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퐁 답사여행을 마치고서는 나름대로 모두의 입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우리의 주도로 찾기 시작하였다. 거액의 예산이 필요한 베트남-체코친선병원에서의 진료제의를 피하고 대신 이번 진료단파견의 테마를 “하이퐁 어린이를 위한 진료”로 정하여 아동병원을 중심으로하는 진료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인천시청에 파견나와 근무하는 하이퐁시 외사과 직원인 NGUYEN여사를 만나 하이퐁시 당국에서 요청한 베트남-체코친선병원 대신 하이퐁시립아동병원을 지원하겠다는 확고한 결정을 통고하였다.
아동병원의 치과에는 UNIT가 2대 있지만 모두 단순한 chair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지 못하고 그나마 일부 기능만 작동 되는 포타블엔진의 힘을 빌려 진료를 하고 있기에 적은 예산으로도 진료능력을 높혀 줄 수 있었다. 우선 사용빈도가 낮은 고가의 의료장비 대신에 Amalgamator를 비롯한 보존치료에 필요한 기구 일체와 자외선소독기 등을 비롯하여 협회예산과 신협지원금 치과기자재업계와 제약회사 등의 지원을 받아 도움으로 모두 약 SD.10000 상당의 물품을 기증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림덴텍에서 제공한 이동식 유니트도 아동병원의 치과시설보다도 월등히 좋아서 이동진료에서 큰 도움이 되었음을 물론이다.
< Cleft Lip 의 수술전 수술후 모습 >
그리고 이번 진료단파견의 테마인 “하이퐁어린이를 위한 진료”의 하이라이트로 전쟁후유증으로 보이는 Cleft Lip & Palate 환자(구순파열 및 구개파열,일명 언챙이)들을 수술해주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 제의는 대학선배인 인하대학병원 김일규 치과과장이 자신의 휴가를 희생시켜가면서 기꺼이 도와주시겠다는 사전허락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 내부적인 어려움으로는 일주일 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하는 자원봉사자를 찾는 일이었다. 결국 진료단원은 실무책임을 맡게 되는 곽경일 사업이사, 초청케이스 김일규 교수 그리고 진정한 자원봉사자로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선교진료 경험으로 많은 조언을 주시고 직접 참여해 주신 엄인석 원장 등 나를 포함하여 4명의 치과의사로 결정되고 그 외 인천시청 국제통상과 직원인 김영연씨와 인천시청에 파견중인 하이퐁외무국직원인 NGUYEN 여사가 행정지원을 맡아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봉사활동기간 동안 통역문제였다. 이번 여행에 NGUYEN 여사가 함께 동행은 하지만 그가 하이퐁에서 우리 진료단과 붙어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베트남에 파견된 KOICA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하여 통역을 지원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으나 대부분 한국어를 공부하는 하노이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명확히 사례비를 명기하지 않은 통역지원자를 모집하는 것은 반응이 없어 애를 태우게 만들었다.
다행히 하이퐁에 진출한 한국업체 Hanvico에서 회사의 공식통역원과 박광현 부장님의 가족이 방학을 이용하여 자원봉사자로 나서 쉽게 해결이 되었다. 특히 하노이 외국인학교에 재학 중인 박수민(14세), 수희(11세) 두 자녀가 통역으로 나선 것은 “하이퐁 어린이를 위한 진료” 테마에 멋지게 부합되는 일이었다.
내가 이미 베트남을 몇 번 여행한 경험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은 참 다루기 힘든 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관료들의 경우는 더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도 베트남은 중국과는 국경문제로 껄끄러운 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베트남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찌 보면 우리 나라가 뿌리 깊은 유교사상으로 인하여 단점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들이 베트남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 하나가 자존심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노이사람들은 미국과 싸워 이긴 승리자라는 자부심은 무척 대단한 것이다.
