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낙(樂)

 

현역에서도 물러나고, 가족부양의 의무에서도 해방이 되고나면, 그때부터는 세상천지가 비로소 자기 천하인줄로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요 만만의 콩떡이란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축복으로 가득한 찬란한 봄날로 생각했다간 미망에서 헤어나기는커녕 노년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옥상에서 아래로 다이빙하기 십상일 터다. 요행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신의 배려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 나는 살아있고, 육체는 성인병에 이환되어 오릿길 걷기도 힘겨워하는 처지지만, 즐겨하는 취미가 있고, 늘그막에도 배움의 의지는 죽지 않아 공짜로 가르쳐주기만 하면 십릿길도 멀다 않고 문화센터 같은 곳에 머리를 디밀곤 하는 것이 만년의 요즘 생활이다. 공짜 그거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 분이 있다면 부끄럽지만 정중히 이해를 구할 것이다. 내 삶의 신산함을 구구하게 변명할 마음은 없지만 살아보니 나의 경우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하여 축복을 내려준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큰 착각은 없으리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처님께 빌면 누구라도 잘 살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나는 정직하게 할 수가 없다. 그런 말을 믿을 수가 없고 또한 믿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기도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설교를 수십 년 들어오고 있는데, 죽기 전에 그 꿈이 성취되리라는 희망은 일찌감치 포기한 채 작금 인생에 이르고 있다. 나의 주변에는, 믿음도 독실하고, 능력도 있고, 착하기도 한 사람들이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고 있다. 거기에 이름도 요상한 난치성 희귀병에 걸려 온 집안을 거덜 낸 것도 모자라 가족을 해체시키는 경우도 없지가 않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곤란한처지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를 하고 연민의 정을 버리지 못해 한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이기에 훑어보면 그런 삶도 세상엔 흔하게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다. 그런즉 신앙심과 잘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신앙과 삶에 대하여도 회의적이며, 기도와 희망을 가진채 살아오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우물쭈물 살다보니, 머리는 허연 백발이 된 채 어언 고희에 이르렀고, 이제는 죽을 날이 살 날 보다는 길지 않다는 체념에 목하 웰다잉을 궁리 중인데, 남은 세월을 어떤 재미로 살아가느냐가 당면 과제일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다행히 나는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서 요즘 거기에 매달려 시간보내기를 지루해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음을 내심 고마워하고 있다. 오늘(4월30일)은 부산진구청에서 개최하는 「2016 백양산 애진봉 철쭉꽃 음악회」를 찾아가볼 요량이다. 찾아가볼 데가 있다는 기대는 노년을 사는 즐거움이자 보람이 된다. 20대 후반에 카메라를 만져본 이래 거의 사십 년만이다. 살아생전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이같은 취미생활이 가능했던 것도 우습지만 남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꿈이야 왜 없었을까만, 일생을 통하여 여일한 빈털터리로, 땡전 한 푼 없던 내가 무슨 재주로 고가의 카메라를 장만할 수 있었을까. 워낙이 빈요지명(貧夭之命)을 타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수중에 천만 원 이상의 돈을 모아본 적이 없다. 노후자금은커녕 다달이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지금의 내게는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달이 불입했던 국민연금도 퇴직 후 일시불로 찾아 쓰곤 지금까지 적금 같은 걸 넣어본 적도 없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절박한 생활이 나의 삶을 그토록 궁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적빈, 그것은 그대로 내 삶의 너무나도 익숙하고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아이가 성혼하기 직전까지 우리 네 식구(부부와 남매)는 보증금 5백여만 원에 매월 십오만 여원의 관리비를 내는 13평형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그게 불과 삼년 전까지의 내 삶의 형태였다. 아들의 결혼비용조차 부모는 한 푼도 보탤 수 없었다. 이런 내가 그 호사스런(?) 사진취미 생활을 노년에 누리리라곤 언감생심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중학교 일 학년 때 가정이 풍비박산 난 이래로 주경야독하면서 공부에 한이 맺혔던 나의 꿈은 책을 읽고 싶어 온 방안이 책으로 둘러싸인 내 서재를 갖고 싶은 것이었는데, 이사를 할 때마다 번번이 모은 책을 버려야 했던 아픔이 있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경험해 보니 전혀 무망한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밥은 굶어도 책은 즐겨 사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갖고 싶었던 나의 마지막 소망도 아들 녀석을 장가보내면서 뜻밖에 생긴 눈먼 돈(?)에서 아내 몰래 천만 원을 삥땅 쳤기에 가능했다. 나중엔 물론 아내도 알고 사후 윤허 받았지만 아내도 나의 이런 무식하고 대책없는 행태에 대하여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라는 걸 내가 먼저 잘 알고 있기도 한다. 술 담배도 할 줄 모르는 남자가 무슨 낙으로 인생 말년을 보내겠는가 싶은 동점심과 이해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결과로 나는 믿고 있다. 따지고 보면 평생을 부창부수로 쌔빠지게 고생만 했으니, 인생말년에 이 정도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무슨 큰 죄악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늘그막에 이른 작금의 삶의 낙은 다른 데 있음을 정녕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친구들에 비하여 손주를 늦게 봤다. 아들의 결혼이 만혼이었던 탓이다. 친구들의 모임에 가면 손주들 자랑에 눈꼴이 시어서 도무지 용납을 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내가 손주를 보고서는 그들의 손주 자랑질이 과장되었거나 꾸민 것이 아님을 몸소 체험하면서 반성하게 되었다고 말함이 옳겠다. 내 자식을 키울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과 기쁨이 울컥 솟는 것이었다. 생긴 것이 이 할아비를 닮아 좀 못나긴 했지만,  천진하게 잠자는 손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곤 한다. 사내 자식이 얼굴 팔아먹고 살 일도 아니고, 머리 좋고 건강하며 능력만 있으면 땡이라는 것이 나의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돈 있고 능력 있으면 못난 얼굴쯤 뜯어고치는 건 요즘은 여반장이 된 세상이니 그따위는 전혀 근심할 꺼리도 되지 못한다.

