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007 피격사고30주년 … 와까나이에서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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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최북단에 있는 도시인 와카나이를 찾았다. 와카나이는 일본의 최북단에 있는 도시이며 일본철도의 북쪽 끝이기도 하다. 와카나이는 관광객한테 그리 유명한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사포로에서 왕복 10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와카나이를 찾은 것은 소야미사키(宗谷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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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의 와카나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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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할린 앞바다가 정면에 보이는 소야미사키(宗谷岬), 일본국토의 북쪽 끝이다. >

 

소야미사키는 와카나이역에서 버스로 약 50분 걸린다. 이곳은 소야미사키는 일본인한테는 일본국토의 최북단이라는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정면에 보이는 사할린해역은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30년 전 미소냉전체제 시대에 대한항공 B747-200기가 구소련의 전투기에 의해 피격 되어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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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007편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 사할린 앞바다가 보이는 소야미사키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

 

오늘이 우리나라 항공사고중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대한항공 KE007편 HL7442기가 사할린상공에서 피격된지 30년 되는 날이다. 뉴욕을 출발하여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공항을 향하던 대한항공 B747기가 정상항로에서 벗어나 소련영토를 침범했다고 하는데 당시 미국과 소련이 냉전상태로 대립하고 있던 시절로 소련전투기 Sukhoi 15기가 민간여객기를 추락시킨 것은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자세한 내막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사고는 적지 않은 의문을 남겼다. 이날 사고 소식이 전해진 것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 라디오로 소식을 듣고 병원에 도착하여 오전 내내 TV 앞에서 뉴스를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대한항공 KE007편이 레이다에서 사라져 실종된 상태로 보도 되었다. 잠시 후 사고기는 사할린의 한 공항에 불시착했다는 소식이 이어져 뉴스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일단 안도의 한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KE007편 보잉 747기는 추락한 것으로 공식보도가 나왔다. 사망자는 240명의 승객과 승무원 29명 등 모두 269명이며 이중에는 미국 하원의원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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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KE007편의 예상항로와 실제항로  – 지도출처 : www.wikipedia.org >

 

이 사고는 그 후 많은 논란 거리에 휩쓸렸다. 어떻게 사고기가 중간 경유지인 앵커리지를 이륙한 후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영공으로 들어갔는지가 첫 번째 의문이다. 사고기는 B747-200, 항법사가 탑승하던 시절이다. 우선 비행중 위치를 항로를 안내해주는 관성항법장치(INS) 시스템의 조작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과 조종사들이 연료절감문제에 민감하여 항로를 단축하기 위해 무리를 했다는 얘기부터 대한항공 KE007기가 미국의 스파이역할을 했다는 첩보론도 있었다. 우연히 같은 시간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 간격을 유지하며 미공군의 정찰기가 같은 항로로 비행하고 있어 미군기로 오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첩보론을 부추켰다. 첩보론을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소련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I)을 무시하고 사할린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사실도 있다.

미국은 KE007편이 소련영공으로 들어간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는 것도 첩보론을 부추켰다. 그러나 미국이 대한항공이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영공으로 진입한 사실을 알려주면 미국의 정보능력이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한편 사고기가 격추되어 추락한 것이 아니라 사할린 바다나 어느 공항에 불시착했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생존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생존자들과 관련된 증언들도 소개하며 Rescue KE007 라는 사이트도 열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2009년 뉴욕상공에서 조류충돌로 엔진이 멈춰 비상착륙한 US Airways의 A320기가 뉴욕 맨하튼의 Hudson 강에 비상착륙한 기적을 거론한 것을 보니 지금도 관리가 되는 것 같다.

http://www.rescue007.org/korean.htm

그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KE007편이 소련의 전투기가 아니라 미군 군함의 오인공격으로 추격되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프랑스 르몽드의 기사에 의하면 당시 사할린상공에서 소련이 불법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시험발사를 앞두고 있어 미국과 소련사이에 군사적인 긴장이 있었는데 그때 미군함정에서 KE007기를 소련기로 오인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KE007편이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지점인 사할린 모네론섬에서 어부들이 보았다는 섬광은 KE007편이 아니라 미정찰기 RC-135라고 주장하고 있다. RC-135는 보잉 B707와 겉모습은 거의 같다. 르몽드지 기사에서 나온 이 주장의 근거는 사할린상공에서 미군기 3대가 격추된 사실을 확인했고 KE007편의 잔해가 발견된 호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해역은 해류방향으로 봐서 사할린에서 내려 올 수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정확한 추락지점도 의문이라고 한다. 당시 소련공군기조종사와 소련공군기지와의 교신내역을 보면 KE007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고기가 소련영공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기록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KE007 피격사건이 항법장치조작에 착오를 가져와 항로를 이탈한 사고기는 구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공식결론 외에 여러 가지 가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철의 장막’으로 불렸던 구소련시대에 발생했던 ‘소련에 의해, 소련의 영공에서, 소련을 위한 변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후 소련이 개방되고 우리나라와 수교하면서 추가로 밝혀진 사실은 소련이 당시에는 민간여객기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는 주장 대신에 소련당국도 민항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는 것 정도며 소련이 KE007편의 블랙박스를 우리나라에 넘겨주었지만 그것 역시 사실규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30년 전 불의의 사고로 희생 되신 승객들의 명복을 빌며, 30년이 지났어도 가족을 잃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

* 공식결과는 내셔날지오그래피의 다큐멘타리 시리즈 항공수사대에 근거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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