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님의 소설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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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님의포스팅에페티킴을보고섹시하다고해서택클을건이야기가있었습니다.

마침쓸쓸한이야기를하나읽고있던중이라여기올려봅니다.

누구나가늙을테고섹시함은지니고있어살고있는건아닐까요?

늙었다고섹시함의생명력은줄어지지않습니다.

단지형이하학적인섹시함만이아니라…

황혼(黃昏)-박완서

강변아파트7동18층3호에는늙은여자와젊은여자,그리고젊은여자의남편과두아이가살고있었다.늙은여자와젊은여자는고부간이었다.두사람의관계는썩좋은편이아니었다.젊은여자는좋은가정교육과학교교육을받은똑똑한여자로서늘완전한걸좋아했다.비뚤어지거나모자라거나흠나거나더럽거나넘치는걸참지못했다.
그러나사람의행복에대해서만은대단히모나지않은생각을갖고있었다.아무리행복한사람이라도한가지근심은있게마련이라는게그것이었다.늙은여자가바로젊은여자의그한가지근심이었다.젊은여자는늙은여자를한가지근심덩어리로밖에인정하지않았다.
늙은여자는실상늙은여자가아니었다.아직나이예순이넘지도않았고,소녀처럼혈색좋은얼굴과검고결좋은머리와맑은눈을가지고있었다.젊은여자를며느리로맞을때는더젊었었다.
시집온지며칠이지나도록젊은여자는늙은여자를결코어머니라고부르지않았다.꼭불러야할기회는젊은여자쪽에서솜씨좋게피했기때문에늙은여자는그걸별로부자연스럽게여기지않았다.
그러던어느날젊은여자는친구를초대했다.친구들은오이소박이맛을특히칭찬하면서누가어떻게담갔는가를알고싶어했다.그것은늙은여자의솜씨였다.늙은여자는젊은여자가“우리어머님이담그셨다.”고이야기해주길가슴두근대며기다렸다.그러나젊은여자는간단하게말했다.
“우리집노인네솜씨야.”
늙은여자는그말이섭섭해며칠동안입맛을잃었다.
그러나그것은다만시작에불과했다.감기기운만있어도“노인네가옷을얇게입으시니까그렇죠.”,화장실만자주들락거려도“노인네가음식을많이잡수시니까그렇죠.”,질긴거나단단한걸먹으려해도“노인네가그걸어떻게잡수시려고그래요.”하는식으로,그여자는모든자연스러운행동을하나하나간섭받으면서늙은여자로만들어졌다.
그러다가젊은여자는아이를낳았다.늙은여자에게손자가생긴것이다.그때부터젊은여자는늙은여자를할머니라고불렀다.늙은여자의아들까지덩달아서할머니라고불렀다.마땅히어머니라고불러야할사람들이할머니라고부르기위해대화의방법까지간접적인것으로고쳐나갔다.
“할머니진지잡수시라고해라.”,“할머니그만주무시라고해라.”,“할머니전화받으시라고해라.”이런식이었다.

