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10년 유감

블로그 10년 유감

 

햇수로 11년.

간신히 인터넷 접속과 검색 요령을 터득하여 컴퓨터를 만지작거릴 수준에서 블로그의 뜻도 의의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무턱대고 나만의 공간을 개설하게 된 데는 나름의 절박한 가정사 때문이었다. 고생고생하며 키워 비로소 사회에 내보낸 자식의 혼사문제가 말썽을 일으키더니 기어 파국을 맞게 되었고,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앞앞이 말 못하여 종내는 가슴에 멍울이 생긴 것이었다. 이를 풀어내지 못해 홧병이 생기려는 판에 블로그라는 자신의 울분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했던 것은 구원이었다.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좋았다. 그저 나는 내 속의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삭이려 들면 몸에 병이 들기 쉽다.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야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분노나 증오는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술로 유흥으로 해소해 보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망각이요 착각이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아닌 것이다. 술도 담배도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세상살이에서 부딪히는 분노와 좌절감을 딱히 무엇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갖지 못해 적잖이 마음고생을 하며 삶을 버티고 있는 터였다. 거기에 번번이 마주치는 삶의 장벽과 기습적인 역경은 나를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사는 것의 회의에 번민하는 고통과 갈등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수십 년 우울증을 안고 살았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 타고난 성벽으로 죽을 때까지 개선되거나 고쳐질 성질의 것이 아님에 요즘은 자포자기로 산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순간에 다시 찾아온 말도 되지 않는 가정사의 우여곡절은 나로 하여금 미치기 직전까지로 심경을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뉴스를 보다 보면 평소 착하디착하다는 사람이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사건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깊이 이해하며 동정과 연민의 정을 떨치지 못해 하곤 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학업을 마치고 세상으로 갓 진출한 아들의 결혼이 아름답지 못한 결론으로 매듭지어진 데는 사회적 지위와 부를 지녔다는 연고만으로 그지없는 오만과 안하무인격의 태도로 우리를 대하는 상대편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는 이 아비의 결심이 단초이기는 했다.

어느 아비가 내 아들 자식이 상대 쪽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잘못 길러져 시건방진 며느리의 당돌한 태도를 모른 척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리 돈이 좋고 이용할 가치가 있는 신분의 집안이라고 해도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벗어나는 행위를 조장하면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말로서 안 되니 결국 법의 힘을 빌리게 됐는데, 장장 1년10개월의 시간을 소요한 끝에 아들의 이혼재판은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쉽게 이혼에 응해 줄 것 같은 며느리 쪽의 변덕과 훼방으로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된 것이다. 어이없는 이런 일련의 개떡 같은 과정을 가감없이 처음으로 개설한 블로그에 나는 담담히 펴 올렸다. 잘 쓰지는 못해도 거짓없이 진실 되게는 쓰려고 노력했다. 글이란 꾸밈없이 마음에 떠오르는 그대로를 써야 잘된 글이란 걸 학창시절에 배워 익힌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의 응어리를 글로 풀어내려는 노력은 가상했으나 문제는 이를 알아챈 가족의 뜻밖의 비난과 압력이었다. 어느 날 딸애가 어찌 나의 포스팅을 보았던지 엄마에게 찔러 바친 것 같았다.

아내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평소 남편을 어려워하는 모습은 어디 가고 냉큼 큰 소리로 나를 비난하며 공격해댔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천지사방에 소문을 내노? 어느 부모가 내 아들 이렇게 이혼했네 하고 광고를 하노 말이다? 앞으로 아들 다시 장가 안 보낼끼가? 창피해서 이를 어짜믄 좋노?」

