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날의설렘
거기가어디라해도떠나는날의설렘은마찬가지입니다.
소리울에서삼천포,삼천포에서소리울.
일주일단위로오르내리기를거듭하지만
마냥떠나는순간은설레임입니다.
그러니온나라전체가문화유산으로널려있는스페인,
또하난의문명권아랍문화가800년이나머물다혼합된
동서양문화의교차점인모로코포르투칼등이베리아반도,
그문화충돌의현장을답사하는여행이니
설렘은매우컸습니다.
또한엠이로인연을맺은13년의세월을넘기며
사랑을쌓아온가족같은네부부들과5년을계획했던
여행이니얼마나설레이겠는지?
우리의삶이과연어디로흘러가는지,
여행사의실수로비행기티켓을탈때까지
아슬아슬한시간을넘겼고,
생활이발목을잡는사건들로
비행기를타는순간까지네부부모두허겁지겁서두릅니다.
좀더여유롭게,좀더천천히
차근차근살아도될일을우리는열심히산다는명목으로
모두들너무복잡하게살고있지나않은지…
그러나떠나고나면12일의행보는
느릿느릿좀더여유있게,
함께나누는시간이많이행복할것입니다.
또다른일행들,
우리를포함하여37명의동반자를만납니다.
그또한설렘의일부입니다.’
영종도에서
진주연가이드를만납니다.
그녀가나누어주는유인물은강하게보이는첫인상과는달리매우합리적으로보입니다.
어차피사람들이읽지않아서다시설명을해야했지만,
여행중의예절이나,스스로만들어가는여행이라는
여행의기쁨을짚어주는배려가돋보입니다.
간단한일이지만지도를만들어일정의아우트라인을
짐작하게하는일등,다른가이드들이신경쓰지않는일을
준비해주어안심이되었습니다.
많은인원의티켓을받는다고시간이좀걸렸습니다.
11시간쯤날아암스텔담에서다시바르셀로나로가기위해
긴시간을보냅니다.
여정:
바르셀로나(1)-항공편으로마드리드(1)-똘레도-프라도미술관,마드리드(1)-코르도바-그라나다(1)-말라가(1)-탕헤르-페리호로모로코의대문타리파-카사브랑카(1)-라바트-페스-타리파-페리호로탕헤르(1)-세비야-까보따로카땅끝마을-포르투칼접경마을아이아몬테대서양해변(1)-리스본(1)-파티마-신트라-리스본(1)-기내(1)
이번여정에서찾아볼유네스코유산
스페인유네스코유산40건중5건
1.코르도바역사지구(HistoricCentreofCordoba:문화,1984/1994)
ㅇ8C경부터번영을구가했던도시
ㅇ300여개의모스크와수많은궁전,공회당이현존
2.구엘공원및성곽(WorksofAntoniGaudí:1984(2005년확장),문화,(i)(ii)(iv))
ㅇ바르셀로나에있는안토니오가우디(1852∼1926)의작품
ㅇ건축스타일뿐아니라정원,조각,등장식미술분야의새스타일을개척
3.알함브라,알바이진,그라나다
(Alhambra,GeneralifeandAlbayzin,Granada:문화,1984/1994)
ㅇ알함브라요새는13C∼14C의에미르족의통치지역으로장엄한정원풍경이뛰어나며
ㅇ알바이진은무어건축의보고로전통적인조화가뛰어남
4.톨레도구시가지(HistoricCityofToledo:문화,1986)
ㅇ로마시대부터16C에이르기까지스페인토호국왕국의수도로긴역사를가지고있으며
ㅇ이에따라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주요종교적색채가깃든문명이혼재
5.세빌리아지역대성당,성채
(Cathedral,AlcazarandArchivodeIndiasinSevilla:문화,1987)
ㅇ대성당과성채는1248년∼16C까지무어인의영향을받은크리스챤안달루시아와알모하데스문명의흔적들을나타내주는유력한증거물
모로코의유네스코유산8건중1건
페즈의메디나와천연염색장(MedinaofFez:문화,1981)
포르투칼의유네스코유산13건중2건
1.제로니모수도원과리스본의벨렘탑
(MonasteryofHieronymitesandTowerofBelemonLisbon:문화,1983)
ㅇ제로니모수도원은리스본항입구에위치한1502년에건립된건물
ㅇ벨렘탑은바스코다가마의인도항로발견을기념하여세운탑
2.신트라문화경관(CulturalLandscapeofSintra:문화,1995)
ㅇ19C유럽낭만주의건축의중심무대
ㅇ페르디난드2세는폐허가된수도원을고딕,이집트풍,무어,르네상스요소를가미한새로운감각의성으로변모시켰으며토종및외래종수목을섞어심은공원을만들었음
ㅇ세라주변길을따라늘어선귀족풍의저택들은공원과정원의독특한결합을창조하여유럽조경발달에큰영향.
등,총8건이나되는유네스코문화유산을접하게됩니다.
참고로우리나라의유네스코문화유산은총7건입니다.
1.석굴암과불국사(SeokguramGrottoandBulguksaTemple:문화,1995)
2.종묘(JongmyoShrine:문화,1995)
3.해인사장경판전
(HaeinsaTempleJanggyeongPanjeon,theDepositoriesfortheTripitakaKoreanawoodblocks:문화,1995))
4.창덕궁(TheChangdeokgungPalaceComplex:문화,1997)
5.수원화성(SuwonHwaseongFortress:문화,1997)
6.경주역사유적지구(GyeongjuHistoricAreas:문화,2000)
7.고창·화순·강화고인돌유적
(Gochang,HwasunandGanghwaDolmenSites:문화,2000)
스페인
스페인하면우선투우의나라,프라맹고의나라,올리브의나라라는대명사를갖고있습니다.
알타미라동굴벽화에는3만년전부터인간이살았던곳이라고그림으로증거하고있습니다.
갈리시아,까스띠야,까딸루냐,안달루시아등,네지방으로나위어져있고남한보다4배정도넓은땅을가집니다.
800년동안아랍인의제배하에있었지만해상국가로한때"해가지지않는제국"이기도했던나라.
1898년미국과의전쟁에서지고1931년왕정이폐지되고
프랑코장군이40년전제정치를펼쳤던나라.
지금은"스페인왕국"입니다.
유럽서남부의이베리아반도에위치한나라.의원내각제가결합된입헌군주제를시행하고있고,유럽연합에는1986년에가입하였으며,2005년을기준으로세계에서는9번째,유럽연합에서는5번째규모의경제를갖는선진국입니다.
세계에서51번째의영토크기를가지고있으며면적은504,782km².본토는이베리아반도에위치하고있으며이외에지중해의발리아레스제도와북아프리카북서쪽의카나리아제도,두개의자치시인세우타,멜리야가있습니다.본토의1/3정도가산지이며평균고도해발660m정도로스위스다음가는고지로이루어졌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이베리아반도북동쪽과지중해안의우수한위치에자리잡고있으며크기나인구면에서스페인제2의대도시입니다.바르셀로나는스페인의자치구의까딸루냐의수도이기도
한데,까딸루냐어와스페인어두가지의공식언어가사용되고있습니다.
현대바르셀로나는19세기후반에공업화가시작되면서경제적성장을이루게되었고.예로부터
예술활동이번성하였으며피카소,미로,살바드로달리를비롯한현대예술이생겨난곳으로유명합니다.
단일도시이상인바르셀로나는다면적이고다양한도시의모습을하고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기후는전형적인지중해성기후입니다.평균기온은겨울이11도이며여름은24도입니다.12월과1월이가장추운달이며가을과봄이일반적으로우기에해당합니다.
그러나우리가갔을때는너무건조하여구엘공원이나모든시내의분수에서물이솟아오르지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를보려면천재적건축가가우디와그의후원자구엘을알아야합니다.
르네상스가이탈리아의메디치가의후원으로이루어졌다면,가우디의예술적인건축물은반직업의거부구엘씨에의해이루어졌다고해도과언이아닙니다.
가우디(1852-1926)
1852년6월25일에스파냐남부카탈루냐의레우스에서출생하였습니다.구리세공장의집안에서태어나17세때부터건축을공부하였습니다.바르셀로나의건축학교를졸업하였으며,학창시절에비라르와폰트스레등의조수로서설계활동에종사하였습니다.1878년학교졸업후부터는독자적으로일을시작,바르셀로나를중심으로많은독창적인건축을남겼습니다.
전형적인그의건축은모든면에서곡선이지배적이며,벽과천장이굴곡을이루고섬세한장식과색채가넘쳐야릇한분위기를풍기고있습니다.따라서19세기말부터20세기초엽에걸쳐유럽을풍미하였던아르누보(artnouveau)의에스파냐판(版)으로취급되는경우가많습니다.
그의작품은대체로1890년대를경계로하여2기로나눌수가있습니다.
전반기의작품은건축그자체의몸체는비교적중후하며극단적인변형은보이지않으나세부의장식에는많은변화를보이고있습니다.특히철을사용한곡선적인장식은피레네북쪽의아르누보의장식과대응관계에있습니다.
가우디의진가는어디까지나후반기작품에서찾아볼수있습니다.이시기에이르러서는이전의그의건축장식에서보였던미로(迷路)와같은구불구불한공간(空間)의이미지가전체의건축디자인으로확장되어,계획부터구조의형태및세부에이르기까지디자인을지배하고있습니다.
그의건축은아르누보의유행을초월하여근대에살았던인간의근원적인불안을건축으로표출한것이라고할수있습니다.
그는1926년6월초,평소때와같이사그라다파밀리아의공사현장을지휘하던중점심시간에기도를끝내고산책을나갔습니다.
호주머니에는땅콩몇알.해바라기씨앗,그리고신약성서한권을지닌채,그가누구인지알수있는건아무것도없었고공사로허름해진누더기옷을입고,전차에치였습니다.
시간에지나도오지않는그를찾는데는시간이걸렸습니다.
그를아는사람은아무도없어산타클루즈노숙자전용병원에실어다둔것을찾아낼수있었습니다.
