일념뿐이다.
뒤따라올라온일행들에게자리를비워주고서둘러일어섰다.
잡목들이키를낮추자시야가뻥뚫렸다.
하늘도시원스레열렸다.
기다렸다는듯칼바람이기세등등하게산등성이를쓸고지난다.
존재감을증명하기위함일까?숨돌릴틈조차주지않는다.
거침없다.바람의세기또한실로위협적이다.
그리스신화에나오는바람의신,보레아스(Boreas)를닮아
거칠고사납다.매섭고날카롭다.
국망봉갈림길에서서비로봉을건너다보았다.
빤히보이는거리이지만저칼바람을뚫고나아가야한다.대략난감이다.
칼바람휘몰아치는엄동설한의전장에선여전사는여전히꼿꼿하고의연했다.
칼바람은딸아이를내동댕이치기라도하려는듯거칠게몰아부쳤다.
이러다간자칫바람과함께사라질지도모르겠다.
왼팔로아이와팔짱을끼고서오른손으로밧줄을단단히잡았다.
바람에실려온눈알갱이가매섭게볼살을엔다.
바람을등지고걷는터라그나마낫다.
칼바람을안고오는산꾼들의표정은거의초죽음상태다.
눈썹도안면마스크도모조리얼어붙어하얗다.
천신만고끝에비로봉(1,439m)에섰다.
겨울소백능선에서칼바람과당당히맞짱을뜬딸아이가대견스럽다.
서둘러인증샷을날린다음,비로사방면으로…
그리고겨울소백의칼바람을경험하라!
분명카타르시스를느끼게될것이다.
데레사
2011년 2월 2일 at 8:21 오전
따님,장합니다.
비로봉까지칼바람을무릅쓰고올라갔으니정말대단하네요.
설명절,잘보내세요.
따님세배하거든세뱃돈두둑히주세요.
양송이
2011년 2월 10일 at 1:55 오전
부녀간의행차에소백산비로봉칼바람이잠시긴장했던게아닐까…
부럽습니다.마냥부럽기만하네요.ㅎㅎ..
海雲
2011년 3월 3일 at 11:20 오전
굉장히오랜간만에(원래따님과의산행기에끌렸던터라)부러운산행기한꼭지!!
그나저나소백산비로봉칼바람에동참했던따님의기억속엔아버지와의산행이
평생잊혀지지않겠지요.그게제일부럽습니다.
매번내일모레면30이라는외동아들은절대아버지와산에갈지는않을거
같아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