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눈뜨면맨먼저롤커튼을올린다.정남향베란다를차지한야생화에아침햇살을쬐어주기위함이다.다음은현관문을열어조간신문을맞는일이다.잠옷바람에부시시한몰골이라앞집을의식하지않을수없다.현관문을빼꼼한뼘열어살핀다음,잽싸게바깥벽에매달아놓은주머니에서신문을낚아챈다.
서늘한바깥공기가스며든두툼한신문을펼쳐든다.묵직한견출고딕체의1면헤드타이틀을보며가슴을쓸어내리기도,더러는살맛나는세상을만나기도한다.그리고선주마간산격으로각지면의타이틀만훑는다.즐겨읽는오피니언섹션은퇴근후한갓진시간을이용해차분하게읽곤한다.지면을넘길때면종이신문특유의잉크냄새가번진다.그향기가좋다.오랜세월익숙하게길들여진때문이다.신문과의첫교감은1969년봄,초등학교6학년이막시작되던무렵이다.
내가나고자란곳은읍내에서멀리떨어진벽촌이었다.12가구가전부인조그만마을은과수원에둘러싸여고립무원과도같았다.전기도들어오지않았다.닷새에한번꼴,엿장수나들어와야엿이랑사탕으로군것질이란걸할수있을만큼두메였다.
초등학교까지는왕복6km로,추우나더우나눈이오나비가오나걸어다녀야했다.저학년땐책보자기를어깨와겨드랑이사이로비껴맸지만6학년이되자,중학교입시준비로전과목의교과서와두꺼운‘전과’그리고‘수련장’까지책보자기에싸서어깻죽지에길게늘어뜨려매고등하교를해야만했다.
예나지금이나‘입시’는고역이다.그즈음몇몇아이들은보란듯이문제풀이가실린신문을넘겨가며으시대기도했다.몹시부러웠다.문제풀이가부러웠다기보다는신문에연재중인신동우의인기만화‘풍운아홍길동’이부러웠다는게맞다.간간이어깨너머로본‘홍길동’은늘감질나게해놓고다음편으로이어졌다.어린생각에나름꾀를냈다.입시공부를빙자하여아버지를졸랐다.
“○○중학교입시에합격하려면‘소년○○일보’에실린시험문제를꾸준히풀어봐야한다고선생님이말씀하셨어요”
물론살짝둘러댔다.공부를하겠다는자식놈이기특해보였던지두말없이구독신청을해주셨다.이웃집에선댓박처럼생긴스피커를통해선택의여지없이공용으로라디오를들을때우리집엔트랜지스터라디오가있어서이리저리주파수맞춰가며듣고싶은것찾아들을수있을만큼시골동네에선끼니걱정은않았던걸로기억된다.
당시‘소년○○일보’는‘아침마다집으로배달되는소년소녀들의친절한가정교사’를표방하며전국의소년소녀입시생을주구독층으로공략했다.지면은총4면으로1면은뉴스,2면에교양기사,3면에학습기사(문제풀이등),4면에스포츠관련기사를게재하고있었다.
읍내에서구독을하면매일아침신문이배달되었지만시골은그렇지못했다.산간벽지의경우대개우체부를통해신문이배달됐다.특히나가구수가적은우리동네에서매일신문을받아본다는건욕심이다.우편물을몰아2~3일에한번꼴로우체부자전거가마을에들어왔다.신문이라기보다구문이었다.그러거나말거나‘홍길동’이궁금하여신문오기만을학수고대했던기억이지금도또렷하다.
그렇게시작된신문구독은지금껏변함없다.그런데근래들어예전에느꼈던종이신문특유의냄새가덜하다.종이품질이좋아졌던가,아니면내성이생겨후각이무디어졌거나감성이메말라버렸는지도모르겠다.
그러나세상은바뀌었다.한가하게종이신문의추억을들먹이기엔종이신문에불어닥친현실은냉혹하다.그야말로총체적위기이다.전철에서신문은거의자취를감췄다.가판대에꽂힌신문은거들떠보는이별로없다.가정주부들사이에서‘구독료내고신문보면바보’란소리까지나돈다고한다.심지어인터넷에서는‘공짜로종이신문보는방법’까지올라와있다.
우리나라스마트폰인구가4천38만명을넘어섰다.국민중80%이상이스마트폰을사용하고있을만큼SNS가보편화된까닭이다.더하여인터넷매체등다양한미디어가등장한것도종이신문을나락으로내몬첨병역할을했다.
지면을넘길때마다한눈에쏙쏙들어오는아날로그적온기는종이신문만의매력이다.정보나지식습득의효율성면에서는어떠한전자미디어도따라오지못하는마력또한종이신문에있다.세상이다바뀌어도종이신문을절독할수없는이유이며,종이신문이건재해야만하는이유이다.
데레사
2015년 3월 26일 at 7:06 오후
아들은끊자고하고저는절대로안된다하면서지탱해오는것이
우리집신문입니다.
저도종이신문의매력에서못벗어나는사람중의한사람입니다.
새벽에일어나신문을펼치면그속에서들어있는온갖뉴스와
정보,지혜…….이런것들이저를행복하게해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