하여 어렵게 힘들여 써 올린 글을 본의 아니게 삭제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세상과 처음으로 마주친 나의 블로그는 시작부터가 시련과 풍파를 몰고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나의 글 쓰는 행위에 대하여 부끄럽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적은 없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것, 잘나 봐야 오십 보 백 보 아니냐는 게 나의 삶의 철학인 탓이다. 살아보니 인간의 부귀영화며 흥망성쇠란 것이 다 부질없고 뜬구름 같게 여겨지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조선블로그는 나의 첫사랑이나 마찬가지다. 내게 있어 조블은 배움의 장이요 지식의 창고로 기능했으며,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내와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을 조우함으로써 삶의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행복충전소였다. 신앙이 깊은 블로거들의 참회록에서는 나를 기도로 인도하는 기도처로 인식시켰고, 명랑한 유머를 발산하는 블로그에서는 일시적이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휴식처로 찾아들게 했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름을 대면 금방 ‘아 그 사람!’ 하고 감격할 수 있는 추억도 적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승혜의 사자우리’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최초의 유명 블로거였다. 열정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많은 깨달음과 희망을 주었다. 그녀의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이 지닌 모든 삶의 원초적 표상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처럼 열정적으로, 여성이면서도 강인하게,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강건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일을 능란하게 감당하던 사람도, 그 말도 안 되는 암의 이름으로 유명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어차피 사람은 유유상종이라 끌리는 블로그에 자주 접속함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미라클’, ‘꿈꾸는 장꾼’의 블로그에 들려서는 나의 짜디짠 감정을 자극하여 눈에 이슬을 맺히게 함므로써 자주 찾는 경우에 속했다. ‘빙하 속의 기억’, ‘순이 이야기’, ‘숲속나라 눈물동네’, ‘카르페 디엠’, ‘데레사의 꿈꾸는 세상’, ‘막일꾼’, ‘Yorowon’, Journeyman, ‘나의 정원’, ‘김진우’, ‘바위’, ‘로빈타임스’는 풍부한 읽을거리로 잔잔한 감동에 흥미만점을 안기는 날이 많아 역시 기억에 남는 블로그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블로그에 재미를 붙여 철모르고 오줄없이 댓글을 달았다가 경을 친 경험이다.

내 딴에는 애정 어린 심정으로 우스개삼아 몇 가지 비표준어의 사용과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아마 자존심에 대단한 상처를 입었는지 반응이 여간 격노한 모습이 아니었었다.

내가 짐작한 그 블로거의 대응은 “그런 따위로 내 글에 그냥 넘어가도 좋은 일에 지적질을 해댄다면 두려워서 어디 글을 쓸 수 있겠냐, 그런 꼴을 당하느니 절필하겠다‘는 투의 날카로운 대응이었다. 그런 원하지도 않은 상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에 다른 많은 애독자를 위하여 계속 재미있는 얘기를 쓰시도록 내가 참견을 않겠다고 선언하고 관심의 초점을 다른 데로 돌려 버린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블로그는 여일하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요즘 글은 용어의 선택도 적의하고 오자 탈자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역시 세월이 가니 스스로 주의와 조심이 되어 결과적으로 품격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것으로 여겨져 은밀히 미소 짓게 만들었다. 발전의 동기를 만들어줬다는 의미에서 이따금씩은 미운 짓도 도움이 되는가 보았다.

조선블로그가 나에게는 첫사랑과 같다 했는데 알고 보니 블로그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은 대형 포털을 비롯 각 언론사 홈페이지 등 많은 곳이 있었다. 그래 나도 욕심이 발동해 유명 언론사 블로그에 중첩으로 둥지를 터고 염치없이 같은 글을 퍼다 나르다 어느 순간 이건 도리가 아니다 싶어 철수를 하고 오로지 조블에만 전념하기로 했는데 안타깝게도 조블이 문을 닫아 마치 정조를 상실한 듯한 허탈감과 방황을 한동안 겪었다.

 

세상은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다. 조블인이 여러 언론사에 동시에 둥지를 터고 활동하다 보니 경쟁사의 토론 마당에서 아름답지 못한 시비논쟁에 말려드는 경우를 보게도 된다. 인터넷 논쟁은 연령무시 안면몰수 막말주고 받기가 상식으로 통하는가 보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예쁜 척 신사인 척 흥미로운 소재와 얘깃거리로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 참으로 인간이란 카멜레온적 변온동물의 속성을 버리지 못함을 알 수도 있게 되었다. 사람이란 피부를 맞대며 부딪쳐보지 않는 한 그가 어떤 인간성의 속물인지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그런 속물들의 진면목을 첫눈에 알아보는 지혜 같은 것도 터득하는 유익이 있다.

 

