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홍콩이사가면서잡다한짐들을보내왔었다.
냉장고,에어컨,카펫,대자리…
시골이니어디든구석구석쑤셔넣을장소가많다고생각했을것이다.
바람청량한소리울에도에어컨이있으니습기제거라도해서좋았고,
몇십년만의더위를시원하게보냈다.
아들이준것들을하나도버리지않고여기저기보관해두었었다.
냉장고….
문명의이기란참으로편리하고유익하지만
그렇지못할때도있는게문제이다.
좁으면좁은대로쓰던냉장고가
하나더생기니무진무진들어갈게생기는것이었다.
결국엔내가쓰던냉장고도꽉찼는데아들이준냉장고도
무엇이들었는지모를정도로꽉차버렸다.
냉동실에들어있는오대산곰취에서부터
뒷산에서딴버섯,고춧잎나물.
쑥인절미해둔것이며쌀가루,고구마전분낸것들,도토리가루…
약한번도뿌리지않은붉은풋고추마늘넣어갈아둔것하며…
무우말랭이,김,조개,쌀가루…정말어떤건나도모르는것들이들어있다.
시장이멀다는이유로.무얼그렇게쟁여두었는지알수가없다.
내집엔무시로드나드는사람이많다는이유로도사고
무공해음식을먹어야한다면서도보관하고.
한번씩냉동실에서꺼내녹여서콩고물묻혀먹는말랑말랑한쑥인절미는
우리집의특허품이라사람들은우리집을생각하면쑥인절미생각부터한다는데….
그러나그건도무지이유가되지않는다.
집착내지는욕심이아니었었나한다.
나중엔결국버려지는것이반이상이나되는걸잘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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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없던시절,사각사각얼었던동지팥죽에얼음이동동뜬
동치미를먹던생각을하면,김치냉장고속에든
내가담근동치미는그때의맛과는비교도되지않는형편없는맛이다.
여름날박바가지에찰보리밥담아서그물대바구니에달아놓았다
우물물에채워두었던열무김치랑먹었던점심밥이꿀맛이었던것을…
우물에줄매달아띄워식힌수박화채의맛은
이가아프도록너무차가운냉장고속의수박맛과는또얼마나다른것이랴.
생각해보니냉장고없던시절어머니가해주시던
시원하고맛있는음식이너무나많이떠올랐다.
시원한미숫가루,걸쭉한콩물에동동띄워주시던우무가시리….
드디어냉장고를하나없애버리기로결심하게되었다.
아들며느리가서울로다시이사왔는데그냥참겠다더니
아무래도안되겠는지냉장고가답답하다는불평을하길래주기로작정하고
냉장고청소를시작했다.
사는일도이렇게복잡하게얽어놓고살거다.나란인간이..
다버려도아무쓸모도없는것들을미련을가지고이것도아깝고저것도아깝고.
집어들었다가쓰레기통에버렸다가..
정리가안되고갈등을계속하며치우는냉장고청소는정말진척이되지않았다.
그도그럴것이모두가미친듯이여행다니는와중에서도잠깐짬을내어
농사를지었다거나내손이가서만들어둔것들이많았기때문이다.
그렇게하루온종일을냉장고속의물건들과씨름을하다가겨우청소까지끝내어
마침서울로가는이웃아저씨에게아들집에냉장고를실어보내놓고
내안에있는모든복잡한것들과도씨름을하며.하염없는생각에잠긴다.
여행지에서돌아와끄적여놓은쓰잘데기없는
내낙서들,비행기티켓,입장료낸영수증,
꽃잎,풀잎,심지어조약돌에그림그려둔부스러기들도
이냉장고속과진배없는얼마나한심하고하릴없이복잡한시간낭비였던것이냐.
이모든것이내영혼인것이라고자부했던것들은,
의미있는여행인것이라고자랑스러워했던것들은,
한덩어리의허영에지나지않았던것이란생각에
컴퓨터앞에어지럽게놓여진
정리안된여행노트들을물끄러미바라보고앉았다.
냉장고를청소하듯이이모든것들도다버리고비우리라.
오랜시간냉장고를치우며갈등을거듭했듯이버리지못하는여러가지가있겠지만
결국은버려야할것들을깨닫게될것이다.
모든기억들도세월속에흐려져가듯내가가진물건들도내가가진기록들도
어느날엔다부질없는것들이되고말것인데…
없어도살았던세월을생각한다면참으로버릴것이많은세상이다.
그리고정말반드시해야하고반드시있어야할것들과만살아야하지않을까?
더욱건강한삶을위하여,드높은삶의질을위하여….
그렇다면그게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