때문에 비록 지금은 경제가 낙후되어 외국의 원조를 받고 있지만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내가 지난 번 그들과 회담을 할 때에도 어디까지나 내가 베푸는 입장인데도 모든 결정권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어쨋든 이 사업이 할 수 없이 떠밀려서 시작한 치과진료봉사단파견이지만 사업을 무사히 마치려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될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짐들에는 의료봉사가 아니라 상호 동등한 국제교류란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양국기를 나란히 인쇄한 스티커를 붙히고 친선교류단이란 것을 강조하였다. 이런 조치는 NGUYEN여사한테 부터 좋은 반응이 나왔다. 아마 모든 것이 자기가 노력한 댓가로 허이퐁시의 상관한테 평가를 받게 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출국 전 날에는 7월 초 취임한지 불과 며칠 안 되는 안상수 인천시장께서 우리 진료단을 집무실로 초청하여 취임 후 첫 번 대외사업이 되는 베트남치과진료단파견에 관심을 보여 주었다. 사실 치과진료단이 민간단체의 구성원으로 되어 있지만 인천시청의 이름으로 파견되는 것이니 인천시장으로서는 대외적인 첫 행사가 되는 셈이었다.
< 사진 : 하이퐁으로 출발 전날 안상수 인천시장이 진료단을 집무실로 초청하였다. >
드디어 7월 6일, 진료단은 약 8일간의 여정으로 하노이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우리들이 가져가는 짐은 소독기 등의 의료기자재와 무겁고 금속제픔인 개인치료기구들로 휴대상한선을 넘었지만 다행히 대한항공의 지원으로 추가요금은 피할 수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NGUYEN여사의 짐은 우리 일행을 놀라게 만들었다. NGUYEN여사는 인천에 파견근무한지 6개월 만에 고향에 가는데 완전히 보따리장사 수준을 넘는 짐을 가져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기구들 때문에 중량이 엄청 초과되어 우리들은 개인용 짐은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NGUEN여사의 짐은 귀국하여 직장 상사들한테 주는 선물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7월의 하이퐁의 찌는 듯한 날씨는 가히 살인적으로 진료팀의 봉사의지를 시험하듯 하였다. 하노이공항에 내려 기념촬영을 하려 하였으나 습도가 높은 무더위에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 촬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공항 밖에는 통역을 맡아 주기로 한 Hanvico의 박광현 부장님 가족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그런데 하이퐁에서 보내준 차량은 봉고차 1대로 짐을 가득 싣고서 우리 일행이 겨우 끼워 앉을 정도였는데 문제는 이 차가 짐을 다 싣자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수시로 시동이 꺼져서 우리 일행 뿐 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박부장의 가족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판국에 에어컨은 켤 수도 없었고 늦은 밤이라 웬만한 신호등은 무시하고 달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시동이 꺼지면 일행이 내려 뒤에서 밀며 결국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하이퐁시의 한 호텔에 도착하였다.
우리 진료팀은 세 팀으로 나누어 역할을 분담하였다. 인하대 김일규 교수와 곽경일 원장은 수술팀을 맡고 엄인석 원장은 유치원 및 고아원 순회진료, 그리고 총 책임을 맡은 나는 아동병원에서 외래환자들을 담당하였다. 인천시직원인 김영현씨는 NGUYEN여사와 함께 수시로 돌아 다니며 행정지원을 맡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 경직된 관료들의 행태는 진료첫 날 부터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진료장비를 준비하느라 출발이 늦은 터에 진료 전에 외사국에 먼저 들러서 외사국장한테 인사를 해야 한다고 NGUYEN여사가 설치는 데에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사람은 외무국 직원이라 상사한테 잘 보이는 것이 진료가 제대로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듯 하였다. 아무리 남의 나라이지만 그런것 까지 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진료팀이 외사국장한테 인사를 할 이유가 없고 우리는 바쁘니 외사국장이 시간이 날 때 아동병원으로 오라고 전해달라며 맞섰지만 지원된 차량이 외사국 소속이라 기사는 결국 차량을 외사국으로 돌렸다. 이쯤되면 나도 질 수는 없는 일이라서 다른 일행들은 차 안에 있으라고 부탁하고 나 혼자 Dr.Hung 사무실로 올라가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차 한잔도 하지 않고 내려왔다.