73세의나이로그는그렇게죽어갔습니다.
구엘공원
아침일찍찾아갔으므로사람들이별로없었습니다.
구엘씨와가우디가이상적인미래도시를꿈꾸며설계한전원주택지단지였지만분양이되지않아건설도중자금난에부딪쳐공원으로조성되었다가지금은바르셀로나시소유로된세상에서가장특별한공원입니다.
공원전체가파도처럼춤추는듯한착각을줄정도로자유자재로선을이용했던가우디의천재성이드러납니다.
모자이크장식에서도그의기발한아이디어에는감탄할수밖에없습니다.인체의구조를감안해서만든세계에서제일긴벤치는뱀처럼구불거리며돌아가고있습니다.햇볕을가리게설계된3단분수의악마의입에앉아,아래를내려다봅니다.관리실이라고지어진지붕엔커피잔이거꾸로박혀있습니다.
공사를하면서나온흙과돌로는그리스신화에나오는여신을세웠습니다.신전의기둥마다옛신화가배어나옵니다.
사람들이만져서반질반질해진나무는아직도살아새잎을피우고있습니다.
100개의기둥이있는공간은기실은84개의기둥이있는데,
기둥이모두구부러져있고천장엔우주를표현한모자이크들이인상적입니다.
사그라다파밀리아(성가족성당)
유럽에서가장자유분망한모습을가진교회
그리스도의탄생을주제로한옥수수모양의탑8개가유명합니다.
1882년에프란시스코데비야루가착공한후1891년에가우디가계속작업했던dl건물은1세기가지난지금까지도공사가진행중입니다.
건축은계속되고있지만관광객이지불하는견학료가주요재원이기때문에앞으로도한세기가지나야지완공될예정이라는말이있을정도로그완성시기가언제가될지확실히모른다고합니다
다완성된교회의첨탑은18개라합니다.
현재완성된부분은이8개의탑과지하예배당이고지금도계속공사가진행되는소리로시끄럽고분주합니다.
하늘을향하여치솟은8개의탑은그전체곡선도볼만하지만그리스도의강림을표현해놓은생동감넘치는조각들이더욱눈길을끕니다.
탄생의문은동쪽의문인데1882년성당착공후1904년에
가우디의작품으로완성되었는데가장완성된부분입니다.
예수탄생장면과어린시절모습을상징주위에입각하여조각했고흰비둘기는유대민족을상징하기도했습니다.
이곳엔믿음자비희망을상징하는세현관이있습니다.
서쪽에는요셉슈비라크가완성했다고하는탄생의문과는전혀분위기가다른예수수난의문이있습니다.
조금음산한분위기가느껴지는논쟁의여지가있는작품으로
조각은모두모가나있고불길한분위기가물씬풍깁니다.
가우디의설계도면은대부분1,2차세계대전으로없어졌거나가우디의머리속에만있던것이어서완벽한설계도면이없기때문에아예슈비라크는다른컨셉으로퍼샤드를완성했다합니다.
남쪽의문은예수영광의문이지만아직완성이되지않았습니다.
지금공사가한창이고그공사가끝나면남쪽의선물상점들은다른데로이주해야한답니다.
그곳에서사람들은선물들을골랐습니다.
가우디는그성당의지하에묻혀있습니다.
해변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그들이올림픽해변이라는식당가에서해물빠에야를먹었습니다.
빠에야는우리나라사람의입맛에꼭맞는음식입니다.
넣은재료에따라해물,고기등으로이름이달라진답니다.
그러나쌀로만든음식이라우리나라붂음밥같이고소하고맛이있었습니다.
먼저나온빵이따뜻하고맛있다고많이먹은사람들은빠에야를다먹지못했습니다.
디자인이예쁜우리나라의국기를꽂아놓고먹었지요.
태극기는자랑스러운우리의국기라남극에서,여행때는갖고다니리라결심했었습니다.
점심을먹고해변을거닐었습니다.
지중해의바닷빛은짙은잉크빛입니다.
바닷가에서거의다벗다시피한여인네들이일광욕을즐기고있습니다.
우렁찬함성으로공놀이를즐기는사람들…
복적거리는해안은살아있는것같습니다.
햇살은밝고뜨겁게바다위을비추고있습니다.
그런데도마음한구석은찜찜합니다.
점심을포기하고빵한쪽우유한병으로때우고몬세랏수도원을다녀오고싶었습니다.
함께한세부부도불안해하는것같아걸리고,
현지가이드도다음에또한번오시지요라고만류했지만
인터넷으로찾아본수도원은그시간이면점심을포기하면다녀올수있는것이었습니다.
좀더자세한정보를가지고왔더라면…
언제다시바르셀로나로와서몬세랏수도원을보겠느냐는생각에너무많이아쉬웠습니다.
람블라거리
아랍말로’하천이흐르다’라는뜻을가진거리입니다.
거리의남쪽50m기둥위에콜롬부스의동상은1892년콜럼브스가신대륙을발견한기념으로세워진동상인데비둘기때문에컬럼버스머리는하얗게되어있습니다.
광장앞의항구에는콜롬부스가탔던배’산타마리아호’의실물크기모형이있습니다.
동상에서부터1Km북쪽으로올라가며거리의화가들을보고2-30개나되는꽃가게를지납니다.
4월23일은성조르디가나쁜용을쳐죽이고공주를구한날이라고남자는여자에게장미꽃을선물하고여자는남자에게책을선물하는날이랍니다.
세익스피어가죽은날도4월23일이라서책의날이기도하다는군요.
다음날이장미를선물하는날이라고꽃가게는바빴습니다.
거리는구불구불한문양으로요철이심해보이지만기실은착시현상으로반반한거리입니다.
이문양은조안미로의디자인이라는군요.
그의집은이거리의아비뇽골목길에있었습니다.
이번에는가보지못했지만..
또거리에는하루종일움직이지않고얼굴을분장하고서있는뻬에로들이많았습니다.
잔돈몇푼을주면그들과사진을찍을수있습니다.
결국은구걸인데그들의생업이그렇게따분하게서있는것이라니그것도이곳의풍물이라면풍물이겠지만
늘이광경은새롭게느껴지지않고따분하고딱하게여겨집니다.
애완동물을파는가게를지나면던킨도너스를파는가게왼쪽으로재래시장이펼쳐집니다.
그곳의색깔을보려면재래시장을보아야합니다.
하몬이라는돼지고기다리를걸어놓은곳,
즐비한과일가게..끝이보이지않는여러가게들이서있습니다.
체리10유로어치샀지만몇알되지않아한입씩나누어먹기도모자랐습니다.
다른이들은포도를샀다는데..포도를살걸후회했습니다.
M이란빨강색글짜가씌어진지하철역에서만나기로했습니다.
고딕지구
가장오래된지역인고딕지구는시의남동쪽에위치하고있었습니다.
유럽에서가장보존이잘된곳이라는군요.
높은담벼락을따라난좁은골목을거닐며로마의흥망성쇠를생각합니다.
땅속으로몯힌무덤들..그위에다시쌓아올린건물들이참으로묘한기분을들게합니다.
뭉개진오래된문화위에다시새로운문명이일어섭니다.
다른민족이가진정신적인문화의소산은없어져야하고
자기가가진의식없는문명만이다옳다고생각하는2분법적인사고는
늘충돌하며피를보는전쟁을일으켜왔습니다.
파괴와건설은대를이어이어져왔고,이고딕지역의지하에서도그현장을볼수있습니다.
조그만창구멍으로보이는지하의구조물들을보면서
이세상에남아있는진정한진리는과연무엇인가생각해보았습니다.
갑자기큰비명이들립니다.
한동반자의손가방지퍼를어떤남자가열고있는걸
그의아내가보고지른고함소리입니다.
관광지에서흔히있는일이고가이드가무수히주의를준일이지만직접당할때는놀라고가슴떨리는일입니다.
그남자는히죽히죽웃으며슬그머니골목으로사라집니다.
모두주의를해야겠다고다짐합니다.
한사람이라도여권이라도잃어버리는날에는모두가함께걱정스럽고문제가생기기때문입니다.
몬주익언덕
몬은여기말로산이란뜻이고주익은유대인의신이라는군요.
서울의남산처럼시민의푸근한휴식처입니다.
바르셀로나올림칙주경기장이있는곳인데.
몬쥬익의영웅황영조선수가마라톤우승의영광을안았던곳이기에우리에게유명한장소이기도합니다.
황영조기념공원은한국에서가져온돌로예쁘게꾸며져있었습니다.
그의훌륭한발로새겨져있었고경기도와자매결연을한도시라는흔적도돌에새겨져있었습니다.
이곳에는황영조를기념하는날도있다합니다.
자랑스러운한국의얼입니다.
이언덕에서내려다보면바르셀로나가한눈에내려다보이고바다가어우러져있어항구도시임을실감나게해주는곳으로바르셀로나를조망해보기에는일품인곳입니다.
카탈로냐미술관과미로미술관등세개의박물관이몬주익언덕에있습니다.
지난번에왔을때는현대미술의거장조안미로의미술관을잘보았습니다만이번은보지못했습니다.
이공원한켠에서마드리드에도착하면너무늦은시간이라고,이른저녁밥으로도시락을먹었습니다.
마드리드로와서상황문학동인오수애에게전화를했더니
걱정하며기다리고있었노라면서내일만날시간장소를약속했습니다.
셋째날마드리드-똘레도-마드리드
홍성현이란현지가이드,안면이있습니다.
6년전바르셀로나에서만난우리일행을찾지못해울었던
어린가이드는이제완숙한여인이되었습니다.
그때의기억으로부끄러워할까봐아는척하지않았습니다.
똘레도는마드리드남쪽70Km떨어진도시전체가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지정된우리나라경주같은중세도시입니다.
1560년필리페2세가수도를마드리드로옮기기전까지문화,종교,정치의중심지였고지금도스페인가톨릭대교구로
스페인종교의중심지의자리를지키고있습니다.
타호강에둘러싸인성벽의요새도시,중세의모습그대로남아있는화가엘그레꼬가사랑했던도시.
