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1960년대,"덮어놓고낳다보면거지꼴못면한다"란표어를보며초등학교를다녔다.

1970년대,"딸아들구별말고둘만낳아잘기르자"는표어를보며중·고등학교를다녔다.

그런데도정부시책이잘먹혀들지않았던모양이다.

아니면구체적피임방법에대한교육이부족했던가,아무튼백약이무효였다.


1980년에이르러서는"무서운핵폭발,더무서운인구폭발"이라는

초강수공갈협박성?표어까지등장했다.

1982년군복무시절,가족계획협회강사가부대를방문,피끓는?청춘들앞에서

‘하나씩만낳아도삼천리는초만원’이라며토하는열변을꼼짝없이앉아서들어야했다.

이랬던표어가…


그리고1985년결혼했다.

워낙오랜기간동안세뇌되었던터라혼자마음같아서는’무자식’을

고수해볼생각도없지않았다."그래도하나는…"이라는아내의청에꼬리를내렸고

‘둘도많다’라는슬로건에따라결혼이듬해딸아이를낳았고

곧바로무남독녀외동딸을고수하기로선언했다.


물론이후몇년간,친가와외가에서하나만더낳으라며끈질기게회유했지만꿋꿋이버텨냈다.

가족계획을실천하면공공주택입주우선권,복지주택부금우선융자등의혜택도주어졌다.

이처럼가족계획계몽은전방위로이루어졌다.
특히나기억에남는것은가족계획협회관계자가예비군훈련장을찾아사탕발림해가며

정관수술을유도해내는광경인데1980년대중후반무렵,어느예비군훈련장이나대동소이했다.

이른아침연병장에예비군들이집합하면한켠에늘가족계획협회버스가대기하고있었다.

본격교육에앞서가족계획협회관계자가연단에올라’씨없는수박’운운하며일장연설을했다.
이어질의응답이끝나면묶겠다는?이들을차량에태우고사라지는데

당시로선매우익숙한모습이었다.

어느날은흰가운을입은미모의여의사(혹은간호사)가예비군훈련장에나타났다.


"자식이하나면문화인,둘이면미개인,셋이상을두면원시인입니다.

하여여러분의정관수술을도와문화인으로거듭날수있게끔해드리고자

제가오늘여기에왔습니다”라고소개했다,


여기저기서"정력에지장이없나요?""한번묶으면다시풀수없나요?"등짓궂은질문에도

아랑곳않고오히려"성생활에도움이된다"며한껏미소띤얼굴로조목조목설명을했다.

그날은정관수술희망자가넘쳐났다.

대기하고있던버스는만석이되어연병장을빠져나갔다.

그날훈련을빠지고버스에오른젊은아빠들은아마도’씨없는수박’이되었을것이다.


그렇게범정부적으로추진하던가족계획사업은,1990년들어서자,

인구증가율이1%미만으로안정되면서퇴색되기시작했다.

1996년에이르러정부는그간공들여오던가족계획사업을슬며시내려놓았다.

젊은부부들의의식구조가’적게낳아잘기르자’로바뀌었기때문이다.

남아선호사상또한눈에띄게낮아진것도한몫을했다.


우스갯소리지만"딸키워놓으면비행기타고,아들키운부모는양로원간다"

"딸만둘인집은금메달,아들하나딸하나는은메달,아들만둘인집은동메달"인

세상이되어버린것이다.여기에한술더떠,무자녀가정도점차늘어나는추세다.

심지어결혼을기피하는독신남녀도주위에하고많다.

이로인해인구증가율또한빠르게둔화되자,출산억제정책은출산장려정책으로바뀌지않을수

없게됐다.최근정부는농어촌보건의료를위한특별조치법시행령을고쳤다.

그시행령내용중’산아제한과관련된가족계획업무’부분을삭제했다.

이로서정부차원의가족계획사업은완전히사라지게되었다.

지자체별로차이는있지만이제세자녀이상을낳으면인센티브까지받는세상이도래했다.

이렇게바뀌었는데…또다시…(자료:naver)

표어도달라졌다.

"가가호호아이둘셋하하호호희망한국"

"하나의촛불보다는여러개촛불이더밝습니다"

"한자녀보다둘,둘보다는셋이더행복합니다"로.

직장을가진산모의출산휴가기간도늘어났다.

6세이하자녀에대한소득공제액도높혔다.

나라에서출산수당도지급해준다.

아이가셋이상이면그액수도꽤나높다.

세대주에겐아파트청약우선권도돌아온다.

실로격세지감이다.


정부시책에적극동참한부모탓에외톨이로자란딸아이가지난해초결혼을했다.

딸아이가입버릇처럼하던말은"난결혼하면아이셋은낳을거야.

나같이하나는절대로싫어"였다.

얼마전,딸아이에게지금도그말이유효하냐고물어보았다.답은“NO”,이유는간단했다.
정부가출산장려를부추기며내놓은보따리를풀어보니과대포장일뿐이란다.

결코만만치않은육아비용과이후교육비용을따져본모양이다.

이상과현실의괴리를절감한것이다.


이쯤되면1960년대판"덮어놓고낳다보면거지꼴못면한다”라는표어를

다시끄집어내야하는건아닌지모르겠다.

4 Comments

  1. 데레사

    2013년 1월 26일 at 9:35 오후

    우리때는특히세째아이는사람취급도못받았지요.
    둘만낳아도삼천리는만원이라는세상에서셋을낳았거든요.
    이막내는학자금지원도못받았지,의료보험혜턕(물론분만시만이지만)도
    못받았지….설음많았거든요.

    강산도변해도많이변했습니다.
    요새는세째낳으면상금도주던데말입니다.   

  2. 원필

    2013년 1월 27일 at 8:11 오전

    저희는1990년대에5명의아이를낳았습니다.
    마눌은직장에서모든핍박을다받고꿋꿋이아직도말단으로다니고있지요^^
    네가진급못한것은아이들많이낳아서가아니야~…그들은아직도이런거짓말을하고있습니다.
    아이낳는것이혜택은없고핍박만있던시절…참잘그려주셨네요.고맙습니다.   

  3. 권대감

    2013년 1월 27일 at 12:21 오후

    정부는획기적인出産策으로
    可姙여성들이마음을놓고
    임신養育할수있도록하라/ㅡ沙   

  4. 와암(臥岩)

    2013년 2월 22일 at 9:09 오전

    멋진풍자글입니다.

    제행무상,
    이세상에서변하지않는것은아무것도없는법,
    그변화의주기를제대로파악하지못하는단견의정책이국부의흥망성쇠를좌우할따름이지요.

    그사이따님혼사를치루셨군요?
    바로부모노릇을졸업했으니뒤늦게나마축하축하축하……드립옵니다.
    손자의울음소리와함께임께선또새로운삶으로돌입하시게될겁니다.^^*

    필혼!
    제친구들중엔아직도이치례를마치지못해꿍꿍거리는이들이많습니다.
    그러니마흔넘은아들과딸들을두고있다는거지요.
    그런친구들앞에선자식들얘길꺼내지못한답니다.
    인생의화려한의례이니깐요.

    세태를잘반영하신멋진글,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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