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식당 -맛깔지고 유쾌한 여행기

너무재미있어서대출받아온밤곧바로단숨에읽어버린책<열대식당>

책의표제에는’먹고마시고여행하는너를위해’란감각적인부제도붙어있는데,이건순출판사에서전략적으로덧붙인게아니었을까(?)싶었던.

‘열대식당’이란이름만으로충분히이책이무슨이야기를하려는건지알수있었는데,그래만화책과일드로본<심야식당>의그소박한정겨움이생각나고실제로그렇다.

열대식당 저자 박정석 출판사 시공사(단행본)(2012년02월27일) 카테고리 국내도서>여행

제목에서알수있듯이이책은동남아시아의더운나라들을돌아다니며먹은음식에대한이야기이다.그것도대부분노천식당에서먹었던음식.방콕에서부터시작북부지방인치앙라이와치앙마이그리고베트남과인도네시아의섬들그리고버마.고등학교를졸업하자마자바로배낭여행을시작,세계각국을끊임없이여행했던작가박정석인데,동남아음식에대한여행기가얼마나맛깔지던지펼친자리에서끝까지다읽고말았다.

그리고저자의네이버블로그까지찾아가최근의이야기까지샅샅이읽고왔다.댓글도몇군데달고,헤,

사실동해안어느곳에집짓고산다고해서,그풍경이궁금해서블로그를찾아본건데,6년간의바닷가생활을끝내고현재는서울에서살고있단것.조금서운했다.

무지하게털털한성격의여자.겁없는여자.최근에는밥하는일이지겨워밥통을폭파시켜버리고싶다는여자.밥통폭파시켜버리고싶단솔직한말에나도덩달아폭소를터트리며공감했다.아마삼시세끼밥상차리는여자들대부분이몇번씩은이런생각을했으리라.

인터넷에책의몇부분이맛보기로글과사진이그대로올라와있길래발췌해왔다.

태국

이이야기의시작은역시방콕(Bangkok)이다.홍콩,도쿄가될수도있고그보다멀리가서런던이나뉴욕,이스탄불이나요하네스버그,혹은부에노스아이레스가될수도있겠다.그러나호주머니에돈몇푼없고머릿속에는뾰족한계획이없는,떠나기위해옷몇벌가방에구겨넣고의기양양대문을나섰지만막상어디로가야할지목적지를알수없는어리바리풋내기가인생의비밀을몸소깨닫게되는최초의장소는어쩐지방콕이어야만할것같다.

단맛이강한홀리바질(HolyBasil)에씹는맛을내기위해닭고기또는돼지고기약간,거기에쁘릭키누(쥐똥고추)를송송썰어넣고피시소스를조금뿌린후화력센불에휘리릭날렵하게볶아보슬보슬한하얀쌀밥위에살짝얹어내어준다.작은접시에얌전히담은,특별할것없어보이는덮밥이내앞에놓인다.

후아.

평범한겉모습과는달리폭탄처럼강력한맛이다.뜨거운불맛과이보다더거센고추의화끈한위력이입안전체에확퍼져나간다.오래간만의자극적인맛에침이폭발적인기세로터져나와침샘부분에얼얼한통증이느껴질정도다.

비싼재료를사용할수없는저렴한식당에서무엇보다중요한것은식재료간의조화다.미지근한타액과뒤섞이며고추의매운맛,바질의달착지근한맛,피시소스의짠맛이하모니를이루면서목을타고넘어간다.

태국음식의1인분은한국보다양이작다.다행이다.이제시작이고끝은아직까마득하게멀리있다.방금도착한사람의눈에는보이지않을만큼멀리.그러기를바란다.
여기는크룽텝.방콕.아시아의넘버원쾌락도시.

순전히먹기위해방문하는사람도있다.

베트남

우선,거기자리에앉으시라.
어디라도상관없다.하노이소피텔메트로폴(SofitelMetropole)호텔의우아한프렌치카페,풀을먹여빳빳한하얀리넨깔린테이블앞쿠션푹신한의자가아니어도괜찮다.호치민시의혼잡한거리,간판도붙어있지않은허름한현지카페의플라스틱꼬마의자일수도있겠다.종업원이다가온다.커피를한잔주문해야겠다.블랙커피를원하면카페덴(CapheDen),밀크커피를원하면카페쓰어(CapheSua)를시킨다.무더운날이라면아이스커피인카페다(CapheDa)가좋겠다.다(Da)는얼음이라는뜻이다.

마술을주도하는것은잔위에얹은은빛핀이다.뜨거운물이커피가루를적시며아래로아래로내려가는그작은내부는베트남거리를장악한오토바이떼의요란한굉음과매캐한매연으로부터완벽하게격리된초미니우주처럼느껴진다.