똘레도라는이름은B.C.2세기로마인들이이도시를건설했을때의이름인또레툼(TOLETUM)에유래합니다.
5세기후반부터이베리아반도에침입한서고트족이
579년에똘레도를수도로정해711년이슬람지배이후
1085년에재탈환했습니다.
알퐁소6세의융화정책으로많은이슬람교도들이
가톨릭으로개종해도시의재건에종사했는데
이들이간직하던예술의무데하르양식은
그리스도교정신과이슬람문화의
멋진융합을상징하고있습니다.
똘레도에는8세기부터가톨릭회교유태인이공존,
중세에는군사적인평화적인접촉,때로는문화적인협력까지교대로일어나문화의복합성을가장잘표현하고있는도시입니다.
12-13세기(1130-1248)가똘레도문화의절정으로그업적은세문화의지식인들사이의협조로번역학교가세워졌다는데있습니다.
이는활력넘치는지적인작업을의미하는데
12세기이후회교도학자들에의해아랍의저술이나
그리스의심오한철학과수학천문학등이
가톨릭인들에게전수되기시작한것입니다.
대부분은라틴어로번역되었고,많은유럽의학자들도참가하고있었습니다
카테드랄(Catedral)-주교좌대성당
스페인을대표하는가톨릭총본부인이성당은5개의문이있고범선5척이들어갈만한크기입니다.
이성당속에작은성당22개가있고,정문쪽에는예수님을업고강은건너는크리스토퍼성인의대형그림이있습니다.
성기실에는180Kg이나되는"알페의성체현시대"가있는데컬럼버스가가져온금과은으로만들어졌고1년에한번바깥으로행렬을한다고합니다.
이성당안에서사진을찍지못한다고했습니다.
후렛쉬를터뜨리지않으면훼손이없기에,다른박물관에서는일정요금을내고사진을후렛쉬를쓰지않고사진을찍게하는데이곳에선사진이아예허용되지않았습니다.
지난번의사진을쓰면되니안찍으면좋을것을,남편은눈치없이몰래카메라를계속찍다가관리인에게걸려성당밖으로쫓겨났습니다.
한두번도아니고의례히있는일이니나는그러려니했고,어떻게하든찾아오리라는생각을했지만가이드진주연이나홍성현은어쩔줄몰라했습니다.
유유히바깥쪽을신나게찍고다른한국팀이들어올때,
따라들어와일행과함께나갈때까지가이드의애를태운남편의프로근성을누가말리겠습니까?
산토토메성당
엘그레꼬의"오르가스백작의장례"그림이걸려있는성당.
단지무데하르양식의첨탑이하나있을뿐인작은성당인데이성당은늘엘그레꼬의그리한점을보기위해사람들로북적거립니다.
이그림의크기는4,8m3.6m이나되는대형그림인데
미켈란젤로의찬지창조,레오나르도다빈치의최후의만찬과함께세계3대성화에들어가는유명한그림입니다.
이그림은성당을재건한훌륭한자선가오르가스백작의장례식에성어우그스티누스와성스테파노가지상으로내려온기적을묘사한그림입니다.
그림은천상세계에는그리스도와성모마리아가오르가스백작의영혼을맞이합니다.
지상의그림속에는당시똘레도의유명인사들이묘사되어있는데자신의모습과자신의아들호르헤마누엘도있습니다.
아들의삐죽나온손수건에는그의생년눨일이적혀있습니다.
이그림이붙어있는성당은14세기건물로,그림이붙은그자리에한번도복원한적이없이그대로붙어있다는것입니다.
성당은미사시간이아니라고굳게닫혀있었습니다.
지난번에는아마도미사시간이라성당안으로들어갈수있었나봅니다.
똘레도의하늘
하얀영혼이싸이프러스나무에이끌려
하늘을날고있다.
푸른하늘아래
중세의첨탑들은치솟아오르고있다.
서글픈전설들이그탑속에갇혀있었다.
따호강의물줄기도
고즈넉이흐르고있다.
그강변으론고풍스런수력발전소가
자리를잡고
문명의전기를만들고있었다.
골목몰목
놀란듯눈을부릅뜬동키호테가
그의덜시네아를그리워하며
엘돈자들앞에서사랑을구걸한다.
난아직도열등의식에싸여있단다.
아직덜시네아가되기엔
네사랑이필요해
똘레도하늘의구름은
싸이프러스나무에휘감겨
여전히짓푸른하늘에머물고있었다.
<소리울묵상시>
**엘돈자:동키호테가사랑한,그러나그사랑을거부했던스스로자신을열등감의도가니로몰아간미천한여자
**덜시네아:동키호테의지속적인사랑을받고
덜시네아라는아름다운여인으로바뀐엘돈자와동일인물
마드리드프라도미술관
고야의특별전이열리고있었습니다.
에스파냐왕가의소장품을중심으로1819년페르난도7세때건립되어왕립프라도미술관이되었고,1868년혁명후에국유화되어프라도로이름이바끈곳.
건물은카를로스3세때비라누에바의설계로세워졌으며,처음에는자연과학박물관을만들예정이었으나뒤에미술관으로자리를굳혔습니다.
수집품은중세부터18세기에이르는에스파냐및유럽여러나라의회화에중점을두고,그중에서도그레코,벨라스케스,고야등3대거장에관해서는질·양면에서세계적으로유명합니다.또루벤스,반다이크를중심으로하는플랑드르회화,리베라,무리요,수르바란등에스파냐화가의작품수집도뛰어납니다.
그레코의《그리스도의세례》《부활》《성모자》《오순절》,벨라스케스의《바커스의승리》《브레다의개성(開城)》《시녀들》등의작품이유명합니다.
가장주목을끄는것은고야인데,초기로부터만년에이르는100점이넘는유화와수백점의소묘가소장되어있는데《옷을벗은마하》《옷을입은마하》를비롯하여《카를로스4세의가족》《1808년5월3일》《마녀의집회》등각시기의대표작들이갖추어져있어서이번에특별전을열었답니다.
영어판으로된작은책자다섯권을샀습니다.
예림이예서에게줄수첩도샀습니다.
여기오지않으면살수없는것들이니…
그전에왔을때이미술관의소장품슬라이드를모두샀었습니다.
지금은없다고합니다.
그때사두기를너무잘한것같습니다.
프라도미술관에서는엘그레꼬,벨라스케스,고야에대해모르면안본거나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대해알아보겠습니다.
엘그레꼬(1541-1614),
그는크레타섬,칼디아출생이다.본태생은그리스사람이며본명은도메니코스테오토코폴리스인데그리스인이라는뜻의그레꼬로통칭한다.
베네치아에서타치아노의지시를받고틴토레토와라파엘로미켈란젤로의작품에서영향을받았다.
정확한자연묘사를하였고,베네치아풍의색채법을사용하여황금조가아닌흑회색이눈에띈다.
그림주제는그시대에는종교화와초상화였지만,깊은명암과,색채,비정상적으로길죽한인체묘사는에스파냐신비주의를대표한다.
사후오랫동안그진가가망각되었으나19세기이후재평가되어세잔을비롯한많은화가들에게영향을주었다.
베라스케스
1599년6월6일세비야에서출생하였다.처음에레라에게사사하고,이어마니에리스트화가파체코에게사사하였다.정신적으로도이문화도시와스승파체코의영향을받았으며뒤에그의사위가되었다.초기의작풍은당시의에스파냐화가들과다름없이카라바조의영향을받은명암법으로경건한종교적주제를그렸으나민중의빈곤한일상생활에도관심이많았다.1622년수도마드리드로나가,이듬해펠리프4세의궁정화가가되어,평생왕의예우를받았으며나중에는궁정의요직까지맡았다.
초기의어두운색조와명암법에의한마지막걸작은《주정뱅이들─바커스의대관(戴冠)》(1629)이고,1628년의첫이탈리아여행에서받은베네치아파의영향으로,중기(中期)는밝고선명한색조와경묘한필치로바뀌었다.이시기에왕족·신하그리고궁정의어릿광대·난쟁이등을그린다수의초상화는,그를미술사상초상화가의대가로만들었다.이불행한사람들을왕족들과다름없는담담한필치로묘사한것은인간존재의중요성과본질적인비극성까지추구하였음을보여준다.
초상화의대표작으로는《왕녀마리아안나》《왕녀마르가리타》《교황인노켄티우스10세》(1650)등이있으며또큰구도의작품으로는《브레다성의항복》(1637)이유명하다.그후두번째이탈리아에체류(1649∼1651)하는동안장기간연찬을거듭하여기법상의혁신이완성되었다.만년의대작《궁녀들(라스메니나스)》과《직녀(織女)들》(1657)은평생의화업(畵業)을집약한것들이다.거기서는전통적인선에의한윤곽과조소적(彫塑的)인양감(量感)이라는기법이,투명한색채의터치로분해되어,공기의두께에의한원근법의표현으로대치되었다.
전동(顫動)하는빛의파도에씻기고,완전히대기를파악하는벨라스케스의공간과기법은시대를크게앞질러인상파의출현을예고한것으로평가되고있다.또한그의종교화·신화화는모두주제의제약에속박되지않는조형성탐구라는근대성을지녔으며,백색·흑색·회색의해조(諧調)된색채가비속화나이상화에치우치지않는독자적인리얼리스트로서,그시대의에스파냐화단에서는개성이출중한화가로서평가되었다.
고야
펜테토도스출생하여프랑스보르도에서죽었다.1766년경마드리드의F.바이에우(l734∼1795)문하에들어갔고1798년궁정수석화가가되었다.작풍은대체로두시기로나눌수있다.즉1771년부터1794년까지후기로코코의작풍과그이후의것이다.후기로코코시대에는프랑스18세기의‘아연화(雅宴畵)’영향으로왕조풍의화려함과환락의덧없음을다룬작품이많다.그후융그스와티에폴로로부터다채로운색채기법을배웠고벨라스케스,렘브란트,보시등의영향을받으면서차츰독자적인양식을형성하였다.
