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사막 베두인캠프에서의 하루 ……

운전사의 나이보다 더 먹었을 것 같은 벤츠 택시가 드디어 쿨럭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형편없이 낡은 차였지만 요르단의 대부분 장거리택시들이 그런 정도였지만 “썩어도 준치인데” 하며 믿었던 고물 벤츠도 나의 안락한 여행을 보장해 주지는 못 했습니다.  암만과 페트라를 잇는 킹스하이웨이의 중간 지점에서 드디어 늙은 벤츠는 멈추었습니다. 주변을 둘러 봐도 사막 뿐 지나가는 차도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해는 점차 사막의 한쪽에 걸터앉아 내려갈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멀리 유목민텐트가 시야에 보였습니다. 할 수 없이 자동차 트렁크에서 귀중품만 챙겨들고 운전기사와 함께 유목민텐트로 찾아갔습니다. 이집트와 요르단을 여행하면서 베두인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집안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kings-highway-Scan317

약 30분 정도 걸어서 베두인 천막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꼬마 아이들이었습니다. 꼬마들의 떠드는 소리에 텐트 안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동행한 운전사가 우리의 처지를 아랍어로 얘기하고 하룻 밤 기거하겠다고 요청하자 그 할아버지는 쾌히 수락하였습니다. 베두인들의 생활도구는 수시로 이동을 해야하기에 무척 간단한 편이었습니다. 거실에 해당하는 큰 텐트 안에는 한 쪽에 우리나라의 한옥에 해당하는 보료가 깔려 있었습니다. 또 다른 구석에는 조그만 구식 칼러TV도 있었으며 그 옆에는 차를 끓이는 석유곤로가 있습니다.

 

kings-highway-Bedduin camp Scan855

나도 베두인 텐트에서 하룻 밤을 지내게 된 것도 처음이지만 그들로서도 외국인이 자기 집에 기거하게 된 것도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따라 주시는 차는  허브향이 진하게 배어 있었는데 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계속 권해 주셨습니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의 아들이 일터에서 돌아왔습니다. 나이가 40으로 소개하는  그의 아들 아쉬랍은 요르단 공수부대출신으로 제법 영어가 유창하였습니다. 아쉬랍은 오랜만에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즐거운지 저와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자연히 우리들의 대화는 한국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한국인들이 보는 중동사태에 대한 시각으로 옮겨졌습니다. 어찌 보면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저는 수 차례 이집트를 비롯한 터어키, 파키스탄등 이슬람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별 부담 없이 얘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르단을 여행하고 싶어 이곳에 왔을 정도로 요르단이나 이슬람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르단에는 많은 한국업체들이 진출하였고 국산자동차, 가전제품들도 많이 보급되어 있어서 요르단국민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었습니다만 막상 베두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한국사람이 하룻밤을 묶게 되자 큰 환대를 베풀었습니다. 심한 갈증으로 차를 여러 잔 마시자 찻주전자를 아예 제 옆으로 가져 놓았으며 TV도 제가 보기 좋은 방향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베두인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아무래도 양고기가 제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뜻밖에 베두인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이색체험을 하게 되었지만 아쉬랍의 가족들도 외국인이 자기 집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것이 무척 즐거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kings-highway-Beduin-Scan313

저의 설명은 이렇게 펼쳐졌습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남북으로 분리되고 내전을 겪으면서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한국은 아무런 생각 없이 미국이 지지하는 이스라엘편을 들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 중동건설붐이 일어나고 많은 건설회사들이 아랍에 진출하게 되자 점차 아랍세계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었고 서울의 한 복판에는 이슬람사원까지 생겼다…..

그리고 제가 이집트와 터어키를 여행한 경험을 들려주고 양념으로 이스라엘을 흉보는 얘기도 곁들이니 아쉬랍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을 여행한 대부분의 여행객들 한테서는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공항에서의 심한 검문 검색과 배타적인 유태인들의 태도 등 그리 좋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할아버지는 어느 구석에서 골판지를 찾아서 바닥에 깔고서 아이들이 깔고 자는 카페트를 하나씩 거두어 이중으로 저의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밤도 늦었고 계속된 여행에 피곤하여 눈을 붙이려는데 운전기사 알리와 아쉬랍이 귓속말로 소근대더니 알리가 저를 깨웠습니다.   전날 밤 암만의 호텔방에서 요르단  여행일정을 짜면서 운전사인 알리와 제가 가져간 위스키를 한 잔 했었는데 아마 알 리가 아쉬랍에게 한 잔 하겠냐며 부추킨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무슬림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랍니다. 물론 아랍 국가에서는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음주를 하지 못할 뿐 자기들만의 공간에서는 음주를 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비교적 음주문화가 관대로운 이집트에 돈 많은 아랍사람들이 주말을 지내러 찾아온다고 합니다.
저는 비행기에서 산 GLENFIDICH 위스키를 알리의 자동차 트렁크 짐 속에 두고 왔기에 알 리가 아쉬랍의 말을 빌려 타고 자동차에서 위스키를 꺼내왔습니다.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요르단의 사막 한 가운데에서 차가운 밤 공기를 쏘이며 아쉬랍과 알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예정에도 없는 하룻밤을 지낸 경험은 저한테는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