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컨디션이지난밤갑자기좋지않다는전화연락을토요일아침에받고도
토요일밖에진료받을시간이없다는환자들의예약때문에
서둘러서울의아버님댁으로찾아뵙지못한것입니다.
지난주에도그런일이있어서환자들한테일일이전화로양해를구하여
진료예약을취소하고찾아가뵈었는데
일주일만에같은상황에처하게된것입니다.
별도리없이환자들의진료예약을최대한앞당겨토요일오전진료를서둘러마치고
아무래도아버님께서이번주말을넘기지못하실것같아서짐을꾸려서울로올라가는참이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에진입하여톨게이트를지나는순간휴대전화가울렸습니다.
우리큰아이의전화번호가찍혀져있었습니다.
그는전날친구를만나러서울에올라간후에할아버지집에서잔것이었습니다.
불길한생각에전화를받자큰아이의울먹이는소리가들렸습니다.
순간하늘이노래지기시작하여자동차를고속도로의갓길에세웠습니다.
환자들한테욕을좀먹더라도그냥예약진료를펑크내고찾아뵐것을
그날아침,순간판단을달리하여아버님의임종을지키지못한것이었습니다.
모대학병원신경외과교수인형님도제주도에서개최된학회에참석하느라
아버님의임종을지켜보지못하게되었는데가까이있었던둘째도불효를하게되었고
아버지와삼촌들을대신하여손자들이할아버지의임종을지켜보게되었습니다.
아버님은금년88세,
12년전경추부후종인대골화증이라는그리흔치않은희귀한병으로
자식이아버님의몸에직접메스를대는대수술을받게되었습니다.
그이후의삶은보너스라는아버님의여유있는농담덕분인지
여든을넘기신후에도성지순례를가신다는어머님을따라이집트역사기행까지나섰고
뒤늦게시작한한국과중국의고대사공부를위해
두차례나타이페이와베이징의고서점가를순례할정도로
비교적건강을유지하셨던아버님이셨습니다.
그러던중지난해봄우연히위출혈로내시경검사를하니
뜻밖에도상당히진전된위암의소견이나왔습니다.
아버님께서도내과의사이셨지만평소위암을의심할만한증상이없었기에
진단을한병원의의사들도스스로의심할만큼상당히진전된상태였습니다.
이제아흔을몇년앞둔노인한테위암치료라는것은의미가없는것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아버님께서증세를못느끼는것이다행일뿐이었습니다.
결국그때부터우리형제들은아버님과의작별인사를준비하기시작하였습니다.
길어야6개월을넘기지못하실것이라는의료진들의판단에따라
예상되는상황에대해대비책을마련하였습니다.
다행히아버님께서는위출혈이위궤양때문이라고둘러대는우리들의얘기에
아무런이의를달지않으셨는데
정말모르고계신것인지
아니면짐작을하셨으면서어머님이걱정하실까봐내색을하시지않은것인지
알수는없는일이었습니다.
지난해봄에는중국여행을하시고싶다고하셔서우리형제들은의논끝에
여행중에돌아가시게된다하더라도원하시는대로따르는것이좋겠다는결론을내려
함께모시고중국여행까지다녀올정도였습니다.
그후몇차례의응급상황이두세달간격으로계속되었습니다.
위출혈이반복되고쇼크에빠져의식을잃기를세번이나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연이어기적과같은일이벌어지게되었습니다.
순간순간고비를넘기시고는겉으로보기에는건강을쉽게회복하신것이었습니다.
그러나마지막에는완전히맥박이잡히지않을정도로의식을잃고사경을헤매게되었으나
의료진들의표현에따르면기적이라할정도로의식을되찾게되셨지만
계속되는출혈을지켜만보고는없다는판단에
우리형제들은위절제수술을감행하기로하였습니다.
그리고또다시일년이란보너스인생을보내시게되었습니다.
위절제수술후,반복되던위출혈은없어졌지만
이제는주말에찾아뵐때마다몸이수척해지시는것을느끼게되어
우리형제들은마지막작별인사를드리는기분으로주말마다찾아뵙게되었습니다.
아버님은은퇴하신후새로시작한고대사공부가20년가까이이어지자
취미수준을넘어본격적인연구생활로이어져틈틈이글로정리하시고계셨습니다.
우리고대사에별관심이없는우리형제들은아버님께서설명해주시는얘기를
한귀로듣고한귀로흘리는수준이었지만
다행히도사위는관심을가져주어장인어른의연구기록을정리하는일을맡게되었습니다.
사위는일찍이6.25전쟁때아버지를잃어서아버지의정을모르고자란탓인지
장인어른을친아버지와같이모셨으며,아버님도사위를친자식처럼
우리형제들도서로처남매부가아닌친형제처럼격의없이지내고있습니다.
그원고는지난7월초에탈고를하게되었습니다.
병상에서도중단하시지않았던독서와고대사공부를끝을맺으신것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성취감과함께무언가허탈감에빠지시게되는것을느끼시게되었습니다.
화장실출입도힘들어하실정도로급격히쇠약해지는것이눈에띄게되었습니다.
위암진단을받고6개월을넘기지못하신다고하였지만
또다시일년을보너스로삶을연장하신것이었지만
전과는달리하루가다르게몸이무척수척해시고
급속히체력이쇄진해가는모습을지켜보니
더이상의보너스인생도아버님이나가족들한테는쓸데없는욕심이라는것을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토요일아침아침잠에서미처깨어나지않으신듯조용히떠나셨습니다.
우리형제들이진짜작별인사를드리지못했는데말입니다.
7월마지막토요일오전진료시간……
저는앞으로평생을두고후회하는순간이되어버리고말았습니다.
아버님……죄송합니다.
안녕히주무세요.
<할아버지께서사랑하는손자들한테남겨주신고대사역사이야기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