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記는여러번올린바있어이번엔사진설명위주로이동경로를정리해보았습니다.
지난5월9일,지리산종주에나섰다가기상악화로세석대피소에서발이묶였었다. 못내아쉬웠으나산이더이상은허락치않을땐한발물러서야하는법, 반바지에소형배낭을맨마라톤건각들이화대종주중이다.
비안개가자욱하다. 발디딜곳이마땅찮을만큼등로곳곳이진흙탕이다. 벽소령을1.5km앞둔길목,빼어난松岩에이끌려바위벼랑에기어올랐다. 음주보행?탓인가,눈꺼풀이스르르내려앉는다.
성삼재를출발,세석대피소에1박을목표로지리종주에나선
세석에서기상해보니산악회일행들은떠나고없었다.
제석봉일대약33만㎡의완만한초원은고사목과어우러져산꾼들은 제석봉전망대에올라세상에서제일편한자세로휴식중인 천왕봉정상석주변엔언제나산꾼들로바글거린다. 로타리산장을거쳐순두류방면으로하산했다. 그때였다.누군가날부르는소리에뒤돌아보았다.
지독한폭우로인해지리산출입이전면통제되었고
등로또한곳곳이훼손되어세석대피소안내에따라거림방향으로탈출했다.
가까운시일내다시도모키로하고발길을돌린바있다.
호시탐탐기회를엿보다가다시지리산종주에나섰다.
8월14일,03:40분성삼재.
지난번처럼밤안개가자욱하다.
랜턴불빛에의지해캄캄한산속으로들어섰다.
화대종주코스란화엄사에서대원사까지장장55km구간을말한다.
산악마라토너들은좁은산길을뛰다걷다하며연신산객들을추월했다.
전북,경남,전남이삼각꼭지점을경계로갈라진다.
반야봉바로아래에위치해있어존재감이미미한봉우리지만동쪽으로지리주능선과
남부능선을조망할수있다.
한반도의사계는이제春雨秋冬이다.
파란하늘보며산행해본적이언제던가,가물가물하다.
풀섶에피어난원추리꽃이비에젖어함초롬하다.
화개재를지나토끼봉을오르는구간,입에서단내날정도로팍팍했다.
반야봉을기점으로24방위의정동쪽인묘방(卯方)에있다하여토끼봉이다.
신발도바짓단도온통흙범벅,꼬락서니가가관이다.
지친산꾼들이삼삼오오둘러앉은이곳은연하천(烟霞泉).
고산숲사이에서옥류가쉼없이연하천샘터로흘러든다.
바닥난수통에물을보충했다.
라면을끓여안주삼아고이넣어온팩소주를꺼냈다.
안개자욱한천상의뜰에서…
솔향그윽한바람이바위면을무심히스쳐지나고
바위틈에서피어난들꽃은바람결에가늘게떤다.
여린듯보이나고산바위틈에튼실하게뿌리내렸다.
질긴생명력에꾸밈없는소박함이눈길을멎게한다.
역시나산은발품판만큼감춰진속살을내비친다.
어차피세석대피소에1박이예정되어있는터라그리서두를필요는없다.
힘들면쉬어가고,졸리면눈붙여가며지리의품을만끽하리라.
벽소령뜰에발이닿기가무섭게소나기가쏟아졌다.
나무데크에앉아쉬던산꾼들,황급히처마밑으로몸을피했다.
다행히지나가는비다.
신발겉은진흙투성이지만속은아직뽀송하다.
또한번수통가득새물을채웠다.
어느시인은선비샘물을일러’서늘한물맛’이라했다.
내생각엔’환장할물맛’이다.
샘물은콸콸차고넘치는데산꾼들의체력은바닥이다.
여기저기서한숨소리가절로새어나온다.
털썩주저앉고,무릎팍에머릴쳐박고…
산꾼들은예외없이이곳영신봉오르는목계단을마의구간으로꼽는다.
실제계단수는173개에불과하나체력이바닥난상태라
한없이길고지리하게느껴지기때문이다.
영신봉에올라서면세석대피소까지는내리막길600미터다.
산꾼들이넘쳐났다.
빈땅바닥은어김없이비박용매트와비닐이깔렸다.
억수같이퍼붓는빗줄기에밤을지샜던지난5월9일이떠올랐다.
당시,새벽녘에거림방향으로탈출하라는안내방송을듣고
종주를접어야했었다.
그래서아쉬움에다시도전했는데이번엔날씨가도와줄모양이다.
세석평전위에두둥실둥근달이걸렸다.
여기저기서환호성이다.
산중한담이한창무르익어가는데돌연대피소가캄캄모드로전환됐다.
