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백반>

작년여름이었던가?어느날무심히지나던굴다리길시장끝에간판도없는작은식당이하나생겼습니다.흔한유리알미늄세시문앞한쪽에A4용지에다<가정식백반>이라고써있을뿐아무런설명도없고,가게같지도않고,여긴그냥반지하살림집이었거든요.그래도장보러지나다니며언뜻언뜻보이는그<가정식백반>이란소박한글자가참정겹게여겨지더군요.

이제일년이지난지금은그가정식백반이란글씨는낡아서버리고역시이름없이그냥’식당’이라고쓴종이를붙였습니다.차이는글자크기가조금커졌다는차이뿐,소박하기는마찬가지입니다.제가해질무렵여기를지나다보면편안하게생긴아주머니한분이저평상에나와앉아김치거리를다듬거나다른채소를손질하는모습을자주보니까,’아저분이이식당을하시나보구나,아주부지런히깔끔하게반찬거리를다듬고계시네..’하고느꼈죠.

고향이지방이어서서울로유학을온학생들에게나익숙한곳이이<가정식백반>집이아닐까싶어요.제가많이따르던선배중에저멀리충남홍성서올라온분이있었는데,그당시과유일의(아니학교전체를통틀어)4년전액장학금을받던,그만큼공부를잘하기도하고,또형편도참어려웠던선배님,늘아르바이트로번역거리를안고지내던모습과함께,잠은독서실에서잔다는건알았는데,끼니는제대로챙겨먹나걱정이되었거든요.밥먹었냐고물어보면먹었다고대답하지만,워낙곤궁한선배처지를아는지라따라가내눈으로직접확인까지하고서야마음이놓일것같았습니다.

"원기형,밥먹는거보고갈게요."

이선배가밥을먹는곳이흑석동시장안골목에있는<가정식백반>집이었습니다.

‘가정식백반’이란걸한번도사먹어본적이없는나는,어느날우리동네에그것도식당이즐비한상가쪽도아니고굴다리시장끝의후미진곳에보일듯말듯한글씨한장붙이고문을연이밥집이제대로장사나되나늘신경이쓰이더군요.추억과함께마음을움직이게하는이름때문이기도했습니다.

그런데언제부터인가점심시간만되면이백반집앞에는젊은직장인들이줄을서있는광경을심심찮게보게되었구요.오늘점심은나도한번도전해보기로했습니다.그런데혼자서는들어갈용기가없어망설이는데,(한참손님많아바쁜시간에식당도작은데혼자인손님은별로달갑지도않을텐데..)걱정도되고,쭈빗쭈빗하고있는데,왠깡마른아줌마하나가와서문안을향해,"아줌마,나,밥먹으러왔어요~"하고소리지르더니덜렁저평상에앉습니다.

‘저..혹시혼자시면나랑같이밥먹을래요?’바로좋다는대답이옵니다.자기도혼자라미안해서손님이좀한가해질때까지기다릴작정하고왔었다고,역시어디든지통하는방법은있습니다.흣,

실내는역시그냥가정집입니다.앞의작은방에침대가살짝보이고이좁은마루끝에식당노릇을하는안방이있는데거기는사람이그야말로입추의여지없이빼곡이앉아있었습니다.의자는하나도없구요,다이온돌바닥에앉아그야말로예전에집에서밥먹듯이,간이식탁하나두고초면인두여자가앉았습니다.

(우리市야인구가작으니까다이웃사촌이겠지..,)내짐작대로집이근처아파트랍니다.간단한인사를나누는사이,아저씨가급하게놓아준차림새그대로입니다.그래도반찬가지수가많지요?반찬들도깔끔합니다.나랑동행한여자분은정말배가고팠나봅니다.아저씨더러밥꾹꾹눌러담아달라고하고,그뿐아니라아예’아저씨나밥두공기먹어도되지요?’하고미리말합니다.제가디카꺼내들고얼른사진한장찍었습니다.동석한여자분이바로식사해야할것같으니,구도고뭐고없습니다.그냥찰칵,

가정식백반의주메뉴인오늘의생선구이가나왔습니다.이집에서는날마다그날그날장만한싱싱한생선을구워주는데요.오늘은고등어구이입니다.그다음부터는열심히먹기시작,세상에난내가아주밥잘먹는여자인줄로알았는데..첨보는여자분식성이대단했습니다.내가반공기정도먹었을때이분은그꾹꾹눌러담아준밥한공기다먹고,밥한공기더퍼다가콩나물국에말아서싹싹,으왓!

"아니도대체그체격에그밥이다어디로들어가요?"

놀란이임공주가물었더니짜장면은한그릇반,라면은한번에두개를먹는다고합니다.이런사람이많으면우리나라쌀이남아돈다고걱정안해도될텐데..!아무리봐도체중이50킬로채안될것같은아주날씬한여자가순식간에밥두공기를(반찬과국까지)후닥맛나게먹어치우는건첨봤습니다.

안방에서식사하고나오는분들중에이런외국분들이계셔서또물어봤어요.

"맛있었어요?"전그냥우리말로묻습니다.안통하면그때가서엉터리영어회화를시도하거든요.그런데이분들"아주맛있어요."합니다.영국분들이시고,여긴작은식당이라빨리자리를내줘야하니까,이정도의인사와대화만하고안녕,또저는내몫의밥그릇만간신히비우고일어섰는데,(사실은저랑동석한여자분은미국교포시랍니다.과천에어머니가계시고,자긴한국과미국을왔다갔다한다구요,어쩐지..이분이내질문을다영어로통역해주셨음.)

날쌀쌀해지니따뜻한방바닥에앉아서먹는소박한밥상-가정식백반,참맛있었습니다.

나랑동석해줄만한여자분도만났으니종종이집밥먹으러가야겠어요.

*피에수:저소박하고따뜻한백반일인분가격은5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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