오늘아침에도늙은여자는깨어서누워있었다.늙은여자의방은이아파트의방가운데바깥으로창이나지않은단하나의방이었기때문에밖이어느정도밝았나를알수없었다.문은부엌으로나있었다.그방은방이아니라골방이었다.
늙은여자는눈감고창밖의어둠이군청색으로,남빛으로엷어지면서문틈을통해맑고차가운샘물같은새벽바람이스며들던옛집의새벽을떠올렸다.그여자의옛기억은아주또렷했다.아파트촌의새벽이그여자의옛생각을따라밝아왔다.
부엌에서그릇부딪치는소리가들리고,이어서“할머니일어나시라고해라.”하는젊은여자의차가운목소리가들렸다.아이들은아직자고있었기때문에그것은늙은여자들으라고하는소리였다.
늙은여자는못들은척하고반듯이누워서명치부근을쓱쓱쓸어도보고꼭꼭주물러도보았다.그것은요즈음늙은여자의버릇이었다.늙은여자는요새건강이좋지않았다.입맛이없고,신트림이나고가슴이답답했다.입맛이없어끼니를거르고누워서명치를짚어보면속에응어리같은게어떤때는확실하게,어떤때는희미하게만져졌다.
늙은여자는환갑전에가슴앓이로죽을지도모른다는막연한두려움을갖고있었다.늙은여자의시어머니도환갑전에가슴앓이로죽었다.6ㆍ25전쟁중피난지에서였다.돈도없었고약도없고병원도없었다.그대신사람들의뱃속은아무리거친음식도눈녹이듯이삭였고,헐벗고한뎃잠을자도감기한번안걸렸다.
그러나그여자의시어머니는죽을먹고도냉수를마시고도신트림을하였고명치를쥐어뜯었다.하루하루야위고말라갔지만손을쓸수가없었다.시어머니는누워서자기명치를쓸면서“안에꼭바나나만한게가로걸렸으니먹은게내려갈재간이있나.”하면서한숨을쉬었다.
그럴때마다그여자는시어머니의명치에가로걸린바나나만한걸어떡하든달래서풀어지게해볼양으로정성껏명치를쓸어드렸다.해드릴수있는건오로지손으로만져주는것밖에없었다.두메사람들이일러준옛날치료법을따라화로의불돌이뜨끈뜨끈할때누더기에싸서명치에얹어드리기도했다.
손으로쓸어드릴때도불돌을얹어드릴때도시어머니는곱고환하게웃으며“아이고시원해,아이고시원해,그놈의게스르르풀어지고이제다나은것같다.”고하셨다.아무리고통이심할때도며느리의손만가면밝게웃으셨다.그러다가바나나만한것은약손의힘으로풀어지기는커녕애호박만하게자랐고,병자는눈뜨고바로보기민망하도록앙상하게말라가더니어느날숨을거두었다.
지금늙은여자는그때병자의명치에서바나나만한게정말로만져졌는지생각나지않는다.다만며느리의손길이닿을때마다억지로웃던웃음만은지금도고스란히떠올릴수가있었다.그리고고통속에서도그웃음이그토록환하고고왔던까닭을알수있을듯했다.

늙은여자는지금그때의시어머니처럼아파서괴로워하고있는곳을며느리가어루만져주기를바라고있었다.그러나젊은여자는“노인네가많이먹어서그렇죠.”하면서소화제를한봉지주고끝냈다.
하긴요새세상에누가약손따위를믿을까마는그래도늙은여자는그게아쉬웠다.소화가잘되고안되고하는문제가아니었다.자기의손에만져지는게확실한가아닌가,남의손으로확인하고싶었다.그래서늙은여자는아들과며느리한테조르고애처롭게부탁했다.
“얘들아,명치속에이게뭔가한번만만져봐다오.”
어느날인가,늙은여자는느닷없이치마끈을풀면서곁에있던젊은여자의손을끌어다가명치를만져보게하려고했다.젊은여자는깜짝놀라며손을뿌리쳤다.그리고늙은여자가충격을받을만큼몹시불쾌한얼굴을했다.늙은여자는얼른그자리를피하는수밖에없었다.젊은여자가명치끝에닿았던손을마음껏흐르는수돗물에씻어낼수있도록…….
그일은늙은여자뿐아니라젊은여자에게도충격이됐던같다.다시그런일을당할까봐꽤나겁이났던지당장늙은여자를병원으로데리고갔다.늙은여자는병원갈만큼큰병은아니라고사양했건만소용이없었다.늙은여자는진찰받으면서내내명치에뭔가가있는것같다고만이야기했다.젊고냉철해뵈는의사는듣기만하고대답은하지않았다.옷을벗으라든가,돌아앉으라든가누우라든가하는말도간호사를통해간접적으로말했다.
“선생님,제병은아무리생각해도보통병은아녜요.아마유전일거예요.유전은고치기힘들죠?시어머님이저처럼이렇게가슴앓이로고생을하다가돌아가셨거든요.그때시절론좋다는건다해봤지만소용이없더군요.”
“고부간에무슨유전입니까?”
의사는무시하는것처럼말했다.그것이늙은여자가지껄인여러말에대한의사의단한마디의대답이었고,그녀의증상에대한관심의전부였다.
그날저녁을굶고,다음날아침먹기전에와서엑스레이를찍으란소리도간호사가했다.저녁을굶고나서그런지명치가푹꺼지고아무것도만져지지않았다.이래가지고서야세상없는엑스레이로도명치속에아무것도없다는것을증명할수밖에없을것같았다.
늙은여자는병원에서큰병에걸렸다고할까봐도겁이났지만아무것도없다고할까봐더겁이났다.큰돈들이고,수선은수선대로떨고나서아무병도없다는게탄로가나면무슨낯으로식구를대할까싶었다.

