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섬을 택했다. 잔지바르는 인도양에 있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섬이지만 1964년 본토의 탕가니카와 합병하기 전 까지는 독립된 국가였다. 탄자니아는 케냐의 바로 아래 있는 나라로 킬리만자로산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나라의 한 가수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를 불러 탄자니아대통령의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는데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를 등산하는 사람들, 세렝게티의 초원을 무대로 동물사파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케냐와 함께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잔지바르는 일찌기 아랍상인들에 의해 아랍문화가 전해져 아프리카 문화와 아랍문화가 혼합된 스와힐리문화를 만들어 낸 곳으로 동아프리카 역사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동아프리카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도 아프리카의 반투어와 아랍어가 합성되어 생긴 것으로 잔지바르가 근원지라 한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은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집약한 곳으로 이곳을 둘러보지 않고는 동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케냐의 나이로비를 이륙한 비행기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오른쪽 창으로 킬리만자로의 영봉이 눈에 들어온다. 약 6년 전에 사파리여행을 하면서 암보셀리에서 킬리만자로산을 바라 보았건만 산허리에 구름이 끼어서 산봉우리를 볼 수 없었는데 그 때 보지 못한 구름 위의 나머지 모습을 본 것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다른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그렇듯이 마치 골목길의 아이들이 땅따먹기한 것 처럼 국경이 직선으로 그어져 있다. 이렇게 아프리카를 지배하였던 유럽열강들에 의하여 임의대로 그어진 국경선 때문에 수많은 종족이 모여 사는 그들한테 나라와 민족에 대한 관념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저 반투족 이라고 불리는 큰 의미에서 동아프리카흑인들이 동질성을 그나마 유지한다고나 할까.
킬리만자로를 뒤로하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자 코발트빛의 바다가 나타나며 끝 없이 뻗어있는 동아프리카의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수 백년간 아랍상인들과 백인들에 의해 흑인노예들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감하였던 곳이던가 ! 비행기 날개 아래 어딘가에 있을 항구 바가모요 Bagamoyo를 머릿 속에 떠 올리며 이 뜻이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남아있다” 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구절이 적힌 손에 든 가이드북 론니플래닛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잔지바르해협을 지나 고도를 낮추니 우중충한 날씨에 양철지붕의 집들이 빗물에 젖은 채 올망졸망 붙어 있는 모습이 이건 아프리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나를 실망하게 만든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한국에서 무려 2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던가 !
비행기문이 열리자 빗발은 여전하지만 누구하나 비를 꺼려하는 사람도 없다. 하기야 우리나라 조그만 어촌도시의 여객선터미널 같은 공항청사에서 보딩브릿지가 어울리겠으며, 인천국제공항이나 뉴욕 JFK케네디공항에서 비를 맞았다면 얘깃거리가 되어도 아프리카에서까지 그런 것 따질려면 무엇 하러 왔는가. 몸은 그렇다 해도 배낭이 젖으면 어찌하나 하였지만 나만의 문제가 아닐진대 쓸데없는 걱정은 더 이상 안 하기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모두들 잔지바르의 날씨까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날씨가 우기와 건기가 교차하는 시즌이어서 하루종일 비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카메라만 비닐종이로 감싸고 숙소를 나왔다. 스톤타운은 해변을 낀 삼각형의 조그만 마을이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 Bui Bui(전신을 덮는 여인들의 이슬람복장)를 걸친 여인의 모습에서 아랍의 정취가 흠뻑 풍겨온다. 아치형의 문양이 새겨진 대문과 코란의 구절이 음각된 문틀, 다중아치형의 창틀 ! 영락없는 아랍의 마을을 걷는 기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인상은 이미 지워졌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점점 흥미를 더해만 간다.
잔지바르에서는 그 집의 대문은 주인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여 가장 비중을 두고 짓는다고 한다. 빗줄기가 약해지자 하늘을 쳐다보니 건물들의 2층, 3층에 있는 발코니가 붙은 창문을 보면 리스본의 낡은 주택가를 연상하게 되어 아랍과 포르투갈이 번갈아 지배해온 잔지바르의 역사를 더듬게 한다. 지그재그 골목길을 누비니 아랍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함맘(대중목욕탕)도 보인다. 잔지바르를 지배한 오만왕국의 술탄들이 자신들이 즐겼듯 대중들을 위하여 함맘을 지었지만 아랍의 목욕문화와 아프리카의 그것은 접목되지 못한 듯 사용되지 않고 그 형태만 남아있다.
