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언제나 시작page22:유년의 기억 속으로: 누에치기 1

서울지하철잠원역에가면커다란누에몇마리가기어가는

벽화가그려져있다.

아마요즈음의아이들은그그림을보고도그것이누에그림이라는것조차알지못하리라.

그옛날한강가,압구정이라는정자가있던곳에서부터그곳잠원동까지는

뽕나무밭이많았고누에를치는사람이많았다고한다.

우리어머니도부업으로누에를키우셨다.

봄,가을,1년에두차례씩누에를키우는동안,

우리남매는누에에게방을내어주고아버지방에서새우잠을자야했다.

빳빳한모조지에깨알같이까맣게받은누에알을더운방에두면

알에서고물고물개미같이작은누에가기어나오기시작한다.

어린누에에게는연한뽕잎을잘게썰어먹였다.

점점뽕잎을많이먹으면서누에는고개를치켜세우고

뽕잎도먹지않고가만히있을때가있다.

"누에가잠을잔다"는시기.

고만고만한또래의누에들이나란히누워고개를곧추세우고잠을자는모습은

정말장관이다.

누에는한잠자고,두잠자고,석잠을자는동안

몸이점점자라새끼손가락굵기만큼크게된다.

연한잎을잘게썰어줘야먹고들깨보다작은똥을누던누에는

뽕잎을통째로먹고,어떤땐가지째꺾어다누에섶위에얹어놓기도하는데

그걸다갉아먹고제법굵은똥을눈다.

어머니는매일누에채반에서누에똥을치우시고

새벽이면뽕잎을따러근교의뽕나무밭으로나가셨다.

이웃에두어집함께누에를길러서뽕잎을따러같이가기도했는데

아무도하약국댁만큼양잠을잘할수없을거라고부러워했었다.

간혹한번씩어머니를따라뽕밭에가기도했었는데

뽕잎따는걸도와주러가는게아니라

보라색단물이질컹질컹나는오디를따먹는재미를보기위해서였다.

갸름하고길쭉한새끼손가락마디만한오디를많이따서

한옹큼입속에털어넣으면입안에배이는달콤한그맛…

그어떤과일의맛이이와같을것인가!

한번은둥치가굵은뽕나무가지위에올라가오디를많이따겠다고욕심을부리다

갑자기왕개미가무는바람에나무에서굴러떨어져무릎을다쳤다.

지금도남아있는무릎의흉터자국…

울면서입에서흘러내린오디물을,피인줄알고더요란하게울었던

어린시절의기억에챙피하다.

서너잠을잔회색빛나는굵은누에가뽕잎을갉아먹는소리는

고요한밤의정적을깨고와식와삭,사각사각,제법요란하게들렸다.

넓적한뽕잎한장이순식간에안상한잎맥만남기고먹어치울만큼

누에는식욕이왕성했다.

누에는완전변태를한다.

알에서,애벌레에서,번데기에서나방이되기까지.

그과정중에잠을다섯번자는데,한번자고깰때마다

몸이크게되어서마지막잠을잘때에는

누에몸은투명하게변하여아른아른하고투명한적청색을띄게된다.

이다섯번째잠을잘때,"다섯살이되었다"라고하며

이때어머니는"누에가익었다"라고말씀하신다.

잘익은(숙잠)누에를골라내오누에섶에다올려주면

그때부터누에는비로소뽕잎을얻어먹은보답을하는시기.

누에는인과응보의법칙을아는동물이다.

투명한몸의누에는자기몸속에축적된비단실을살금살금풀어

자기몸은점점줄어지면서누에고치를만들기시작한다.

누에고치속에자기몸은감추우고,하얗고예쁜누에고치가만들어지는것이다.

변온동물인누에가고치를다만들때까지누에방은

항상온도와습도를잘맞추어주어야한다.

아침저녁시간맞춰군불을지폈고,행여누군가가궁금하여누에가어떻게자라는지,

뽕잎은어떻게갉아먹는지신기하여문을열고누에방을들여다보면

"누에가감기든다"고어머니는성화를대셨다.

섶에올라간누에들이그거룩한비단실뽑아내기작업을끝내고

하얀고치속에몸을다감추면누에방은하얀꽃이만발한것같다.

온통하얗고매끄러운가운데가땅콩처럼약간잘록한꼬치들이

누에섶에좍깔려있는모습은너무나사랑스럽다.

마치진치집에가져갈고치유과를가득쏟아놓은것같이

먹음직스럽기도하고,양쯔강소삼협에서보던

반질반질윤이나던하얀조약돌처럼예쁘기도했지만,

사실이누에치기는한창어려웠던시기에우리집의중요한사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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