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의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은 사해지방과 베들레헴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른들을 모시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니는 것은 무리여서 택시를 전세 내었읍니다. 중동지역에는 세루트라고 불리는 7인승 합승택시가 있어서 편리하였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20년은 족히 되었을 벤츠택시들인데 그 중에는 쓸만한 것도 제법 많습니다. 아랍인 택시운전사는 종교에 관계없이 동양에서 온 기독교 성지순례단을 위해 자세히 안내를 해줍니다.
우선 아침식사후 유데안사막을 지나 제리코(여리고) JERICHO로 내려갔습니다.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인 예루살렘과 달리 제리코는 해면보다 350미터나 낮은 저지대 입니다. 도중에 사막길을 내려오면 해수면과 같은 높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제리코에는 인류 최초의 도시형태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으며 제리코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서 성벽주변을 7번 나팔을 불며 돌면 성벽이 부서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곳 입니다.
제리코의 외곽에는 예수께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시고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 MOUNT OF TEMPTATION이 있습니다. 성서에 언급된 유명한 산이라고 해서 굉장하리라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볼품없는 하나의 돌산입니다. 중턱에는 그리이스정교의 수도원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제리코에서 자동차로 남쪽으로 향하면 곧 요르단과의 접경지역에서부터 왼편에 사해가 시작됩니다. 오른쪽은 돌산이 이어지는데 제리코에서 약 30분 내려오면 쿰란 QUMRAN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사해사본이라 불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1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성경의 사본이 발견된 곳입니다. 쿰란의 사해사본의 의미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만 아니라 오늘날의 성서가 발견된 성서의 내용과 많은 부분이 일치하여 오늘날 사용하는 성경의 내용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뜻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지역은 험준한 돌산이므로 노친네들한테 설명만 해드리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사해를 따라 남쪽으로 약 1시간 내려 오면 휴양지인 에인게디 EIN GHEDI 가 있습니다. 사해는 염분과 광물질이 높은 농도로 녹아있어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지만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답니다. 어쨋건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도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는데 물이 눈에 들어가면 매우 쓰라려서 이곳에서 평영이니 지유영이니 하면서 수영실력을 뽐내는 사람은 당장 경고가 날아옵니다. 해변의 곳곳에는 새까만 흑인들이 보이는데 알고보니 검은색깔의 머드팩을 한 사람들이더군요. 사해에서 수영하는 방법은 눈 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 배영이 적합합니다. 얼굴을 약간 들고 팔만 앞뒤로 움직여야지 물장구를 쳤다간 큰일납니다.
그런데 물에 뜬다고 수영이 쉬운 것은 아니랍니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려면 발을 땅에 닿게 내려야 하는데 부력이 너무 커서 그냥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몸을 뒤로 제낀 후에 큰 반동을 이용하던지 엉덩이가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얕은 곳으로 나와야 가능합니다.
재미있는 체험을 하고서는 베들레헴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30분 남쪽에 있습니다. 첫째 날은 예루살렘 옛성에서 많이 걸어야 해서 피곤하실 것 같아 쉬셨고 이날은 모두 자동차로 다니기 때문에 베들레헴을 둘째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내려가면 예루살렘의 중심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교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시골의 마굿간을 연상하였다면 크게 빗나갑니다.
베들레헴의 마굿간에도 교회가 들어섰습니다. 교회의 입구는 웬만한 사람도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데 이슬람교도들이 말을 타고 드나드는 꼴을 볼 수 없어서 문을 낮추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예수탄생교회 CHURCH OF NATIVITY로 불리는 베들레헴의 교회에 들어서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인데 당시 마굿간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동굴모양의 형태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좁은 방으로 항상 순례객들이 모여들며 이곳에서 예배라도 드리면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는 은별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으며 그 옆의 요람은 아기예수를 처음 모신 장소입니다. 이 조그만 방을 반대편 계단으로 나오면 또 다른 제단이 있으며 그 옆에는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CATHERLINE 예배당이 있습니다. 베들레헴교회도 예루살렘의 골고다언덕에 세워진 성분묘교회처럼 하나의 교회안에 그리이스정교, 아르메니아정교, 프란체스코, 카톨릭등 여러 교파가 분할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날아와서 바로 옆 나라의 피라미드를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깝지요. 그래서 저희 노친네 순례단은 밤 비행기로 카이로로 날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가장 짜증나게 하는 것은 공항의 보안검색이랍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994년 첫 번째 방문하였을 때에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공항에서 보안요원과 2시간 입씨름하면서 비행기까지 놓칠 뻔 한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집트를 세 번째 방문하고 하루동안 예루살렘을 돌아보기 위해서 잠간 들렀었는데 보안요원이 제 여권의 출입국기록을 살펴보면서 이집트는 자주 가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이틀만에 떠나냐면서 짐검사를 까다롭게 하더군요. 화가 난 저는 좋은 영화는 10번 보아도 질리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볼게 없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며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습니다. 저도 질 수 없어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말라며 대들었죠. 결국은 그 보안요원의 상사 인듯한 사람이 와서 이틀 동안 이스라엘에서의 행적을 자세하게 얘기하라고 하여 저는 예류살렘에서 촬영한 비디오를 되돌려서 보여주자 그때서야 협조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출국할 수 있었답니다.