21:00분,대피소의약속된소등이다.
궁즉통(窮卽通)이라했겠다,
우선1자형손전등불빛을위로향하게테이블에세웠다.
먹고난햇반용기에나무젓가락을꽂아길게이어우산처럼만든다음,
손전등옆에나란히세웠더니햇반용기에서반사된불빛은
거짓말처럼주위를환하게비추었다.
대피소의새벽은분주했다.
02시부터부스럭거리는소리에잠을뒤척이다가
조용조용배낭챙겨뒷꿈치들고침상을벗어난시간은04시50분.
바깥은비박중인산꾼들로인해난민촌을연상케했다.
대피소를벗어나어둠을헤치며촛대봉오름길로들어섰다.
여명의작전에투입되는전사처럼…
채어둠이걷히지않은촛대봉에올라새벽찬공기를가슴으로맞는다.
천왕봉을배경으로일출이장관인암봉이지만이른시간대다.
연하봉(1,730)조금못미쳐전망바위에배낭을내렸다.
아침식사대용으로양갱하나,그리고물로배를채웠다.
웅성거림이들리더니숲이열렸다.
장막이걷히듯운무가사라지며장터목대피소가그림처럼다가섰다.
대피소앞뜰에는비박용비닐과텐트를걷느라산꾼들의몸놀림이분주했다.
황당함도잠시,걸음을서둘러따라잡아야겠다는생각에이곳까지
똥줄타게오버해가며걸어왔건만코빼기도뵈질않았다.
장터목에서아침식사를할것이란예상이과연빗나간걸까?
식수보충과화장실만해결하고다시징글징글한돌계단에올라붙었다.
숨이꼴까닥넘어가기직전,비로소시야가확트이면서
야생화가지천인제석봉의평원이전개된다.
풀섶에누워버린고사목조차그림이다.
탄성을자아내지만실은어이없는탄생배경을간직하고있다.
권력자의친척이제석단에제재소를차려거목들을무단으로베어냈다.
불법도벌이문제되자,증거를없애려고이곳에불을질러
모든나무가죽어현재의고사목군락이생겼다고한다.
저젊은이들은제석봉초원의슬픔을아는지모르는지…
하늘로통하는문이다.
이문을올라서면비로소하늘이열린다.
천왕봉은바로하늘과맞닿아있다.
지리주봉인천왕봉은곧하늘이었던것이다.
1백여리지리능선은시시각각변화무쌍하다.
산허리를휘감으며일필휘지하는운무는수묵화의거장이다.
초단위로대자연을호령하며그려내는솜씨는그대로神技이다.
66주년광복절에오른민족의영산,천왕봉은
또다른감회로가슴에와닿는다.
오늘역시예외없다.정상석껴안고인증샷한번날리려면추석때
귀성열차표예매만큼이나끈기와인내가필요하다.
열댓명까지는기다려보았으나인내가바닥나포기했다.
지난번폭우로등로곳곳이훼손되어있었다.
12시까지중산리탐방안내소에도착키로한약속을지키기위해
발바닥이화끈거릴정도로너덜길을부리나케내달렸다.
덕분에시간여유가있어계곡에배낭을내려놓고찬물에발을담궜다.
온삭신이스르르녹아내린다.
새벽부터지금껏양갱한개로버티며천왕봉에올랐던것.
허기진것도잊은채민폐끼치지않으려고쉼없이예까지온것이다.
그들은예상대로장터목대피소에서조식을하고내려오는길이라했다.원세상에!
데레사
2011년 8월 22일 at 4:59 오전
광복절에천왕봉을오르셨군요.
얼마나뿌듯하셨을까요?
지리산,이제는둘레길이나한번걸으러가야겠습니다.
와암(臥岩)
2011년 8월 23일 at 7:56 오전
좋은글은역시읽는이가많은가봅니다.^^*
‘인기블로그뉴스’7위에올랐군요.
축하축하축하……드립니다.
‘화대종주코스’,
삼도봉의3도표지판,
‘벽소령의새벽달’이아닌’세석평전위에뜬두둥실둥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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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재미난얘기들을멋지게표현하셨습니다.
이글읽으면서,
"’젊음’이이렇게좋구나!"라는걸새삼깨달았습니다.
오랜만에지리산종주코스의매력,
마음껏느낄수있는산행기,
읽게됨을너무너무너무……감사하게생각하면서,
추천올립니다.
海雲
2011년 9월 8일 at 10:32 오후
다시읽어보아도참대단하십니다.
긴종주산행동안힘들었던기억만이라면왜다시가고싶겠습니까만은
그긴길이왜또그리워지는건지알수가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