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j Mahal . . . 궁전 같은 무덤
인도에서 가장 손꼽히는 유적지는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 이다. 워낙 아름답고 기품 있는 건물이라 궁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타지마할은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Shah Jahan의 아내 Mumtaz Mahal의 무덤 이다. Taj Mahal 이란 이름은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통용되던 urdu어로 Taj는 Crown. Mahal은 Palace 라는 뜻 이지만 Mahal은 샤자한 왕비의 이름 Mumtaz Mahal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은 한 여자의 무덤으로 보기에는 너무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품위 있는 궁전으로 봐도 손색이 없으니 타지마할이 품은 뜻은 업어치나 메치나 ‘궁전 보다 더 품위 있는 무덤‘이란 뜻에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Humayun의 무덤 . . . Taj Mahal의 짝퉁 ?
인도의 수도 델리에는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Humayun의 무덤’이 있다. 이곳의 이름을 모르고 방문하면 큰 이슬람사원으로 볼 정도로 무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치형의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 사원과 같은 무덤이 있다. 얼핏 보면 타지마할과 비슷하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들은 이곳을 타지마할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타지마할이 델리에서 자동차로 3시간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타지마할을 흉내 내서 지은 ‘짝퉁 타지마할’로 인식할 정도로 비슷하다.
Humayun 황제의 아내인 Hamida Banu Begum은 Humayun이 1556년 사고로 죽자 황제를 위한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귀족출신인 왕비는 Humayun의 무덤을 페르시아식 정원식으로 설계하여 1570년에야 완공했다. Humayun 무덤은 샤자한이 남긴 다른 유적지들에 가려 일반인들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1993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 예술, 건축공학적인 면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적지다.
아래에 후마윤의 묘와 타지마할을 포인트 별로 비교해 본 사진을 소개한다. 왼쪽이 후마윤의 묘 이며, 오른쪽이 타지마할 이다.
Taj Mahal . . . 오리지날 보다 유명해진 짝퉁 !
Taj Mahal은 Humayun의 증손자인 Shah Jahan이 1631년 그의 아내가 14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죽은 왕비 Mumtaz Mahal을 위해 지은 왕비의 무덤 이다. Humayun의 무덤이 Taj Mahal의 짝퉁이 아니라 Original 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짝퉁이 오리지날 보다 더 유명해 졌다.
Mumtaz Mahal은 19세에 결혼해서 19년 결혼생활을 통해 14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Shah Jahan과 Mumtaz Mahal의 금술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부다처제 이슬람사회에서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 외에 앞 뒤로 두 명의 부인을 두었지만 샤자한은 다른 부인 보다는 뭄타즈 마할과의 관계가 유독 좋았다고 한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어 내 샤자한은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함께 건축광으로 유명해서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지금은 힌두교의 나라지만 인도를 여행하면 눈에 보이는 우적은 무굴제국의 건축물로 대부분 샤자한이 세운 것이다. 타지마할 뿐만 아니라 델리의 이슬람대사원 Jama Masjid, Lal Qila (Red Fort), 파키스탄의 Lahore에 있는 Shalamar Gardens 등 샤자한 시대에 만들 유적들 이다.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죽자 바로 죽은 왕비의 무덤을 준비하였다. 무굴제국의 왕비들의 출신인 페르시아의 앞선 건축문화를 들여오고 유럽과 페르시아에서 유명한 장인들과 최고급 대리석 등의 건축자재와 보석 등을 도입했다.
타지마할의 입구는 Jama Masjid의 입구와 비슷한 모습이다. 아치형의 대문를 지나면 전면에 수로가 뻗어 있고 양 옆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수로 끝에 있는 뭄타즈 마할이 묻혀 있는 대리석으로 빛나는 중앙 건물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벽은 여러 색을 띤 보석들로 이슬람 미술 특유의 무늬를 이루고 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웠던 이방연속무늬, 사방연속무늬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무려 22년이나 타지마할에 몰입하자 국운이 기울게 될 정도로 백성들의 불만은 쌓였고 결국 말년에는 셋째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타지마할이 멀리 보이는 아그라강 건너 편에 있는 아그라 성에 갇혔고, 8년 후 죽은 다음에야 타지마할의 뭄타즈 마할 옆에 묻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