그는일생동안인물을그렸는데,초상화에서인물화로전환하였다.1800년《카를로스4세의가족TheFamilyofCharlesⅣ》에서는당시궁정사회의인습과무기력,허명(虛名)과퇴폐가뚜렷하게나타나있다.유명한《옷을입은마하Majavestida/TheClothedMaja》《옷을벗은마하Majadesnuda/TheNakedMaja》(1800∼1805)에서도에스파냐의전통적여성이잠자는비너스라는고전적주제에서벗어나강한리얼리티로표현되어있다.위험하고관능적인여성표현등고야의인간관은차차악마적분위기에싸인것처럼보인다.이러한경향에서일대전환한동기는청각을잃을정도의중병을앓은체험과나폴레옹군의에스파냐침입으로일어난민족의식이었다.
그결실이후일인상파의마네에게영향을준《1808년5월3일The3rdofMay1808:TheExecutionoftheDefendersofMadrid》(1809)과연작판화《전쟁의참화Losdesastresdelaguerra》(1810∼1814)이다.특히후자에는82장의흑백에칭에살육·광기·허무·폭행이철저히재현되었다.그리고이러한종류의판화카로,피라네지등에도열중하였다.그러나다른대표적연작판화인《로스카프리초스(변덕)Loscaprichos》(1796∼1798,80장)와《디스파라테스(부조리)》(l8l5∼1850,15장)를보면고야의작품특유의암담한느낌이에스파냐의독특한니힐리즘에깊이뿌리박고있다는것을알수있다.그는그러한니힐리즘시각화를시도하여자신의별장인‘귀머거리의집(QuintadelSordo)’의벽면을수수께끼같은《검은그림들Pinturasnegras》(1820~1823)등의작품으로장식하였다.이것이일반적으로고야만년의‘검은그림’으로불리는계열이다.
장르는정물·종교·풍속·풍경등다양하며환상성이짙다.《자화상》《십자가의그리스도》2개의‘마하’를비롯한고야의대부분의대표작(유화114점,데생470점)은마드리드의프라도미술관에소장되어있다.그의유해는그가그린《산안토니오데파투아의기적》(l798)으로유명한마드리드의산안토니오데라플로리다에안치되어있다.
마드리드왕궁(스페인어:PalacioRealdeMadrid)
스페인의왕실공식관저입니다.
후안카를로스왕과가족은실질적으로이곳에머물지는않는답니다.
국가적상황에만아직도사용되는살아있는왕궁.
뿐만아니라서부유럽을통틀어서는2,800여개이상의방과
내부장식은벨라스케스를비롯해티에폴로,고야등의최고화가들이
스페인왕가가수집해온역사적인작품들이궁전에전시되어있습니다.
13세기이전의무기를비롯하여포르셀린,가구등도소장품들이방마다가득채워져있었는데
펠리페왕자와레티시아오르티스왕세자비결혼식이
궁전밖공원에는시민들이산책을즐기고있습니다.
중국인들이거리에발바닥그림을내놓고발맛사지를한다고호객을하고있습니다.
전에왔을때보다새로운풍경입니다.
사진을찍었더니시끄럽게대들며야단을칩니다.
그냥도망을와버렸습니다.
왕궁뒤에는가죽제품을파는집이있습니다.
간판도안붙어있는데한국관광객들이줄지어들어가고있습니다.
여행사의적자를메우는일은,가이드에게돈을적게주는일이고,
게다가어디로보나어른이므로이런사실을다알면서
이리저리뒤적이다내수준으론좀비쌌지만
미리며느리에게신발싸이즈를물어오기다행이라여기면서…
예서것까지는너무부담이되어언니것을받아신으라할예정이고
너무오랜시간을기다려야해서밖에서
비가간간이뿌렸습니다.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에있는동키호테상앞에서사진을찍는데
드리워진연못에동동뜨는연꽃.
연못건너편에서설명을듣습니다.
메리지엔트주말에서무수히거론되어온열등의식의화신엘돈자는
세르반테스의소설돈키호테를뮤지칼로만든’라만차의사나이’는
마드리드의밤
마드리드에왔는데마요르광장의밤을즐기지못하면마드리드안온거나마찬가지입니다.
제생각엔그렇습니다.
"한강"한국식당에서동인오수애부부를만나기로했습니다.
우리호텔은시내에서한시간가량떨어진곳에있어서
밥먹고우리일행4부부만남기로했습니다.
진주연가이드는그래도흔쾌히승락을해주어마음이편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모든사람들이다마요르광장에서차라도한잔,아니면맥주라도한캔씩마시고갔으면권하고싶었지만,
진주연의책임문제,정해진시간만큼만일하려는운전사의인색한마음이계속걸렸습니다.
그래서머드리드에와서마드리드의밤을못보고가는다른동반자들이못내안타깝습니다.
여행이란즐기는만큼,자기의것이되는것을…
마요르광장
8시에가게를닫는다는데오수애는남편에게가게를맡기고미리와주었습니다.
이광장은펠리페3세가지은것으로중앙광장에그의검은동상이있습니다.
1620년에스페인의다섯성인을기리는행사를이곳에서치르면서세상에공개되었습니다.
이곳은죄인처형,마녀사냥,투우등마드리드의주요행사들이열렸던곳입니다.
사각형의광장을둘러싼주변의건물들은모두붉은색톤으로외벽이되어있어서
잠옷을입고이층에서아래광장을내려다보고있는노인부부가이채롭습니다.
많은사람들이이곳에서행위예술을하기도하여춤추는사진을찍느라고남편은자리에앉을줄을모릅니다.
마드리드에서가장뛰어난광장인그자유분망한곳에서우리는커피를마시며사는이야기를했습니다.
비가떨어져서대형파라솔아래로옮겨들어가는데
게다가톨레도에서무엇에쓰는지용도를몰라하던둥근금속은
그런도구가필요한유럽의관광지란말입니다.
수애가내게선물로하나주었습니다.
수애의남편사무엘씨가도착하여우리는동굴카페로자리를옮겼습니다.
한국식당에서김치찌개랑맛있는음식을잔뜩먹었지만
이곳의음식맛을보아야한다면서이것저것시켰습니다.
감자빈대떡인도르띠아빠따따.
도르띠아는빈대떡인데재료에따라빠따따,…다르답니다.
하몽이란유명한돼지말린것,그리고상그리아라는포도주칵텔과포도주를시켰습니다.
요셉마리아가아들결혼식에와주었다고그곳에서한턱을쏜다고하여고마웠습니다.
옛날에한국민요아리랑이랑한국가요를켜주던악단들은
이제너무늙어서일을하지않고그대를이은악단은없어서
우리는오솔레미오,베싸메무쵸,등아는노래몇가지를시키고함께흔들며
사무엘은고맙게도호텔까지데려다주었는데차가모잘라택시한대를불렀더니
수애보고우리가어차피가는거니택시로가겠다고데려다주지말라고했는데
수애가네비게이션이필요없으니앞차를따라가자고하여
바가지를모면했습니다.
우리끼리다녔으면영락없는바가지감이었지요.
그러니사람들은용기를내어마요르광장즐기기를포기했는지도모릅니다.
시외에있었지만쾌적한호텔에서마드리드의마지막밤을보냈습니다.
넷째날,코르도바-그라나다-6시간가이드안드레아
아침일찍마드리드에서코르도바로떠납니다.
안드레아라는바르셀로나에산다는가이드가이제부터끝까지안내를할예정이랍니다.
라만차
8시30분에마드리드를출발하여장장6시간을달려야코르도바에도착합니다.
서양양귀비꽃이붉게흔들리는들판..
올리브나무가즐비하게서있는곳을휙휙지나갑니다.
중간에까스띨리아라만차란작은마을에들립니다.
동키호테의배경마을황량한라만차에서차를마시면서
작은교회안도들여다보고가게안에서기념접시도하나사고
우리나라장독간같은큰독의사진도찍고
밝고평화로운분위기의마을에잠깐쉽니다.
이동트럭이무엇인가외치며서서이달리고있습니다.
"참외요참외,싱싱한오이가있어요."
그곳에도그런이동시장이있었습니다.
가이드안드레아는디브이디를마련해왔습니다.
차안에서엘시드란영화를보여준다는것입니다.
라만차를지나며……
눈들어하늘보니스페인땅이었다
크고작은소망들에
사유(思惟)를덧입히려
허한맘부끄러운잠
깨워보는발자욱
혼란도질서로서는
정열의이땅에서
라만차의동키호테*
펄럭이며가는검객
엘돈자*벗어던지고
덜시네아*되고싶다.
***엘돈자와덜시네아는세르반테스의소설동키호테를희곡화한’라만차의사나이’에나오는여자주인공인데동일인물입니다.
창녀인엘돈자는동키호테의사랑을받을만한가치가없다고자신을비하하며절망하지만
동키호테의끊임없는격려와사랑으로아름다운덜시네아로변신합니다.
여기에서엘돈자는열등의식에빠진인간을대변하고
덜시네아는자신의가치를인정한정상인의대명사입니다.
마드리드에서안달루시아방면으로남하하면
곧세르반테스의명작’돈키호테’의무대가되었던라만차지방에들어갑니다.
이곳은기사도정신에따르는주인공이샨쵸를데리고
대활약을한곳.
라만차는아랍어로’건조한땅’이라는의미.
실제로물도부족하고비도별로내리지않는곳이라는데
가도가도아무것도없는이황량한곳에도
관광지를꾸며사람이쉬어가게만들고
모험과낭만을함께느끼게해주는,
정말400년전의세르반테스시대를상상하게만드니
이나라가대단하기는합니다.
비쩍마른말’로시난테’의높은말울음소리가
울려퍼질것같은라만차마을에서조금쉬다가갑니다.
세르반테스는위대했다.
소설하나로한국에서온나그네가
이작은마을에서쉬고간다
돈키호테의로시난데는너무가련하다
허황된주인을따라기사의말이되어야한다.
