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 홍콩과 마카오 나들이…<3>
중국 도교사원, 웡따이신(黃大仙)과의 첫 대면은 진한 향내음과 자욱한 연기였다.
고층 아파트가 거대 병풍처럼 사원을 두르고 있는 풍경이 낯설었다.
무릇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우리의 절집에 익숙해진 탓이다.
언뜻 절집처럼 보이나 우리나라의 허준 만큼이나 중국인들이
추앙하는 진나라때 의술가였던 황초평을 모셔놓은 사원이다.
사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어지러이 내걸렸다.
전단지를 든 사람이 오가는 이에게 다가서며 말을 건넨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다.
파룬궁은 중국의 리훙즈(李洪志)가 불교와 도교 원리에 기공을 결합시켜 창시한
수련법 또는 수련단체다.
중국내 파룬궁 수련자들은 1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의 방대 세력을 마뜩잖게 여긴다.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교((邪敎)로 규정해 탄압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파룬궁 수련자들이 길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들은 종교가 아니라 항변하고 정부는 사교로 몰아붙이고…
소원을 빌러 온 사람들은 입구에서 향을 다발로 산다.
현지인들은 바람개비도 곧잘 산다.
바람개비가 돌면서 액(厄)은 빠져나가고 운(運)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홍콩 국기도 빨강 바탕에 하양 바람개비 형상이다.
국기의 바람개비는 홍콩을 상징하는 자형화(紫荊花)다.
암수 쌍용 조각상이 버티고 선 사원 입구로 들어서자, 온통 향내로 가득했고
빨간 기둥에 황금빛 지붕을 인 사원 안마당엔 노랑 빨강 燈이 주렁주렁 열렸다.
노랑은 재물, 빨강은 행운을 뜻한다.
건강과 행운 그리고 행복을 소원하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사람들은 불이 붙은 향 뭉치를 들고 경내를 분주히 오간다.
잘 피해다녀야 한다. 자칫 옷에 구멍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 꿇어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빨간 산통을 흔들어댄다.
빨간 산통을 흔들어 대나무 막대기 하나가 튀어나오는 것으로 운세를 점친다.
튀어나온 막대기를 들고 근처 점집을 찾아가면 점괘를 알려준다.
바로 산통(算筒) 점이다.
재미삼아 보는 관광객들과는 달리 현지인들 표정은 자못 심오하다.
내일 마카오에서 ‘딸지, 잃을지’ 흔들어 보라며 옆지기가 부추긴다.
혹여 점괘가 아리송하게 나와 찝찝해 하기 보다는 아예 ‘모르는 게 약’이다.
산통 깰 일은 애시당초 않는 게 맞다.
사랑을 이어준다는 빨간실 할아버지, 월하노인도 만났다.
이곳 사원을 찾는 청춘남녀들에게 인기 짱이다.
청춘남녀가 실을 사서 손가락에 끼고 소원을 빈 다음 그 실을
이곳에 묶어놓으면 월하노인이 알아서 인연을 맺어준다나.
그런데 중년의 부부들도 더러 빨간실을 손가락에 끼고서 소원을 빌고 있다.
더욱 사랑이 탄탄해지길 비는 걸까? 아니면? 그 속내가 궁금하다.
홍콩 딤섬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서 소호(SOHO) 거리 순례에 나섰다.
소호(SOHO)는 South of Hollywood의 약자, 할리우드 로드에서
남쪽을 따라 이어진 거리다.
소호 거리로 가기 위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여러대의 에스컬레이터가 이어져 그 길이가 무려 800m에 이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가 중간중간 맛집 멋집 간판에 끌리면 곧장
내려 빠져나올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고층 건물 사이로 난 골목을 기웃거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엔틱 샵의 간판들도 에스컬레이터 높이에 맞춰
높게 내걸려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밀집된 아파트 사이도 지난다.
달달한 홍콩영화 ‘중경삼림’에서 임청하가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모男, 양조위의 아파트 내부를 기웃거리는 장면이 있다.
관광객들이 그 장면을 곧잘 흉내 낸다고 하는 곳이다.
