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희생당한 Jews들을 추모하며

원문출처:고대신문

나를찾아떠난여행(5)-나치에희생당한Jews들을추모하며

독일,아우슈비츠수용소 고대신문kunews@kunews.ac.kr

<ThePianist>
수능을마치고무료한나날을보내던어느날,비디오가게에들러서ThePianist라는영화를빌렸다.영화의배경이당시나의최근여행지였던폴란드의바르샤바였기때문에늦은시간이었지만끝까지영화를보았던기억이난다.

2시간30분이나되는긴러닝타임.좋아하지도않는클래식음악에,밤이라서더욱그랬을까영화는지루하게만느껴졌다.하지만영화의한장면한장면에서나타나는유대인들의비극,독일SS(나치친위군)들의잔인함은영화를보는2시간30분내내나를긴장하게만들었다.

이영화의대강의내용은이러하다.1939년9월1일.독일군이폴란드의수도바르샤바를침공한다.유대인을몰살하고그결과유럽에서6백만명에이르는유대인들이사망했다.1945년1월.독일의패전으로전쟁이끝난뒤,폴란드에살아남은유대인은단20명.그생존자중한명인피아니스트’스필만’의비극적인일대기를그린영화이다.스필만은나치집권전가장유명한피아니스트였으니집권하에서무력해진다.

영화에서나타난SS들의모습은,인간이어느정도까지잔인해질수있는가를보여주는것같았다.한밤중에유대인거주지역건물에쳐들어가거실에있는가족모두를일으켜세운다.그중한할아버지는다리가불편에휠체어에몸을겨우의지하고있는데,일어나지못하자휠체어채로할아버지를들고테라스로나가6층남짓한높이아래로집어던진다.그리고나머지가족들은밖으로뛰어나가게한뒤,달려가는뒷모습을향해무자비하게총을쏜다.

유대인,그들은과연하늘의축복을받은민족인가

아우슈비츠는크라코프(Cracow)근교에있는,독일군의폴란드및유대인수용소가있었던폴란드의작은공업도시이다.폴란드어로는오슈비엥침(OSWIECIM)이라고한다.지금은100%복귀가되었지만,2차세계대전때완전히폐허가되었던바르샤바와는달리옛고성들의모습을그대로간직하고있는것으로유명하다.

크라코프를찾는사람들은크라코프시의전원적이고옛향기가물씬풍기는매력에끌려서오기도하지만정작유명해진이유는바로아우슈비츠때문이다.학살된6백만명의유대인중약4백50만명이이아우슈비츠에서학살당했다.아우슈비츠는제1수용소인아우슈비츠와제2수용소인비르케누프(Birkenuv)로나뉜다.제2수용소비르케누푸는유대인을아우슈비츠에서다수용할수없어서만든두번째수용소이다.크기는무려제1수용소의10배나된다.제1수용소아우슈비츠의입구의위쪽에는문구가하나있다.Arbeitmachtfrei."일하면자유로워진다"라는뜻의독일어다.

나치가말한자유는죽음으로서의자유를말한것이었던가?이는나치와SS가노동효과를극대화시키기위해죽을지경에이르기까지유대인들의노동력을착치하기위한쇼(show)에불과하다.제1수용소에는박물관영화관,그리고학살시이용된교수대,가스실등과유대인들이묶었던곳이전시관으로이용되고있다.당시의참혹한현실을그대로보여주고있어서,13세미만의어린이는출입을할수가없다.

수용소내의가스실(gaschamber)

사진을보자.수백명을한번에학살할수있는가스실에는당시처참했던상황을적나라하게보여주는,죽음에이르기직전유대인들이손톱으로긁은십자가가아직도새겨져있다.뿐만아니라,맹수와함께방을쓰게했던곳,온종일서있어야하는방그리고나치가저지른각국에서의만행기록등이전시되어있다.제2수용소중앙에는철조망으로둘러싸인광대한부지에허물어진벽돌더미가널려있고국제위령비가우뚝하게서있었다.모두400만개의벽돌을쌓아만든것인데희생자한사람한사람을나타내고있다고한다.매년부활절이되면마치무슬림들이사우디의메카를찾는것처럼이스라엘청년들은이곳아우슈비츠에와서순례를한다고한다.그렇다면왜나치는하필폴란드를선택했나?왜오슈비엥침에서이런비극이일어난것인가?

오슈비엥침은폴란드에서가장중요한중화학공업지역이었다.전쟁을수행하는데중화학공업의필요성은절대적이었기때문에전쟁중폴란드가군비를정돈하여재반격할수없도록오슈비엥침을제일먼저점령해야만했다.

둘째,이곳은폴란드의야전군사령부가있었던곳이다.야전군사령부가힘을쓰지못하게하려면개전초전광석화와같이빨리점령하여야전군사령부의기능을하지못하도록하는것밖에없었다.

셋째,오슈비엥침은지형적으로나전략적으로대단히중요한곳이었다.오슈비엥침은주위에강이흐르고있고,하늘에서내려다보면마치섬과같이보이는외딴지역이었다.나중에이곳에수용소가만들어지고난후경비도철저했지만지리적인조건이탈출을사실상불가능하게했다.

또한유럽지도를펴놓고볼때,아우슈비츠를중심으로원을그리면영국과러시아모스크바를포함하여유럽모든나라들이원안으로들어오게된다.북쪽의스칸디나비아끝에서아우슈비츠까지는약2,100㎞,남으로그리스의수도아테네까지는약2,200㎞인것으로보아전유럽의중심이바로이아우슈비츠라는것을알수있다.나치의지배하에있던이6년간은폴란드로서는절대기억속에지워지지않을상처이고치욕이다.하지만그들은당시치욕스럽고처참했던역사를적나라하게공개하고있다.

매년수많은관광객들이이곳을찾아와비극의역사에대해정확하게확인을하고간다.자연스레수많은학자들도나치시대와이아우슈비츠에대해더깊게연구하게된다.

우리도이런점을배울필요가있지않을까싶다.일제치하,정말숨기고싶고치욕적인역사이지만사실적으로공개하여세계에있는그대로알리고일제의비열함과잔혹함을각인시켜줄필요가있다는것이다.마지막으로우리는가끔씩우리가얼마나행복한삶을누리고있는지를잊고사는것같다.물론비교하고자하는대상이너무잔인한역경을겪어왔지만,지금우리의모습을돌이켜보자.공부하고싶을때공부하고,쉬고싶을때쉬고대부분은배고픔이란것을모르고자랐고가족과함께살수있고.하지만우리는이따금,그리중요하지않은것에대해욕심을부리고욕망을채우지못할경우불만을갖곤한다.

아우슈비츠수용소의모습

(김우진·공과대기계04)

45thstreet@gmail.com

아직도피아니스트영화의그한장면이선하다.수용소를탈출한뒤폴란드인집에들어가자마자건내는주인공의첫마디,"미안하지만…빵한조각만주실수있나요…"배고픔을모르고단지가족과함께하고일하고쉴수있는것.불과수십년전목숨을잃은수백만명의그들의평생소원이아니었을까.

2006년05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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