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화려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이스탄불을 빠져나가면 정반대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터어키의 수도인 앙카라만 해도 이스탄불과 같이 북적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사람들도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 간혹 관광객들을 등쳐 먹고사는 사기꾼들이야 지구촌 어느 구석에는 없겠냐만은 이스탄불을 빠져 나온 후로는 마치 방학 때에 약속된 친구집을 찾아가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의 여행이 이어지는 것이 터어키사람들의 순박함 때문인 것 같다. 장거리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승객도 행여나 이방인이 버스를 잘못 타지나 않았는지 내 버스표를 확인해주며 차장한테 목적지를 다시 한 번 확인까지 해 준다.
아시아대륙에 속한 터어키땅은 전체 국토의 97%에 달하며 아나톨리아로 부른다. 아시아와 유럽을 기로지르는 보스포러스해협을 중심으로 보면 유럽에서는 이곳이 태양이 떠오르는 동방의 땅이라는 뜻이다. 아나톨리아는 서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른바 바이블루트(Bible Route)가 지나는 길목이어서 성지순례에서도 중요한 곳이기도 하지만 아나톨리아지방에서 터어키를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기암괴석이 널려진 카파도키아지방과 석회암사이로 특이하게 분출되는 온천수가 빚어낸, 마치 설원과 같은 새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천연풀장인 파묵칼레를 들 수 있다. 광활한 터어키 땅에서도 두 곳 모두 한정 된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신비한 자연의 조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앙아나톨리아지방의 카파도키아는 화산에 의해 형성된 지층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풍화작용에 의해 마치 외계인의 마을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복잡한 지질학적 설명을 뒤로하고 쉽게 생각하면 그저 계절에 따른 갑작스런 온도변화와 함께 빗물과 겨울에 쌓였던 눈이 녹은 물에 의하여 수직으로 깎여 나가고 바람에 의하여 수평으로 다듬어진 돌기둥은 독특한 모양을 형성하여 자연적인 형상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조각공원에 온 것이라 생각될 정도다.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괴이한 형상을 하게된 원인을 캐내기에 골치 아프겠지만 눈요기거리를 찾아다니는 방랑객한테는 쉽게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라 탄성을 지르기에 바쁘다.
중국의 계림이나 스페인의 몽세라에도 비슷한 모양을 한 암벽으로 된 돌산들이 있지만 그 다양한 모양새나 규모 등을 감안하면 자연현상이라고 보기 보다는 “신의 손”이 빚은 것이라는 결론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 모양도 원추형의 바위부터 버섯모양의 바위, 세로로 주름잡힌 거대한 계곡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여 별명으로 붙혀진 요정의 굴뚝 Fairy Chimny 처럼 마치 별세계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스타워즈등의 우주의 외계를 그린 영화에 등장하는 지형도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의 관광은 네브세히르에서 시작된다. 앙카라에서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거리인데 네브세히르에 가까이 오면서 눈앞에 전개되는 신비한 지형을 놓칠세라 열심히 카메라에 담으려니 옆 좌석에 앉은 터어키청년이 필름을 아끼라며 만류한다. 아니나 다를까 네브세히르에 도착하여 다음날부터 위르굽, 괴뢰메, 우치히사르 등의 주변 명소를 찾아다니니 어제 괜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본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절경이 나타난다.
카파도키아지방의 기이한 지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다고 한다.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은 땅 위에 집을 세우기보다는 암석바위를 파내어 토굴과 같은 집을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지금도 이러한 주거형태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암굴 형태의 또는 지하에 형성된 가옥들은 초기기독교시절과 이 지역에 이슬람세력이 들어오면서 기독교인들의 대피처로서 지하도시를 형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데린구유에 남아있는 곳은 그중 가장 큰 곳으로 지하에 하나의 도시공동체를 이루기도 하였다. 올타히사르마을 가운데 우뚝 솟은 큰 바위는 하나의 벌집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층층이 동굴형태의 방들이 있는데 요즘은 채소나 과일 등의 창고로 사용된다고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수많은 동굴이 촘촘히 형성되어 있다.
