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대륙 아프리카에서 케이프타운은 하나의 별천지와 다름없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접한 출중한 풍광도 그렇거니와 백인들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다른 도시보다 많이 눈에 띈다. 바닷가를 따라 언덕에 즐비하게 들어선 Camps Bay의 주택가는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를 연상케 하며 케이프타운시에서 케이프포인트로 이어지는 해변도로는 캘리포니아의 몬테레이를 떠오르게 한다. 마치 커다란 식탁을 펼친 것과 같은 ‘테이블마운틴’ 아래로 대서양을 따라 펼쳐진 도시 전경은 유럽의 여느 휴양도시에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죠하네스버그 중심가를 배회하던 거리의 건달들도 그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동안 남아연방을 여행하면서 굳게 닫았던 마음의 경계를 풀고 자유스럽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건만, 그래도 야간에 도심에 들어가는 것은 어림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케이프타운을 찾는 여행객들은 비니지스목적이 아닌 경우는 시내중심의 고급호텔들은 외면하고 Seapoint 등의 시내외곽의 조그만 호텔이나 민박형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묶게 된다. 내가 시포인트의 배낭여행사를 통하여 소개받은 게스트하우스는 Greenpoint 의 언덕 중턱에 위치한 전망이 좋고 매우 깨끗한 빅토리아양식의 개인주택이었다.
여행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를 픽업하러 온 Davis는 집에 도착하자 마침 집안에 머물던 다른 투숙객들과 인사를 시켜서 모두들 짧은 기간동안 한가족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케이프타운을 떠나던 날이었다. 주인 Davis는 매우 점잖고 매너가 좋은 영국출신의 백인이며 그의 친구와 둘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Davis는 내가 떠나는 날 아침식사시간에, 저녁에는 그의 친구하고 파티에 참석한다며 내가 떠나는 시간에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숙박비를 미리 지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동창회가 있냐며 좋은 시간을 가지라고 하였더니 그날이 케이프타운의 Gay Society의 정기모임을 갖는 날이라고 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Davis는 오히려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Gay여서 문제가 되었느냐고 물어서 순간적으로 진땀을 흘리게 되었다. Davis는 예의가 바르고 게스트하우스의 거실화장대에 딸의 사진과 헤어진 아내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펼쳐놓고 있어서 전혀 그런 것을 눈치챌 수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그런 사회가 없어서 잠시 놀랬다며 내가 당황한 모습이 불쾌하게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그의 굳었던 표정도 금방 밝아졌다. 남아연방은 특히 케이프타운은 동성애자가 많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이프타운의 명물인 테이블마운틴은 항상 구름에 드리워져 막상 올라가도 볼 것은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케이프타운까지 와서 오르지 못하고 온다면 찜찜한 곳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에서 돋보이는 곳은 테이블마운틴의 밑에 있는 말레이쿼터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이민사회를 들 수 있다. 17세기에 들어온 말레이시아인들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이곳은 대칭적 구조의 화려하고 밝은 색으로 채색된 단층건물들이 연이어 있으며 머리에 무슬림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사람들과 아랍의 전통의복인 긴 통치마를 입은 무슬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남아연방에는 일찍이 말레이시아와 인도인들이 이주하였는데 이들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공동주거지역을 형성하고 살고 있으며 Bo-kapp 박물관을 만들어 그들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빅토리아 & 월프레드 부둣가도 검은대륙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곳으로 뉴질랜드나 영국의 조그만 도시의 부둣가의 모습이다.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치안부재의 암흑가로 바뀌는 도심에서 부둣가는 시내 중심지와 주택가를 구분 짓는 위치에 있으며 이곳부터 Camps Bay쪽으로는 관광객들을 위한 nightlife가 이어지는 곳으로 부둣가의 쇼핑몰은 여행객들의 집합장소로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케이프타운의 부둣가에서 약 20km 떨어진 Robben Island 는 남아연방근대사의 한 획을 그은 흑인인권운동가인 넬슨만델라가 장기 투옥되었던 감옥으로 유명한 곳이다. 