향기와침묵으로가득찬세계.오토바이가발명되기이전,그보다훨씬더전에존재하던,지금보다평화롭고느린시대의한조각.다시,커피를한잔주문한다.핀을얹은찻잔이딸깍테이블위에놓인다.
은밀한시간이시작된다.기다리기만하면된다.

하나,둘,셋….

게으른사람이시간을세듯한방울씩떨어지던커피방울이점점느려져이윽고완전히멎을때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동쪽으로섬을몇개지난곳에있는플로레스섬을여행할무렵의일이다.고지대에있어연중기후가서늘하고커피를많이키우는바자와(Bajawa)에서며칠머물렀다.한시간쯤떨어진곳에수요일장이선다는정보를우연히입수,찾아가기로했다.

운전사옆조수석을차지하고기뻐한것도잠시,어떤뚱뚱한할머니가막무가내로내옆을비집고합석한다.한명이탈자리에두명이타는것은인도네시아시골에서는기본중기본이다.더한기본도많다.깨어져없는사이드미러에닭들의다리를묶어거꾸로매달았다.꼬꼬댁!고통을못이긴닭들이기를쓰고몸을일으키려하면주먹으로후려쳐서다시뻗게만든다.미안해!

햇볕에타서새까매진사람들이나를보고눈이휘둥그레진다.베틀너트로붉게물든입을반쯤벌린채,웃고떠들고짝짝손뼉을친다.외국인은나혼자뿐이다.여기저기발길닿는대로돌아다닌다.매캐한냄새가난다싶으면닭이나염소를파는곳이나타나고비린내가풍긴다싶으면어김없이어물전이등장한다.이깟장수들이나를둘러싸고자랑스레노란천을펄럭이며현란한판촉을벌인다.단체사진을찍어달라며옆사람과어깨동무를하고무작정웃고보는사람도있다.

이순간이야말로낯선곳으로여행을온모든사람들의꿈이아닐까.짧지만완벽한시공간의이동.
문득배고픔을느끼고시계를보니벌써정오가지났다.아침도먹지않은상태에서장구경에넋이팔려시간을잊고있었다.식당을찾아무조건걷다보니밥도밥이지만화장실이더급하다.식당도안보이지만화장실은더욱눈에띄지않는다.

“저,지금좀급한데,근처에어디화장실좀없을까요?”

못참을지경이되어서야사태의심각성을깨달았다.대충네기둥만세워놓고바나나잎으로지붕을얹은허름한오두막,그속에서뭔가일을하고있는여자를발견하고뛰어가물었다.

“Ada,Ada(있어요,있어요).”

갑자기나타나허겁지겁묻는이방인의모습에여자는놀라지도않는다.대수롭지않다는얼굴로태연하게대답한다.있어요,화장실.

“정말요?어디요?”
“저쪽,저기,우리집에요.”

여자는마치내가오리라는것을알고나있던사람처럼침착하다.요리를하고있던것같다.수건으로손을닦으며오두막에서나왔다.

“저쪽에있어요.바로저기,조금만가면돼요.”

고맙다고말하고허둥지둥달려가는내뒤를여자는천천히따라왔다.

“잠깐,내가먼저들어가서….”

화장실은뒷마당에독채로서있다.반노천의공간인데생각보다아주청결하다.여자는문을열고불을켜더니자리를비켜주었다.

“여기가내집이에요.”

일을해결하고밖으로나왔다.여자의얼굴이비로소눈에들어왔다.갈색으로탄이마에잔주름이가득한,평화로운인상의몹시여윈여인이다.

“아직완성된것은아닌데,여유가생길때마다조금씩천천히손을보려고해요.”

집의벽은페인트칠을하지않아회색콘크리트그대로다.

“어디에서왔어요?”
“바자와에는며칠이나있을거예요?”
“배안고파요?”

그말을듣자갑자기엄청난시장기가몰려왔다.아까화장실을찾아헤맬때이상으로참기어려운격렬한욕구다.

“식당,이근처에식당이어디있지요?”
“식당은저쪽으로가면있긴한데,그럴것없이이리로….”

여자는메마른손으로내손을살짝잡는다.화장실을안내했을때처럼나를이끌었다.아까그오두막,그녀가일하던허름한가건물로돌아왔다.

“음식이좀있는데,여기이런것,이런것도괜찮다면….”

오두막에들어간그녀는만들던음식을보여주었다.찌그러진양은솥에밥이반쯤담겨있고생선조림,데친야채….알고보니여자는나시붕구스(도시락)장수였다.식도락을위한도시락이아니라장터에온사람들이허기를면하기위한목적으로사먹는최소한의음식.밥과반찬을바나나잎에싸두면사가기도하고어떤사람은들어와서먹기도한다.

“먹어요,많이.”

