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4강신화의 주역인 한국과 함께 세계인의 주목을 끈 팀은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꺾은 세네갈이었다. 아프리카가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올림픽 못지 않게, 단일종목으로는 세계최대의 스포츠이벤트인 월드컵에서 세계최강인 프랑스를 개막전에서 꺾은 것은 세네갈로서는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른 것에 뒤지지 않은 국가적인 쾌거였다. 더욱 그들이 물리친 팀이 한 때 세네갈을 지배하였던 프랑스였기에 그 기쁨은 몇 배나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세네갈은 서아프리카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항공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서아프리카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대서양에 접하고 남쪽의 카자망스평원은 원시림으로 둘러 쌓이고, 북쪽으로는 사하라사막의 끝자락이 이어져서 파리에서 출발하는 유명한 자동차레이스 파리-다카르 랠리의 종점이기도 한 나라이다.
아프리카의 관문이라 하더라도 유럽인들은 유럽항공사들을 이용해서 그런지 리스본에서 출발한 다카르행 Air Afrique 항공의 승객들은 대부분 흑인들로 기내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번에 아프리카여행에 나선 것은 유럽과 미국을 여러차례 여행하면서 지켜본 흑인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프리카의 대부분이 저개발국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나 자신도 인종적인 우월감을 바탕으로 그들을 동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네갈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나라이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서아프리카의 첫 여행지로 세네갈을 찾은 것은 이곳에 노예무역시장의 흔적인 고레섬이 있고 알렉스헤일리의 소설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의 고향이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르는 파리-다카르 랠리로 그래도 아프리카 도시 중에서는 우리한테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그리 넓지 않은 도시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비교적 잘 꾸며진 도시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란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으로는 15세기에 포루투갈이 지배한 이후 17세기에는 프랑스가 차지하여서 지금도 다수종족인 울루프족의 울루프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카르의 앞 바다에 떠 있는 고레섬은 노예시장이 폐지될 때까지 서아프리카 각지에서 수집한 노예들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송하는 마지막 집합장소가 되었기에 서아프리카의 근대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이다. 고레섬을 가장 먼저 점령한 것은 포루투갈이지만 이곳을 노예무역의 거점으로 이용한 것은 프랑스였다. 지금은 몇 백명의 주민만 남아 있는 섬이지만 이 섬의 오랜 역사를 지켜온 낡은 건물들의 철물구조 발코니는 프랑스보다는 포루투갈의 체취를 더 짙게 풍기고 있다. 다카르에서 불과 3KM 정도 남짓한 거리지만 섬 주변을 흐르는 빠른 조류는 노예들의 탈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섬 뒤편의 절벽을 보면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내가 이곳에서 굳이 그들의 비참했던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공터의 곳곳에 박혀있는 녹슬은 쇠기둥과 사슬만 간혹 눈에 보일 뿐이다. 노예들의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건물도 낡았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의 암울하였던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들은 신체적인 구속보다는 그들을 인격체를 가진 인간이 아닌 가축으로 대한 백인들의 오만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것이었다. 병이 들어도, 아이를 낳아도 수의사가 진찰하고 애써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것은 백인들의 어떤 가혹한 채찍질보다도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았을까.
다카르시내를 거닐다 만난 소년들은 대한항공마크가 새겨진 물주머니가 달린 벨트를 보자 갑자기 태권도포즈를 취한다. 태권도의 위력은 태극마크와 함께 이곳까지 알려진 것이다. 세네갈에는 우리나라의 씨름과 비슷한 민속경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용경기장은 따로 없지만 축구경기장에서 펼치는 세네갈씨름의 열기는 축구 못지 않다. 씨름경기가 진행되는 틈틈이 관중석 앞의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민속춤 공연은 월드컵에서 세네갈선수들의 골세레머니를 연상케 한다. 세네갈의 씨름과 관련하여 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오래전 세네갈에 큰 가뭄이 들어 대지의 신과 바다의 신이 씨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대지의 신이 이겨 바다의 신으로부터 물과 소금을 받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런 전설을 뒷받침해주는 곳으로 다카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LOC ROSE 장미호수를 들 수 있다. 밑바닥이 붉게 비치어 장미호수라 불리는데 이 호수는 요르단의 사해와 같은 진한 염호로 밑바닥을 긁으면 소금이 모래처럼 나와서 염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별난 곳이다. 장미호수에서 긁어내어 호숫가에 쌓아 논 소금더미는 마치 공사장에 쌓아둔 모래더미처럼 보일 정도이다.
대부분의 서아프리카국가와 마찬가지로 세네갈도 이슬람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국력이 중동의 이슬람국가에는 미치지 못하여서 인지 중동에서 볼 수 있는 호화로운 대규모 이슬람사원보다는 시장바닥에 조그만 돔과 초승달표지만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그들의 생활속으로 자리잡은 사원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원형탑이 아닌 사각형 미나렛이 돋보이는 현대식으로 지어진 이슬람대사원의 위용은 중동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도들의 신앙심은 결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아프리카에서 음악을 빼어 넣을 수는 없다. 요즘 젊은이들한테 크게 유행인 레게음악도 아프리카에서 나온 것이고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은 하나의 새로운 음악장르를 만들고 있다. 세네갈은 음주가무의 규제가 대체적으로 까다로운 이슬람국가이지만 엄격한 이슬람규율도 아프리카인의 토속적인 흥까지는 다스리지는 못하는 듯 하다. 다카르시내의 프랑스문화원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