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29일 대만의 화련에 2박3일 여정으로 다녀왔다. 화련은 여러 번 여행하였지만 이번 여행은 이스타항공의 첫 취항에 나선다고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게 되었다. 우리나라 양대국적항공사는 타이베이에만 취항하고 있지만 저비용항공사는 타이베이 외에 타이중, 가오슝 등 지방도시에도 취항하고 있는데 화련이 새로운 취항지로 나섰다. 대만은 몇 년 전 한 TV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에 소개된 이후 대만을 찾는 한국여행객이 급증하였고 항공요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 이다. 특히 저비용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는 김포-타이베이 노선은 기내식을 제공하는 일반항공사 보다도 오히려 항공요금이 비싼 편이라 타이베이를 자주 찾는 나도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한 경험은 단 두 번 정도 뿐으로 오히려 일반항공사의 요금이 더 싼 곳이다.
남한 면적의 1/3 정도에 불과한 대만에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취항하는 지방 도시가 많은 것은 포화상태에 있는 타이베이공항의 보조역할을 하기 때문 이기도 한다. 그중 이번에 새로운 취항지로 나선 화련은 타이베이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리며, 화련공항이 화련시내에 있어 공항접근성이 좋아 공항이 시내에서 먼 타이중 보다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10월29일 아침 일찌기 공항으로 나가 Self Check-in 키오스크에서 탑승수속을 하려는데 안내하는 직원은 오늘 첫 취항을 기념하는 선물을 카운터에서 나누어 주니 탑승수속카운터에서 수속을 하라고 일러준다. 아마 취항을 앞두고 Self check-in 키오스크가 화련행 노선의 준비가 아직 안 된듯 하다. 탑승수속을 하고 보딩패스와 함께 기념선물이 든 큼직한 봉투를 받았는데 목베개와 한글판 대만관광안내서, 그리고 열쇠고리 등 기념품이 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목베개는 이스타항공세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측에서 준비한 것 같다. 그래도 이스타항공 로고가 있는 작은 기념품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것 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항공사들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도 했다.
이날 첫 항공편의 탑승율은 아직 홍보가 덜 된 탓인지 50% 정도 되는 것 같다. 기종은 B737NG 중에서 인테리어가 고급사양인 BSI(Boeing Sky Interior) 기종으로 첫 취항을 배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 몇 년 전 제주항공이 라오스의 브엔티엔에 첫 취항할 때도 B737NG BSI 기종 이었다. BSI 기종은 기내 조명이 B787 Dreamliner와 같은 LED 방식으로 산뜻하고 다양한 조명이 특징 이다.
약 2시간 정도 지나 대만상공에 들어섰지만 짙은 구름에 가려 산악지대의 산봉우리만 내민 모습이 보인다. 착륙하기 직전 펼쳐지는 화련 주변 산악지대의 절경을 렌즈에 담으려고 창가 좌석을 선택했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원래 화련 주변은 산악지대로 일기 변화가 심한 곳이기는 하다.
잠시 비행기는 화련공항에 착륙하였다. 원래 화련공항은 대만공군기지와 함께 있는 군사기지라 곳곳에 대만 공군의 제트전투기 격납고들이 보인다. 3년 전 국내선을 타고 화련공항에 왔을 때 승무원이 기내에서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는 나를 보고 화련 공항은 군사기지이니 공항에 착륙해서는 사진촬영을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받은 기억이 났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기내방송으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로비로 나가면 간단한 환영식과 다과가 준비되었다고 알려주는데 내심 이번 탑승편에서 기대핬던 Water Salute Ceremony에 대한 멘트는 없어 잠시 실망하기도 했다. Water salute Ceremony는 항공사가 첫 기종을 도입할 때나 새로운 노선에 첫 항공편이 도착하면 도착지 공항에서 제공하는 환영식으로 비행기가 게이트로 들어서는 길목의 양쪽에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그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갈 때 양쪽에서 물대포를 쏴서 환영 아치를 만들어 주는 행사다. 나도 지난 30여 년간 1000번이 넘는 항공편을 이용했었지만 Water Salute Ceremony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3주 전 서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미얀마의 양곤국제공항에서 미얀마항공이 새로 도입한 ATR72기가 Water Salute Ceremony를 받으며 들어오는 장면을 처음 보고 은근히 이 행사를 기대하고 이번 여행에 나선 것도 사실 이다.
실망은 잠깐, 비행기가 게이트로 접근하기 위해 방향을 틀자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곧 기체는 물벼락을 맞게 되고 이런 세레모니에 대해 소개가 없어서 영문을 모르는 승객들은 소방훈련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승객들도 있었다.
이날 화련공항의 국제선은 인천발 이스타제트항공 뿐으로 일찌감치 입국소속을 마치고 공항 로비로 나가니 한글과 한문으로 적힌 대형 환영 플래카드가 입국승객을 맞아 준다. 그런데 한글 환영 문구 ‘……열렬히 환영합니다.’ 가 약간 어설프게 느껴진다. 우리식 표현은 보통 ‘… 진심으로 환영합니다.’가 아닐까 ?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측이 내 건 플래카드가 생각났다. 플래카드 뒤로 많은 카메라맨들이 입국하는 승객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고, 나도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하였다.