< 사진 : 하이퐁 아동병원 앞에서 진료단원과 아동병원장과 함께 >
아동병원에는 이미 한달 전부터 한국의 치과의료진이 방문하여 진료를 한다고 선전을 하였기에 많은 환자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우선 오전은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아서 간단한 진료부터 시작하고 오전접수를 마감하고 가져간 진료기구를 펼쳐 놓으니 아동병원의 치과의료진들은 부러운 눈빛이다. 내가 통역을 통해 이 기구들은 모두 진료가 끝난 후에 아동병원 치과진료실에 기증할 것이라고 하자 환성을 지르며 아이들 처럼 좋아했다.
< 사진 : 진료단의 실무책임을 맡은 인천시치과의사회 사업이사 곽경일 원장 (현 부회장) >
하이퐁의 여름은 정말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웠다. 특히 습도가 높아서 더했다. 에어컨 커녕 변변한 선풍기도 없이 진료를 해야 하는 진료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 몸에 땀이 흐르는데 이미 내 옷은 소금물로 빨래를 한 상태였다. 강한 조명등을 이마 위로 하고 아이들의 구강내를 들여다보며 치료를 하는데 얼굴에서 흘러 내린 땀이 아이들의 입안으로 뚝뚝 털어져도 베트남의 보호자들 한테 그 땀은 항의의 대상이 아니라 멀리 타국에서온 천사들이 몸으로 뿌려주는 링거액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 사진 : 흐르는 땀이 어린이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머리를 멀리 하고 있는 필자 >
그래도 진료팀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에서 진료를 한 팀은 수술팀이었다. 아무리 후진국이라고 해도 수술실 만큼은 냉난방 시설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아동병원의 수술실도 냉방시설 만은 완벽하였다. 결국 찜통과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술진행상태가 궁금한 듯이 수술실을 들락 날락 하는 것 뿐이었다.
< 사진 : 구순파열환자의 마취를 기다리는 집도의 김일규 인하대학병원치과과장 (전면) >
나와 거의 체격이 비슷한 엄인석 원장은 고아원과 유치원 순회진료팀을 맡아 비교적 좋은 시설에서 진료를 한 것 같았지만 시청직원이 촬영해온 사진을 보면 웃도리는 완전히 땀에 절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유아원도 국가가 관리하는데 엄원장이 진료한 곳은 당 관리들의 자녀가 다니는 유아원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의 웬만한 유치원의 시설과 버금 간다고 한다.
< 사진 : 유치원과 고아원을 순방하며 이동진료를 맡은 엄인석 원장 >
그동안 모두들 열심히 준비하고 헌신적으로 진료에 나선 덕분에 이번 체류기간 동안에는 지난 번과는 달리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진료 첫 날부터 보건국장이 환영만찬에 초대하였으며, 우리나라로 따지면 광역자치단체의 부시장에 해당하는 하이퐁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인 Madame Shin 여사가 우리나라의 시의회격인 인민회의평의회 정기대회 기간 중인데도 불구하고 근무시간을 넘겨가며 우리 일행을 파격적으로 맞아 주었다.
이날은 NGUYEN여사는 극성이 극에 달하여 일부러 골탕을 먹이기로 하였다. NGUYEN여사는 한국에서 부터 인민위원회를 방문할 때에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를 하였지만 그 날씨에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최소한 나한테는 고문에 준하는 징벌인 것이었다. 결국은 다른 진료단원은 반팔에 넥타이 차림의 약식으로 참석하고 나만 정장을 하기로 하였지만 어림도 없는 일 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료를 하면서 땀을 비오듯 흘리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진료단에 대한 평가가 좋아서 자신을 얻었는지 NGUYEN여사는 나한테 큰 선심을 쓰듯 나도 상의는 입지 않고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착용하라고 선심을 베풀듯 일러 주었다.