보안요원들은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방위소집 받은 정도의 젊은이들로 보이며 전문성은 전혀 없이 리스트에 있는 수많은 질문을 기계적으로 하는 정도인데 정말 여행객들을 짜증나게 한답니다. 평소에도 잘 나오지 않는 영어로 싸울려니까 정말 진땀이 났읍니다. 다행히도 제가 영어를 더듬으면 그 보안요원은 제가 영어를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흥분하여 말을 더듬는 것으로 받아들여주더군요. 다시는 내가 이스라엘에 오나보자고 다짐했건만 저는 노친네들을 위하여, 그리고 동료치과의사들을 이끌고 테마여행이란 구실아래 두 번이나 더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카이로는 텔아비브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이집트는 중동의 이슬람국가중에서는 서방세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으로 다른 이슬람국가들 보다는 사회규율이 덜 엄격한 편입니다. 주변의 아랍국가들에서 왕족이나 부자들도 놀고 싶으면 주말에 카이로로 몰려든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모로코를여행할 때에 만난 한 무슬림은 이제 이집트는 엉터리 이슬람국가라며 빈정대는 얘기도 한답니다. 이집트는 사막의 나라로서 가보기 전에는 이집트여행은 좀 힘들겠구나하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집트의 사막기후는 무더운 방콕이나 싱가폴 등의 동남아시아지역 보다는 오히려 지내기가 좋습니다.
카이로에서는 중심가이자 나일강변의 카이로 힐튼호텔에 묶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4500년 전 이집트 고왕국시대의 유적입니다. 당시의 파라오(왕)들은 죽은 후에도 영생한다고 믿어서 자신의 즉위기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 큰 행사였습니다. 피라미드는 카이로시내의 외곽지역에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아온 피라미드는 사막만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구경하기 위해 굉장히 고생을 해야되는 줄 알지만 천만에요.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서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묶은 카이로힐튼호텔 바로 옆에는 카이로국립고고학박물관이 있으며 길 건너의 클레오파트라 호텔에는 구룡이라는 한국식당이 있어서 편리합니다. 카이로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유적창고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유품이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층에 있는 투탕카멘의 유품입니다. 신왕국시대의 소년왕 투탕카멘은 9세에 즉위하여 18살에 죽은 비교적 권위를 누리지 못한 편이었지만,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이 대부분 도굴당한데 비해 투탕카멘의 무덤은 유일하게 완전히 보존된 상태에서 발굴되어 그의 고고학적인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 이집트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고대문명을 찾아서”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마침 카이로에 머물렀을 때에 고모님의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고종사촌인 갑표가 회사의 카이로 지점 직원한테 부탁하여 객실로 케익을 보내주어 일행들이 깜짝 놀랐읍니다.
카이로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텔아비브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에는 북쪽의 갈릴리호수를 찾아갔습니다.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총선시기 였는데 TV뉴스에서는 한국의 총선 뉴스는 없고 판문점에서 총격사건만 보도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에서는 레바논국경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어수선했는데, 이스라엘에 와 있는 우리 일행은 한국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서울의 식구들은 오히려 우리일행의 안전이 걱정되었답니다. 어쨋든 뉴스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도 휴전선의 총성과 관계없이 평화롭게 총선이 진행되었듯이 이스라엘에서도 레바논의 총격사건과는 관계없이 아주 평화로운 상태에서 갈릴리여행에 나섰읍니다.
갈릴리는 텔아비브에서 2-3시간 걸리는 곳입니다. 아무래도 택시도 좀 좋은 것을 골라야겠기에 노인네들보다 일찍 일어나 시내에서 7인승 벤츠 리무진을 찾아냈습니다. 이스라엘의 도로사정은 아주 좋은편 이어서 생각보다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자렛은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지냈던 곳이지만 지금은 어떠한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단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곳으로 믿어지는 동굴자리에 현대식의 카톨릭교회가 세워져 있을 뿐 입니다.
마침 우리일행이 방문하였을 때에는 다른 미국에서 온 성지순례팀에서 예약된 듯한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은 감격에 북받혀 눈믈을 흘리셨읍니다. 최근의 외신에 의하면 이 주변에 이슬람사원의 건축허가를 내주어 또 하나의 분란거리가 생겼다고 합니다.
나자렛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갈릴리호수가 나옵니다. 워낙 큰 호수라서 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요. 갈릴리지방은 예수님께서 복음전도의 주요 무대로 갈릴리바다의 폭풍을 잠재우거나, 물위를 걷는 기적,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곳이며, 야곱, 요한, 베드로등의 주요 제자를 받아들이신 곳이기도 합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식당에서는 성지순례를 온 관광객을 상대로 준비한 베드로물고기라 부르는 메뉴가 인기가 있었습니다. 갈릴리호숫가에서 조금 올라가면 가버나움 CAPERNAUM 지역인데 바로 전 탑가TABGA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읍니다. 이 교회는 독일교단에서 재정 지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입구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서도 있었습니다. 갈릴리지방은 이스라엘에서도 온화한 기후와 호수를 끼고 있어서 훌륭한 휴양시설들이 많이 있지만 시간에 쫓겨서 텔아비브로 돌아와 노친네 성지순례단의 성지순례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