아들네 집은 창원에 있는데. 한 주 간격으로 손주를 보러 나는 창원에 다녀오곤 한다. 며늘 아이가 창원에 있는 회사의 직장인이라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손주를 사돈네와 번갈아 일주일씩 돌보도록 한 언약 때문으로, 보름 만에 만나는 손주의 모습이 매번 달라짐을 보는 기쁨은 그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다.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짓고, 엉금엉금 기다가 일어나 뒤뚱거리며 걷는 성장발전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이제 22개월째인데, 요즘은 방귀를 풍풍 뀌면서 제 스스로 방귀소리에 놀라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자기 엉덩이를 가리키는 모습을 볼라치면 세상 어디에 이런 행복감 제조기가 있을까 싶어 저절로 뺨에 입을 맞추게 된다. 아직은 말을 익히는 중인 듯 아빠, 엄마와 같은 단순 발음만 내놓는데, 머지않아 대화를 주고받을 경우를 상상하면 가슴 깊은 곳의 감동적인 떨림을 주체치 못해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카메라에 담는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작업은 멈출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될 것 같아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보면 스쳐갈 일도 사진을 보면 확실히 아이는 자라고 있음이 분명해 뵈는 것이다. 이런 신비를 어디서 맛볼 수 있으랴, 이런 경이를 어디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이래서 사진은 위대한 기록이 되고 아름다운 예술이 되는가 보았다. 나의 경우 늦게 얻은 손주를 보는 재미와 성장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취미로 이토록 크나큰 삶의 낙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으로 오늘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출생후 4일째. 간호사님이 창문을 통해 처음으로 손주를 대면시켜줬다. 이때만 해도 저게 언제 커서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했는데…

2014.8.31. 출생후 1개월19일째. 할머니와 눈을 맞추는 듯했다.

2014.10.19. 모처럼 외출 준비.

2014.12.4.  뒤집기 성공.

2015.3.4.  낮잠 후 할머니와 평화의 시간을.

2015.7.12. 첫돌을 맞아 선물 받은 자동차에 어미가 태우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뒤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니 돌아보며 짖꿎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린이는 천하에 엄마만큼 좋은 사람이 없는 법이다. 엄마와 함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일 듯.

2015.7.12. 첫돌을 맞아 선물 받은 자동차에 어미가 태우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뒤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니 돌아보며 짖꿎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린이는 천하에 엄마만큼 좋은 사람이 없는 법이다. 엄마와 함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일 듯.

2015.7.12. 첫돌을 맞아 선물 받은 자동차에 어미가 태우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뒤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니 돌아보며 짖꿎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린이는 천하에 엄마만큼 좋은 사람이 없는 법이다. 엄마와 함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일 듯.

2015.7.12. 첫돌을 맞아 선물 받은 자동차에 어미가 태우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뒤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니 돌아보며 짖꿎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린이는 천하에 엄마만큼 좋은 사람이 없는 법이다. 엄마와 함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일 듯.

 

집중력 하나는 끝내준다. 일정시간 할머니와 비디오 학습을 하면 전혀 딴데 눈길을 돌리지 않고 신중모드로 접어드는 것에 우리는 감탄을 한다.

 

2016.3.10. 이번에는 20일의 공백을 두고 만났더니 훌쩍 자란 느낌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생명은 쉼없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겠다.