세상에그런로시난테가얼마나많으랴"
대망의헛꿈을가진정치인의로시난테들
하잘것없는꼴을가지고도
거들먹거리는주인을따라야하는
가련한로시난테
용감한산쵸가라만차의하얀벽에서
돈키호테를따르고있다
<소리울묵상시>
코르도바(Curdoba)
꼬르도바에도착하여중국식당에서점심을먹었습니다.
답답한공간에서일찍나와거리에앉아서
사람구경을하며기다렸습니다.
꼬르도바의거리
안달루시아의뜨거운태양이내리꽂힌다
거리를지나는차들의행렬리끝없이이어지는
어디나사람사는모습이꼭같은이국의거리에앉아
나그네로사는건구경꾼으로사는것이다
저만치떨어져상을보면세상은재미있는것만,
아름다운것만보인다
오트바이를탄여자
수다를떨며거리를걷는여자들
쇼핑백을든사람들
커다란아이스크림을손에들고가는사람
모두가다그냥그렇게보고넘어갈풍경들이다
왜그런가따질필요도없고
재미없다시비할것도없는
남의나라풍경은모두다르기만한건아니고
조금신기함을더할뿐인데
거리에나붙은박물관전시회깃발…
아마도오래된뼛조각몇개나왔나보다
또돈벌게생긴
에스파니아의관광자원
<소리울묵상시>
메스키타(모스크)
과달키비르강(江)중류,안달루시아지방의중앙에위치합니다.
8세기에세워진이슬람교대사원이상징하는바와같이중세에는이슬람의지배를받았기때문에오늘날에도이슬람교색채가진하게남아있는곳입니다.
북쪽의시에라모레나,남쪽의시에라네바다두산맥사이를차지하는안달루시아저지는개발의역사도오래되고,이슬람교도가전한관개·농경기술에도힘입어농업지대로서알려졌으며,농산물집산지입니다.전통산업으로이슬람시대이래의피혁제품과각종금속가공이있고그밖에주위의산지에납[鉛]등의광산도있어서공업도활발합니다.
페니키아인(人)·카르타고인의식민지였으나BC152년부터이베리아반도로마화의근거지가되었으며,BC45년카이사르군(軍)에의한폼페이우스파(派)의대학살이있었습니다.아우구스투스시대에반도남부바에티카의수도로서번영하여,고대로마의스토아학파철학자L.A.세네카등을배출하였습니다.AD6세기에서(西)고트에게점령당하여쇠퇴하고,711년이슬람교도의침입으로파괴되었으나756년아브드알라흐만1세가후(後)우마이야왕조의수도로재건하였습니다.
10세기의아브르알라흐만3세시대에세계최대의도시로서번영하였으나,그후11세기부터쇠퇴하기시작하여1236년카스티야의페르난도3세에게점령당하였습니다.그뒤에도경제적으로는중요한곳이었으나1808년프랑스군에의해파괴되어지방도시로전락하였는데.최전성기에는주택20만호,도서관장서40만권,이슬람사원600여곳에이르렀으며,학문의자유가있어서고대그리스철학·지리학등의연구는뒤에유럽의스콜라철학이나르네상스의전제(前提)가되었습니다.
세계유산목록에등록되어많은사람들이찾는곳입니다.
매스키타담장가에서
알라가숨쉬고알라가거하던공간
알라의흔적을보러사람들이모였다
800년영광이대들보로살아가는곳
알라베스크문양이뜻기고덧입히고
붉고흰아치가살아
미로처럼아스라한길을만든다
어차피누군가가걸어가는길
피라밑의끝점은영원히하나
진리의끝점도그하나에닿을텐데
알라,하느님,하나님,부처님…
다른이름으로불러대는절대신을위하여
부시고,헐고,피흘리고,땅에묻고…
기둥마다이념의푯대가섰던그곳
코르도바의매스키타
<소리울묵상시>
유태인지역
가이드안드레아는큰실수를하였습니다.
점심을먹고바로메스키타로간다는이야기를하지않아
버스에모자,양산,카메라를다두고내린사람들은
사진을찍지못했고뜨거운햇볕은그대로받아야했습니다.
신도대충신고내려발에물집이잡히기도했습니다.
코르도바-매스키타는이름그대로대단했고
숲처럼우거진기둥들은장엄하기까지했습니다.
성당으로쓰던건물은수리를하느라고얼기설기..
더잘보존하려는열망은더나쁘게만들고있는것은
설마아닐테지요.
유태인골목그슬픈전설이있는곳의제랴눔은여전히건물의벽을화려하게장식합니다.
유태인의거리라하지만지금은유태인이없는데도말입니다.
그대신좁은골목을누비는관광객들과그좁은골목에서작업의시기를늦추지않는집시들의손놀림이요란합니다.
내가방에손이하나밀고들어옵니다.
"얘,이게뭐냐?"
큰소리를냅다지르니슬그머니손을빼고
옆에있는작은가게로들어갑니다.
다른집시여자일행한명도따라들어갑니다.
"저여자조심해요."
손가락질을하며큰소리로말하니
사람들이잘못건드렸다고하하웃습니다.
한대발길질이라도하여보내지그랬냐고농을겁니다.
이런관광지에서그게그들의일이라는데
무슨할말이있겠습니까?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하나봅니다.
이런선진국에서도말입니다.
하얀집들이좁은골목양쪽벽에는빨간제랴늄화분이집집마다놓여있습니다.
집주인의근면성여부에따라꽃은
아름다움의정도가다릅니다.
전형적인스페인풍의이유태인거리는사채업,여관업을한거부들이살던곳이라하는데붉은제라늄을걸어놓는데는슬픈전설이있었습니다.
헤라라는유태인처녀가
스페인귀족사나이를사랑했습니다
신분상이루어질수없는사랑을한그들은
귀족부모의강력한반대에부딪치게되었습니다
헤라는유서를쓰고드디어죽음의길을선택했습니다.
헤라의부모는헤라의목을베어
귀족의집창가에걸어두었습니다.
탐스럽게피어난빨간꽃제라늄.
섬뜩함이느껴지는이야기를듣지않았다면
유럽의창가에놓인아름다운꽃들이
보통의아름다움으로밖에보이지않았을것입니다.
포트르광장은수리중이라고이렇게먼길을달려온
코르도바를사진도못찍게하고그냥떠납니다.
유네스코문화유산이라는표지판이무색합니다.
옛날에보았던물레방아도보고다시버스를타고두어시간을더달려그라나다로떠납니다.
알암브라궁전을볼생각에마음이벌써설렙니다.
한번보았는데도말입니다.
올리브나무가가도가도끝이없습니다.
스페인은과연올리브의나라입니다.
그라다다에도착하여
밤에플라맹고를보러갑니다.
플라맹고에대하여말해야하나말아야하나망설입니다.
지난번기행문을읽어주면더실감이날텐데하면서기회만봅니다.
현지가이드의자존심을거드려좋을것이없다는생각에서참습니다.
알권리를박탈당한관광객들은참으로많은손해를보고있다는생각으로70유로씩이나주고옵션으로보아야할플라맹고에대한설명을언제나해주려나기다리고있다가결국돈을내고밤에알바이신지구의언덕까지갈동안한마디의설명없이플라맹고를보게되었습니다.
긴시간버스를타고온피로때문에꾸벅꾸벅조는사람들까지…
어찌이신들린장면을보고졸음이올수가있단말입니까.
어찌이안타까운심장의울음을보고잠이온단말입니까?
안타까운심정으로내일은참지않고말해주어야겠다고결심합니다.
건너다보이는알함브라궁전은붉은빛을띠고고요하기만합니다.
밤에알함브라궁저을보아야한다고난리를쳤건만이렇게플라맹고를보러오면그렇게애를태우지않아도될것을..
사람들은버스에서애를태우며조르던내가이상한듯별거아니라는표정입니다.
나는먼젓번에보았는데도이리도흥분이되는것을요.
알하브라에서어떤일이일어나고있었을지,
이렇게고즈넉한밤에그은은하고요염한빛을띠는궁전에서.
헤네랄리페궁전뜰을거니는차도르자락이끌리는소리가사르륵사르륵들리는듯합니다.
플라맹고는손에땀을쥐게했습니다.
플라맹고는집시들의애환과설움의감정을담고있으면서
그화려함과개성을살린스페인음악무용을대표하는
한장르로서
서양음악의근대이론과는다른독특한방식의
음계,율동,화성,또는발성이나음성으로표현하여
그풍부한개성으로14세기부터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있습니다.
어원은첫째는까를로스5세당시궁신들을빗대어
스페인어로플랑드르인을뜻하는말로
거칠고투박하며세련되지못한행동의대명사.
둘째는아랍어로’도망다니는농부’라는뜻의
‘felagmengo’에서유래되었다는설.
셌재는이음악의노래,춤이강렬하기에
독일어로’불길이타다’란뜻의flammen’에서온말이라는설,등으로가지각색입니다.
플라맹고에기카가등장하게된건
"노래가있는카페"-카페칸단테-시대부터라합니다.
가장전통적이라는신들린플라맹고공연을보고
가슴한켠으로그들이아직도남은한같은것을안아봅니다.
신들린듯한그들의동작.
진짜집시들이하는플라맹고는예술이지만
요즈음은돈벌이를위해집시출신이아닌사람이배우기도한답니다.
아무래도그들의동작은어색하고깊이가없습니다.
기술만익힌셈이지요.
플라맹고공연을보고
집시들의거주지동굴에서
밤중에플라맹고를본다.
생존을위해구걸도도둑질도했지만
잡혀가고유랑하고…
잡혀간동료가올때까지
벌판에모여
누군가가슴속가락을뽑아올린다.
애조띤기타가울고
땅을치고통곡해도못다할한이
발바닥으로절규한다.
또가닥또가닥따가딱따가닥딱딱
하늘향한기원의몸짓,
별이가득,하늘가득
"우리에게평화를주소서
친구를돌려주소서"
몸이흔들리고팔이휘돌고다리가돌고돌며
정열의손바닥이짜자짝짝짝.
사람의한세상시름에돈다.
