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일요일이었습니다.장춘방문의목적을달성하고내일낮비행기로가벼운마음으로귀국할수있게
되어무척다행스러웠습니다.그리고모처럼장인어른께큰효도를하였다는생각에큰짐을벗은것만같
은기분이들었습니다.
오늘은가벼운마음으로연길시를다녀오려하였습니다.미리호텔데스크에부탁하여욍복기차표까지구입
하였습니다.그런데아침식사시간에장인어른은장춘의조선족노인들을만나고싶다고하셨습니다.만철
병원에서의55년전의추억은되살리셨지만,당시신경(新京,만주국당시의이름)시절함께고생을하면서
의지하고살았던동포들을만나고싶으신것이었습니다.
조선족을찾는것은통역과둘이서다녀오시겠다며저를보고모처럼의중국여행인데저혼자라도연길은
다녀오라고하셨습니다만,장인어른을이곳까지모시고온이유가있는데그럴수는없는일이었습니다.
저야언제라도연길이야찾아갈수있었지만장인어른은언제또장춘땅을밟으시겠습니까.저는아침식사
를마치고통역을맡은김양한테전화를하였습니다.김양의얘기로는그날은마침일요일이라장춘시내의
변두리한마을에조선족촌이있어서주말마다주례모임이있다고알려주며그곳의노인회장을개인적으로
알고있다며연락을해보겠다고하였습니다.
다행히그날은추석을앞둔일요일이라평소보다는의미가있는큰주례모임이될것같았습니다.택시를
타고그마을을찾아가는데옆으로벤츠와링컨컨티넨탈등최고급승용차들이신혼부부를태우고퍼레이드
를하는모습이눈에보였습니다.그앞뒤로는무개차에올라탄카메라맨이신혼부부의퍼래이드를촬영하
고있었습니다.중국에서최고급벤츠승용차가결혼식에동원되다니……이런모습은중국의어느도시
에서나흔히볼수있는풍경으로베트남에서도여러번구경한적있었습니다.죽의장막이걷히고개방의
물결이넘쳐서이제는결혼식은어느자본주의의국가못지않게성대하게치루는것같았습니다.
골목을여러번돌아가폐허와다름없는허름한마을에조선족모임이열리는곳을찾았습니다.그동안우
리일행은현대식도시로발전한장춘도심의특급호텔에머물며만철병원의후배들과최고의음식점만다
녔습니다.그리고호텔주변의백화점에서학생들로가득찬맥도날드햄버거가게와,LG과삼성제품으로가
득찬백화점을보면서장춘의발전에감탄을하였습니다.우리는장춘의화려한반쪽의모습만볼수있었
던것이었습니다.
그러던것이이젠장춘의소외된지역의어두운모습을보게된것입니다.무너진담벽과지붕,너무낡아
서이사를갔는지,아니면사람이살지않아서폐허가되었는지모르겠지만하필우리의동포를이런곳에
서되다니서글픈일이아닐수없었습니다.어느사회나밝은면과어두운면이있으며빈부의차이가있
게마련이지만,반가운마음보다는침울한생각이앞섰습니다.
미리김양의전화를통하여한국에서온노인한분이방문한다는것을알고는있었지만무슨이유로오는
지도모르고관심도갖지않았던것같았습니다.그러자막상마치방송기자처럼커다란비디오카메라와
육중한스틸카메라를목에주렁주렁건사람과통역까지데리고온한국에서온노신사가나타나니모두들
호기심으로가득차우리일행주위로몰려들었습니다.장인어른은노인회회장님과인사를나누고장춘을
찾게된배경과이곳까지오게된이유를설명하였지만이미조선족과우리들이사용하는단어들과억양은
차이가있었기에김양의중국어로보충설명까지필요하게되었습니다.
회의실안은차가운바닥의넓은빈방으로주말에만사용료를내고조선족노인회에서사용한다고합니다.
벽을따라가지런히놓여진의자에삼삼오오모여서담소를나누고있었고카세트에서나오는우리가요를
따라춤을추는사람들도보였습니다.그리고앞단상의칠판에는"고향의봄"의가사가적혀있었습니다.