부엌에서구수한된장국냄새가훌훌코끝으로끼쳐오자늙은여자는느닷없이강렬한식욕을느꼈다.한끼굶은것으로명치에서오르락내리락하던것은온데간데없고다만배고픈느낌만이선명했다.늙은여자는부끄럽고당황했다.어제병원에서주사를한대놓아주든지,약이라도몇봉지주었더라면그핑계를대고다나았다고하련만그럴수도없었다.
늙은여자는병원에가기싫었다.처음부터늙은여자가바란건엑스레이나주사나약이아니었다.
“할머니일어나시라고해라.병원가실시간늦으시겠다.”
젊은여자가재차간접적으로여자를깨우는소리가나다.손자들은아직안일어났고식탁에선아들이혼자서신문을읽고있었다.늙은여자는아들을,며느리보다가깝게느끼면서자기가병원에가지않는데아들이도움이돼주길바랐다.
“아비야,나잠깐보자.”
늙은여자는몰래아들에게손짓과눈짓을함께했다.아들은곧장오지못하고두리번두리번한눈팔며비슬비실늙은여자곁으로왔다.
“나말이지,병원에안갈란다.다나았어.정말이야,여기서뭐가오르락내리락도무지밥을먹을수가없더니글쎄밤새고놈의게감쪽같이없어졌지뭐냐.정말이야.너그런얼굴하지말고어디한번만져볼래?”
늙은여자는무심히아들의손을끌어당겼다.아들이털벌레를털어내듯이방정맞게늙은여자의손을뿌리쳤다.
“노인네도참…….”
그러면서일어섰다.어느틈에젊은여자가따라와그광경을지켜보고있었다.
“빨리준비하세요.여덞시까지는가셔야하니까요.”
젊은여자는아이들을아침밥먹여학교에보내야하기때문에오늘은모시고갈수없다면서엘리베이터까지배웅을해주었다.

이른아침,지하1층에있는각종검사실과방사선실앞은많은환자들로붐비고있었다.벽도희고불빛도희어서그곳에서차례를기다리는환자들까지알맞게빛이바래보였다.환자들도미리지쳐있으면서긴장하고있었다.그래서더욱환자다워보였다.
늙은여자는생각보다일찍이름이불렸고입술이붉은간호사로부터걸쭉하게갠횟가루가든컵을받았다.늙은여자는그것을어떻게해야하는지알지못했다.간호사가말했다.
“마시세요.쭉.”
늙은여자는처음보는음식이었기때문에우선냄새를맡기위해코를들이댔다.아무냄새도안났다.먹는것에서아무냄새도안난다는게도리어비위에거슬렸다.먹고싶지않았다.
“쭉들이마시라니까요,빨리.”
사무적인목소리에짜증이가미되자늙은여자는얼른그걸들이마셨다.아무것도없는고약한이물질이명치를뿌듯이채웠다.
엑스레이촬영이끝나자늙은여자는화장실로달려가곧그것을토해내려고했지만되지않았다.집에가서소금이라도한움큼집어먹고토할수밖에없을것같았다.

