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의 55년만의 만주여행 (6) – 마지막편

오늘은월요일!장춘을떠나는날입니다.

아무리장인어른의일로장춘까지왔지만장춘의모습을놓치고싶지는않았기에아침일찌기일어나서택

시를타고남호로찾아갔습니다.중국은어느도시를막론하고아침에는운동하러나온시민들로공원이나

시내의공터가만원입니다.카세트의음악에맞추어춤추는시민들,태극권을추는사람들,기인처럼혼자

도를닦는사람들,여기저기다양한사람들이주변을의식하지않고나름대로의운동에몰두하고있습니다.

나뭇그늘아래에돗자리를깔아놓고안마를해주는사람들,콘크리트벽이나,기념탑,커다란고목등에

등을지고리드미칼하게등어리를갖다대어충격요법으로맛사지를하는시민들의모습이눈에띕니다.

거리에서하얀가운을입고이발해주는거리의이발사도보입니다.장춘만의모습은아니었고중국의어느

곳에서나볼수있는모습이었습니다.

통역을맡은김양은오늘아침다른날보다일찍호텔로찾아왔습니다.그리고두개의상자와봉투를저한

테내밀었습니다.어제저한테받은돈이약속한액수보다많아서잘못된것같아되돌려주는것이랍니다.

사실어제저는봉투를건네주면서액수를얘기하지않았기에그런착각을할수있었던것입니다.제가

그건잘못된것이아니라할아버지의정성이얹어진것이라고하자눈시울을적시고,그돈으로고향에계

신부모님께추석선물을사드리겠다면서감사의뜻을전하였습니다.그리고는자신이어제밤에마련한할

아버지께드리는선물이라며정성껏수놓은수예품을담은상자를내놓았습니다.

오늘은장춘철로의원의병원장은중요행사가있어서55년만에찾아온대선배를배웅하지못하게되었다며

미리사과의뜻과함께소아과과장으로하여금그날오전마지막으로장춘철로병원을자세히둘러보실수

있도록안내를하라는지시를하였다고합니다.

소아과병동을찾아가니그제만났던소아과과장이뜻하지않게장인어른의가운을준비하고있었습니다.

비록체격이큰병원장의가운이어서장인어른한테는맞지않았지만병원장이직접가져다준것이라고하

여장인어른을맞은그들의마음가짐을엿볼수있었습니다.장인어른은병원장의가운을입으시고소아과

과장의안내로소아과입원실부터시작하여치과진료실까지두루둘러보았습니다.소아과과장의안내로

장인어른이가운을입고지나가시며통역을통해대화를나누는모습을본소아과외래환자들의보호자들은

마치장인어른이굉장한소아과의사인것처럼보였는지통역을통하여오늘한국에서오신의사한테직접

진찰을받을수있냐고물어볼정도였습니다.소아과과장은병원장이그날공산당행사때문에직접배웅을

해드리지못하게되어죄송하다는말을다시한번전하며진료일정까지미루고현관까지우리를배웅해

주었습니다.그리고3박4일동안우리와함께다니며통역및안내를맡은김의화양과작별인사를나누었

습니다.정말친손녀처럼귀엽고,친할아버지처럼따르며안내를하여짧은기간이었지만정이듬뿍들어

할아버지께인사를드리고뒤돌아서는김양의눈에는눈물이고여있었습니다.

55년만에이루어진장인어른의만주철도병원홈커밍행사는이렇게끝나게되었습니다.

그리고2년후장춘철로의원의병원장은한국의한병원을공식방문하는길에인천까지내려와장인어른을

찾아뵐정도로선후배의친분을다지게되었고,당시통역을맡았던김양은일본의여행사에파견근무하다

현지일본인과결혼하였다는반가운소식을전해왔습니다.

비록국적은달랐어도,민족은달랐어도서로의공통분모를찾아서친분을나누는지구촌사람들의따스한

만남이었습니다.

장춘공항으로출발하기에앞서인천의집에전화하여공항도착시간을확인시켜주고처남한테김포공항으로

마중나오도록하였습니다.그러자저는이번여행이기대하였던목적을초과달성하였다는자만심에빠져서

딴생각을품기시작하였습니다.오늘은추석연휴의둘째날,추석연휴는하루더남았지만이미서울집에

도착하여도제사는이미끝난시간입니다.항상만일을위하여연휴다음이틀정도는환자진료약속을하지

않는관례는금년이라고예외는아니었습니다.

결국저는이번여행에서거둔예상보다초과된효도를일부환불받는셈치고김포공항에도착하여장인어

른홀로입국심사장으로나가시도록하고저는발길을돌려출국장으로올라가아시아의마지막행선지브

루나이여행을위해방콕행비행기에오르게되었습니다.

이렇게효도를빙자한장인어른의만주여행은저의조그만불효로막을내리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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