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라오스여행은 1990년 중반부터 현지 NGO단체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었던 방비엥 근교의 마을을 둘러보려는 것 이었다. 방비엥은 라오스 수도 브엔챤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다. 그러나 이번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작년 말 라오스에 기차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일정을 변경했다.
새로 생긴 기차노선은 라오스 남단에 있는 수도 브엥챤에서 방비엥을 거쳐 라오스의 고도인 루앙프라방을 이어 북쪽 중국과 국경도시인 보텐까지 총 길이 406km 이다. 이 기차는 중국자본에 의해 건설되고 중국이 운영한다는데 철도회사 이름도 LCR (Laos China Railway) 이다. LCR 마크는 빨간색 사각형 테두리가 마치 독일 철도회사 DB Deutsche Bahn과 흡사하다.
비엥챤에서 방비엥까지 전에 미니밴이나 버스로 3시간 걸리던 것이 기차(123km)로 1시간 만에 달린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것 보다는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는 험준한 산악길로 버스로 무려 9시간 걸리고 브엥챤에서는 12시간 걸리는데, 방비엥-루앙프라방(115km)도 기차로 약 1시간 걸린다는 것은 라오스 육상교통에 획기적인 변화가 온 것이다. 루앙프라방은 22년 전에 항공편으로 다녀온 곳이지만 이번에 라오스에 등장한 기차를 이용해보기 방비엥에서 일정을 반나절 줄여서 루앙프라방을 당일치기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라오스에 첨단 교통수단인 고속철이 등장했지만 라오스에서 기차여행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역사가 시내 중심에서 너무 멀다. 운영도 중국회사가 장기계약으로 맡아 하는데 무척 서툴다. 우선 라오스의 기차표는 항공권과 마찬가지로 기명이라 외국인은 기차표를 예매할 때 여권이 필요하다. 아마 암표를 근절하려는 목적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명으로 한다는 것은 여행사를 통하여 예매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예약이 되지 않는다. 한때 동남아시아 교통을 예매하는 사이트에서 온라인 예매를 시도하였지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지금은 예약이 안 되고, 기차표를 사려는 사람은 3일 전부터 역에서 구입하거나 시내 매표소에서 구입하는데 역에서는 신용카드도 안 되고 시내매표소는 신용카드, 현금도 안 되고 현지 금융기관과 연계된 카드로만 살 수 있어 외국인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LCR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LCR의 facebook에서 3일치 잔여 티켓을 공개하여 기차역에 나가 선착순으로 기차표를 구입하는데 당일 기차표는 매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루앙프라방 까지는 육로로 방비엥이나 브엥챤에서는 9~12시간 걸리니 절약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기차표가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싸지만 버스나 미니밴 승객이 기차로 몰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선택도 출발하는 날 새벽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구입하고, 매진이면 시내로 돌아와 미니밴이나 버스를 타야한다. 기차역은 브엥챤 시내에서 14km. 기차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교통편은 기차시간에 맞추어 minivan이나 tuktuk 등 합승수단이 정액제로 티켓을 팔지만, 반대로 시내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교통편은 현지 사정을 모르면 택시(250000Kip,약20000원)나 tuktuk을 전세 내는 수밖에 없어 비싸게 든다.
7시30분 첫 출발하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새벽에 호텔을 나서 아침 6시에 브엥찬 역에 도착했다. 티켓창구는 6시30분 오픈. 이미 3~40명의 사람들이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줄이 애매하다. 그중 한 젊은 여자 분이 내 손에 든 여권을 보며 반가워한다. 한류팬 이라고 한다. 몇 마디 나누다 아예 나를 자기 앞에 세워준다. 기차표를 사는데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아 메모지에 원하는 기차를 적어 보여주었다. 덕분에 원하는 기차표를 루앙프라방까지는 2등석, 루앙프라방 까지는 1등석 고루 살 수 있었다.
브엥챤, 방비엥, 루앙프라방 역은 터미널 외형이 거의 비슷한 구조다. 중국회사가 운영하는 탓인지 라오스가 한자문화권은 아닌데 모든 역 이름이나 안내판에 중국어가 라오스어 보다 우선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소아용 표를 파는데 나이가 중요하지 않고 키 150cm로 구분하는 것 같다. 덩치가 큰 아이는 미리 키를 측정할 때 무릎을 굽히는 요령을 체득해야 할 것 같다. LCR관련 근무자들은 매표소나 안내원 승무원 모두 마스크는 물론 투명 페이스마스크까지 착용한다. 아마 중국수준의 방역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닐까 ? 라오스에서는 마스크착용이 자유롭지만 기차 안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적 이다.
라오스에서 기차를 이용하려면 항공편만큼 수속이 까다롭다. 우선 역 건물에 들어가려면 신분증과 기차표를 확인하고 공항과 같은 수준의 보안검색을 받는다. 시내 외곽에 새로 크고 말끔하게 지은 터미널이지만 터미널 안에는 브양챤 역에만 간이매점 하나만 있을 뿐, 다른 편의시설은 없다. 그래도 이번에 탑승해 보니 차내에서 음료수 판매는 새로 생긴 것 같다. 좌석은 2등석이 2+3. 1등석은 2+2. 의자를 보면 일반적으로 의자를 회전시킬 때 사용하는 페달로 보이지만 회전시키지는 않고 좌석 반반씩 중앙으로 마주 보는 형태라 역방향이 50% 이다.
LCR의 등장은 단순히 라오스 국내의 획기적인 교통수단의 변화가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물류를 중국이 장악하게 된다는 조짐이다. LCR의 중국 국경인 보텐에서는 곤명까지 중국기차가 200km/h로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LCR 노선 주변에는 중국회사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보이는 물류창고 시설이 많이 건설중인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브엥챤 중앙역과 외곽 타날렝까지 노선만 정리된다면 중국에서 출발한 기차가 태국국경도시 농카이로 들어가서 방콕을 경유 말레이시아를 지나 싱가폴까지 이어지게 된다. 물론 태국과 라오스의 기차궤도에 차이는 있지만 태국도 낙후된 농카이-방콕의 기존 철도 대신 고속철을 계획하고 여기에 중국자본이 들어간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도 예전에는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등 국산차량이 운행되었지만 200km/h 미만 수준의 고속열차가 등장하면서 이미 중국차량으로 대폭 교체된 상태이며 초고속열차의 건설을 두고 중국이 신칸센, KTX과 경합중이라고 한다. 새삼 동남아시아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