아이들은학교에가고,시간제파출부는집안청소를하고,젊은여자는다리를꼬고앉아커피를마시고있었다.늙은여자는너무일찍돌아온게아닌가싶어쭈뼛쭈뼛했다.그러나젊은여자는까듯이예의발랐다.흠잡을데라곤없었다.
“이제뭘좀잡수셔야죠.미음을끓일까요?”
“아무생각없다.병원에서병을고치기는커녕얻어왔나보다.”
늙은여자는명치를쓸면서말했다.
“왜그러세요,또.오늘은엑스레이만찍었을텐데요.”
“내가엑스광선을처음찍는줄아냐.예전에도몇번찍어봤어.그렇지만그렇게고약한걸먹이고찍는병원은처음봤다.세상에다른병도아니고소화안되는증상에그런고약한걸강제로먹여놨으니덧날수밖에.아유,비위뒤집혀.”
“그건조금도고약한게아녜요.맛도냄새도없는거예요.”
“그럼너도그걸먹어봤단말이냐?”
“제가그걸왜먹어봐요?”
“그럼그맛을어떻게알아?”
“소화기관촬영을할때그런걸미리먹고해야한다는것쯤은상식이에요.물을먹고도비위가뒤집히는사람만아니면누구나다먹을수있는거예요.”
젊은여자는옳은말을하고있기때문에사뭇당당하고늙은여자는기가꺾였다.젊은여자는언제나이치에맞는말만했다.아는것도많았다.늙은여자가병원에서얻어먹은걸맛보지않고도그맛을정확하게안다.
그러나먹는것에냄새도맛도없다는게,먹기에얼마나고약한것인가는모르고있다.먹는것이라면쓴맛이라도맛이있어야하고하다못해썩는냄새라도나야한다.그러니까맛도냄새도없는것은먹는게아니다.세상에서가장고약한맛은먹는게아닌걸먹는맛이다.늙은여자는그렇게생각했지만이치에닿지않는것같아말로하진않았다.
늙은여자가아무것도안먹을것처럼말했는데도,젊은여자는파출부에게미음과죽을쑬것을일렀다.파출부는미음을쑤면서거침없이지껄였다.
“저는요,사모님.이래봬도서울장안에서행세깨나하고사시는댁안방과부엌을내집드나들듯하면서삽니다요.그러다보니눈치만발달해서사람사는속사정이라면,저밑바닥까지환합니다요.사모님도워낙교양이있으신분이라말씀은안하셔도,사모님속상하시는거저다압니다요.노인네가속좀썩이죠?그렇죠?아드님돈벌이하기힘든생각은눈곱만큼도안하고노인네가입맛좀떨어진걸가지고병원좋아하는노인네,일좋아하는노인네…….그래도사모님은참착한며느리셔.싫은내색한번안하시고그치다꺼리를다해내시니.”
늙은여자가들어도괜찮다는듯거침없었다.늙은여자는이소리보다다용도실에서나는세탁기소리가더견디기어려웠다.
엉뚱한것으로채워진시장기때문에늙은여자는손끝하나까딱할수없을만큼힘이빠져있었다.괘씸한딴으론한바탕나무라주고도싶었지만더욱간절한소망은잠을자는일이었다.세탁기소리가멎자늙은여자는방바닥속으로곧장침몰하듯이깊은잠에빠져들었다.