카파도키아지방에는 지금도 도심을 벗어나면 대부분 가옥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져 세워져 있다. 더욱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이 지역에는 동굴 형태의 숙소가 많이 있어서 여행객들이 색다른 추억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규모가 제법 큰 호텔 등은 건물외관을 주변 분위기에 맞추어 외관을 그럴듯하게 지은 것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토굴형태의 방을 호텔로 개조한 조그만 호텔(Cave Pension)이 잠자는 순간까지도 카파도키아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아나톨리아지방에서 에게해 가까이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또 하나의 별천지이다. 카파도키아만 해도 그리 좁다고 할 수 없는 지역에 이와 같은 자연현상을 보였다고 하지만 파묵칼레의 석회암으로 형성된 자연온천풀장은 단 한곳에서만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언덕 중반에 하얗게 빛나는 모습은 영낙없이 이른 봄철 그늘에서 채 녹지 않은 눈더미처럼 보인다.
터어키어로 목화성이란 뜻의 파묵칼레의 천연풀장은 폭이 길어야 1-2 km에 불과하며 규모에 비하여 넘치는 관광객으로 인하여 이제는 온천수가 말라간다는 얘기와 함께 전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런 수량이 풍부한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여 안타깝기만 하였다. 파묵칼레의 흰 눈의 정체는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과다한 칼슘성분이 포함된 온천수가 테라스 모양의 천연풀장을 형성한 것으로 지금도 수량은 많이 줄었지만 온천수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파묵칼레는 천연적인 풀장과 함께 역사적으로도 고대신전이 있었던 히에라폴리스로도 유명하다. 석회암풀장이 형성된 언덕 위를 따라서 조금 걸어가면 전형적인 로마원형극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약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도 객석에는 관객들이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지만 무대전면은 많이 파괴된 상태로 그 역사를 가늠할 수가 있다. 이러한 형태의 원형극장은 로마제국시대의 상징으로 로마제국시절의 통치를 받은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남아 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로마제국의 국력을 상징하듯 여러 신전과 개선문 그리고 목욕탕 터전이 남아 있으나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되어
그 의미를 찾아 볼만한 흔적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철분의 함유량이 많은 Red Spring 도 유명하다. 각종 피부병질환을 가진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바지를 걷어올리고 노천온천수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이 온천수의 효험에 대한 확신을 엿볼 수 있다.
터어키는 국토가 남한면적의 9배 가까이나 되는 넓은 면적이지만 터어키를 여행하는데에는 심야고속버스가 제격이다. 기차노선은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나 파묵칼레로 들어가는 길목인 데니즐리 정도가 있지만 터어키의 버스사정은 대단히 편리하고 서비스도 좋은 편이다. 요금도 편리성에 비하면 무척이나 싸다. 장거리 버스는 차량도 서유럽수준의 고급버스로 운행되며 젊은 남자 차장도 함께 탑승하여 수시로 음료수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올리브기름을 제공한다. 아직까지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이슬람사회의 특성 때문에 남녀가 유별하여 좌석도 구분되지만 예루살렘의 유대인처럼 까탈스럽지도 않다. 버스 안에서 틈틈이 오른쪽, 왼쪽 차창을 넘어 분주히 셔터를 눌러대자 복도 건너편에 앉은 두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다른 자리로 기꺼이 옮기며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더 좋은 경치가 나타날 것이라고 손짓으로 알려준다.
우리는 남북화해무드에 젖어 점차 잊혀만 가는 한국동란의 뼈아픈 기억을, 그들은 혈맹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부르는 한국과 관련하여 Koreli 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라고 한다. 내가 세 번씩이나 터어키를 여행할 때만 해도 어렵지 않게 한국과 관련된 터어키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스포러스해협에서 페리를 탈 때에 동전이 없어서 곤란한 입장에 빠진 나를 위하여 대신 표를 끊어준 외항선 항해사, 할아버지가 한국동란 때에 참전하였는데 솔직히 그때 터어키가 왜 한국까지 가서 싸워야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서도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한국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터어키 역도선수를 아느냐며 물어보던 카파도키아의 운전사, 삼촌이 한국동란 때에 참전하여 팔 한쪽을 잃었다는 길거리에서 도뇌르케밥을 파는 아저씨등 … 모두들 한국에 대하여 우호적인 추억거리들만 간직한 것 같았다.
오늘 한국의 이 을용 선수가 터어키의 한 프로팀으로 돌아가 활약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한마디 외쳐야 겠다.
대–한민-국- 짜작-작 짝작 !
한–국터-키- 짜작-작 짝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