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언제나 시작 page:45 고난의 강물/서울에서의 새 생활

서울에서의새생활

1981년9월1일부터1982년2월20일까지

나는세학교를돌며,수업안한날은돈을받지못하는,

한달꼬박일하여13만5천원받는산휴강사를했다.

(아기낳고쉬는선생님대신)

처음한달은식구들이이사를안한상태여서

두고온아이놈들걱정,불편하신시어머니걱정,앞으로살걱정때문에

신세지고있는옛날학부형이무색할지경으로울고다녔다.

들어가살구멍도없는우리의신세는어쩔수없이

결국엔남의구원을받는처지로전락해버렸다는자존심이더못견디게했다.

서울변두리13평1층아파트의전세를얻는것에

열명의친구들과,인천사는후배와,서울서신세지고있는

고마운옛날의학부형과,아이놈의친구욱아엄마가

생활자금이라고모금하여주는돈을다털어넣었다.

몸이크신시어머니는화장실에서돌아서실수도없어답답해하셨고,

다버리고온짐도좁은공간에복잡하기그지없었다.

5학년3학년,이난리로이미어른이다되어버린아이들에겐

쉬쉬할것도없어협조를요청했었다.

9,10,11월의수입을떼어내어12월과,1월의방학을살수있게해야했고

그러기위해우리는20Kg에7천원짜리혼합곡을먹어야했다.

하이얗게눈이내리는날,아이놈과쌀을사러갔다가

어느아저씨의"요새도혼합곡먹는사람있나?"

하는소리에입술을깨물었고

주인아저씨의

"개삶아주려는가보지요"

하는소리를들으며목이메었다.

신문에과일이너무싸서과수원에는거름이나한다는말에

사과한알사먹을수없는형편이더없이눈물났다.

혼식장려정책에,혼식잘했다고학교에서상으로받은책받침을

자랑스럽게펄럭이는아이놈들을바로볼수가없었다.

10만원으로한달을살아내어야만조금남는돈으로

겨울을넘길수가있으므로매일매일가계부를적어가며

아슬아슬메꾸어나갔다.

가능햇다.

관리비5천원,수도전기료5천원,쌀값2만원,연탄값2만원,

부식비3만원,교통비5천원,할머니잡비5천원,기타잡비,

피복비는모든식구가입던옷으로겨울을넘겨보기로했다.

각항목의돈을넘치게쓰면절대로살수가없기에

봉투8개에다항목마다돈을담아놓고넘치지않게썼다.

연탄은낮엔시어머니방을데웠다가밤엔우리방에넣고

번갈아가며불을때어추운겨울을났다.

시장은주말마다쉬는일요일이있는시장의토요일날오후에갔다.

쉬느라고채소나생선같은물건들은떨이로싸게팔기때문이었다.

방학이오자,나는식구들몰래동네뜨개점에꽃뜨개를해주고

몇푼을벌었고,밤을사다가멀리주안역으로가

사람들틈에끼어밤장수를하기도했다.

도둑질이아닌데왜그리손이떨리던지…

일주일을하는데"엄마뭐하고인제와요?"

하며날마다물어아이놈들을바로볼수가없었고,

시어머니의의아해하는표정도

피할수가없어그일을그만두어버렸다.

남편은남편대로어떤땐기름냄새나는목장갑을들고오기도했다.

스페어운전수.

우리는더이상내려갈래야내려갈수도없는

아주밑바닥에내려서야만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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