얼마나잤을까.시끄러운전화벨소리에깨어났다.얼떨결에늙은여자는자기가병자라는걸잊어버리고민첩하게수화기를들었다.늙은여자방은작았지만전화기도따로있고텔레비전도따로있었다.그래서젊은여자는외출할때마음놓고안방을잠글수가있었다.
수화기를들고“여보세요.”하기전에통화는이미시작되어있었다.젊은여자는외출하지않고있었던것이다.그런일은얼마든지있을수있는일이었다.그런일이아니더라도늙은여자는심심할때곧잘젊은여자의전화를엿들었다.그러지않고서는늙은여자가젊은여자들이이야기하는데참여할기회란좀처럼없었기때문이다.젊은여자의친구들이떼를지어놀러올때도있었지만늙은여자에겐간단한인사를하는적도없었다.
전화를엿들으면서늙은여자는차츰생기가나기시작했다.젊은여자들은늙은여자가들어서언짢은이야기는결코하지않았다.젊은여자는교양이있는여자였다.집밖에서일어나는여러가지문제에깊은관심을가지고있었고,제나름의의견도가지고있었다.노인네를입밖에올릴만큼이야깃거리가바닥나지않았다.
젊은여자들은공립학교와사립학교의장단점에대해토론했고,아이들의특기교육과소질에대해의견을나눴다.남편의승진과아내의능력과의상관관계에대한논쟁에선목소리가높아졌다가,명동어느가게에기막히게세련된고급실크블라우스가있더란새로운정보에서다시활기를띠었다.
늙은여자는몰래엿듣는전화였으므로숨죽여야했고,아무리우스러워도소리죽여웃어야했다.그래서더욱늙은여자의표정은팬터마임처럼과장되어변해갔다.늙은여자는통화에끼어들진못했지만젊은여자들이하는말에늘흥미진진했다.
젊은여자들은한번도늙은여자의귀에거슬리거나못알아들을말을한적이없었다.젊은여자들이재미있어하는이야기는늙은여자도재미있었고,젊은여자들이화를내는문제에대해선늙은여자도마찬가지였다.젊은여자들의기쁨이나슬픔,바람을늙은여자는특별히노력하거나거짓으로꾸미지않고도따라할수있었던것이다.

전화로젊은여자들의이야기에몰래참여할때마다늙은여자는자기가왜늙은여자여야하는지이상하게생각했다.외톨이가되어특별히취급되어야할아무런이유도그자신에겐없었다.전화의이야기가갑자기건너뛰었다.
“참,수다떠느라정작할말을잊어먹을뻔했구나.내일좀모여야겠다.인애시어머님이돌아가셨어.그냥있을수있니?부조금좀걷어서문상을가봐야지.”
“그래?언제돌아가셨어?”
“어제.너왜그렇게긴한숨을쉬니?”
“그냥.”
“너혹시부러운거아냐?”
“아무렇게나좋을대로생각해.”
“그분아직도새파라시지?”
“새파라시기만하면좋게.”
“왜,무슨문제가있었어?”
“아니.”
“그럼왜그래?”
“더새파래지시지못해병원에다니신단다,요새.”
“그래도어디가편찮으시다는핑계는있을거아냐?”
“뭐입맛이없으시다나.”
“너희부부가너무효자효부라서그래.입맛이떨어지셨다면비타민제나한통사다드리면됐지,병원이어디한두푼드는데니?”
“우리식구모두건강해서아직가지의료보험혜택한번도못받았잖아.그러니까그냥보내드리는거지뭐.”
“얘,모르는소리좀작작해.병없이엄살부리는사람병원비를아무리의료보험덕봐도무시못한다.두고봐라.갖은검사를다시킬테니.생각해봐.감춘보물찾기보다는안감춘보물찾기가더골빠지는것은정한이치고,병원에서왜거저골이빠지니?터무니없이돈들걸.”
“그런것쯤누가모르니?그렇지만이번일은정말참을수가없었어.”
“왜,무슨일인데.요것아,빨리사실대로말해봐.”
“글세허구한날명치에뭐가있다고그러면서,이사람저사람아무나보고거길주물러달라는거야.노인네가왜그렇게남이자기살만지는걸좋아하는지,다른건다참을수있어도그것만은정말못참겠더라.”
“드디어왔구나.예외도있나싶더니.”
“뭐가?”
“너희노인네말이야.그게바로욕구불만의표현일거야.”
“그게그럼,성욕비슷한건가?”
“늙었건젊었건,사람하는짓은모두성욕으로설명안되는게없거든.”
“너나그렇지.너는애가아무튼순수하지않아.너는꼭그방면으로무슨일이든지갖다붙이더라.”
“얘,뭔일이든지그방면으로갖다붙인게나라니?무식하게시리,그건프로이트야.”
“프로이트?”
“그래,프로이트.너도대학교때들은강의정도는기억하고있다가써먹을줄도좀알아라.”
“그러고보니나에게도이것저것짚이는게있어.”
“프로이트선생을갖다붙이니?까금세내말에권위가붙는구나,얼씨구.”
“까불지마.남은속상해죽겠는데.”
“뭐가또속상해?내가해석을잘해줬는데.”
“네해석을듣고보니얼마나징그러우냐말이야.”
“얘는성욕이뭐가징그럽니?그야말로인간의본질적인문젠데.그문제가사라지는날은인류가멸종하는날일텐데.”
“듣기싫어노인네안모신다고남너무약올리지마.”
늙은여자는통화중에슬그머니수화기를놓았다.손에서힘이빠져더이상수화기를들고있을수가없었다.늙은여자는프로이트를못알아들었지만성욕은알아듣기때문에심한모욕감을느꼈다.
세상에,다죽게된늙은이에게무슨누명을못씌워그런더러운누명을씌울게뭐란말인가.늙은여자는속이와들와들떨리게분했다.그러나프로이트란사람이누군지는그게외래어라는것밖에알수가없었다.
늙은여자는젊은여자들이즐겨쓰는외래어를거의못알아듣는게없었다.액세서리니에티켓이니노이로제니프리미엄이니덤핑이니섹스니하는외래어의뜻을누가가르쳐주지않았는데도정확하게파악해서알아들을수있을뿐더러,간혹써먹기도했다.
그러나프로이트만은알수가없었다.설사그뜻을짐작할수있다손치더라도성욕에서받은모욕감을없앨수있을것같지않았다.늙은여자의눈엔눈물이고였다.
아이들이학교에서돌아오는소리가났다.아이들은늙은여자에게친절했다.안방에서텔레비전을보다가쫓겨나면저희들방으로가는척하다가할머니방으로숨어들어와이불속으로파고들어텔레비전을켜달라고조를때도있었다.그럴때늙은여자는처음엔안된다고하다가도곧아이들하자는대로했다.
아이들의엄마아빠가해롭다고생각하는건늙은여자도아이들에게해롭다고생각했지만,아이들을양옆구리에끼고어리고싱싱한체온과숨결을접한다는건늙은여자가도저히뿌리칠수없는기쁨이었다.
오늘따라아이들은할머니방에들어오지않았다.아이들은들어올때도안들어올때도있었지만늙은여자는젊은여자가일부러아이들을안들여보내는것처럼느꼈다.