한바탕춤사위끝에드디어도달하게되는
카타르시스.
음악이잦아진다.
땀이흐른다.
<소리울묵상시>
다섯째날
예약을하지않으면구경할수없는곳
일찍예약이되어부지런히갔습니다.
알함브라궁전
화려한종유석장식과아름다운정원
‘중세이슬람문화의결정체’,’이슬람건축의최고걸작’등으로찬사를받고있는알람브라궁전은그러한찬사가어색하지않을정도로화려함을자랑합니다.
하지만다른유럽의궁전들처럼거대함,보석장식,그림장식등으로화려함을뽐내는것과는다른모습입니다.
우상숭배를금지한이슬람교리에따라내부장식을식물과기하학적인디자인으로만구성하였기때문에소박하지만환상적인모습으로관광객들을압도합니다.
‘아벤세라헤스의방’,’왕의방’,’두자매의방’에서볼수있는모사라베라고부르는종유석장식과왕의공식접견실인’대사의방’의아라베스크무늬에서이러한모습을볼수있습니다.
천정꼭대기에남아있는스테인드그라스의화려한빛이너무나아름답습니다.
또한물이귀한땅(아프리카,중동)에서살아온이슬람교도들의오아시스에대한열망은
곳곳에연못과분수를만들어놓았습니다.
왕의여름별궁인헤네랄리페에서는아치형으로물을뿜는분수와아담하지만아름다운정원을볼수있습니다.
알람브라궁전에서가장뛰어난중정(中庭)으로손꼽히는왕궁의아라야네스의안뜰은정확한대칭구조를이루는건물중앙에사각형의연못이있습니다.
나스르왕조의마지막왕인보압딜(Boabdil)이
두왕(이사벨1세와페르난도5세)에게도시를넘겨주는조약을맺은후아프리카로떠나면서,
알람브라궁전을바라보며눈물을흘렸다는곳은’한탄의언덕’이라고부르고있습니다.
영토를정복당한슬픔이우선이겠지만낙원같은알람브라궁전을놓고떠나는마음이오죽했을까요?
그가처음배운말은
"절대로왕권을포기해선안된다"였다는데….
보아도보아도끝이없는이아름다운궁궐에서고등학교영어교과서에나온"립반윙클"을썼던미국의유명한작가인워싱턴어빙(WashingtonIrving)이오래오래살겠다고결심하였다는사실이조금도이상하지않습니다.
그가집필을했다는소박한방에그의이름이걸린액자가남아있었습니다.
그라나다(Granada)에서그는훌륭한작품인<알람브라의이야기들>을썼습니다.
"연지빛육필서의저자보압딜이말한것처럼’역사’는긴릴레이경주에지나지않는지도모른다.우리는어디서왔는지,그리고현재어디로가고있는지는알수있지만것이최후에어디에이를것인지,그리고그때가언제일것인지는결코알수없다."
까를로스5세의원형극장에서부른아리랑
사자의연못에서뜯어온사자는이곳극장의박물관같은
구석에놓여있습니다.
하늘은둥글고햇살은밝습니다.’
이제는힘을쓰지못하는사자가
구경거리가되어주저앉아있습니다.
이사자는꽤충격이었습니다.
지난번에왔을때
사자의뜰에서분명사자가받치고있는
작은연못을보았었는데
전혀다른모습인게이해가되지않았거든요.
수리를위해뜯어갔다는데…
로마의원형극장처럼울림이있는장치의중간에서서
아리랑을불렀습니다.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넘어간다
나를버리고가시는님은
십리도못가서발병난다"
알암브라궁기마병들의쉼터
망루에서바라본씨에라네바다의눈
씨에라네바다의만년설을곁에두고
망루에앉아
우리는늘이외의것에놀라워한다
반팔티셔쓰를입어야하는더운날씨에
하얀눈이웬말이란말인가?
망루에서툭터진아래로아름다운풍광이담긴다
아마도적이올때울렸을것같은
종하나매달려
뎅그렁뎅그렁옛날의울림을떠올리게한다
오늘
점점사위어가는위식을밑바닥을긁어
다시일깨우는종소리하나띄우고싶다
뎅그렁!뎅그렁!
<소리울묵상시>
헤넬라리페(Generalife)정원
오전햇살이아름답다
주변에둘러성싸이프러스
우리의영혼을지키고있다.
분수앞에고인수로에내려앉은그림자
분주함속의적막을담고있다.
나그네들의무수한발자욱에
반짝이는길바닥의자갈에는
숱한이야기가담겨있구나
정원을빠져나오자쏟아지는분수의물줄기
아,생명의오아시스처럼
내밀한영혼을적실시원한물줄기
<소리울묵상시>
부지런히점심을먹었습니다.
이곳에서와인을샀습니다.
마드리드에서,따로놀았던것,
똘레도에서쫓겨났던일,
그리고이여행단들이조금더가까워지기위한
윤활제가필요항것같아서
우리일행여덟명이일행모두에게
한잔씩나누게된겁니다.
그러나일정에쫓겨분위기를즐기지도못해서
시간을잘못책해서술을산게아닌가후회했습니다.
돈을버는건기술이고돈을쓰는건예술인데…
말라가를향하여
꼬불꼬불산길을넘고넘으며
올리브밭을지나고,포도밭을지나고,
올망졸망아름다운집들의지붕을지나고
그리고드디어와아-나타나는
햇빛쏟아지는말라가해변
긴버스를타는시간도희망이었던길
말라가가는길
항구도시이며지중해에속한말라가만(灣)에면하는도시입니다.
페니키아·그리스이래의오랜도시이며,당시의성채는로마의수복(修復)과이슬람의지배를거쳐남아있답니다.
1487년그리스도교도가탈환함으로써끝났을때
에스파냐의‘가톨릭의두왕’(카스티야의이사벨과아라곤의페르난도2세)의영지가되었던곳입니다.
화가피카소의출생하여열살까지살았던곳으로유명합니다.
모로코
정식명칭은모로코왕국(KingdomofMorocco)입니다.
수도는라바트이며,공용어로는아랍어를사용합니다.지브롤터해협을사이에두고유럽의이베리아반도와접하고,북쪽으로는지중해,북서쪽으로는대서양에면합니다.동쪽과남동쪽으로알제리와접경하며,남서단은서(西)사하라와국경을접합니다.
유럽.아프리카.중동문화가교차되는곳.영화"Casablanca"로우리에게잘알려져있는모로코는아랍의지리학에서"석양의섬(JziratelMaghreb)"이라고부르는북서아프리카의최서단에위치하고있습니다.북쪽으로는지중해를안고서지브랄탈해협을경계로유럽대륙과14㎞떨어진지정학적으로중요한위치에있습니다.
모로코는이슬람이국교인입헌군주국으로서이슬람국가중가장개방적이고서구적인국가입니다.면적은71만㎢(서부사하라지역25만㎢포함)로한반도의3.5배에달하며3,000만의인구를가진아프리카대륙에서는가장정치.경제적으로안정되어있는잠재력이큰나라의하나입니다.
모로코는이슬람국가이면서도중동지역과는다르며,아프리카대륙에위치하면서도여타아프리카국가와다르게유럽적문화의전통을지니고있고,또한아프리카대륙에서보기드물게아시아적인문화를접할수있는국가로서"관용의문화(CultureofTolerance)"의전통을지닌나라입니다.
지중해연안에는에스파냐의속령인세우타와멜리야가있습니다.
행정구역은15개의지역으로나뉘어지는데,모로코는이15개지역외에서사하라내부에완전히포함되는OuedEddahab-Lagouira지역도영토에포함된다고주장하고있습니다.
우리는수도라바트와제일의도시카사브랑카,그리고유네스코문화유산인천연염색장과세계최대의미로가있는도시페스를답사합니다.
지브롤터해협을건너탕헤르를통해들어갑니다.
라바트
정식명칭은라바트엘파티프(Rabatel-Fatif)이다.대서양에면한카사블랑카다음가는대도시이다.카사블랑카의북동쪽,대서양연안의부레그레그강(江)하구좌안에있으며,북아프리카에서인구10만명이상의도시중에서는가장아름다운도시로알려져있다.고대로마의식민도시로서건설된도시였으나,현재의시가는10∼11세기에이슬람교도인베르베르인이이단자를수용하기위하여건설한것이기원이다.성벽에의해성안과성밖으로나누어지는데,성내에는마디나(이슬람시장거리)와밀라(유대인거리)가있고,12세기이래의카스바데우다이아문(門)과하산사원의첨탑등이남아있다.신시가에는왕궁·정부청사\·외국공관·유럽인거리·라바트대학등유럽풍과아랍풍의건조물이조화를이루는아름답고조용한도시이다.
부레그레그강의대안에있는살레는카르타고,로마시대의유적이많은고도(古都)로관광지가되고있으며,모로코독립운동때에는그중심지였다.17세기에는해적의근거지가된적도있었으나,1912년에프랑스가모로코보호령정청을둔후에는정치의중심이되었다.
우다이아정원
라바트에는정원이나공원이많아’정원도시’라는별명도붙어있는데,그중에서훌륭한것이카스바우다이아에있는이정원이다.분수가있는안달루시아풍의정원으로,남국의꽃들이아름답다.
정원안에는민속악기들을수집해서전시한악기박물관도있고,베르베르인의결혼의상이나카펫,도기,가구등민속공예품을전시한우다이아박물관도있다.
하산탑
알모하드왕조의제3대야콥알만수르가12세기말경장대한모스크의건설을시도했으나,얼마후그가죽으면서공사는중단되었다.이탑은미완성인채로남겨진환상의모스크첨탑이다.
한변이16m인정사각형으로높이44m까지올라가다중단되었다.탑의남쪽에는300개이상의돌기둥이남아있다.완성되었다면아마아프리카최대의모스크가되었을것이다.스페인무어양식의대표적건축물의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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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5세묘
국왕하산2세의부친인모하메드5세국왕의묘.1912년이래술탄벤유세프는프랑스의식민통치에항거하여독립운동의선두에서싸우고,1956년3월독립을성취하자,왕위에올라모하메드5세가되었다.
