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장모님은 카톨릭신자이십니다. 오래 전부터 장모님은 성지순례를 다녀오시고 싶어하셨지만 중동지방의 국제정세나 여러가지 환경이 노인들이 홀로 쾌적하게 여행하실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막내아들과 함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여행으로 성지순례를 대신하였습니다. 그 막내아들은 “마법의 성”을 직접 작곡, 작사, 노래까지 부른 THE CLASSIC의 멤버인 김 광진 인데 노래실력만큼 효자랍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장모님은 그래도 예루살렘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하신 것 같았읍니다. 우리 장모님이 성지순례를 하시는 방법은 단 한가지, 여행전문가로 나선 제가 모시고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업의사인 제가 병원을 문닫고 가야하는 점 때문에 장모님은 망설이셨지만, 정 부담스러우시면 장인어른이 저보다 더 부자이니 제 여행경비를 대시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드리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따라 나셨습니다.
내친김에 집안의 노인네들을 모두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저의 어머님은 신교신자이십니다. 저의 어머님은 말씀은 안 하셔도 언젠가는 들째가 (저는 둘째아들 입니다.)가 알아서 성지순례를 챙겨주겠지 하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시기에 선뜻 따라 나셨다가 성지순례여행 후에 어머니께서 함께 교회에 나가자고 하실까봐 성지순례여행에 관심이 없으신 척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 못지 않게 여행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정말 싫으실리는 없답니다. 저는 노래를 못하는 실력만큼 효자랍니다. 제가 노래방을 절대로 안 가는 이유를 아시면 제가 얼마나 효자라는 것도 아실 겁니다. 46년을 모시고 살았는데 저의 아버님의 속 뜻을 제가 모를리 없겠지만 그래도 아버님의 체면을 세워드려야 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지금 은퇴한 의사이시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으십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역사에 심취하셔서 직접 베이징과 타이페이까지 가셔서 서점을 순례하실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님께 이번 여행에 나서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방문한다는 구실을 드리니 아버님도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여행에 함께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버님도 아마 말씀은 안 하셨지만 은근히 제가 함께 가자고 조르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사위의 비행기표까지 대시느라 나서지 못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부모님과 고모님, 그리고 장모님과 장모님의 사범학교 동창생등 모두 나이를 합하니 350세가 넘는 5분의 집안 어른으로 “노친네 성지순례단”을 결성하였습니다.
이스라엘로 가는 길은 아직 직항편이 없으므로 여러 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북유럽을 경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노인네 모두들 서유럽은 다녀오셨지만 북유럽여행은 처음이십니다. 이렇게 경유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랍니다. 일부러 자기가 다녀오지 못한 지역을 경유지로 하면 추가항공료 없이 보너스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행히 스칸디나비아항공이 도쿄를 경유하여 스톡홀름과 코펜하겐에 취항해서, 갈 때는 Stockholm, 올 때는 Copenhagen을 경유하여 하루씩의 관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성지순례여행은 힘든 코스입니다. 대부분 성지순례 단체여행에 나서시는 분들은 자녀들 도시락걱정을 안 해도 되는 노년층이 많은데, 여행사나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인도하시는 목사님들은 신앙심이 뒷받침된 욕심에서 무리한 일정을 잡게 됩니다. 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는 할머니 한 분은 성지순례에 나셨다가 천당까지 가실 뻔 했다며 다녀오신 후에 입원까지 하셨읍니다. 새벽에 시내산을 오르는데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니 함께 가신 다른 할머니가 “저 할망구는 신앙심이 없어서 문제야 !” 라는 핀잔에 오기로 기를 쓰고 오르셨다가 막상 예루살렘에서는 호텔방에서 파스만 붙이고 꿈쩍 못하셨다고 합니다.
성지순례라고 고행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여행은 어디까지나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행이 불편한 어른들을 위하여 코스를 조정하였습니다. 다행히 이스라엘에는 7인승 벤츠택시가 있어서 택시로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워낙 물가가 싸서 25인승 냉방버스를 이용하였읍니다.
노친네 성지순례팀은 예루살렘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감람산 위에 잡은 Seven Arch Hotel에서 본 예루살렘 구시가의 전경은 할머니들을 감동시켜드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호텔이 위치한 곳은 아랍인 거주지역이지만 오히려 더 안전한 곳이기도 하죠. 막상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깔끔 떠는 유대인보다는 풋풋한 정이 있는 아랍인 택시운전사들이 정이 듭니다. 제가 굳이 이 호텔을 찾은 것은 이곳에서는 예루살렘의 전경이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 중에서도 황금빛 돔을 가진 바위사원 ‘Dome of Rock’ 이 가장 돋보입니다. 그러나 이 황홀한 바위사원은 이슬람사원으로 그 자체는 기독교성지는아니지만, 그 사원이 있는 장소는 예루살렘과 관련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한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기도 하며 바로 오늘날 예루살렘의 정세가 복잡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10월초에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소년이 총격으로 숨진 유혈충돌사태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도 바로 이 바위사원옆에 있는 엘악사사원(EL AQSA)에 이스라엘의 야당정치인이 방문하여 아랍사람들을 자극했기 때문이죠.