젊은여자가멀겋게끓인미음을들고들어와서머리맡에놓으며말했다.
“입맛이안당기시더라도좀마시세요.”
늙은여자는대답하지않았다.젊은여자는대답을기다리지않고나갔다.늙은여자는미지근한미음을마셨다.
아이들이“아빠,아빠”하고반기는소리가들렸다.부엌에서환풍기돌아가는소리가시끄럽게났다.늘듣던소린데도톱니바퀴가머릿속을파고드는것처럼그소리는여자를괴롭혔다.늙은여자는엎드려서귀를틀어막았다.
그소리가멎자식당에서밥먹는소리가났다.식구가모두늙은여자를약올리기로약속이나한듯이즐겁게웃고소리나게씹으며식사를했다.향긋한김냄새,구수한된장국냄새도끼쳐왔다.아침에도같은냄새를맡은것으로봐서허깨비를본것인지도몰랐다.
텔레비전소리가났다.연속극에서늙은여자가악쓰는소리가났다.늙은여자의방에도텔레비전은있었지만보지않았다.연속극에나오는늙은이들은젊은이한테무조건아첨하지않으면모든일마다따지고맞섰다.늙은여자는그렇게사는늙은이들의모습이마음에안들었다.
연속극속의식구들소리때문에정작식구들의말소리는들리지않았다.늙은여자는기다렸다.식구들이연속극에정신이팔린사이아들이살금살금발소리를죽이고문병을와주기를.몇번인가문밖에숨죽인아들의발소리를들었다.그러나실제로문이열리진않았다.
늙은여자는안절부절아들이들어와주기를기다리다지쳐서다시쓰러졌다.뱃속에서쪼르륵소리가나면서명치속이까진살갗처럼싱싱하게쓰려왔다.그여자는반듯이누워서명치를쓸어봤다.아무것도만져지지않았다.
아마엑스레이는더정확하게그속에아무것도없다는걸증명해줄것이다.그속에아무것도없다는게마치몰래길들인친구를잃은것처럼허전했다.그거야말로늙은여자의마지막친구였거늘.
늙은여자는사라진응어리를되찾기위해명치를쓸고주무르고더듬었다.그러면서이게성욕이라니말도안되는소리라고생각했다.늙은여자는성욕이라는말에토할것처럼더럽고누추한느낌밖에들지않았다.
늙은여자는지금은과부지만남편이살아있을때,기쁨이나슬픔을같이나눌대상으로서남편을좋아했지성욕의대상으로그리워해본적은절대로없었다.그것만큼은자신있게장담할수있었다.그럴수록전화로들은젊은여자의말은괘씸하고치가떨렸다.젊어서서방질을했다는누명을섰어도이보다는덜분할것같았다.
연속극이끝났다.그리고가수의노래가들렸다.아이들이따라부르는소리가났다.부부가같이웃는소리가났다.다시연속극소리가났다.연속극이끝났다.텔레비전을끄고식구들이웃고떠드는소리가났다.아들이문병오긴틀린일이라고늙은여자는생각했다.아들의문병을단념한늙은여자는마침내아들에게악담을하기시작했다.
‘너도자식기르는놈이그러는게아냐,너도곧당할거다.암당하고말고.더도말고덜도말고내가너한테당한것만큼만너도네자식에게당해라.고려장이야기가옛말이아니야.’
늙은이를산채로내다버리고온아버지의지게를어린자식이훗날아버지를내다버리기위해챙겨두는것을보고,그아버지가마음을고쳐먹고부모에게더욱효도를극진히했었다는이야기는재미는없었지만기분나쁘고겁나는이야기였다.그런탓에늙은여자도지난날,자식보는데서건안보는데서건부모에게불효한바없었다.그것은자식이훗날본받게하고자함이었을게다.
그러나자식은지금그것을본받고있지않다.아마훗날그의자식역시그를본받지않으리라는걸알고있기때문일것이다.
어쩌면이제는아예그런것에의지할필요가없는새로운삶의모습이생겨났는지도모를일이다.그렇다면아들며느리의커다란불효는영영되갚아질길이없는것일까.늙은여자는아직도아들의불효에대한앙갚음을단념하지못했다.