그후근대국가건설에힘쓰다가1961년에죽었는데,이묘는1971년에준공되었다.묘속에석관이안치되어있으며,실내장식이매우훌륭하다.
페스(Fes)
◑라바트에서동쪽으로약200km,인구93만,모로코제3의도시이다.모로코최초의왕조를세운이드리스1세가A.D.789년Fes강의동쪽에도시를건설하였고,그뒤를이은이드리스2세는A.D.809년Fes강의서쪽에도시를건설한후Fes를모로코의수도로삼았다.왕조의변천에따라도읍이다른곳으로바뀌어도페스는발전을계속하여메린왕조시대에가장번창했다.그후로도모로코의종교.문화.예술을선도하고많은인물을배출하여"지적인왕도"로서알려져있다.세계최대의미로라고알려져있는이곳의메디나에서는중세의세계가지금도활기를잃지않고있다.메디나관광은안내원이필수적임.
왕궁(PalaisRoyal)
@신시가에서물레이유세프거리를스마린문(BabSmarine)쪽으로걸어가면녹색지붕의왕궁이보인다.금빛의문이햇살을받아번쩍이는등호화롭고장대하다.내부관람은불가능하다.
포르투칼
파두:
영어의fate(운명,숙명)를의미하는포르투갈어로
파두는리스본민중의삶을노래한민요로서
파두의가수들(여성이많다)은보통’파두의집(casadofado)’으로불리는
대표적인파두가수로는’흑돛단배(BarcoNegro)’와’갈매기'(Gaivota)’등대표곡으로우리나라에도유명한아말리아로드리게스(AmaliaRodrigues,1921-1999)가있으며,현존하는대표적남자가수로는까르무(CarlosdoCarmo)와까마네(Camane),여자가수로는미지아(Misia),마리자(Mariza),브랑꾸(CristinaBranco),게레이루(CatiaGuerreiro)등이있음. 포르투칼 언제들어도슬프고애잔한포르투칼의파두(fado)는포르투칼민중음악을대표합니다. BC700년경이베리아반도에정착한켈트족을시작으로8세기에무어인들이장기간점령하면서문화,건축,농업기술이도입되었으나무어인에대한저항은12세기에그들을몰아낼때까지계속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15세기에주앙1세의아들엔리케항해왕자의영도아래발견과정복의시대로접어들었습니다.그러나16세기말에스페인에의해몰락의길로들어섰습니다.1640년다시독립을쟁취했으나이미쇠퇴일로에접어들고있었습니다. 그이후많은시련을겪었으나1986년EU가입과1992년유럽통화제도의정식회원국으로가입하는등국제적지위가크게향상되었습니다. 제로니모수도원에그의유해가있는, 그가죽은1580년6월10일을포르투갈의날로기념하고있는포르투갈국민시인 까몽이스(Camões,1524~1580)는포르투갈이자랑하는민족적서사시‘루지아다스’의작자입니다. 까몽이스는1547년에북아프리카의세우타원정대에군인으로참전했고, 이를시점(時點)으로하여그의인생은커다란변화를겪습니다. 1547년,크리스트성체절에길거리에서사소한일로궁정의한관리와언쟁을벌여 9개월동안의감옥생활을치릅니다.그후,사면을받고국왕에게봉사하기위해 17년의기나긴세월을해외에서보냈습니다. 1566년마카오에서일하다가인도로다시돌아온까몽이스는틈틈이쓴 ‘루지아다스’의원고를가지고귀국길에오릅니다, 험난한여행끝에1570년에리스본에돌아온그는1572년에‘루지아다스’를발간하게됩니다. 그는1580년에시신을쌀시트한장없이한눈마저잃은채,비참하게죽었지만, 불후의명작‘루지아다스’는400년이지난오늘날에도 포르투갈인들이가장사랑하는서사시로남아있습니다. 호머의일리아드와오딧세이의영향을받았지만 ‘루지아다스’의소재는바스코다가마의인도항로발견이중심이된 포르투갈인들의해외영토확장에있고, 포르투갈인모두가주인공인특이한서사시입니다. 포르투갈인의위대한과업과역사의서술을통해 온국민들에게올바른국가관과민족혼을일깨워주려는것이까몽이스의의도였습니다. 땅끝마을까보따로카에는그가루지아다스에서읊었던 1개의절은10음절8개의행으로되어있어, 절수(節數)1102개에행수(行數)8816개의장편서사시입니다. 김창수역/삼영서관의번역본이나와있습니다 1.쌍죠르즈성(CastelodeSaoJorge) 리스본시내7개의언덕중가장높은곳에위치하여성루에서떼쥬(Tejo)강을가로지느는4.25현수교(2.2Km)와바스꼬다가마(VascodaGama)다리(17.2Km)및리스본시내전경을볼수있음. 1949-1959년간살라자르(Salazar)총리의지시에따라프란시스코프랑코(FranciscoFranco)가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에있는예수상을본떠서만든동상 1732-1748년사이에리스본시에물을공급하기위해쥬앙(Joao)5세왕의명으로리스본알칸타라(Alcantara)계곡에건축한것으로서현재는유적지로보존 15-16세기포르투갈의전성기인발견시대(항해시대)의건축양식인마누엘(manuelino)양식의대표적건물로서벨렝탑과함께1983년UNESCO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 1515-1521년간항구방어를위해건립되었으며항해선박의이착륙을환영.송하는장소로사용 대항해시대를연엔리크(Henrique)왕자서거500주년을기념,1960년떼쥬강변에건립한것으로서15세기포르투갈항해범선의뱃머리모형으로되어있음. 1994년1월벨렝탑옆봉쑤세쑤(BomSucesso)요새에해외식민지전쟁에서희생된전몰자들을추모하기위해건립한기념탑이며,주위의벽에전몰군인들의이름을새겨놓았음. 1962년제로니무스수도원서쪽건물에개관한박물관이며포르투갈의해양사,항해술에관한문서,고지도,항해도구,항해선박등이전시되어있어지리상의발견시대역사및선박변천사를한눈에볼수있음. 포르투갈어로는리스보어(LisboLisbon포르투갈의수도.인구55만6797(2001).테조(타구스)강하류의삼각강오른쪽연안에있으며포르투갈최대의도시이다.포르투갈어로는리즈보아(Lisboa)라하며리스본은영어명이다.기후는온난하며평균기온은7월22.2℃,1월11.3℃,연강수량792.1㎜이다.〔시가〕고지대인알토지구와중심부의저지인바이샤지구로나누어진다.두지구는공공엘리베이터와케이블카로연결되어있으며,북서로뻗어있는시가지에는12개이상의언덕이있다.테조강건너연안에는높이109m인그리스도상(1959)이바라다보인다.1966년에완성된서유럽최장의조교(弔橋)인<4월25일교(橋)>는처음으로건너편연안과의사이를연결하여지역개발에이바지하게되었다.현재중심가도의대부분은1755년의대지진후재상S.J.C.M.폼발후작의지휘로부흥과재개발이적극적으로추진되어정비된것이다.레스타우라도레스광장에서북서로향해폼발후작광장까지뻗은나비90m,길이1.5㎞의리베르다데가(街)는리스본의중심가이며1880년개통한것이다.바이샤지구는문화·상업·행정·교통의각시설이집중해있는곳으로로시오광장과코메르시오광장이있다.로시오광장동쪽의구릉위에사웅조르제성이솟아있다.영국과역사적관련이많으며리베르다데가북서의에드워드7세공원은영국왕의포르투갈방문을기념한것이다.서쪽끝의벨렘지구에는마누엘양식의벨렘탑(1515)이서있고,그북동에는16세기마누엘양식의제로니모스수도원이있다.국립고미술관,굴벤키안미술관,해양박물관,고고학·인류학박물관등문화시설도많다.리스본대학·공과대학·가톨릭대학등5개의종합대학이있다.〔역사〕이미로마시대부터올리시포(Olisipo)라는이름으로알려져있고,G.J.카이사르에연유하여펠리키타스율리아(FeilcitasJulia)라고불렸다.서고트족의지배를거쳐,716년부터이슬람의지배아래있었다.1143년카스티야에서독립한포르투갈국왕아폰소1세는북방십자군의지원을얻어47년10월24일리스본을해방시켰다.1249년아폰소3세의알가르베정복에의해포르투갈의국토회복전쟁이완료되자남부의중요성이높아져13세기중엽부터리스본은코임브라를대신하여왕국의수도가되었다.그이후리스본은지중해와북해를연결하는무역로의중계지로서발전,1383∼85년왕국독립의위기때에는리스본의부르주아지가독립을지키기위해결정적인역할을하였다.리스본시정은24인의길드대표로구성된24인회에의해이루어졌다.1498년바스코다가마의인도항로발견에힘입어번영하였다.그때까지사웅조르제성에만있던국왕은테조강가에왕궁을세웠으며이어서제로니모스수도원·벨렘탑등마누엘양식을대표하는건조물이세워졌다.1755년11월1일대지진으로시가지대부분이폐허화되자폼발후작은시가지를바둑판모양으로구획하고가옥의배열도이른바폼발양식으로통일하여리스본은계몽사상을구현한근대도시로변모하였다. 제로니무스수도원은마누엘1세가선조인항해왕엔히크를기리기위하여착공하여1551년완공하였다.석회암으로된건물은1변의길이가약300m에이르며웅장하고화려한노르만고딕양식을띠고있다. 수도원의산타마리아성당파사드가운데에는마누엘1세와왕비마리아,성제로니무스,세례요한등의조각상이있고,남문회랑에는후기고딕마누엘양식을대표하는성인과고승들의조각상24개가세워져있다.수도원왕실묘지에는마누엘1세와왕비의돌널,바스쿠다가마와루이스드카몽이스등의유해가안치되어있다. 타호강근처에있는벨렘탑은4층의등대로서,1515∼1521년프란시스코데알다가가마의업적을추모하여건물모퉁이마다감시탑을세우는형식으로지었다.포르투갈특유의마누엘양식을띠고있으며밧줄·조개·바다풀등의장식을새겨넣고총안을둔흉벽등을설치하였다. 