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유적
1989년부터20년동안발굴조사결과백제무왕대에왕궁으로건립되어경영되다
후대에왕궁의중요건물을헐어내고그자리에사찰이건립된것으로확인되었다.
미륵사지에서직선거리로5km쯤남측에위치하여
일제시기부터미륵사지석탑과함께왕궁리5층석탑에대한관심과연구가이루어지고있었다.
1965년에는북쪽으로기울어있던석탑의붕괴를방지하기위한해체보수를하던중
석탑의1층옥개받침과기단부에서금제금강경판을비롯한사리병,불상,옥,방울등의
일괄유물이발견되어국보제123호로지정되었다.
왕궁리유적전시관
2008년12월왕궁리유적발굴조사과정에서확인된내용을소새하고
출토유물을전시..현재각종도가니,막새기와,토기,인장와등
1400여점의왕궁리유적출토유물을소장,전시하고있다.
궁성내부의전반부에정무공간인대형건물을두고
후반부에후원시설인정원을배치하는조영방식은중국북위낙양성의궁성배치방식과비슷하다.
화장실유적
정원시설이나대형화장실유구등의부속시설은일본평성경유적에서도발견되고있다.
이러한사실은한,중,일삼국의문화교류모습을살펴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