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나던 이웃형님에게 좋은 분이 생겼다.
또, 동창모임에 가는 도중에 동승한 차안에서 상처한 친구가 선을 본 이야기를 했다.
55세 이하만 선을 봤다는데 어느 여자는 주름이 많아서 피했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부쩍 카톡에는 부부가 여행지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자주 올라온다.
형님은 원래도 단아했지만 혼기에 이르른 아가씨처럼 수줍은 자태를 보이며 젊어 지신 것 같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정말 그렇다!
곁에서 보기에 전혀 추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연로한 두분의 사귐이 아름다워 보였다.
친구는 재혼하면 하던일에서 은퇴를 하고, 새부인과 여행만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럴만한 능력의 친구이다.
나는 부쩍 불안해졌다. 친구의 이야기 속에 든 55세 이하 규정에 쇼크를 받았나 보다. 55세가 넘었으니 아무런 가능성이 없나 싶어에 꽂힌 것 같다.
형님은 나보다 13살이나 많은데 좋은 분을 만났다.
그러니, 불안 할것도 없다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 했다.
혼자 지내도 좋다고 했던 마음이 한 이틀간 마구 흔들렸었다.
몹시 외로워서 친구들에게 전화질을 했다.
그러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진정이 되었다.
진정은 되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다.
애들한테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날이 갈 수록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여생의 문제를 어찌 할 것인가?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또 있다고 나 자신과 자식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애들은 심신이 건강하니 점점 발전하는 삶을 살게 될것이다. 우리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거라는 기대심리를 이용하여 또는 다는 아니지만 건강을 잃고나서 불가피하게 자식들에게 얹혀 살게 된다.
그들에게 빼앗는 시간과 에너지는 서로에게 불행의 경로가 아닐까.. 가능하면 가족 각자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가족간의 유대와 정을 잃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되어 봐야 아는 부모의 입장을 그들에게 억지로 주지시키며 효도를 강요할 필요가 있는지 ..
나는 그러고 싶지않다. 나는 나대로 가능한한 어느 누구에게나 짐이 되지 않고 싶다. 나의 싫고 좋음만을 주장할게 아니라
어미로써 아이들과 적당한 선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리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혼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세상은 다 알것이다.
그러하니 남은 여생을 함께 할 진실한 동반자를 찾는 것이 현명하지 싶다. 돈은 내가 죽음의 선을 넘을때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알기로는 병석에 누운 순간 나를 떠날 것이다.
절친한 친구나 진실한 동반자는 내가 죽음에 이를때 까지 함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동반자에게 꼭 필요한 지혜로운 존재일것이다.
옛말에 자식보다 친구가 났다는 말이 있다. 이말은 진리일것이다.
애틋하기야 자식이 백번 천번 나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를 보는 눈과 이해 하고 수용하는데는 친구나 동반자가 보다 더 현실적이다.
같은 세대라는 것은 신체의 변화를 동시기에 겪고 처세법이 낯설지 않으며 친구나 동반자는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과 둘 관계 사이에 장애가 되는 이견인(異見人)이 없다는 것이 유리한 점이라 본다.
반복되지만 한 시기에 살아 온 두사람의 관념은 차이가 적을 것이라는 것과 죽음은 나이대로가 아니라해도 삶을 마감할 수있는 시기도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이 이유이다.
인연이란 하늘의 뜻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세상에 흔한 돌싱들이라도 인연 맺기는 쉽지 않다. 용기를 내 보자고 늘 결심하지만 이게 걸리고 저게 걸린다. 아마도 자존심이 나서지못하게 하거나 세상이 너무 험해져서 여자고 남자고 무섭다는 점일 것이다. 잘 살 것 같아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사람의 행태를 보면 그만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꽃 봉오리가 꺾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얼른 지지대를 만들어 버텨 주었는데 시들어 버릴까 걱정이다. 시간이 흐르니 지금은 반쯤 피었다. 때묻지 않은 청초한 노란빛깔이 너무 예쁘다.
서너시간 흐르니 이렇게 피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