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경리 선배님의 마지막 산문

다음은계간문학지<아시아>에기고한

나으진주여고선배님고박경리작가의산문‘물질의위험한힘‘전문이다.

나는그분을재경진주여고동창회지<남가람>3호에실을원고를얻으러

오래전원주시단구동자택에가서뵌적이있다.

아직<토지>가다마무리되지않을때라

아무런잡문이나원고청탁도거부해오셨다며

그래도모교를사랑하는마음으로시한편을주셨었다.

연변에서온누렇게빛바랜신문들이

마루에가득쌓여있었던일이짙은기억으로남는다.

“죽음자체아무런의미없어…인생이너무나아름답다”

원주자택의마당에서꽃을가꾸고있는생전의박경리선생.

최근에나는식중독을두달간

앓았습니다.

처음에는식중독인줄모르고한달이나지내다보니

기력이많이떨어졌습니다.

오래앓아온고혈압과당뇨병으로눈도나빠지고

병이여러가지겹치다보니몸이예전같지않습니다.

되도록이면병원에가지않고견디려고하는데,

그러다보니병이더심하게오는것같습니다.

그러나살만큼산사람으로서자꾸아프다고말하자니한편민망한일이기도합니다.
몸이아프면가장고통스러운일이

일을못하는것입니다.

몸이쇠약해지면들지도못하고굽히지도못하니

괴롭기짝이없습니다.

일이얼마나소중합니까?

일은우리를존재하게하는근원적인것입니다.

그래서우리조상들은일이보배라고하지않았습니까?

아프다는것,죽는다는것은생명의본질적인작용인

일을못하는것이기에절망적입니다.

죽음자체는아무런의미가없다고생각합니다.
죽음에대해서사람들은두가지로추측합니다.

하나는죽음과더불어생명이완전히물질화된다고

생각하는것이고,다른하나는영혼이어딘가다른

곳으로간다고생각하는것입니다.

어느쪽으로생각하든죽음은우리가알수없는일이기에두려운것이됩니다.

나는죽음을당연히받아들여야하는것이라고생각합니다.

인간이만물의영장이라고는해도아무리발버둥친다한들

죽음을마음대로할수는없습니다.

이것은그동안살아온연륜에서터득한내나름대로의진리입니다.
세월이흘러서나이도많아지고건강도예전만못하니

세상을비관하고절망을느낄법도한데나는전혀그렇지가않습니다.

오히려인생이너무아름답습니다.

문학에일생을바쳐온사람인데도시간이흐를수록

문학을자꾸낮춰보는시각을갖게됩니다.

나는평소에어떤이데올로기도생존을능가할수없다고말해왔습니다.

글을쓰는행위는가치있는일이지만살아가는행위보다아름다울수는없습니다.

요즘에는그러한생각이더욱절실하게느껴집니다.

살아있는것,생명이가장아름답다는생각이요즘처럼그렇게소중할때가없습니다.
비단인간의생명뿐아니라꽃이라든가짐승이라든가,

살아있는모든것들의생명은다아름답습니다.

생명이아름다운이유는그것이능동적이기때문입니다.

능동적인것이곧생명아니겠습니까.세상은물질로가득차있습니다.

그런데이들은모두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것은물질의속성이요,능동적인것은생명의속성입니다.
나는요즘피동적인것에대한두려움을느낍니다.

아무리작은박테리아라도생명을가지고태어나서

꼭그만큼의수명을누리다가죽습니다.

반면에피동적인물질은죽지도살지도않습니다.

이죽지도살지도않는마성적인힘에대해서생각해봅니다.

인간이도저히대항할수없는이마성적인힘이야말로얼마나무섭습니까?

대량살상무기라든지지구온난화처럼인간에게해악을끼치는

직접적인힘은두말할필요가없겠지요.
나는이피동적인물질자체가가진영원함에두려움을느낍니다.

사람들은이것을건드리지만않으면,또는잘다스리기만하면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의지도없고아무것도없는무자체,이무로서의물질자체는

역으로어떤일도할수있다는가능성을보여주는것아니겠습니까?
지금우리는민족성이희석되어가는세상을살고있습니다.

옛날에일본의지배를받을때도일본사람과결혼하는것은아주드문일이었습니다.