예루살렘성의 입성은 사자문 LION GATE(또는 STEPHEN GATE 라고도 합니다)에서 시작합니다. 성문을 지나면 곧 오른쪽에 ‘빌라도의 집’ 있습니다. 이곳에서 골고다 언덕으로 향한 이길은 “고난의 길”(VIA DOLOROSA)라고 부릅니다. 많은 성지 순례객들은 고난의 길을 오르면서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지라고해서 찾아 왔더니 온양의 현충사나 천안의 독립기념관 정도까지는 몰라도, 이건 완전히 시장바닥이니 기가 찰 노릇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대교 국가이지 기독교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이스라엘 하면 “예수님의 나라”를 연상하여 이스라엘을 기독교 국가나 친기독교국가로 생각하지만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은 그 역사적인 배경을 함께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별개의 종교랍니다. 완만한 경사길인 고난의 길은 올라 갈수록 점점 좁아지며 마침내는 복잡한 아랍인들의 시장골목이 나타납니다. 도중에서 베로니카여인이 십자가를 진 예수님 얼굴의 땀을 닦은 곳,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곳 등 예수님의 발길을 따라 기념이 될 장소 14곳을 기린 14처(14 STATIONS)가 나타납니다.
완만한 경사길의 복잡한 시장골목을 지나면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성분묘교회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은 성지순례단들의 가장 중요한 방문지가 되는 곳인 만큼 항상 많은 인파로 붐비며 대규모 성지순례단이 있을 경우는 내부를 둘러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성분묘교회를 보면 오늘날 기독교계가 안고있는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이 기독교지역, 아르메니안지역, 유대인지역, 아랍지역으로 넷으로 분할되듯,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 위에 지은 성분묘교회는 콥틱교회, 에디오피아교회, 프란체스코교회등의 여러 기독교계파에 의해 분할 관리되고 있어서 오늘날 기독교의 분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성분묘교회는 (HOLY SECULPCHRE CHURCH)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받아들인 콘스탄틴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왕비에 의해 세워진 이래 여러차례 파괴와 재건, 증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정문을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계단 위로 오르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곳에 세운 제단이 보입니다. 그 제단 아래, 정문에서 정면으로는 예수님이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과정을 그린 벽화가 있으며 바로 앞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석판이 있읍니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의 무덤이 보이며 이외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지기 전에 갇히셨던 동굴감옥 등과 그 후에 세워진 예배실등이 모두 한 건물안에 들어서 있습니다.
고난의 길의 마지막인 성분묘교회를 돌아보면 이제는 구약의 세계로 가봅니다. 성분묘교회에서 올라 온 반대 방향으로 나가서 아랍지구로 들어서서 좁은 골목길로 내려가면 신전의 언덕이 있읍니다. 이 신전의 언덕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성전을 세운 곳이며 헤롯왕 때에 대규모로 증축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예루살렘성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황금지붕(Dome of Rock)을 가진 Omar Mosque와 그 옆에 엘악사 사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슬람세력이 지배하고 있지만 바로 이곳에 예루살렘의 고민이 있습니다. 엘악사사원은 원래 교회로 지어졌으나 후에 이슬람사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마르모스크는 7세기말에 세워졌지만 바로 이 장소가 중요합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이며 후에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신전의 언덕은 아브라함 시절의 역사를 공유하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성지이지만, 현실적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은 이스라엘에서는 미미하므로 결국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서로 양보 못하고 대립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신전의 언덕을 둘러싼 성벽중에서 유대인지구에 접한 벽은 ‘통곡의 벽(WESTERN WALL)’으로 유대인들한테는 매우 소중한 성지가 됩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의해 쫓겨난 이후로 나라를 잃은 슬픔을 이곳에서 통곡을 하며 그들의 메시아의 강림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곳 이죠.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와는 달리 메시아는 아직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언젠가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에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가가서 돌아볼 수 있지만 유대인과 같이 머리에 ‘키바’ 라는 모자를 써야 합니다. 이 모자를 미리 준비할 필요는 없으며 입구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습니다. 통곡의 벽은 가운데에 철책으로 분리되는데 유대인들한테도 “남녀 7세부동석”이 엄격히 지켜지는가 봅니다. 심지어는 시내버스나 공원의 벤치에서도 유대인 여성 옆에 이방인 남자가 앉으면 노골적으로 씩씩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성지순례단이 통곡의 벽에 와서 유대인들의 틈에 섞여 기도를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읍니다. 이 장면을 유대인들이 보면 아마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는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에 입각한 민족종교로 이방인 유대인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통곡의 벽 옆에는 분문(DUNG GATE)이 있는데 아마 예전에는 이곳이 쓰레기밭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분문 바로 밖에는 시내 각지로 나가는 버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통곡의 벽으로 통하는 곳곳은 유대인이 특히 많이 몰리는 곳이라서 그런지 보안이 철저합니다. 아랍거리와 통하는 곳은 금속탐지까지 있으며 분문 밖에도 무장을 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합해서 350세가 넘는 노인네들을 모시고 나왔더니 어느덧 반나절이 지났습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예루살렘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호텔앞 정원에서 할머니들은 대화를 나누시면서 오늘 하루의 감격을 소중하게 간직하실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