약속시간에 늦을까 벌써 부터 NGYEN여사의 재촉이 끊임 없는데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오늘 저녁 인민위원회를 방문할 때 입으려고 와이셔츠를 한 벌 세탁을 밑겼는데 호텔에서 내 와이셔츠를 잃어 버린 것이다. 내가 태연하게 노타이에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니 NGUYEN여사는 거의 까무라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갈아 입을 옷이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초지종을 설명들은 NGUYEN여사는 호텔사장을 불러내어 지금 인민위원회를 방문해야 하는데 이 지경을 만들었다고 난리를 피워 호텔직원이 총동원되어 빨래방의 세탁물을 뒤져 간신히 와이셔츠를 찾아 내었다. 이미 출발시간은 조금 넘겼고, 어차피 늦어야 우리들 탓은 아니니 나는 여유를 부리며 일부러 방에 올라가서 세수도 다시 하여 땀을 닦고 와이셔츠를 갈아 입고 넥타이는 바지주머니에 숨기고 내려왔다.
이젠 넥타이타령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낮에 생각보다 땀을 많이 흘려서 새 넥타이가 없으니 그냥 가자고 하자 NGUYEN여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오늘의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왜 말기를 못 알아 듣느냐고 난리를 피우며 운전기사한테 빨리 넥타이를 사러 시장에 들러 인민위원회로 가자고 명령하고 일행을 재촉한다. 이미 인민위원회와 반대방향인 시장을 향하여 자동차를 돌리자 내가 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내어 매었는데 그런 내 모습을 지켜 본 NGUYEN여사의 표정은 마치 잃어버렸던 당첨된 로또 복권을 찾은 표정이었다.
인민위원회에 조금 늦게 도착하자 부위원장인 Madame Shin여사가 입구에 마중을 나와 있었고 그렇게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웠던 외사국장 Dr.Hung은 보건국장과 함께 거의 부동자세로 그 뒤에 서 있었다. 입구에서 통역을 통해 얘기하기도 번거로와 내가 통역을 체치고 직접 우리 진료단원을 소개하고 Shin여사와 내가 나란히 접견실 중앙홀로 입장하자 하이퐁시 국장들과 NGUYEN여사가 그 뒤를 따르니 자연스럽게 우리 진료단도 내 뒤를 따르게 되어 대학선배인 김일규 과장은 졸지에 내 수행원이 된 셈이 되었다. 메인홀 가운데에 Shin여사와 내가 나란히 앉고 그 양쪽 앞으로 서로 마주보며 하이퐁공무원들과 우리 진료단이 앉았는데, 마치 TV에서 보았던 외국의 귀빈들이 청와대를 방문하는 장면을 연출하듯 하였다. Shin 여사와 내가 통역을 사이에 두고 환영사와 인사말을 나누는데 아동병원에서는 내가 조크를 섞어 가면서 인삿말을 하여 아동병원 의사들을 킥킥 웃게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 자리는 워낙 엄숙하여 나의 농담 섞인 연설에도 하이퐁 공무원들은 얼굴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긴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한국의 베트남참전으로 미묘한 관계에 있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때가 마침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기 전이라서 Shin여사와 나는 월드컵을 소재로 무리없는 인삿말을 나눌 수가 있었다. 여기서 한 마디 빠뜨릴 수 없는 것은 Hanvico회사의 공식통역원인 Mr.Khoang의 능숙한 통역실력이다. 그는 70년대에 김책공과대학을 유학한 사람으로 그때 한국어를 배운것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 Hanvico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방문할 때는 우리 나라의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자치단체장이 취임한 직후였다.이런 친선방문행사에는 서로 단체장의 이름으로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라고 하여 나는 안상수 인천시장을 대신하여 선물을 Madame Shin여사한테 주었으며 Madame Shin여사도 나한테 인천시장한테 증정하는 선물을 주어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서 김영연씨한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 진료단 파견행사는 전임 최기선 시장 때부터 진행되었던 것이고 이미 최기선 시장은 하이퐁의 고위관리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선물이 치과진료단 파견사업의 파트너였던 전임시장의 몫이 되어야 할 지 아니면 일주일 전에 취임한 신임시장의 몫이 되어야 하는지도 따져 봐야 할 상황이었다. 단순한 친선방문이라면 당연히 현직 시장의 몫이지만 이번 방문은 전임 시장때부터 오랫동안 준비된 행사이기 때문에 애매한 것이었다. 그러자 공식회담이 끝나자 Mr.Khoang은 재빨리 Dr.Hung한테 찾아가서 귓속말로 이런 사전을 얘기하여 똑같은 선물을 다음날 우리 숙소로 보내주겠다는 대답을 얻어내었다.