나의고향인통영에한진사집안이있었는데,그집딸들중에둘째딸이

시집을갔다못살고돌아와서일본남자와동거를한일이있었습니다.

그게통영에서유일한경우였는데,양반집안에서남부끄럽다고

가족들이그녀를아주매몰차게구박하고홀대했던일이기억납니다.

그런데요즘세태는어떻습니까?

도시에서는말할것도없고,농촌같은데서도국제결혼을흔하게보게됩니다.

내가사는마을에서도태국여자가한국남자와혼인해서

살고있는것을본적이있습니다.
요즘은지구촌시대라해서하루만에지구반대편까지도가는세상이니,

한국사람들의의식도많이변할수밖에없습니다.

민족성대신에개인적인이해관계에따른대립이크게부각되는것을보게됩니다.

지나간민족주의시대에는나와민족의생존을위해서,

내국가를유지하기위해서싸웠습니다.

그것은높은도덕률과가치관을요구하는면이있었습니다.

우리어머니를위해서,아버지를위해서싸운다는

혈연적인관념이개입되어있었습니다.
반면에현대의사람들은이해관계중심으로살아가면서

그같은도덕률이나가치관대신에건조하고즉물적인삶을영위하게되었습니다.

그런삶이좋다면야할말이없겠는데,물질이개입되어있으니

좋을것이하나도없습니다.그러니미래가어둡다고생각하게됩니다.

세계가활짝열려있어도주판알을튕기며제잇속만을따지게되니

더비정한면이있습니다.
정신적가치대신에물질이힘을발휘하는세상을살아가는일은어렵습니다.

자기자신이자기를위해살아가는세상이되어야합니다.

자기를위한다는것은좋은음식을먹고좋은옷을입는다는뜻이아니라

자존심을지키는것을의미합니다.

자존심은자기자신을스스로귀하게받드는것을말합니다.

부끄러운일을하지않는것입니다.

사회주의나자본주의나모두물질에들린삶을살아가는체계입니다.

스스로멈출줄모르는물질적메커니즘에사로잡힌세계입니다.

나역시신문도읽고가끔텔레비전방송도봅니다만

내가한적하니까하는일이지물질에편향된뉴스가

나의삶에커다란도움이된다고생각하지않습니다.
문학을하는사람들은상업적인사고를버려야합니다.

간혹상업적인사고를가진문학인들을볼수있는데,진정한문학은결코

상업이될수없습니다.문학은추상적인것입니다.

눈에보이고손으로만질수있는컵같은것이아닙니다.

손에잡히지않는정신의산물을가지고어떻게상업적인계산을

한단말입니까?

나는독자를위해서글을쓴다는말도우습게생각합니다.

독자를위해서글을쓴다면종놈신세아닙니까?

독자들입맛에맞게반찬만들고상차림을해야하니영락없는종놈신세지뭡니까.
문학은오로지정신의산물인데,그렇게하면올바른문학이탄생할수없습니다.

나는출판사에서저자사인회를하는것도탐탁지않게생각합니다.

방송국에서가끔씩출연섭외가들어오기도하는데,

카메라를의식하면서이야기해야하는이중성같은게느껴져서거의거절하고맙니다.

스스로자기자신의이중성을볼때처럼기분나쁜일이또어디있겠습니까?

대신에나는내영혼이자유로운시간을더얻는기쁨을누립니다.

조금이라도자유롭게살고싶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따른명예나돈같은것은별것아닙니다.

자기가누릴수있는자유가최고입니다.

나의삶은내가살아가는그순간까지만내것이지그후에는내것은아무것도없습니다.
요즘나는시를쓰고있습니다.

예순편정도를추려서시집을내려고생각합니다.

생애마지막작업이라생각하고,가족사같은,

내가잃어버렸거나잊어버린일들을담아내려고합니다.

한평생소설을써온내게시는나의직접적이고날것그대로의

순수한목소리를지닌것입니다.
소설도물론그알맹이는진실한것이지만,목수가집을짓듯이

인위적으로설계를해야만하는일입니다.

같은돌멩이라해도큰것과작은것의차이만있을뿐이지

모든존재는질적으로동등합니다.

다만요즘의내가자연스럽고자유스러운양식에더이끌리고,

물질적이고인위적인것의위험한힘을더욱경계하게되는것은

나이를많이먹었기때문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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