탑의안뜰에는’성공의성모’조각상과인도양식의작은첨탑을설치하였다.지하감옥위에있는’총독의방’은고딕양식으로꾸몄고,’찬란한방’이라는거실도만들었다.1983년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하였다. 14세기에건설한왕궁은증축과개축을되풀이하여무데하르양식을비롯하여고딕·르네상스·마누엘양식이혼합되어있다.2개의거대한원뿔모양굴뚝은신트라의상징적인유물이되었고,왕궁내부는’어즈레이조’라는장식타일로화려하게꾸몄다.17세기말에는감옥으로사용하기도하였다. 18세기말부터외국의상류층들이’킨타’라는호화로운별장을지었는데,대표적인것은당시네덜란드영사가지은신고전주의양식의세테아이스궁이다. 신트라는수도리스본에서서북서쪽으로20km지점에있다.영국의낭만파시인바이런이’위대한에덴(thegloriousEden)’이라표현했으며,많은시인과작가들이경치의아름다움을찬양할정도로조용하고아름다운고도(古都)이다. 울창하고깊은산속에는13∼15세기의왕궁인신트라성(城),시가를내려다보는페나성(城),아름다운정원인몬세라테등이자리잡고있다.신트라성은흰색기둥탑2개가하늘을향해높이솟아있으며창문에는아름다운문양이새겨져있고분수대,30m높이의부엌등볼거리들이많다. 페나성은16세기에는제로니무스수도원이었으나1839년페르난도(Fernando)2세가개축한후에는왕들의여름철주거지로사용되었다.해발450m의산꼭대기에우뚝솟아있는데,이슬람·르네상스·마누엘·고딕양식등이잘어우러져있으며성외부가파스텔조의색채로칠해져있다.전체적으로성은장식타일인아줄레주가장식되어있어이국적이고아름답다.아멜리아여왕의방을비롯한방은장식이독특하며,회랑과예배당에는아직도수도원의분위기가남아있다. 날씨가좋으면리스본과테주강(타호강)이내려다보일정도로전망이좋으며,궁전주위의페나공원에는세계각국에서가져온3000여종의식물이자라고있다.1995년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UnitedNationsEducational,ScientificandCulturalOrganization)에의해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되었다. 매년여름도시에산재한교회와궁전,공원등에서큰규모와높은수준을자랑하는’신트라음악페스티벌’이펼쳐지고있어전세계에서많은관광객들이찾는다. 여행객들의눈높이가올라가면서유럽의역사에서‘무어’로불린북아프리카모로코지역에대한관심이커지고있다.유럽과아프리카.두대륙은상당히먼거리처럼느껴지지만지브롤터해협을사이에두고스페인최남단도시타리파와모로코탕헤르간거리는십수㎞에지나지않는다.이들두도시는오히려같은대륙에속한국가보다더욱가까운문화권으로기나긴역사를함께해온이웃이다.지금아프리카북단지중해국가모로코는특유의낯선문화와풍광으로저멀리한국의여행자들을향해손짓하고있다.지브롤터해협을건너모로코땅을밟는다면두대륙을넘나드는즐거움까지맛볼수있다. 스페인의세계적인리조트지역코스타델솔의중심지이며피카소의고향으로유명한휴양도시말라가에서이베리아반도의최남단도시인타리파로가는길은멀지않다.자동차로걸리는시간은1시간30분남짓.타리파에서아프리카대륙까지15km에불과해날씨가좋은날이면지브롤터해변너머의모로코가선명하게보인다.말라가해변에서아이들처럼동요를부르고춤을추었다. 호텔로돌아오니축제가열리고있었다. 전통의상을입은여인들과남자들,아름다운율동은여행자의마음을적셔주기에충분했다.
다음날의일정이빡빡하여너무늦지않은시간에침실로갔다. 다음날아침해변을따라남쪽으로내려오자항구가나왔다.아프리카대륙의첫관문인모로코의탕헤르로향하는고속페리가2시간마다떠난다.아무런질문이없는간편한출국심사를마친후배에올라탔다. 스무명남짓한사람과몇대안되는차량이모두승선하자거대한페리는뽀얀우윳빛포말을일으키며뱃머리를아프리카로돌렸다.멀어지는유럽의끝자락을보기위해뱃고물로향하니유럽의지브롤터와아프리카의세우타가한눈에들어오며양쪽대륙이평행을이루며늘어서있다.오래전지각변동으로분리되기전에는하나의대륙이었다는것을증명하듯아귀가맞아보인다. 모로코입국심사는선실안에서이뤄졌다.비자는필요없고입국서류만작성하면끝이었다.출발한지30분정도지나모로코의탕헤르항구에도착했다.
파두에현대적이고예술적인생기를불어넣어
아말리아로드리게스이후최고의파두가수라는
찬사를얻고있다.미샤의아름답고섬세하면서도
동시에힘이느껴지는보컬은전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받고있는포르투갈특유의파두음악을
전세계에알리는데큰공헌을했으며,
파두의핵심이라고할수있는’한’의정서와
멜랑콜리를누구보다도잘표현해내기도한다.
미샤는파두의정수인멜랑콜리의정서를포착하고,
이에노벨문학상수상자인조세사라마구포르투갈
현대문학의아버지페르난두뻬소아등저명한
문학가들에게시를의뢰하여이들의아름다운시로
파두를보다풍성하게만들었으며피아니스트
마리아조아오피레스와포르투갈의기타리스트들을
불러들여매력적인파두의소리를되찾아거리의파두라는
오명을벗기고예술적인경지로승화시킨다.
포르투갈의위대한유산파두의전통을이어받는동시에
새로운예술적영감을불어넣은미샤로인해
이제파두는프랑스의샹송이나이탈리아깐소네를
뛰어넘는전성기를맞게된다.
파두의나라포르투갈은유럽에서매우매혹적인나라입니다.
과거에는해양생활을했던나라로,뛰어난해변휴양지,멋진도시와자연경관이올리브농장과포도원,밀밭사이로펼쳐져있습니다.
포르투갈은40년간의독재정치를겪으면서유럽영향력의중심과현대적인생활에서멀리떨어져있었지만북유럽에서저렴한비용으로갈수있는여름철휴양지로선호되면서발전하였습니다.
이어17세기포르투갈경제는파탄에직면하고거듭되는내란과정치적혼란에휘말리다1910년에왕정이무너진후민주공화국으로바뀌었습니다.
그러나이민주공화국체제는1926년에일어난군사쿠데타로단명하고오랜독재정치가시작되었습니다.
1968년살라자르가사망하자마침내1974년반세기에가까운독재정치는막을내렸습니다.
"보라,유럽의끝에포르투칼이있다.
거기서대지는끝나고바다가시작된다"는
구절의시비가서있습니다.
그의유해는유네스코문화유산인제로니모수도원에바스코다가마와나란히누워있습니다
‘루지아다스’는10곡(曲)으로구성되어있고,1개의곡은각각87~156절로되어있으며
땅끝마을까보따로카를바라보며
"보라,유럽의끝에포르투칼이있다.
거기서대지는끝나고바다가시작된다"라고읊었습니다.
그의이구절은까보따로카에시비로서있습니다.
그의유해는유네스코문화유산인제로니모수도원에바스코다가마와나란히누워있습니다
기원전2세기로마인들이축성을시작,9세기무어인들이완성한것으로1755년리스본대지진으로큰피해를입었으나1940년대에복원
2.예수상(CristoRei)
예수상자체높이는28m,그아래거대한석주(石株)는높이82m로엘리베이터를타고올라갈수있음.
3.수로교(AquedutodasAguasLivres)
주수로교는길이19km이며부속수로교까지포함한총길이는58Km에달함.알칸타라계곡위의다리아치수는35개이며정중앙의아치는높이65m,폭32m로세계최대석조아치임.
4.제로니무스수도원(MosteirodosJeronimos)
1498년바스꼬다가마(VascodaGam)의인도항로발견을기념하여16세기부터약1세기에걸쳐건축한수도원으로원래바스또다가마의항해단이인도항해출발전미사를올렸던채플이었음.
수도원입구성당내부에들어서면양측에바스꼬다가마와포르투갈의대서사시인인까몽이스(Camoes)의무덤이있음.
5.벨렝탑(TorredeBelem)
마누엘(Manuelino)양식의건물로서바다에접한1층은감옥으로사용되었음.
6.발견기념관(PadraodosDescobrimentos)
뱃머리선두에서있는인물이항해왕자엔리크이고그뒤로바스꼬다가마,대서사시인인까몽이스,마젤란(Magalhaes,포르투갈명마걀량이스)등이조각되어있음.
기념관앞광장바닥에대리석으로된세계지도가있으며포르투갈이대항해시대에진출한지명과연도가표기되어있음.
7.전몰자기념탑(MonumentoaosCombatentesdoUltramar)
8.해양박물관(MuseudaMarinha)
바스꼬다가마의인도항로발견(1498년)과까브랄(PedroAlvaresCabral)의브라질발결(1500)시사용했던범선모형,1780년제작된마리아(Maria)1세여왕의화려한기선,1900년스코틀랜드에서제작된까를로스(Carlos)왕과아멜리아(Amelia)왕비소유의요트아멜리아의선실,1922년남대서양을최초로횡단한싼타끌라라(SantaClara)수상비행기등을볼수있음.
또한동박물관출구로비층에우리나라의거북선모형이전시되어있음.
신트라
신트라산맥북부비탈면에있는신트라는중세적분위기를간직하고있는작은도시이다.이곳에는좁은골목과언덕길이미로처럼얽혀있고,중세의왕궁과근대귀족과재산가의호화로운저택들이보존되어있다.왕궁부근해발450m의산에는12세기중반까지이곳을지배하던이슬람교도들이조성한,7∼8세기의성채유적이남아있다.
신트라산지의산꼭대기에는1839년페르난두2세가제로니무스수도원을개축하여지은페나궁이있다.1995년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