소호 그리고 헐리우드 거리는 홍콩 느와르의 세트장과 다름없다.
골목 어디선가 성룡이 튀어나와 말을 건네올 것만 같고
이쑤시개를 문 주윤발이 다가와 손을 내밀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언덕배기로 이어진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홍콩 느와르를 떠올렸다.
덥고 습해 등어리가 땀으로 끈적이는 것도 아랑곳 않고서…
후텁지근한 헐리우드 거리를 벗어나 찾은 곳은 우리의 압구정동
패션街와 닮은 홍콩패션의 메카, ‘침사추이’다.
거리는 온통 어마무시한 패션브랜드로 도배되어 있다.
옆지기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됨을 느꼈다.
소생의 눈엔 이 모두가 그저 장애물이고 지뢰밭으로 비칠 뿐이다.
가까스로 마의 거리?를 벗어나 해변가로 향하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빨간 도포자락?을 걸친 턱수염의 사나이가 대통 하나에 의지해
허공에 앉아 무념무상 중인게 아닌가.
팔을 뻗쳐 잡은 것이라곤 대통 뿐, 무게중심 역시 상식적이지 않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절로 멎게 만드는 이 사람,
혹 ‘알마니’에서 고용한 알바는 아닐까, 혼자 생각^^
홍콩 앞바다, 습한 바닷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난다.
잿빛하늘과 마천루 그리고 빨간 돛배의 하모니가 감성을 더한다.
홍콩의 명물 유람선, 아쿠아루나(Aqualuna)다.
뮤직 & 레이저 쇼가 펼쳐지는 밤이면 빨간 돛배의 진가가 발휘되나
낮시간인 지금은 승객이 채워지질 않아 호객 모습도 보인다.
침사추이 부두에는 거대 크루즈선도 정박해 있다.
넷은 해변가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망중한 모드에 돌입했다.
홍콩은 교육열이 치열해 거리에서 학생들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입시지옥은 저리 가라다. 중학교에서도 성적이 나쁘면
가차없이 낙제시키기에 맘 편히 나다닐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중학생들이 무리지어 침사추이 해변에 나타났다.
궁금증이 발동해 불러 세워 물어봤더니 과제 수행 중이란다.
이들 학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홍콩을 찾은 외국 관광객 인터뷰다.
관광객에게 영어로 홍콩투어 일정과 홍콩의 느낌 등을 물어 글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하는 것이라 했다.
홍콩의 남여 중학생 교복은 대체로 하얀색이 많다.
저학년이라 한창 천방지축일텐데 사흘도리로 빨고 다려 입혀야 할
‘엄마’들 걱정이 앞선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름하여 ‘심포니오브라이트’, 뮤직 & 레이저 쇼를 감상키 위해서다.
홍콩하면 야경이다. 홍콩에서 가장 높다는 IFC 빌딩을 비롯 모든 빌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밤바다에 투영되어 끊임없이 일렁이며 부서진다.
쇼가 시작되기 30여분 전, 일찌감치 명당 자리를 찜해 놓았다.
8시 정각, 내레이션과 함께 잔잔한 선율에 맞춰 하나 둘 레이저 빛이
밤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를 놓칠세라 곳곳에서 스마트폰 셔터 소리가 연신 터져나오고,
팔을 들어 하트를 그리는 연인, 셀카봉 잡고서 V를 그리는 싱글녀,
황홀야경에 취한 모든 이들이 홍콩의 밤바다와 하나 되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에 비례하는 법,
뭔가 강한 임팩트가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눈이 빠져라 레이저 불빛을
응시했지만 15분이 흘렀고 쇼는 끝났다. 헛헛한 느낌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에 섞여 용케도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에게 챙겨 온 호텔 명함을 건넸다.
<다음 편에서는 마카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데레사
2016년 6월 15일 at 6:21 오전
윙타이신 사원에서 결국 점퍼에 구멍을 냈지요.
조심한다고 해도 워낙 많은 사람이 저마다 향을 피워대니까요.
이번 여행은 두분이서 가셨나 봐요.
참 잘하셨어요.
카스톱
2016년 6월 15일 at 9:14 오전
네, 친구 부부와 넷이서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