하이퐁의 공무원들이야 그들의 상관과 함께하는 자리라 긴장되고 딱딱한 자리였지만, 우리 진료단도 이런 모습을 TV가 아닌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인민위원회의 방문에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이런 맛에 권좌에 오르면 내려오기 싫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개 시의 부시장의 위상이 그럴진데 그 위는 어떨까를 생각하면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 사진 : 하이퐁의 보신탕집에서 >
우리가 인민위원회를 방문하는 모습과 진료단이 아동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은 그날 하이퐁 TV 방송을 통하여 방영되기도 하여 이번 진료단의 활동은 현지에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우리 진료단이 아니라 오랜만에 하이퐁의 가족과 재회하고 진료단의 성과가 좋아 상사들로 부터 크게 칭찬을 받은 NGUYEN여사 였다. NGUYEN여사 가족은 우리들을 시내의 개고기집으로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고 그의 자택에서 다과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프랑스 식민시절에 세워진 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외사국에서 오래 근무한 덕에 집안에는 외제 가전제품들이 많아 사회주의체제에서 공산당 간부의 위치가 어느 정도라는 것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날 NGUYEN 여사의 집에서는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는 원래 러시아어가 전공이며 모스크바에서 유학까지 하였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베트남도 경제문제로 개방정책을 펼치게 되자 재빨리 싱가폴에서 단기 영어교육을 받고 현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NGUYEN여사는 베트남진료단파견 문제로 인천에서 부터 몇 달 동안 만나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하이퐁의 진료기간동안 미운정도 쌓게 된 하이퐁의 맹렬여성으로 지금은 하이퐁에 복귀하여 더 고위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하이퐁에서의 마지막날 저녁에는 우리 진료단의 주최로 베트남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자축파티의 성격으로 디너파티를 개최하였다. 장소는 일부러 한국인이 건설한 외인주택단지의 LG 빌리지의 클럽하우스로 정했는데 이곳은 하이퐁의 상류층 주민들한테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곳이라고 하여 병원직원들은 그곳에 초대 받았다는 것에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날 만찬에는 외사국장 Dr.Hung과 보건국장 Dr.Vy 등 하이퐁시의 고위공무원들과 아동병원 치과의료진들, 그리고 통역을 위해 자원봉사를 해준 한비코 Hanvico 박광현 부장 가족과 Mr.Khoang 등이 참석하여 성공적으로 끝난 진료단의 활동을 자축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날은 Dr.Hung이 하이퐁측 인사로는 최고위직이었는데 그는 어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앞에서 굳었던 표정과는 달리 그날 따라 무척 밝은 표정을 짓고 나한테도 유난히 친근감을 보여주었다. NGUYEN여사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내가 현지 답사차 내려왔을 때에 심한 이견을 보여 모두 이번 진료단 파견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생각했던것 보다는 의외로 주위의 반응이 좋아서 인민위원장한테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들 진심으로 진료단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좁아서 그런지 그날 모인 하이퐁측 공무원들과 Hanvico의 박광현 부장은 모두 구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천시청에 파견된 NGUYEN여사도 하이퐁의 외사국에 근무하였을 때의 임무가 명절이 되면 하이퐁에 투자한 외국회사들을 돌아 다니며 모금을 하여 고위공무원들한테 상납하는 일을 했다고 하며 Hanvico의 박 부장과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어쨋든 박부장의 사모님과 두 따님 등 온 가족이 동원되어 우리 사업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회사업무와 관련된 외사국장을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식일정을 마치고 난 후에도 나의 책임은 아직 남아 있었다. 비록 항공일정으로 이틀 밖에 없는 짜투리 시간이지만 개인 희생을 무릎쓰고 참여해 주신 진료단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영화 “인도차이나”로 유명한 하롱베이로 진료단원들을 안내하였다. 