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유난히 사회공부를 좋아했던 저는 지금도 마천루라는 단어와 함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해서 배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기에 기껏해야 고층건물이라고는 당시 화재로 없어진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의 전망탑 정도였으며 일반 상업건물로는 종로네거리의 화신빌딩(5층, 현재의 국세청자리) 정도였으니 102층이라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 세계최고층건물의 타이틀은 1971년에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마주 보고 세워진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417m,110층)으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건물은 시카고에 세워진 시어즈타워(Sears Tower, 442m,110층)에게 3년 만에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고 지난 9.11테러에 파괴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안에서 주고 받던 세계최고층건물의 타이틀은 1997년 말레이지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세워진 쌍둥이 빌딩 Petronas (483m, 88층) 빌딩이 등장하면서 미국대륙을 떠나 아시아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이젠 첨단과학의 발달로 초고층건물을 짓는 것은 자본의 문제일뿐 기술적인 문제는 어느정도 극복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과 수년 만에 세계최고층빌딩의 타이틀을 넘겨 주게 되는 싯점에서 이제는 그런 타이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前수상이 내건 말레이지아의 자존심이었던 페트로나스의 영광도 불과 6년을 넘기지 못하고 타이페이의 국제금융센터한테 넘겨 주게 되었습니다.
2003년 타이페이의 새로운 자존심으로 등장한 타이페이국제금융센터는 101층, 508m 의 높이를 자랑하는 현존하는 세계최고층빌딩입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381m 에서, 그리고 시어즈타워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말레이지아의 페트로나스 등이 400m 를 맴돌고 이제 500미터를 돌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화권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타이페이국제금융센터가 세계최고층타이틀을 따기가 무섭게 같은 중국문화권인 홍콩에서 108층의 초고층건물이 건축중이고 샹하이에도 진마오빌딩(1998년완공, 421m, 88층), 세계금융센터(2001년완공, 459m, 94층)등의 세계 랭킹 5위 안에 드는 건물들이 두 채나 있건만 10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이 계속 들어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층수에서는 같은 중화권에 의해서 이 기록이 깨지게 될것 같지만 앞으로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층빌딩의 타이틀은 2008년 두바이에 세워질 버즈두바이(700m,160층) 로 넘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 L.A.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타이페이공항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타이페이공항에서의 트랜싯시간이 약 8시간 정도 되어서 공항구내의 환승호텔에서 부족한 잠이나 청할까도 생각하였지만 이번 기회에 타이페이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타이페이 국제금융센터를 둘러보기로 하고 공항을 나섰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이라 타이페이 시내지도도 없고 중국어도 모르지만 택시기사한테 엄지손가락을 보여주고 101 one-zero-one을 외치니 금방 알아 들었습니다. 타이페이에는 101빌딩 외에 그리 고층건물이 많지는 않은편 이어서 시내의 어느 곳에서도 101빌딩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세계의 내노라하는 초고층건물들 중에서 두 개의 원통으로 구성된 쌍둥이 빌딩인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와 함께 타이페이의 101빌딩은 외형이 우선 독특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일반적으로 직선으로 올라가게 되는 외벽이 하단의 1/4 정도는 안으로 약간의 경사를 보이는 피라미드형식이지만 위의 3/4 정도는 8개 층을 하나의 단위로 묶은 8개의 그룹을 포갠것과 같은 모습인데 마치 꽃잎을 겹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대나무 바구니 8개를 겹쳐 포개놓은 모습같기도 하였으며 8개층 단위로 이뤄지는 각 모듈은 밖으로 7도 정도의 경사를 진것이 특징입니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8개 층을 8개의 그룹으로 겹친 디자인에서 8이란 발전을 의미하는 숫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듈이라 불리는 8개 층을 묶은 단위별로 화재방지나 통신시설등의 독립된 기능을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500미터가 넘는 초고층인 만큼 엘리베이터의 속도도 시속 60km로 엄청 빠른 편입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교통체증이 없는 시간에 지동차가 시내를 달리는 속도정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만은 일본에 비해 지진의 우려는 낮은 편이지만 강한 태풍이 많이 지나는 길목이라 건물의 자연재해를 대비한 설계가 돋보인다고 합니다. 그중 상층부가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지름이 5.5m, 무게 650톤의 거대한 금속추를 92층에서 88층 까지 강력한 줄로 매달아 놓아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높이 508m, 이는 서울 남산의 높이(262m)와 남산타워(해발 480m) 보다도 더 높은 것입니다. 타이페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타이완의 서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멀리 보이는 타이페이시내의 모습에서 우뚝 솟은 타이페이 101 를 바라 보면 얼마나 큰 건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