지나치는 초라한 건물의 창 틈으로 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이슬람사원(모스크)이다. 잔지바르는 인구의 95%가 무슬림이라고 하지만 서남아시아나 중동처럼 대규모의 모스크는 보이지 않으며 모스크의 심볼이랄 수 있는 미나렛도 작달만한 것 뿐, 힌두교사원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그러나 비가 그치자 여기 저기서 나오는 주민들의 모습은 얼굴만 검을 뿐 Kanzu(남자들의 이슬람복장,긴 통치마), Kofia(모자)를 쓴 사람들의 모습에서 초라한 모스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간혹 서남아시아국가에서 볼 수 있는 사롱(치마)을 두른 남자들의 모습에서 인도의 영향도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스톤타운의 모든 것들이 아프리카와 아랍, 포르투갈 그리고 인도양식의 종합판인 것이다.
골목길을 어느 정도 빠져 나왔나 싶더니 눈앞에 높은 교회첨탑이 보인다. 옛날 노예시장터에 세워진 이 영국교회는 교회탑은 고딕양식이지만 건물 양 옆의 창문은 다중 아치모양의 아랍식 건축양식이다. 이 교회탑의 시계는 술탄이 기중하였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아랍과 유럽의 합작품인 셈이다. 이 교회 정원에 세워진 쇠사슬로 엮은 노예들의 조형물이 이곳이 예사 장소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교회 옆의 산타모니카호스텔의 지하에 남아 있는 노예수용소는 제대로 서서 구경하기에도 갑갑한 좁은 공간인데도 무려 장정 50명을 수용하였다고 하며 아직도 벽에 걸려 있는 쇠사슬이 그들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였다.
아랍인들은 서아프리카로는 북아프리카의 사막을 건너 캐러반의 형태로 진출하였고 동아프리카로는 인도양의 무역풍에 얹혀 Dhow(돛단배)를 이용하여 해상교역로를 텄다고 한다. 아랍상인들은 유럽의 백인들과는 달리 처음 부터 아프리카에 정복자로 등장한게 아니라 무역상인으로 진출하였고 후에 이슬람교도 함께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유럽의 기독교백인들은 아프리카에 첫 발을 들여 놓으면서 이교도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흑인을 노예상품으로 만들었다. 사실 흑인노예에 관한 기록은 서아프리카의 유럽인들 보다 앞서 동아프리카에서 아랍상인들의 무역품목에 노예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미 아랍상인들이 진출한 동아프리카의 해안지방에는 이슬람교도 함께 전해져서 이들을 제쳐 놓고 해안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말라위나 잠비아에서 노예사냥을 하여 잔지바르를 중심으로 노예시장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어쨋든 유럽인이나 아랍인이나 모두 사랑과 평등을 내세우는 그들의 종교관에 저촉되지 않게 하여야 겠기에 흑인노예들을 애써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양심의 가책을 피하려 했기에 아프리카흑인노예들의 고통이 그만큼 더 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아 해변가로 나오니 잔지바르에서 가장 화려한 Dispensary 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은 인도의 상인이 병원으로 지었지만 지금은 잔지바르 문화센터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잔지바르에서 이 건물의 가치는 나무로 만든 복합발코니를 갖춘 인도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는 Beit El Ajaib 건물과 함께 잔지바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마을 중심으로 더 들어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궁전박물관은 수수한 외관과는 달리 술탄의 화려했던 생활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곳으로 수도가 가설되기 전에 침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탱크가 달린 이동식 세면대가 눈길을 끌게 한다. 사실 잔지바르를 지배한 술탄은 아라비아반도의 해상강국 오만왕국으로 한 때는 오만왕국의 수도를 아랍반도에서 잔지바르로 옮긴 적도 있을 정도로 동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발달된 무역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다.
포르투갈과 아랍의 잔지바르 쟁탈전의 유물인 올드포트는 18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잔지바르 스톤타운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그 옆의 잔지바르에서 가장 큰 Beit El Ajaib 은 술탄의 의전용으로 건설되었지만 당시로는 동아프리카최대의 건축물이었고 최초로 전기가 가설되어 놀람의 집(House of Wonder)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4층의 사각형의 건물은 내부에 안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아랍양식으로 내부에는 잔지바르의 역사를 나타내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Beit El Ajaib의 4층 발코니에서 본 잔지바르의 스톤타운은 길에서 본 독특한 모습은 없어지고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의 확대판일 뿐이었다. 처음에 스톤타운이 아랍인들에 의해 집들이 들어 설 때만해도 지붕은 아랍마을처럼 편평한 구조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기에 쏟아 붓는 빗물을 주체하지 못하여 양철슬레트를 삼각형으로 세워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을 피하고 우기에는 빗물의 압력에서 건물을 보호 할 수 있게 바꾸었다고 한다.
잔지바르의 스톤타운을 벗어나니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펼쳐진다. 여기도 분명 아프리카일진데 어디 이곳이라고 동물의 세계에서 소외 될 수 있겠는가. 남쪽의 키짐카지해변에는 돌고래가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서는 멸종되어가는 Red Colobus Monkey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도 무척이나 특이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