흑인빈민출신인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드’라 불리는 인종차별정책에 항거하여 인권운동을 하던 중 18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던 로벤섬은 만델라가 남아연방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고 1994년 감옥이 폐쇄되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유적지로 지정되어 지금은 케이프타운을 대표하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 사진 – Robben Island 감옥의 인종차별에 따른 식단표 >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감옥의 식당에는 Black 과 Asian & Coloured로 차별되어 제공된 식단표를 볼 수 있다. 흑백차별정책 속에서도 인도와 말레이지아 등지에서 건너온 아시안들은 그래도 흑인보다는 우월한 지위를 누렸다고는 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강요당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로벤아일랜드의 감옥에서 가장 많은 발길이 찾는 곳은 아무래도 넬슨 만델라가 갇혔던 독방으로 그 방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는 인파로 복도를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남아연방에서 흑백차별정책이 폐지되고 흑인인 만델라가 대통령에 이르고 그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흑인 음베키가 대통령을 이어 받아 겉으로는 완전한 흑백차별정책이 폐지되었지만 그래도 흑백인종간의 갈등은 뿌리가 깊어 지금은 서로의 충돌을 스스로가 억제하는 정도일 뿐이라며 백인들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불만을 애써 감추지는 않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죠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에서 묶은 게스트하우스의 백인 주인들의 얘기도 스스로가 가급적이면 흑인들과 대면하지 않고 다만 흑인들을 운전기사나 집안 허드렛일을 하는 파출부로 고용하는 것은 흑인들의 임금이 백인보다 더 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벤아일랜드를 찾는 관광객들도 백인은 모두 외국인들로 남아연방의 내국인 백인들의 모습은 인구 수가 적어서 인지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아연방에서 흑백문제를 빗겨가도 흑인들 사회는 여러 종족출신이 모여있는 터라 이들간의 갈등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며 넬슨만델라도 남아연방흑인의 최대부족인 줄루족 출신이 아니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케이프타운의 도심을 벗어나 남쪽으로 달려 펄스베이의 해안도로로 접어들면 우선 끝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뮤젠버그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을 따라 어울리지 않는 초고층건물들이 들어선 호주의 골드코스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운치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좀 더 내려와 시몬스타운의 볼더스비치에는 놀랄만한 광경이 여행객을 맞아 준다. 별로 넓지 않은 해변에 주택가와 근접한 모래사장에는 수만마리의 펭귄들이 대규모의 군중대회를 열고 있는 것처럼 몰려있다. 펭귄들의 모습은 대부분 짝이 있는 것처럼 다정하게 보여지며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꼼짝 않고 있는 모습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원래 펭귄은 추운 남극지방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Jackass라 불리는 작은 펭귄은 따뜻한 지방에서도 볼 수 있으며 호주의 멜버른근교의 필립아일랜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많은 펭귄무리들을 볼 수 있다. 케이프타운지방의 바닷가에는 펭귄뿐 만 아니라 물개나 고래 등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점차 강화되는 환경보호운동 덕분에 그 동물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특히 Hernamus의 절벽 아래에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땅에서 가까이 고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케이프타운지방의 가장 큰 상징은 케이프포인트의 희망봉 Cape of Good Hope이라 하겠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정확히는 이곳에서 약 100km 떨어진 Cape Agulas로 후에 밝혀졌지만 그래도 오래 전부터 지녔던 상징적인 의미까지 빼앗기지는 않은 탓에 남아연방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증명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케이프포인트의 등대까지 등산열차로 오르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강한 바닷바람이 휘몰아친다. 정확히 남위 34도 21분으로 북반부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치에 놓여있지만, 15세기 말에 바스코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한 이후, 무수한 항해사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부여해준 아프리카대륙의 최남단으로의 의미는 위도상으로는 더 남쪽에 위치한 칠레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지구촌의 남쪽 땅 끝’의 상징인 것이다.
< 사진 –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으로 알려졌던 Cape Poi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