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 그리고 사색 11

사색의시간


밤에는비가계속흩뿌렸다.

젖은공기가제법서늘하게몸에닿는다.

밤은사색의시간이다.

어둠의속성.많은사람들은어둠은죄악의시간이라말한다.

그러나어둠은깨달음의시간이아닐까한다.깊은적막의시간없이

어찌깊은생각을끌어낼수있을것인가.

비가오기때문에별들의이야기에귀를기울일수는없었다.

그러나가는빗소리가조그마하게목소리를낮춰가며무언가이야기를들려주고있다.

“열정과용기를갖기전에먼저어둠과밤의목소리에귀를기울이셔요.

그들의이야기를듣고깊이생각하셔야할겁니다.

아직은아니지만벌써행동을멈추어야할때가왔답니다.

나이에걸맞는‘물러섬‘그리고’인내’도지녀야할덕목의하나랍니다.“

54일기도숙제34일째감사기도를드렸는데도무언지에눌려잠을이루지못한다.

신영복선생님의서화에세이를꺼내어읽는다.


“바깥에서만여는문은문이아닙니다.

다른사람이열어주는문도문이라할수없습니다.

자기손으로열고나가는문이라야합니다.

자기발로걸어나가는문이라야함은물론입니다.“


“고통이견디기어려운까닭은

그것을혼자짐져야한다는외로움때문입니다.

남이대신할수없는일인칭의고독이고통의본질입니다.

여럿이겪는고통은훨씬가볍고,여럿이맞는벌은놀이와같습니다.

우리가어려움을견디는방법도이와같아야한다고생각합니다.“

읽는내용마다가슴을콕콕찌르는메타포.

빗소리와함께그녀는멀리있는아이들을그리워한다.

아들들아,

부모로서아무것도해줄일은없지만고민을함께들어주마,

너는손으로문을열고,발로문을박차고나가기만하면되겠구나.

문을찾아야지.문을.

다른모든사람들도힘든시기라하니…


6시가되자마자서둘러온천물에뛰어들기위해방을나섰다.

간밤에남탕이던곳이여탕이되어있었다.

바깥기쿠지의사계,대형사진에비추이던화려한불빛과폭포는쉬고있었고,

남탕,여탕의간판을바꿔붙이느라여탕에서남자종업원이나왔다.

바뀐여탕에는노천탕은없었고,그대신두층으로되어더많이넓었다.

아무도없는목욕탕에서관조의세계에깊이빠져들수있는시간이더없이좋았다.


제4일:12월5일기쿠지호텔에서의아침미사


-어둠에우리헤매일때권능의팔을펼치시어진리의길로이끄소서-


성경에는눈먼사람의비유가자주등장한다.

그토록사람들은눈먼현상이자주된다는말이다.

순례길의피정에서드리는오늘의미사에도복음말씀은

예의그눈먼사람들의비유이다.

사람들은자주눈이먼사람이된다.

물질에눈이멀기도하고,사람을보는눈이멀어참된사람을잘알아보지못하기도한다.

선입견에사로잡혀사물을보는눈이모호해지기도한다.

그릇된판단으로장님처럼행동하는일이얼마나많았던가.

바르게,올곧게살리라늘다짐하며살아왔건만지나고보면

눈뜬장님의행동을하고있었던걸자주느낀다.

삶의전부가온통그릇됨천지지만반성하고또반성하며,

회개하고또회개하며살리라.새로운다짐을하게된다.

눈을똑바로뜨고옳은것을생각하고옳은것을행하며살리라.

그러나세상은만만치가않다.세상에자기를맞추려는행동은

기회주의자로보이기쉽고,세상을자기에게맞추려는행동은

아무리옳은일이라도어리석거나미련하게보이기쉽다는거다.

어느것이똑바로눈을뜨고살고있는행동인것인가.

세상일과하느님의일이다름이있다는것자체가아이러니처럼여겨진다.

옳은일은어디에서나옳은일이어야하기때문이다.

하느님을자기의삶안에끌어들여야만참신앙인이될것같지만,

언제어디서나하느님을느끼면서가슴안에모시고살고있게되지는않았었다.

너무힘들땐하느님을원망하기도했고,

하필이면왜나에게이런시련을주느냐고기도도게을리했었다.

“하느님바지가랭이가벗겨지도록기도해보았느냐?”

존경하는어느성직자께서큰시련을당해서울고매달리는그녀에게

그렇게매운질문을한적이있었다.

그때그녀는처음으로하느님바지가랭이를붙들고늘어진적이있었다.

목숨을내걸고기도에빠져들었었다.

더더욱나락으로빠져드는현실에서도이상하게그녀는실망보다는희망을갖게되었다.

오기같은열정,그리고용기가샘솟았었다.

“돌아보실때까지매달릴겁니다.어디내기해봅시다.누가이기나…“

하느님바지가랭이가벗어졌는지는알수없었지만

얼음장속에서졸졸흐르던봄의소리를들었던때와같이

희망은그리멀지않게손에잡혔다.

그리고오늘에선것이다.

그녀는이번에도그렇게되리라는확신을갖고싶었다.

눈을똑바로뜨고서살자.

절대로장님이되어서는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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