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애국가가 느닷없이 저작권시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애국가가 어떤 절차에 의해 우리나라의 공식국가로 정해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50년 동안 사용해오던 애국가의 저작권을 지금에 와서 논의한다는 것은 무척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애국가의 저작권문제가 안익태선생의 유가족이 직접 거론한 것인지 아니면 옆에서 누가 부추키 것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쨋든 안익태선생의 미망인 롤리타 안여사가 직접 나서 애국가의 저작권을 우리 정부에 무상양도하는 것으로 결말을 보아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 1961년 안익태 선생께서 L.A.Hollywood Bowl 에서 L.A.Philharmonic Orchestra를 직접 지휘한 음반 >
– 국내에서 서라벌음반이 1976년 내 놓았는데 녹음상태와 음질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아마 애국가의 저작권문제가 나온 것은 애국가가 독립된 음악이 아니라 안익태선생의 대표작인 Korea Fantasy 한국환상곡에서 나온 일부분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국가를 음악가의 작품 속에서 듣게 되는 경우는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Haydn 현악4중주 C장조 ‘황제’ 아마데우스 4중주단 (성음사 Deutsche Grammophon, 1964년녹음, 1974년 발매)
국가로 사용되는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Haydn의 현악4중주 ‘황제’이다. 이곡의 2악장의 테마는 Haydn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한테 바친 곡으로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 (God Save Franz the Emperor)”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 곡은 신성로마제국의 한 축이었던 오스트리아가 1918년까지 이 곡을 국가로 사용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독일제국은 영국국가의 선율에 Heil dir im Siegerkranz (Hail to thee in Victor’s Crown) 가사를 붙힌 곡을 국가로 사용하였고, 비스마르공화국시절인 1922년 예전 신성로마제국시절에 사용하던 황제찬가에 새로 가사를 붙힌 ‘Das Lied der Deutschen (독일인의 노래)’를 채택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불과 4년 전까지 이웃이자 과거 신성로마제국시절의 동맹이었던 오스트리아가 국가로 사용하였던 곡을 새로운 국가로 채택한 것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애매한 유럽의 역사가 가져온 재미있는 현상이다.
* 좌 : Tchaikovsky 장엄서곡 1812년, Zubin Mehta 지휘, 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 (성음사 DECCA)
전투에서 승리한 제정러시아의 국가와 패전국인 프랑스국가가 나온다.
* 우 : Beethoven Wellington’s Victory, Karajan 지휘, Berliner Philharmoniker (성음사 Deutsche Grammphon)
프랑스군대를 물리친 영국국가가 나온다.
국가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곡으로 그 민족의 자랑과 영광을 상징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경우도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장엄서곡 1812년’에는 제정러시아의 국가 외에도 프랑스의 국가인 라마르세에즈가 나오는데, 이 곡은 러시아군대가 프랑스의 나폴레옹군대를 물리치는 내용을 그린 것이니 프랑스사람들로서는 프랑스군대가 쫓겨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라마르세에즈를 들어야하니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영국국가 God Save the Queen은 많은 음악가들이 변주곡을 내 놓고, 제정러시아와 독일제국이 한 때 영국국가의 멜로디를 국가로 정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프랑스국가인 라마르세에즈가 차이코프스키의 ‘장엄서곡 1812년’에서 패전국의 국가로 불명예스럽게 등장한데 반해 영국국가는 베토벤의 ‘Wellington’s Victory'(웰링턴 승리)에서 승전국의 국가로 당당하게 나오고 있다. 이 곡은 베토벤답지 않은(?)곡으로 영국의 웰링턴장군이 프랑스의 나폴레옹군대에 승리한 것을 기념한 곡으로 베토벤작품치고는 그리 인기가 없는 곡이기도 하다.
영국국가가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J.C.바하, 하이든, 베토벤 등이 영국국가를 주제로 변주곡 등의 작품을 쓴 것을 보면 알려진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God Save our gracious Queen (King)으로 시작되는 가사도 신성로마제국이나 제정러시아에서 그대로 사용되는데 표절했다기 보다는 기독교를 바탕으로하는 군주체제에서는 어느 나라나 ‘우리 황제를 보살펴 주소서’ 하는 구절부터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 Ruggiero Ricci가 연주하는 Paganini 음반, 성음사 DECCA, 1974년
영국국가를 주제로 한 변주곡중에서 특이한 곡은 바이올린의 천재 Paganini의 Variations on God Save the Queen이다. 이 곡은 파가니니의 모든 곡이 그렇듯이 바이올린의 기교를 최대로 이끌어 내고 있는데, 너무 지나치게 현란하게 바꿔 놓아 다소 국가의 이미지와는 멀리 나간 듯 하다.
하기야 요즘 가수들도 우리나라 애국가를 소리지르며 제멋대로 부르는데 …
* 네덜란드 PHILIPS에서 나온 소품집에 J.C.Bach Harp Concerto D 장조가 실려있다. 1966년 녹음
이 음반은 1973년 대학입학선물로 받은 것으로 당시에는 무척 귀하고 비쌌던 이른바 ‘외제원판’ 이다.
오늘의 ‘모닥불콘서트’곡으로 영국국가 God save the Queen을 주제로 한 변주곡 중에서 그 분위기가 너무 대조가 되는 Johann Christian Bach의 하프협주곡 D장조 op.1-6에 나오는 변주곡과 Ruggiero Ricci가 연주하는 Paganini의 변주곡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