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허리, ‘은티재’의 만추 스케치

희양산은충북괴산연풍면과경북문경가은읍을경계한다.
천년고찰봉암사를품고있는명산으로백두대간의허리이다.
산행출발점은대개연풍면은티마을에서부터시작된다.

기품있는노송들이사열하듯줄지어선은티마을초입에서서,
백두대간능선아래옴폭하게자리한마을의형세를헤아려본다.
그형세가여성의성기를닮았다하여이곳을오가는대간꾼들은
버릇처럼마을어귀에서서음기서린마을속살을탐닉한다.

(남근석을모시고?제를올리시는은티마을어르신…사진은빌려옴)

그래서예로부터이마을을풍수지리학적으로
여근곡(女根谷),여궁혈(女宮穴)로표현했다.
마을사람들은쎈음기를누르기위해마을입구에남근석을세워
매년정월초이튿날제를올리고있다는데…
그러기엔마을느티나무아래세워놓은남근석이어째빈약해보인다.
음기를다스리기엔버거울것같다는야그다.

몇해전탈서울하여은티마을로내려간친구가있다.
그는마을이한눈에내려다보이는산자락에둥지를틀었다.
잡초무성하던산비탈을일궈채전도가꾸고,
골깊은계곡에호스를꼽아이어먹을물도끌어들였다.
검박한보금자리,’컨테이너하우스’생활에이젠제법적응이된듯
길게기른은발이희양산의희끗한암면과도잘어울린다.

찬바람불어옷깃여미게하는가슴시린늦가을어느날,
홀로동안거를준비하고있을은발꽁지머리가궁금했다.

그리하여몇몇친구들과함께희양산산행을겸해
그의별장,’컨테이너’습격을도모했고드디어결행에나선것이다.

한달음에마을초입까지마중나온꽁지머리와반갑게하이파이브했다.
컨테이너로안내한꽁지머리께서스캐줄을공지했다.

"산언저리두어시간걷는걸로산행을대신한후
이곳마당에서삼겹살타임을갖는다.이상!"

돌아가는모양새를보아하니어차피오늘산행을글렀다.
제사보다젯밥에관심많은몇몇은입이귀에걸렸다.

꽁지머리의안내로일단은티재방향으로걸음을옮겼다.
수확끝낸산비탈의사과밭을가로질러산길로들어섰다.

은티마을에서희양산을오르는길은여러갈래다.
은티마을에서어느재를택하느냐에따라
가볍게혹은빡세게걸을수있다.
(은티재-주치봉-호리골재-구왕봉-지름티재-희양산)

은티재를택하면두재와두봉우리를지나야하는고된코스이고,
지름티재를택하면곧장정상에이를수있는가벼운코스이다.

호리골재에서구왕봉,지름티재에서희양산코스는걸어본적있다.
은티재에서빡세게대간길을따라희양산까지…(걸어보고싶으나)
다음으로기약하고,오늘은은티재너머용초폭포지나오두막집까지
늦가을낙엽길을유유자적걸으며아쉬움을달래기로했다.

산에들어완만한숲길을따라한시간쯤걸어오니목책이길을막아선다.
백두대간능선,은티재다.
왼쪽능선은주치봉,오른쪽능선은악휘봉으로이어진다.
목책너머로난길을따라가면천년고찰봉암사가나온다.
그러나목책너머로는출입할수없다.

1982년조계종에서봉암사를특별수도원으로지정해희양산봉암사일대를
성역화해산객을비롯일반인의출입을통제하고있다.
다만연중사월초파일하루만경내를공개한다.

그러나우린목책을넘어산길로들어섰다.
은발꽁지머리께서사전에재너머**스님과연락이닿아
스님의수행처인깊은산속외딴오두막집방문을득해놓았던것.

오랜세월,산객출입이금지된탓에산자락오솔길은희미했다.
명경처럼맑은물위로낙엽이실시간수를놓고
이따금씩골바람은나무를흔들어낙엽비를재촉한다.
암반위를미끄러지듯흘러내려곤두박질치는小瀑또한장관이다.
그렇게한참을,시간이멈춘듯한몽환적인늦가을숲길을걸었다.

핏빛단풍사이로외딴집이살포시모습을드러냈다.
꽁지머리께서헛기침으로인기척을낸뒤조용히여쭙는다.

"**스님계십니까?저은티마을사는oo올시다"

인기척이없다.
그제서야살펴보니합판으로방문의반을막아놓았다.
아마도출타중임을표시한모양이다.
양철지붕한켠에조그마한태양열집열판이이채롭다.
벽면엔밀집모자와배낭,우산그리고닳고닳은목탁이걸려있다.

뒤꼍에주렁주렁매달린감은사람손길을그리워하고,
덩그러니내걸린양은솥에도,해우소의모습에서도,
정성스레쌓아놓은겨울나기용장작더미에서도
알수없는외로움이켜켜이묻어난다.

잠시단출한오두막집마루턱에걸터앉았다.
인적없는깊은산속의늦가을정취가사방에서물씬풍겨온다.
챙겨온과일봉지를마루에올려두고되돌아걸었다.

흐릿하던하늘에서가을비를흩뿌린다.
낙엽비도덩달아스산하게흩날린다.
발밑에서수런거리는낙엽소리가가을정취를더한다.

오락가락하던가을비는두어시간산길을걸어’컨테이너’로되돌아오자,
기다렸다는듯제법빗줄기가굵어졌다.
컨테이너천장에이어덧댄양철차양아래둘러앉았다.

솔가리를긁어모아불을붙여숯불을준비하고,
구멍숭숭뚫린(자연농법?이란다)배추를솎아씻고,
꽁지머리주인장은이것저것썰어넣어양념된장을만들고…

양철지붕을때리는빗소리에는아련한그리움이있다.
노릇노릇구워진삼겹살에쏘맥을들이켜가며
저마다아련한추억들을들춰내다보니
어느새은티마을에어스름이내려앉고있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3년 11월 19일 at 10:57 오전

    저는그저께겨우모락산을올랐습니다.
    그곳에도낙엽이지천으로깔렸더군요.

    은티마을,이름이정말예쁩니다.저런이름들을그대로지켰으면
    좋겠는데요.
    우리동네지하철역벌말역이었다가촌스럽다고평촌으로고쳤거든요.
    그때참속상했어요.

    구멍이숭숭뚫린배추를보니농약을안한것같아서먹고싶어집니다.   

  2. 정종호

    2013년 11월 20일 at 9:37 오전

    바쁘실것같아연락도안드렸는데군자역에서의깜짝!!만남너무좋았습니다함께한산행도너무즐거웠구요..가을풍경이듬뿍담긴사진감상잘하고갑니다좋은친구와멋진곳에서맛있은음식을…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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