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음 디스크패밀리클럽 Disk Family Club

성음사가 라이센스 음반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나름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음악방송은 음악평론가이자 서울예고교장을 역임하신 고 한상우 님이 진행하던 MBC FM ‘나의 음악실’ 프로였다. 성음사의 새 음반도 FM 방송을 통해 소개 되어 관심이 있는 음반을 구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에 여유가 생기면서 음반 구입량도 늘어났다. 치과대학 본과에 올라가면서 다른 데 눈을 팔 시간이 없었어도 국립교향악단의 콘서트는 1년 패키지티켓을 구입하여 거의 빠지지 않고 다녔지만 음반을 들을 여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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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대학 졸업 후 군의관 훈련을 마치고 당시 무의촌이 많아 군대 병영이 아닌 경기도 양평보건소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 성음사는 계간으로 레코드음악 잡지를 1978년부터 발간하였는데 월간 객석이나 음악동아 등 보다 훨씬 먼저 생겼다. 내 기억으로는 레코드음악은 무료로 배포되었지만 내용이 무척 알찼다.

내가 양평보건소에 근무할 때인 1980년, 그 때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이 소개 되어 큰 인기를 끌 던 때였다. 출퇴근 때 FM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고 다녀도 신호가 잡히지 않아 거의 무용지물이 이었지만 스테레오로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당연히 나도 육군 중위 한 달 월급(1980년 당시 12만원)에 약간의 용돈을 보태 스테레오 FM 방송과 스테레오 녹음까지 가능한 일제 AIWA 워크맨을 구입했다. FM으로 음악 방송을 듣다 다시 듣고 싶은 곡이 나오면 즉석에서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매력이자 즐거움 이었다. 그때 구입한 워크맨에 관련된 이야기를 레코드음악에 1982년 봄호 기고하여 작곡가이자 아버님의 절친 이셨던 연세대 음대학장 나운영 선생님, 테너 원로 이유선 선생님, 김원구, 박용구 선생님 등 당시 명성이 높았던 음악평론가들과 함께 독자 기고글 이지만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나의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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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음사는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성음 Disk Family Club을 만들어 회원들한테 통신주문판매를 시작하였다. 최소 주문량은 5개로 당시는 전산망이 없어 온라인 결제가 아니라 해당 금액을 우체국을 통해 송금하고 영수증에 주문하는 레코드 이름을 적어 우편으로 보내면 소포로 보내 주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일일이 레코드 가게를 찾아 가지 않아도 되기에 지방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Disk Family Club을 통해 우편주문을 하면 음반 표지에 미리 등록한 사인을 금박으로 새겨 준 것은 가장 돋보였던 서비스였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by Pollini

성음사는 Disk Family Club을 통해서 주문한 음반이 100장을 넘으면 Chrome 도금의 실물 LP 기념음반을 선물로 제공했다. 200장을 돌파하면 Rhodium Disk를 받았는데 그때 마침 첫 째 아이를 낳아 큰 애 이름으로 된 Rhodium Disk를 받았다. 500장을 돌파하면 Golden Disk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나는 500장 돌파하기 직전에 이 제도가 폐지되어 Golden Disk는 받지 못했다. 아마 그 시점이 CD 보급이 늘어나면서 LP 산업이 위축되기 시작된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내가 보유한 LP를 들쳐 보면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 1987년 쯤으로 그 이후에는 시류를 따라 CD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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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소리가 수정같이 맑고 잡음이 없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LP의 경우 음반 상태에 따라 처음 개봉했을 때도 잡음이 나는 것이 있었고, 턴테이블의 바늘이 좋지 않은 경우 스크래치가 쉽게 생겨 반복해서 들으면 잡음이 늘어 날 수밖에 없는 것이 흠이었다.

2000년 접어들면서 오래 된 가구를 버리고 서재를 정리하면서 먼지가 쌓은 LP도 대부분 처분했다. LP음반 중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1950년대 말 나온 RCA Living Stereo, Columbia Masterworks 등 원판 20여 장과 라이센스 음반 중 나름 의미를 지닌 음반들 50장은 듣지는 않아도 소장하고 싶어서 버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LP를 처분하기 전에 미리 LP 700장과 CD 700장을 정도를 추려 MP3 파일로 변환시켜 놓았다. 이 MP3화일은 스마트폰으로 옮겨져서 40년 전 출퇴근길에 워크맨을 갖고 다녔듯이 지금은 경인선 전철길이 지루하지 않는 움직이는 Music Box의 역할을 하고 있다.

CD, DVD, LD에 빠져 LP를 잊고 살다 디지틀로는 나오지 않은 음악을 듣기 위해 2년 전 일제 싸구려 턴테이블을 구입했다. 요즘 TV는 오디오와 광케이블로 연결이 되기에 클래식음악 케이블TV 방송을 보기 위해 일제 디지탈앰프를 사서 듣고 있었다. 오래 된 QUAD는 스위치가 작동이 안 되지만 다행히 구입한지 40년 된 TANNOY GREENWICH 스피커와 버리지 않고 보관해온 30년 된 AURORA 앰프가 아직 작동이 된다.

20년 만에 LP를 다시 들으니 예전에 느끼지 못한 소리가 와 닿는 것을 느낀다. 1958년 스테레오 LP 초기에 나온 Robert Shaw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데 전에는 그렇게 거슬렸던 스크래치 잡음이 마치 장작불 타는 소리로 들린다.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를 듣는데 잡음이 마치 계곡의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나뭇잎 스치는 소리로 들린다. 1958년 Van Cliburn의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을 기념하여 RCA에서 나온 음반을 틀면 잡음이 심한데 내가 어릴 때 많이 갖고 놀았던 흔적이다.

요즘 예술의전당 음반가게에 들리면 LP판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마법의 성’을 작곡, 작사하고 직접 불러 전국적으로 대히트를 친 막내처남도 지금 새로운 음반을 CD가 아닌 LP로 제작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젊었을 때 한 때 오디오에 몰입했던 적도 있지만 더 이상 오디오에 대한 욕심은 나지 않는다. 일제 싸구려 턴테이블과 우리 아이들 나이 보다 오래 된 아날로그 시절의 낡은 오디오로 재생되는 따스한 소리가 기특하게 들린다.

오늘 밤은 1975년에 나온 PHILIPS 라이센스 음반 Maurice Gendron과 Jean Francaix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어 본다.

Schubert Arpeggione Sonata by Gend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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