노인회간부들과는일일히악수를나누며인사를하였지만그외의사람들은영문을몰라서수행원정도로
생각한제뒤로다가와무엇하시는분인데이곳누추한곳까지오셨냐며궁금해하였습니다.
흥겨운카세트의음악이끊어지자모임의식순이시작되었습니다.노인회장의인삿말에이어서장인어른이
소개되자우뢰와같은박수를받으셨습니다.그냥고국인한국에서오신노인일뿐인데말입니다.잠시후
공지사항이끝나자장인어른께인삿말씀을하실기회가주어졌습니다.
장인어른은간혹55년전에익힌중국어를섞어가면서일제치하에서만주철도병원에서근무할당시조선
족과의인연을소개하셨지만,이미장인어른의연배와같으신분은없었고최고고령자라야일흔정도였기
에당시의일을같이회상하며정담을나눌분은계시지않았지만옛날만주땅을잊지않고찾아온것만
해도그들로부터우뢰와같은박수를받으시기에는충분하였던것같습니다.
인천집을떠날때장인어른의가방이왜그리많은지궁금하였는데,여행가방안에는장모님께서준비하신
선물이모자란다고생각하셨는지장인어른께서별도로선물을준비하셨던것같았습니다.이날은장춘에서
의마지막날이기도하여가방을털어모든선물을꾸려갖고나오신것이었습니다.그리고별도로봉투에
미화로200달러를넣어선물과함께노인회에성금을전하셨습니다.
뜻밖의선물을받게된노인회장은무척고맙게생각을하셨지만막상성금$200이든봉투에관해서는그
가치가얼마나되는지모르셨던것같습니다.그리고슬쩍속을들여다보더니옆의다른분과귓속말로대
화를나누다가깜짝놀라는표정을지었습니다.그리고떨리는목소리로중국어로연설을하시더니모두들
놀라는표정으로모두일어나서장인어른께천정이무너지는것같은박수로감사의뜻을나타내었습니다.
이젠장인어른께서영문을모르고어리둥절하셨습니다.그리고청력이좀좋지않으셔서저한테귓속말로
지금이분들이왜이러냐며궁금해하셨습니다.김양의얘기에의하면장인어른께서전달하신성금은보통
중국인들의두달치월급에해당되는돈으로우리나라로비유하자면아무연고도없는외국인이한마을의
노인회에찾아와200-300만원정도의성금을전달한셈이되는것이었습니다.
이날회의의1부순서는<학습>시간으로마치게되었습니다.이시간에는장춘시나중앙공산당의지시사항
을주민들한테자치적으로교육하는순서같았습니다.노인회의한간부가길림성조선족자치회에서발간된
관보같은것을보면서그내용을주민들한테주입시키는것이었습니다.북한을다룬영화나드라마에서사
회주의체제에서의학습이란것을간접적으로보기는했지만직접지켜볼수있었습니다.그내용은중국의
국가주석의동정이나공산당행사등이먼저나오기는했지만개방화물결탓인지정치적인문제는서서히줄
어들고주민들의일상생활에관한것이많다고하니우리나라의반상회와같은모임이되는것같습니다.
이어서흥겨운춤과노래시간이진행되었습니다.노인회회장님도예외없이모든회원이어깨를둥실대며
앰프에서우렁차게나오는우리민요에따라춤을추셨습니다.그중에는젊은사람두남녀가있었는데그
사람들은초청된춤선생으로보였습니다.이날가무의레파토리는민요뿐만아니라우리나라의최신가요
까지망라된것으로조선족사회의강한조국에대한동경을읽을수있었습니다.모두들가무행렬에참가
하였지만표정은가지각색이었습니다.신이나서두팔을흔드는할머니들도있었지만,무표정하게따라
하는할아버지도보였습니다.사회주의국가에서이렇다할여가생활이없었으니이런집단댄스파티는중
국어디서나볼수있는광경이었습니다.나름대로즐기는분들이계셨듯이획일화된사회주의체제에서마
지못해서기계처럼손과팔을흔드는분도계시는것이었습니다.그러면서개방의물결이들이치고있지
만수십년간해온이런모임의패턴은바뀌지않는것같았습니다.