로비 한쪽에는 환영식을 위한 단상이 마련되어 있다. 이어 단상 위에 자리 잡은 화련의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현악합주단의 아리랑 연주가 시작된다. 이어 20명 정도의 ‘花蓮縣政府화련현정부’ 라고 적힌 점퍼를 입은 공무원들이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기념식이 진행되면서 승객들은 들러리가 되고 역시 행사의 주인은 공무원이 되는 건 대만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다. 참석자들한테 나누어 준 기념품 종이가방 속에는 한문으로 적힌 화련시 홍보책자와 현지 제과점이 준비한 중국어 홍보물이 전부로 한국인 승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한국에서 온 승객들한테는 여행안내소 진열대에 있는 한글판 지도라도 하나 씩 집어 넣었으면 하는 센스가 아쉬웠다. 그나마 김치를 소재로 한 스낵이 있어 작은 위안은 되었다.
예상 외의 대대적인 환영행사였다. 화련공항의 현 상황에 대한 고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화련이 얼마나 이스타항공의 화련취항에 목을 매고 있는지 이해도 된다. 화련공항은 우리 나라의 양양공항과 아주 비슷한 처지다. 유명 관광지, 그것도 산악지대라는 것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의 무리한 의욕으로 공항을 크게 지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꼭 닮았다. 내가 대만을 처음 찾았던 20년 전만 해도 타이베이에서 화련지방을 가려면 보통 국내선항공편을 이용했다. 타이베이와 화련은 직선거리로 80마일 정도로 서울-조치원 정도의 거리지만 험준한 산악지대를 끼고 있어 멀리 우회해야하고 도로나 철도 등 육로 사정도 좋지 않기 때문 이다.
지금도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아 타이베이에서 화련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없는 것 같으며 대신 타이베이와 화련 구간에는 우리나라 새마을, 우등열차와 같은 성격의 운행시간 2시간 30분 이내의 自強호(Tze Chiang Express)와 3시간 정도의 莒光호(Chu-Kuang Express)가 수시로 있고 일부 로컬 노선인 전철은 타이베이까지도 연결 되어 다양한 계층의 승객들을 수용하고 있다. 반면 현재 타이베이-화련 항공편은 시내에 있는 쑹산공항(TSA)에서 출발하는 70인승 프로펠러기종의 화련 항공편이 하루 두 편 정도가 전부다.
화련공항의 홈페이지에 실린 통계를 보면 화련공항의 문제점이 첫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1996년 부터 2015년 까지 연도별 화련공항을 이용한 항공편수와 승객수가 정리되어 있는데 19년 동안 항공편수는 1/8로 줄어 들었고, 승객수는 무려 7%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철도가 전철화작업이 완성되어 특급열차로 승객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2004년 터미날을 새로 크게 지었지만 Taroko Express (2007년), Puyama Express(2013년) 등 일본에서 수입한 신형특급열차가 소개되면서 승객감소율은 두 자리로 늘어 10년 동안 승객수가 1/10로 줄어들어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현재 화련공항의 홈페이지를 보면 1996년 부터의 통계에 비하면 승객감소율이 너무 커서 부끄러운지 통계를 2008년 부터 10년간 업데이트했지만 그래도 항공편수와 승객수가 반토막 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화련공항에 취항 현황을 보면 국제선 정규노선은 이번에 취항을 시작한 이스타항공의 주3회 인천 노선 뿐이며 국내선도 3년 전 보다 줄어든 듯 타이베이 노선이 아침, 저녁 두 편, 카오슝 노선이 하루 한 편, 타이중 노선이 주3편이 전부다. 일주일 운항편수가 국제선과 국내선 합해 모두 27편, 그나마 국내선은 모두 70인승 ATR72 프로펠러기가 운항된다. 이 정도니 화련공항이 이스타항공의 취항에 목을 매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사족이지만 그래도 화련공항은 우리 나라 양양공항 보다는 나은 편 이다. 양양공항은 인근의 속초공항을 두고도 지방발전을 위해 민간전용 공항이 필요하다는 정치적인 논리로 새로운 공항을 지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화련공항은 공군기지에 터미날을 새로 지은 것이니 예산낭비가 양양공항에 비할 정도로 큰 액수는 아니었을 것 같다.
이스타항공의 입장에서도 화련취항은 일본 노선의 승객감소로 비행기를 놀릴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화련노선을 새로운 취항지로 선정했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스타항공은 서울-타이베이 노선에 김포-송산(타이베이 시내공항) 노선 외에 인천-타이베이(타오위안국제공항) 노선으로 중복 취항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부산에서도 타이베이와 화련 노선에 화련 노선에 취항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대만의 지방도시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도시는 단연 화련 이다. 화련이 갖고 있는 대만 최고의 관광지인 대리석 계곡인 타로고협곡과 화련 앞바다에서 볼 수 있는 돌고래 관광이 유명한 곳이다. 철도를 이용한 타이베이와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은 특히 개인 여행객한테 큰 장점이 된다. 화련 공항도 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것도 장점 이다. 하루 3~4편 정도 항공편이 전부 이지만 공항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시내순환노선 중의 하나로 하루 10차례 정도 운행되며 급하면 택시도 200TWD(약 8,000원)부담이 없다. 타이중의 경우 타이베이에서 거리가 화련과 비슷한 두 시간 정도지만 타이중 공항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항교통은 불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