그녀는나를구석테이블에앉히고음식을가져왔다.짭짤하게양념을한조그만민물고기,배추무침,땅콩조림….
시장이반찬이랬다고정신없이먹었다.쌀이,생선이,배추가계속해서내입속으로들어간다.음식맛에서가장중요한것은호화로운재료가아니라간이다.

여자의음식은간이절묘했다.그리고삼발(sambal).
여자의삼발은갓만들었는지아주신선한맛이났다.어찌나맵고도감칠맛이도는지고픈배에이것만있어도밥을몇공기는먹을수있을것같다.먹고또먹었다.내옆자리에현지인들이들어와서조용히밥을먹고는서둘러나갔다.나는걸신들린사람처럼숟가락을놓지않았다.도저히멈출수가없다.

“맛있어요,맛있어!”
.
.

노르의쌀밥과생선반찬.
십수년간인도네시아를드나들면서수많은것을먹었다.맛있는것,맛없는것,이상한것,더러운것,징그러운것,비싼것,싼것.동쪽끝수마트라에서자바,발리,롬복,코모도를거쳐플로레스에이르기까지,어느식당에서도노르를만난이날먹은점심보다더충만한식사를한기억이없다.

어려서는젖.다커서는밥.
밥은사람이사람에게줄수있는가장원초적인형태의사랑이다.
인도네시아오지에서도물론그렇다.

이부분은거의전체를발췌해왔는데,저자의흡입력강한필력이화장실에피소드와감동적인밥에대한이야기를책에서가장인상적으로읽었기때문이다.그래맞다.밥은사랑이다!

세상에존재하는모든식당과음식이사치로느껴지다-티숍의나라,버마

목욕탕의자에옹기종기앉아차를러펫예(차)를마시다

티숍은버마인들이빈약한자원으로만들어낸가장소박한형태의위로공간이다.이마저없다면살아갈수없다.생존과관련된기본적인욕구에대한버마식해답이다.배고픔과피로,사교에대한욕구를한꺼번에풀수있는최소한의시설과음식들.세상에존재하는이이상의식당과카페들을단번에사치로만들어버리는힘을가졌다.

버마에서생활하는것은기다림의연속이다.이방인에게는며칠간의기다림이지만이들은평생기다린다.그것이이나라사람들의생활방식이다.느리고,불편하고,어쩔수없다.드디어물이끓는다.하얀김이피어오르고,곧이어부글거리는소리가들린다.기다림이기니기쁨도크다.인생에감사할일이없다고생각하는사람이라면버마에한번가보는것도좋을것같다.지금까지의삶이행운으로가득찼다는것을깨달을것이다.

박정석은1971년서울에서태어나이화여자대학교신문방송학과를졸업하고시카고의노스웨스턴대학(NorthwesternUniversity)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플로리다대학(Univ.ofFlorida)에서신문방송학박사과정을마쳤다.고등학교졸업이후50여개나라를여행했으며,각나라의말로"맥주한병주세요."라고말할수있다."빈둥빈둥놀면서도항상즐거운듯한작가의생활이좋아보였다."라는윌리엄포크너의말에따라소설쓰기를시작했다.동해안시골에직접집을짓고얌전한시바견을키우며살고있다.그개의이름은사요리.날렵한자태가학꽁치를닮아그렇게부른다.개와닭들수발드느라긴여행은가기어렵게되었다고.지은책으로<쉬트래블스><33번째남자><용을찾아서><내지도의열두방향><하우스><바닷가의모든날들><화내지않고핀란드까지>가있다.바닷가마을에서낚시하며살고있다.

"저는늘세상을앞서갔어요.어머,재수없어!할지몰라도제행적을보면그말이과장이아니라는걸알거에요.2001년도에남미여행기를내면서’음,이책이빛을보려면한10년쯤걸리겠지?’생각했는데2012년이된지금도남미여행은극소수의관심사로남아있지요.요즘집짓기에관심을두는분이많은데저는집짓기책을5년전에냈어요.이젠뭘써야할까요.작년에크로아티아에서스위스까지여행하면서많은일을겪었는데그이야기를써볼까생각중이에요.<화내지않고핀란드까지>의후속격으로요.감상적인여행기와가이드북이양대산맥을이루고있는한국의재미없는여행서시장에서,유머와통렬함을모두갖춘정확하고아름다운문장으로채워진수준높은트래블로그로기억되고싶어요.감사합니다."-박정석의인터뷰중에서

정말맛깔지게읽은여행기이다.분위기근사한여행기가아니라활달한필력과겁없는작가의성격이그대로드러나즐겁게읽히는여행기다.여기올라온음식들을다맛보고싶다.오로지맛나거나특별한것들을먹기위해여행해보는건어떨까?이거야말로진짜신나는일일것이다!

피에수:지금물난리난울집을도배하러온다네요.이포슽수정할시간이없어요.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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