내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이 이번이 다섯 번째의 방문이었다. 금년에만 해도 하노이를 세 번이나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봉사도 중요하고 한국에서 기다리는 각자 병원의 환자도 중요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고생만하고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출발부터 잘못 기획된 사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국제적인 봉사사업에 집행되는 예산은 우리들의 이러한 행락놀음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이런 예산이 책정되었다 하여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아동병원의 의료장비를 지원하는데 모두 쏟아 부었어야 할 형편이었다.
진료단장으로서 이러한 고민은 다행히도 모든 예산의 집행이 끝난 후에 마침 새로 취임식을 마친 신임 안상수 인천시장으로부터 베트남진료단이 인천시청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 실행에 나선 감사의 뜻으로 받은 격려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또한 그 돈으로 인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 사진 : 하이퐁 앞바다의 Catba Island 의 절경 >
공식진료가 끝난 것은 목요일이라 금요일 오전 하이퐁 앞바다의 하롱베이를 관광하고 다음날은 하노이에서 일박하고 방콕을 경유하여 귀국하기로 일정을 잡게 되었다. 다행히 모두들 방콕은 첫 번째 여행이라 반기는 눈치였다.
한 가지 이번 봉사활동을 마치며 봉사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겨 보며 내가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반성할 것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이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물자를 협찬받으려고 많은 회사들과 접촉을 하였지만 우리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제약회사나 치과관련제품회사 외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특히 이번 진료단 파견의 테마를 베트남 어린이를 위한 아동병원지원에 맞추었기 때문에 문구회사들의 현품지원을 요청하였지만 반응을 보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든지 남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일을 하려면 그 것 하나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선행이 그들의 이름으로 행하여 졌는지 아니면 나의 이름으로 행하여지게 되는지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봉사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그 행위자체로 끝나야지 남의 도움으로 남의 명성을 가로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멀리 이국에서 봉사활동을 하였지만 나 만의 공이 아니라 후원해준 업체들과 단원들 모두의 공인데 진료단장을 맡고 보니 그 모든 공을 내가 독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된다. 같은 이유로 통역을 지원해준 박 부장가족의 이름도, 물품을 후원해준 업체의 이름들도 함께 빛날 수 있을 때에 남한테 봉사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한교의 (연세의 “세”는 연세대학교의과대학의 뿌리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따온 것이다.) 이름이 구한말 서양식 의학교육기관을 최초로 세운 알렌박사나 에비슨 박사의 이름에서 따오지 않고 그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미국의 교단에 모금을 지원하였을 때에 거금을 기부한 클리블랜드의 사업가였던 세브란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듯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만족과 보람을 느끼고 재정적인 기부를 한 사람의 이름을 남겨줄 줄 알아야 기부문화도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료단활동을 인천치과의사회회원들께 보고 드릴 수 있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수고해주신 진료단원은 물론 진료단파견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협회 임직원 및 인천치과신협, 협찬회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잘못된 기획을 하였지만 내가 진료단장을 맡은 후 변경된 계획을 추진하는데 기꺼이 따라준 인천시청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