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최고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생가

육영수여사의생가

육영수여사가1925년에태어나어린시절을보냈던곳으로

"교동집(校洞宅)"이라불려지던옥천지역의명가이다.

조선상류계급의건축구조를갖춘가옥으로

조선시대김정승,송정승,민정승등의3인의정승이거주하였던곳이기도하다.

따뜻하고자애로운영부인육영수여사

육영사업과자선봉사단체양지회를통해봉사와사랑의실천에매진하였고

어린이대공원,어린이회관,여성회관등의건립을주도했으며

어린이와여성,소외된노인과불우청소년에대한애정과관심이

남달른것으로기억되고있다.

사랑채

박정희대통령방문시임시집무실로도사용되었다고한다.

대문(곳간채)를들어서니연못후면에배치된연당사랑이먼저시선이간다.

연당사랑

교동가옥내에서가장아름다웠던곳이며

풍류를즐기기위해마련된공간으로이곳에서많은시간을보냈다고한다.

중문채

안채로들어가는문입구

안채

ㄷ자형의구조로안방에는어머니이경령여사가골방에는육영수여사가

동쪽날개채안사랑에는아버지육종관씨가주로거주하였다고한다.

골방앞

육여사가출가하기전까지사용하였던방

아래채로들어가는문

아래채

ㄱ자형의구조로안방과부엌이있는전형적인조선시대후기반가의안채평면유형이다.

오른쪽으론곡식을담아두는대형뒤주가자리해있고

왼쪽으로는연자방아가있어많은식솔이기거했음을알수있다.

뒤뜰로돌아가보니육영수여사방이작으마하고아담하게꾸며져있다.

뒤뜰에서바라본안채대청마루가우물마루로되어있다.

뒤뜰엔사진과박정희대통령이육영수여사를그리워하는

애절한글들이전시되어있다.

결혼식사진

사당

석빙고

위채로들어가는문

위채

전형적인ㅁ자형구조로함실부엌과연속되는날개채에는행랑과식모방이있다.

정자

도시에서는좀체보기어려운"수정고드름"

육영수여사생가대문앞으로길가에돌고도는바람개비들

하나하나에소망과희망을담은글들이즐비하다.

육영수여사의생애

교동집에서작은아씨로불리던육영수여사..

1남3녀중세째로출생.

어려서부터가정교육을충실하게받아항상예의바르고침착한성격이였다.

배화여고시절재봉과수예솜씨가뛰어났으며

요리도남다른솜씨를발휘하였고

1945년옥천여자중학교가사교사가되어수예,미술을가르쳤다.

1950년6.25전쟁때피난온부산에서박소령을소개로만나

그해12월에대구에서결혼하여슬하에1남2녀를두었다.

박정희대통령영부인이되어청소년육성에많은열정을쏟았으며

양지회봉사활동등을통해헌신적인영부인으로활동하였다.

국민들에게사랑을실천하는영부인으로살다1974년8월15일

제29회광복절기념식장에서문세광의총탄에맞아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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