어느틈에밖의웃고떠드는소리가멎고늙은여자의방문이소리없이열렸다.기다리던아들이아니라젊은여자였다.
그때가지늙은여자의손은명치속에서응어리를찾는일에열중하고있었기때문에마치자위를하다가들킨것처럼화들짝놀랐다.젊은여자역시자위의현장을목격한것처럼고개먼저돌리고야릇한미소를짓더니말없이나가버렸다.늙은여자는죄지은것없이가슴이울렁대면서낮에들은전화의목소리를생각했다.
‘성욕은인류영원의문제라고했겠다.거북한명치를쓸어줄타인의손을그리워하는것도성욕이라고했겠다.그렇담너희들도늙어죽는날까지성욕에서놓여나지못하겠구나.고려장의저주로부터는설혹놓여났다고하더라도성욕의저주로부터는못놓여나겠구나.’
늙은여자는웃으면서일어나앉아거울을본다.거울속의여자는울고있었다.엉엉울고있었다.아무리웃기려해도말을듣지않았다.그래도거울속의여자쯤은자기마음대로될수있으려니했는데그게아니었다.
늙은여자는과부가되고외아들을그리면서늙게혼자살게될까봐,그걸항상두려워하며살았었다.지금늙은여자는혼자살지않는다.
그러나늙은여자는지금정말불쌍한건혼자사는여자가아니라자기뜻대로아무것도할수없는여자임을깨닫는다.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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