대형 포털에는 파워블로그라는 제도가 있어 운영진으로부터 특별히 취급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운영자 나름의 기준이야 있겠지만 별로 신뢰가 가질 않고 허명에 불과함을 깨닫는 것도 어렵지 않다. 흔해빠진 맛집 소개 블로그가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언론에 오르내린 불미한 사례로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노릇이었다. 돈을 받고 음식점을 홍보한 글이라는 것이 뒤늦게 까발려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순수하게, 솔직담백하게 일상을 읊고, 꿈을 이야기하며, 감상기를 상재(上梓)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너무나 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매달려 있는 정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파워블로그란 명성을 얻어서 무슨 유익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블로그엔 웬 시인이 그렇게 많고, 맛 칼럼니스트며, 분야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천지삐까리로 많은지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시인도 좋고 수필가도 좋으며 소설가도 좋은데 제발 포스팅을 하려면 글자 한 자, 문장 하나라도 제대로 다듬어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차라리 나 시인입네 하고 자랑을 말든지, 글 쓰는 사람이 오자 탈자를 예사로 해대서야 어찌 언어의 연금술사로 받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몇 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개의 블로거들이 한번 포스팅한 글에 대하여는 두 번 다시 살펴보지 않는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자 탈자며 잘못된 문장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그 무신경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조블이 문을 닫고 새로운 버전의 ‘위블로그’가 개설되어 인연 있는 블로거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됨은 감사한 일이다. 조블 폐쇄로 논란이 적지 않았음을 알지만 나는 오불관언으로 논란에 끼어들지를 않았다. 필경 거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고 오랜 기간 숙의 끝에 내려진 결론일 텐데 블로거들이 집단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불만을 표출한다고 해서 뒤집어질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한 안타깝고 억울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마련이다. 상실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블로그가 폐쇄된다면 억울해서 비난하고 분통을 터뜨릴 만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뿐 사태를 돌이킬 수 없다면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주변정리를 해야 할 지는 전적으로 자신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실패와 좌절과 상실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럴 때에 대비하여 교활할 정도로 자기보호본능이 강한 법이다. 그리하여 어지간한 충격에는 꿈적도 않는 배짱과 인내를 갖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뒤집기도 일어나는 세상이니까. ‘위블로그’의 탄생과 초대받아 이사 올 수 있었던 것이 정녕 바로 그런 경우로 믿어진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강산이 변하는데 사람인들 변하지 않으랴.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 배움도 많았지만 위로와 치유의 경험 또한 적지 않았다. 취미와 관심 영역도 넓어져 지식과 교양의 척도도 높아지는 행운이 따라 좋았다.

지금은 사진문화에 심취하여 천착하느라 문예적 포스트는 아무래도 수적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음을 안다. 글이란 그 바탕이 사유와 상념인데 사진은 즉각적인 감성과 직관을 필요로 함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사를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혐오와 염증이 아무래도 글쓰기를 멀리하게 하므로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도 오후 늦게 남천동으로 외출을 해서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한 벚꽃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벚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어느 시인은 팝콘이 터지듯 툭 툭 하얀 꽃을 쏟아낸다고 표현함을 보았다. 사물을 그렇듯 아름답게 채색해 내는 감각을 가진다면 더 이상 삶에 우울은 없겠지.

닮아보려 하는데 잘 될 확률은 적고 핑계와 세상 탓만 하다 만다. 그렇지만 벚꽃은 어떤 구애받음도 없이 전력으로 피어나길 한다. ‘블로그 15년 유감’을 쓸 기회도 오긴 오는 걸까.

4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3월 31일 at 7:59 오전

    조블이 문닫을 즈음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렇게 위블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좋아요.

    남천동에도 이제 벚꽃길이 조성되었나 봅니다. 학창시절 잠깐
    광안리에 산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광안리에서 남천동 까지
    바다만 보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테지요?

    그런데 위블 글쓰기가 완료되어도 오지 않는 이웃들이 많아서
    좀 섭섭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 힘들었거든요.
    얼른 그 분들도 다 오셔서 재미나는 생활얘기도 듣고 못가본 곳의
    여행기도 읽고 싶은데 말입니다.

    • 靑睦

      2016년 3월 31일 at 9:49 오후

      남천동 삼익아파트 타운은 벚꽃으로 유명세를 탑니다. 연산동 한양아파트 단지와 쌍벽을 이루지요. 오래된 아파트라 재건축이 추진 중인데 아파트명당으로 가격대가 장난이 아니랍니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가려 그간 유명세를 잃어버리긴 했는데 아마 재건축이 되면 역시 전국적인 인기를 불러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블로그’, 참 어렵습니다. 간신히 시간을 내어 포스팅에 열의를 내어보긴 하는데, 요즘은 포스트를 올린지 하루가 지나면 사진은 어디 가고 글만 남아 있는 경우를 보게 되어 대략난감입니다. 왜 그렇죠? 그리고 사진이 선명하질 않아요. 다른 분들 사진은 선명하게 실려 있는데…지혜를 빌리고 싶습니다.

  2. 데레사

    2016년 4월 1일 at 6:49 오전

    저는 사진을 포토스케이프 550 으로
    줄여서 올리거든요.
    파일 올리기에 울린후 글쓰기에 울리는지요?

    제가 얼마 위블에 처음오시는 분들에게ㅈ린
    제목으로 포스팅한게 있는데 한번읽어 보세요.

  3. 데레사

    2016년 4월 1일 at 6:58 오전

    제 블로그 낙서장에 보면 처음 위블을
    하면서 불편했던 점들을 이웃들과 주고
    받은 얘기들이 있습니다.
    혹 참고가 되실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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