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대구 – 역사와 이야기가 함께 하는 시간여행 “모명재(慕明齋)”
조선시대귀화한명나라장수두사충과그를기리기위한재실.
한국의역사가된400년전역사속두사충의이야기이다.
모명재의"모명"은두사충의호로명나라를사모한다는뜻이다
대구도심속에자리해있는역사와이야기가흐르는모명재길..
만동문
모든하천은동쪽으로흘러간다는말로그근본을잊지않겠다는뜻이다.
청나라에서가져온청석으로다듬은2점의문인상
모명재의기둥에붙은주련이
이순신장군이지어보냈다는한시(漢詩)-봉정두복야((奉呈杜僕射)두복야에게드리는시
봉정두복야(奉呈杜僕射)
東來共死生동으로와서는생사를함께했네
신도비(神道碑)
충무공의7대손인삼도수군통제사이인수가비문을지은신도비이다.
두사충의묘
아들에게형제봉아래묘를쓰면자손이번창할것이라일러주었고
그의유언에따라지금의자리에묘를쓰게되었다고한다.
명정각(命旌閣)
두사충의7대손인두한필의효행을널리알리기위하여조정에서내린정려이다.
이순신과두사충과의우정
두사충이맡은일은지세를살펴진지를펴기적합한장소를잡는임무였다.
따라서그는명의원군이조선과의합동작전을할때
조선군과도전략전술상의긴밀한협의를했다.
이런인연으로당시우리나라수군을통괄하던충무공이순신장군과도아주친했다.
두사충은1592년임진왜란발발당시왔다가
1597년정유왜란때다시조선을오게되었는데
수만리길을멀다않고두번씩이나나와도와주자감격하여
두사충에게한시를지어마음을표하기도했다.
두사충은정유왜란때두아들과함꼐원병을와서공을세웠는데
난이평정되고난후조선에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