장인어른도여기서는예외가될수없었습니다.처음에는어색한미소를지으시더니조선족할머니와손을
잡고스텝을밟으시는데저절로그분들과흥을함께나누게되었습니다.춤과노래를싫어하는,아니못하
는저는…마치취재나온기자처럼카메라를여기저기돌려대며폼을잡고있었기에그들의유혹을뿌리
칠수있었습니다.
춤과노래가그치지않는가운데노인회임원들과우리일행은옆방에서그분들이준비한점심식사를함께
하게되었습니다.점심거리는모임에참석하신분들이분담하여준비한것같았으며개고기가별식으로식
탁에올려져있었습니다.이제차분하게술을한잔씩돌리며식사를하는데,자연히그자리의대화주제
는통일문제에관한것이었습니다.
그자리에계신분들의,즉조선족노인회의회원들의출신성분을조사한통계가방한구석의칠판에적혀
있는데약10%정도가공산당원으로나타나있었습니다.그리고노인회장도공산당원이자군인출신이었습니
다.그자리에모인사람들은비록국적은한국과중국으로갈라졌지만모두우리같은민족이라자연히우
리나라의통일이공동관심사가될수는있겠지만,그래도중국의공식입장과중국공산당에충성을바친중
공군출신이있기에조심스러웠지만,의외로그들의태도는분명한것같았습니다.더이상북한의김정일을
옹호하는발언은없는것같았습니다.술이한두차례돌아가자장인어른도큰소리로김정일의권력아래
신음하는북한동포들의비참한생활을얘기하자모두들장인어른의주장에동조를하였는데장인어른이기
부하신선물과성금때문만은아니란것을알수있었습니다.중공군출신의노인회장도김일성에대한얘
기는긍정적으로하였지만김정일에대한얘기는존칭도없이비난하기에주저하지않을정도였습니다.
비록연길관광의기회는사라졌지만,저로서도뜻하지않은모임에참석할수있었던것이다행이었습니다.
제가지구촌을누비고다니는것이다양한삶을살아가는사람들을만나기위한것이기도한것인데,불행
히도우리와뿌리도갖고문화와풍습도같아야할중국의조선족을만나는데새로운문화속에들어온듯
한착각을하게되는것이유감일뿐이었습니다.
모처럼즐거운시간을지내고노인회회원들의배웅을받으면서마을을떠나는데,회장님께서는우리일행
을택시가다니는대로까지배웅나오시고제손에조그만성의라며택시비를쥐어주시는데저로서는적은
돈이지만그분들로서는적지않은돈이될수있기에정중히거절할까도생각하였지만그분의성의가돈의
액수이상의가치가있으리라생각되어감사한마음으로받아택시에올랐습니다.
어제도오늘도이번여행의보람을느끼게하는일들이연거퍼생긴것입니다.야구용어로적시타정도가
아니라연타석만루홈런이되지않을까생각되었습니다.오늘저녁은이번여행의마지막밤이되었습니다.
제가아시아나항공의조선족직원을통하여김양을통역으로소개를받았지만사전에약속된사례금만으로
할아버지가거두신방문성과에비하면부족할것같아서약속한것보다훨씬많은돈을봉투에넣어전해
주었습니다.김양은그돈을받으며그동안많은한국인기업인들의중국방문을주선하고통역을하였지만
이번일은회사일과는관계없이개인적으로시간이있어서맡은일이고이런할아버지의뜻깊은여행은사
례비를받지않아도되는일이었다며미안해하면서봉투를받았습니다.
그날저녁에장인어른은통역으로수고만한것이아니라조선족노인회와의이벤트까지마련한김양을위
해그의노고에감사하며손녀딸과같은김양이좋아하는메뉴위주로저녁식사를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